한옥은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었다. 서양식 건물에 밀리고, 좁고 추워서 살기에 불편하다는 이유 등으로 우리 주거 문화의 중심에서 점차 멀어져갔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 북촌과 전주 교동의 한옥마을 등, 버림받고 있던 한옥이 전국 곳곳에서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한옥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한옥 본래의 좋은 점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한옥은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담는 공간으로 새롭게 와 닿을 수 있다.
이 책은 한옥이 지닌 장점을 살려 오늘의 삶에 맞게 지혜롭게 고치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음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생활공간으로서 한옥의 효율성과 장점을 전달하며, 현대적 삶을 담은 이 시대의 한옥이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집은 행랑채가 안마당을 겹으로 감싸고 도는, 포包자형으로 건축되었다. 건넌방 뒤쪽으로 행랑채가 감싸 돌면서 좁은 골목이 만들어지는 특이한 모습이다. 이 골목을 돌아 나가면 뒤뜰이 나온다.
집의 당호인 '삼호당'三乎堂은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에서 따왔다. "때맞춰 공부하고, 멀리서 벗이 찾아오고, 세상을 원망하지 않으니 이 역시 즐겁지 아니한가". 공부하기 좋아하고 유난히 벗이 많고, 조용히 중요한 일을 하는 집주인의 가치관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다.
이 집에 걸려 있는 주련도 주인의 인품과 안목을 은연중에 품어낸다. 서예에 그다지 조예가 없더라도 금세 김정희의 그 유명한 추사체임을 알아볼 수 있다. 다른 유려한 글씨는 누구 것이냐 물었더니, 추사가 청나라에 가서 만난 평생의 스승 담계 옹방강의 솜씨란다. 사제 간의 글씨가 나란히 한 마당에 선 것이다. 추사체는 분명 청출어람의 글씨다. 그러나 주련의 글씨보다도 내용이 더욱 감동적이다. "가장 좋은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차림이요, 최고의 모임은 부부와 자식과 손자가 같이 사는 것이다". 삼호당 주인의 가치관이요, 살고 있는 형태이니 더 말해 무엇하리요. (p.87)
의젓하게 잘 지어진 한옥 한 채가 새로운 기능으로 다시 태어났다. 건물 전면의 돌난간 등 풍부한 석재 조각과 유달리 짙은 목재의 색은 기존 한옥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p.368)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1980년대만 해도 혜화동 큰길 안쪽에는 한옥들이 즐비했다. 한옥 대목들은 경사지에 고밀도로 지어진 북촌의 한옥들에 비해 평지인 혜화동 일대의 한옥들이 일반적으로 더 크고 나무도 더 좋은 것을 썼다는 증언을 종종 하곤 한다. 이 집은 그러한 증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대지면적 244평에 건축면적 75평에 이르는 이 집의 규모는 북촌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집의 골격도 건강하여 전체적으로 개조에 커다란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주 의젓하게 잘 지어진 한옥 한 채가 새로운 기능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p.366)
서울 북촌의 한옥에서부터 제주도의 전통 초가까지, 한옥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현대 생활의 편리성이 반영된 신축 및 중건 한옥 27채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체 4부 '거주 공간, 상업 공간, 문화 공간, 업무 공간' 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공간의 성격에 맞게 잘 고친 한옥들의 예가 실려 있다. 이 한옥들은 일반 주택으로서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찻집, 치과, 민박시설, 연구원, 사무실, 동청사 등으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27채의 한옥에 대해서는 각각 설계건축가와 시공 목수, 집주인을 소개하는 한편, 집의 내력과 특징, 주변 환경과의 관계, 개수를 결정하게 된 이유, 개수를 통해 구현하려고 한 생각들, 전통미와 실용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들, 건축주 및 사용자의 만족도, 건축 개요 등의 풍성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취죽당 翠竹堂은 가회동 31번지에서 1번지로 넘어가는 좁은 골목길 모퉁이, 골짜기에서 능선으로 연결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집이다. 31번지 중에서는 가장 높은 필지의 하나다. 그러나 북촌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취죽당도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서 밖을 보는 경관이 그리 개방적이지 않다. 앞과 옆에서 다른 집들이 가로막고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집의 구조 때문이다. ㄷ자 혹은 ㅁ자와 같은 폐쇄형 평면을 갖는 도시형 한옥의 특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집에서는 외부로의 조망보다는 내부의 경관이 더 의미를 갖는다. (p.47)
집 안에 들어서면 사랑마루가 손님을 맞이하고, 대청에 앉으면 사랑마루를 지나 담장까지 시선이 확장된다.
한옥에 살어리랏다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 지음 / 돌베개
시원스런 판형에 307컷의 아름다운 사진과 104컷의 도면을 해설과 함께 수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집 안 곳곳을 둘러보는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오래된 한옥의 경우 새로 실측 조사하여 도면을 그려 넣었으며, 집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가 담긴 '건축 개요' 와 설계사무소 및 대목, 시공.조경업체의 연락처가 담긴 부록도 유용할 것이다.
기획에서부터 출간에 이르기까지 1년여 동안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펴낸 이 책은, 문화재청과 건축학자.건축가.건축사진가.건축주.출판사가 함께 뜻을 모아 작업한 의미 있는 결실이기도 하다.
오늘의 한옥을 짚어보고, 미래의 한옥을 생각한다
안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는 이 집을 짓기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 나무를 다치지 않고 집과 자연이 하나가 되게 한 선인들의 지혜와 삶의 자세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시민문화유산 1호' 인 최순우 옛집은 지하철 한성대역에서 10분 정도 성북동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경신고등학교 방향으로 나 있는 '최순우 옛집' 은 대지면적 약 120영, 건축면적 약 31평밖에 안 되는 작은 집이지만, 많은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근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이들과 관련된 건물들이 헐려나가 그 흔적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현실에서, 최순우 옛집 역시 헐리고 그 자리에 다세대주택이 들어설 뻔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고 한국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위상을 가진 분을 기리는 공간이 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된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현대를 살았던 인물의 집을 복원하는 일을 중앙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유산을 아끼며 가꾸고자 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만든 단체에서 시민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매입하고, 그후 더 모금한 돈으로 보수를 해서 옛 모습에 가깝도록 되돌린 문화유산 보존 운동의 성과라는 점이다. (p.248)
우리 시대의 한옥은 과연 무엇일까? 한옥이 앞으로도 동시대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발전되어야 할까? 한옥의 원활한 보존과 활용을 뒷받침해줄 제도적 장치와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오랫동안 자행된 한옥 파괴행위와 최근에 일어난 한옥 신축 및 개조 유행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전통건축 연구와 한옥 건축 작업을 해온 집필진들의 생각은 귀 기울여볼 만하다.
책임 기획을 맡은 김봉렬 교수는 한옥을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집" 이라 정의하며 우리 시대의 한옥론을 풀어냈다. 이탈리아에서 서양건축을 전공한 건축가 최욱은, 직접 한옥을 개조하여 자신의 작업실로 이용하면서 한옥을 좋은 건축의 전형으로서 받아들이게 된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한다. 북촌에 있는 5채의 한옥을 신축.중건하기도 했던 현대건축가 황두진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한옥 건축의 현황을 짚어보고 한옥의 밝은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한옥에 살면서 세 아이를 키워온 조향순 주부의 한옥 예찬, 한옥살이와 아이들 교육과의 관계에 대한 내밀한 경험과, 25년 동안 사찰 건물과 한옥, 정자 등을 지어온 강의환 대목의 한옥에 대한 생각, 한옥을 짓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조언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사랑마루에서 바라본 안채. 안채는 숨어 있으면서도 시원하고, 사랑채는 드러나 있으면서도 아늑하다.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의 안쪽에 자리 잡은 이 한옥은 집 주변을 감싸 도는 부드러운 산세 속에 더 없이 편안하게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ㅡ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사랑마루를 감아 돌면 둘러진 기단 위에 ㄱ자로 된 안채가 보인다. 안채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렇게 사랑채 뒤에 숨어 있어서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집은 집 주변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서 앉혔다. 안채에서 보면 안채의 돌담과 사랑채의 지붕이 겹쳐지면서 그 위로 맞은편 산이 둥실 떠오른다. 안채는 숨어 있으면서도 시원하고, 사랑채는 드러나 있으면서도 아늑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자연스러운 느낌이 이 집 전체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이 집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원래 서울 한남동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으로 인해 헐릴 지경이 된 것을 한상훈 씨가 구입하여 1981년 이곳 징광으로 옮긴 것이다. 그후 2003년 크게 손질하여 집의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집은 새로운 자리를 찾아 무려 천 리를 달려온 셈이다. 토지에 정착하는 것이 집이라지만 이렇게 우리의 한옥은 종종 먼 거리를 옮겨 다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p.122)
안채의 대청. 높은 천장으로 인해 입식 가구가 어색하지 않다.
건축학자.건축가.목수.집주인이 말하는 '나의 한옥론'
한옥은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집이다.
가족제도가 변하고 생활양식이 바뀌고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한옥이라면 변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대 생활에 불편한 한옥을 굳이 찾는 이유는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주지 못하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풍족함을 한옥에서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과 자연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고, 아늑한 마당에서 여유를 즐기고, 환경친화적인 목조 구조체의 틀 속에서 차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집을 한옥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한옥이란 지극히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집이라 할 수 있다. - p.11 김봉렬(건축학자)
한옥의 풍요로운 깊이나 나 자신의 건축이 도달하고 싶은 지향점이 되었다.
나에게 한옥은 전통을 일컫는 집의 유형이 아닌 좋은 건축의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형이다. 한옥이 가진 풍경과 자연, 기능을 아우르는 그 풍요로운 깊이는 나 자신의 건축이 도달하고 싶은 건축의 지향점이 되었다. -p.137 최욱(건축가)
앞으로의 한옥은 우리 시대 최고의 창의력이 집중되는 거대한 실험의 장으로 변화해야 한다.
한옥의 미래를 논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결국 '어떻게 하면 다수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한옥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한옥 자체의 성능을 개선하고 내구성을 높이며 경제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문화재로서의 한옥과 현대적 삶의 그릇으로서의 한옥을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성도 대두된다. 과거의 한옥이 더 없이 소중한 역사문화의 일부로서 엄격한 보존과 의미 있는 활용의 대상이라면, 앞으로의 한옥은 우리 시대 최고의 창의력이 집중되는 거대한 실험의 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 p.32 황두진(건축가)
한옥은 자식들을 건전한 사고와 관용을 갖춘 자유인으로 키우기에 적당한 집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관점에서 아이들이 성공하는 길로 들어섰는지를 따지기보다, 자유에 따른 책임을 질줄 아는 상식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에 우리 부부는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많은 독서를 바탕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전한 사고의 틀과 사물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안목, 그리고 상대방을 포용하는 아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한옥은 무엇보다도 자식들을 이러한 자유인으로 키우기에 가장 적당한 집이다. -p.20 조향순(주부)
전통한옥의 정신은 지키되 현재 우리 삶의 방식에 맞춘다면 한옥은 훌륭한 주거 형태가 될 것이다.
한옥은 칸이 좁아서 현대 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전통한옥의 정신과 형식적인 틀은 지키되 내부 구조는 지금 우리 삶의 방식에 맞춰가는 것이 현대식 한옥이라 할 수 있어요. 과거의 방식과 현대의 모습을 적절히 섞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서로 이가 잘 맞으면 어느 집보다도 훌륭한 주거 형태가 될 테니 말이에요.
창문의 위치나 크기를 바꾸는 것 같은 세부적인 요구사항들은 한옥의 전체적 비례와 관계된 문제여서 양봇하기가 쉽지 않아요. 자신의 집을 짓기 전에 양동마을 같은 전통한옥마을을 많이 둘러보며, 집주인들이 한옥을 보는 눈을 기르고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할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에요. -p.229~230 강의환(대목)
한옥을 오늘에 맞게 활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옥을 오늘에 맞게 활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서울과 같은 큰 도회지는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경제력도 있기 때문에 한옥을 활용 목적에 맞게 고쳐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의 한옥은 한옥 구조를 형성하는 '하드웨어' 를 현대적인 용도에 맞게 고쳐서 한옥을 활용할 방안을 찾을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한옥과 함께 오랜 세월 형성된 우리의 전통문호가 한옥에 배어 있는 '소프트웨어' 를 사람들에게 체험케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한옥을 활요용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p.110 이상해(건축학자)
한옥의 영역구분과 성격, 외관의 윤곽과 스케일과 질감은 꼭 지켜야 할 한옥의 특성이다.
무엇을 지키고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는 한옥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과제에서 늘 부딪치는 문제이다. 그러나 영역의 구분과 성격, 외관의 윤곽과 스케일과 질감은 꼭 지켜야 할 한옥의 특성이다. 한옥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담으려 할 때,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추어 한옥을 변형하려 하기보다, 한옥의 구성에 맞추어 담겨질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방법이다. -p.261 송인호(건축학자)
우리 건축 문화의 정체성 구축을 위해 전통건축의 재활 작업은 끈임없이 시도되어야 한다.
전통과 현대의 접목이 부족한 우리 건축 환경에서 한옥 건축 질서체계의 심도 높은 재해석을 기대하기는 아직 너무 이른 단계라고 판단된다. 마치 르네상스 시기에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200~300년이 소요되었듯이, 우리 건축 문화에 정체성을 위한 다양한 작업의 일환으로서 전통건축의 재활은 여러 방법들에 의해서 오랜 시간 동안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작업을 하는 자체에 목표를 두기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방향성들이 제시될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 위함이다. -p.167 민선주(건축학자)
첫댓글 좋은정보감쏴~~구입해서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