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자흐스탄 민속신앙과 우리나라 민속신앙의 비교*
이복규(서경대)
Ⅰ. 머리말
Ⅱ. 이슬람 국가였으며 러시아 지배지였던 카자흐스탄에 민속신앙이 있을까?
Ⅲ. 카작에만 있거나 두드러져 보이는 민속신앙은 무엇인가?
1. 언어주술-축복과 저주-
2. 영웅, 성자의 묘지에서 참배하며 밤을 보내기
3. 이블 아이(evil eye)
4. 샤슈(사탕이나 돈 등을 뿌리기)
5. 출생의례의 특이사항들
6. 민간의료
Ⅳ. 카작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민속신앙은 어떻게 같고 다른가?
1. 가신신앙(성주, 조왕, 조상)
2. 자연물신앙
3. 사귀신앙
4. 점복, 예조 신앙
5. 금기, 주술 신앙
Ⅴ. 카작에도 무당이 있는가? 우리 무당과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Ⅵ. 맺음말
Ⅰ. 머리말
<카자흐스탄(카작)>은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로서, 중국 서쪽 끝 신강성 및 우즈베키스탄(우즈벡), 타지기스탄(타직), 키르기스스탄 등과 인접한 나라이다. 카작 민족은 우즈벡, 타직 등 인접국과 미분화상태로 있다가,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분화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 지역의 8세기 탈라스(현재 <따라즈>) 강변에서 고선지가 이끄는 당 군대를 이슬람 세력이 격파함으로서 다른 중앙아시아 지역과 함께 이슬람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 지역이다. 그후 13세기에 몽골제국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가 러시아 및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에 분리 독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석유 부국이며, 면적이 남북한의 12배에 달하는 큰 나라로서 동포인 고려인이 10만명이나 거주하고 교포도 2천명 정도 진출하여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 카자흐스탄(카작) 사람들의 민속신앙은 있는가? 있다면 어떤 양상이고 우리와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인데, 딱 6개월(2006.2-2006.7)간 카자흐스탄, 그것도 옛수도였던 알마타에서 머물다 온 경험밖에는 없는 필자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움을 고백한다.
더구나 필자는 카작의 민속신앙을 연구하기 위해서 카작에 갔던 것도 아니다. 그곳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인 고려인(까레이츠)들의 구전설화를 채록하여 연구할 목적으로, 안식년 기간을 이용하여 잠시 체류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거기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카작 사람들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민속신앙적인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기회가 닿는 대로 사진도 찍고 선교사를 비롯하여 러시아어(그곳 공용어)를 할 줄 아는 그곳 교민들에게 묻기도 하여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지식을 축적해 가고 있었는데, 행운이 찾아왔다. 필자가 머무는 동안, 그곳 교민 신문인 <한인일보>의 주간지인 <주간한인>에 <카자흐, 카작인, 카자흐스탄>이란 제목으로, 총18회(2006년 1월부터 6월까지)에 걸쳐 카작 관련 특집기사가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김계원 선교사가 소장으로 있는 중앙아시아 언어문화연구소에서 주최해 이루어진 카작 현지인 교사의 특강 원고를 번역 정리하여 실은 것이었고, 그 안에 카작 문화 및 민속신앙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어 전량을 입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카작 민속 관련 책자를 구하기 위해 서점마다 방문하였으나 구할 수 없었는데, 귀국 직전 우연히 들른 중앙아시아 언어문화연구소에서 카작어・러시아어・영어 이렇게 3개국어로 대역된 신간 도서『Kazakh Traditions and Customs』(Almatykitap, 2005)(이하 『카작전통』)을 구할 수 있었다.
귀국 후, 강의와 채록해 온 고려인 구전설화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던 차에, 비교민속학회에서 「아시아 민속신앙의 비교연구」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는 통지가 왔고, 카자흐스탄 민속신앙에 대해서는 따로 발표된 일이 없기에, 내가 가진 정보이라도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하여,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보완해 이 글을 작성하였다. 필자가 그곳에서 견문한 것, <주간한인>의 연재기사(이하 <주간한인>), 현지에서 나온 책자의 민간신앙 관련 대목(이하 『카작전통』), 이 세 가지를 자료로 하여 발표자 나름의 체계에 따라 카작 민속신앙의 양상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의 것과 거칠게나마 비교하였다. 논의보다는 소개에 더 무게중심을 두기에, 질문을 제시하고 이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Ⅱ. 지금까지도 이슬람 국가이며 소련공산정권의 지배지이기도 했던 카자흐스탄에 민속신앙이 있을까?
있다. 8세기부터 이슬람이 카자흐스탄에 침투하여 19세기에 와서 카자흐스탄 전역에 자리잡게 된 것도 사실이고, 1917년 러시아공산혁명 이후(소위 ‘소련’시절)에는 반민족주의와 반종교주의의 영향 아래 놓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민속신앙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슬람화하기 이전부터 지녀온 민속신앙이, 이슬람화한 후에도 여전히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이어져 왔으며, 소련 체제 아래에서도, 대부분의 민속신앙이 존속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1991년 소련의 와해와 함께 분리 독립되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및 현대화,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이 나라도 우리처럼 민속신앙을 포함한 전통문화 자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는 있어, 과거의 민속신앙이 온전히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말은 하기 어렵다.
1000여년(본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10-12세기부터만 해도 700-9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이슬람의 영향권 아래 있으면서, 어떻게 민속신앙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이 의문에 대하여, 다른 지역에 비해 이슬람의 전파가 늦은 편이었다는 점, 이슬람의 종교적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점, 이 두 가지 요인으로 분석하는 견해가 나와 있다. 이런 요인에 의해, 이슬람화하기 이전(민족 분화를 일으키기 전 즉 ‘튜르크’민족 공통의 문화를 누리던 시절)부터 지니고 있었던 민속신앙들이, 이슬람국가화한 이후에도, 여전히 카작인의 생활을 지배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하겠다. 그래서인지 “카작인들에게 이슬람은 피상적인 성격을 지닌다”이렇게 규정하는 견해까지 나와 있는 실정이다.
Ⅲ. 카작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민속신앙은 무엇인가?
1. 언어주술-축복과 저주-
카작인들은 휴가를 떠나거나 치료를 받을 때, 여행 떠날 때나 대학에 입학했을 때, 존경하는 사람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충고의 말을 듣거나 식사를 한 다음에야 떠난다. 좋은 기원9바람)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카작전통, 100쪽).
카작인의 속담에 이런 게 있다. <비로 대지가 푸르러지고, 축복으로 사람은 푸르러진다>, <많은 사람의 기원은 호수처럼 거대한 무엇을 이룬다> 카작인이 얼마나 축복을 중시하는지 보여주는 속담이다. 우리의 덕담과 같은 것은 옹 바타(Ong bata)(축복)라 하는데, 카작에는 테르스 바타(Teris bata)라 하여, 자녀, 며느리, 형제, 친척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 부모가 주는 저주도 공존하고 있어 이색적이다. 옹 바타는 양손을 앞으로 내서 위를 향해 편 채 기원을 한 후, <아우민>하는 화답과 함께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내리는데. 테르스 바타를 말할 때는 손등을 위로 하게 하고 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후손이 멸하길!>, <앞 길이 열리지 않고, 말라 버리길!>,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마라!> 등의 내용으로 빈다.
이같은 의식은 구비문학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는데, 원수 집안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즈벡 아가씨(크즈 즈벡)>라는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바트르 퇼레겐이 여자 주인공 크즈 즈벡의 마을을 향해가려고 하여, 자기 아버지 바자르바이로부터 허락을 구할 때 그의 아버지는<사돈 맺는 데 있어서 난 마음에 차지않는 구석이 있다. 예들-쟈이읙 강변에 처자가 없느냐?, 멀리 있는 처자를 찾아, 맹세를 깨고 출정하겠다고 하는 네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배은망덕한 도리이냐?>라며 허락하지 않는다. 즈벡과 굳게 약속을 했던 퇼레겐은 아버지 바자르바이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개의치 않고 떠날 결심을 한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대대로 내려온 조상의 정통을 깨버린 데 대하여 분노한 나머지 아들 퇼레겐과 동행할 사람을 붙여주지 않은 채 먼 길을 혼자 떠나게 하는 것은 물론, 아들이 떠날 때 테르스 바타를 준다. 아버지로부터 테르스 바타를 받은 퇼레겐은 그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연적인 베케 쟌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
축복의 말을 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시골 마을의 나이 많은 노인(악사칼)의 역할이지만, 손님이 주인에게 드리는 감사도 이러한 선한 기원으로 간주되었다. 카작인은 양손을 모으고 손님을 맞이하며, 정성스레 식탁을 꾸미고 자기 집을 방문한 하나님의 손님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 대접하는데, 손님은 집 주인에게 하나님의 손님은 음식이 나오기 전과 후에 선한 기원과 자신의 호의를 드러내며 축복의 말을 건넨다. 남성들이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혹은 적과의 전쟁에 나설 때에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악싸칼의 집을 찾아가서 축복과 기원을 구하곤 했다. 여행 떠나기 전의 회식을 특별히 <졸라약>이라 하는데, 이 식사에 악사칼을 초대하는 이유는, 무사 귀환과 여행 목적 달성을 비는 기원의 말을 듣기 위해서이다(카작전통, 136쪽). 갓 태어난 아기와 새로 시집온 새댁을 위해서도 축복을 한다. 어린 아기의 40일 잔치(크륵크난 싀가루)를 치를 때, 아기를 요람에 눕히고(베쓱케쌀루), 이름 짓는 의례(앗 코유)를 행할때, 마을의 어른 아이, 노인 젊은이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이 때 말을 할 줄 아는 활달한 한 남성이 <토이 바스타르>를 부르며 노인들에게 축복을 빌어 주도록 요청한다. 이와 함께 새로 시집온 새 색시를 마을에서 가잘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절하게 한 후, 축복의 말을 요청했다. 그리고 새댁이 직접 차린 음식을 먹고 그 요리솜씨를 평가하기 위해 마을 어른들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이때에도 어른들은 새댁이 지은 맛난 음식을 먹고 나서 축복의 말을 함께 나눴다.(주간한인 제21호, 2006.5.26-6.2)
<어머니의 축복을 받고 있는 아들> <집단으로 축복을 하고 받는 장면>
신년축제인 나우르즈 축제(Nauruz toi)(3월 22일) 때도 축복의 말이 많이 주어진다. 유목민이었던 카작 민족에게 있어서 나우르즈의 의미는 첫 번째로 봄을 알리는 신호로 봄은 가축이 새끼를 낳는 계절이다. 새끼를 낳으므로 우유도 풍성해진다. 그래서 문지방에 흰우유를 붓고, 문설주에 아이란(유제품)을 바르면서 그 해가 풍요하길 기윈했다. 이 때 <악 몰 볼슨!(Ak mol bolsn!)>이라는 소원을 비는 것은 바로 가축이 새끼를 많이 낳고 우유도 풍성해지길 기원하는 것이다. 만일 그 날에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머리에 비를 맞으며, 하나님의 빛(자비)이 이처럼 쏟아지기를 기원했다. <평화가 임하길!(Beibitshilik orunalsn)>하는 기윈을 주고 받기도 하는데, 사소한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이 이런 축복을 주고받으며 서로 화합하기도 한다(주간한인 제21호, 2006.5.26-6.2).
우리나라에도 덕담이 있어, 카작의 옹 바타와 비견할 수는 하지만, 우리는 설날 세배할 경우로 한정되는데 반해, 일생을 두고 큰일을 앞두고 부모나 집안 어른, 존경하는 노인으로부터 필수적으로 옹 바타를 받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때로는 그 부모가 직접 테르스 바타인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2. 영웅, 성자의 묘지에서 참배하며 밤을 보내기
카작인은 존경하는 인물 즉 용사, 이슬람선교사(코좌)들의 묘지를 찾아가 희생제물을 드리고 코란을 읽기를 좋아한다. 주기적으로 알마타에 있는 라이음벡 바트르가 묻힌 곳이나 투르키스탄에 있는 코좌 아흐멧 야싸위의 유적지 혹은 잠블(따라즈)에 있는 아이샤 비브의 유적지를 찾아간다. 특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은 이들의 묘지를 찾아가 거기서 밤을 지새우고 코란을 읽게 하고, 성스러운 조상령을 예배하며 소원을 빈다(주간한인 제22호, 2006.6.2-6.9).
이는 우리나라의 영웅신앙과 비견될 수 있으나, 일생을 두고 누구나 반드시 한 번 이상 또는 수시로 해야 하는 의무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하겠다. 종교적인 성자의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일반 이슬람 교도의 메카 순례를 대체하는 행위로 여겨지고 있어, 민속신앙과 이슬람신앙이 묘하게 결합한 형태로 해석할 수도 있다.
3. 이블 아이(악의 눈)
카작인들은 어린 아이를 예뻐하고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질시의 눈을 통해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정한 액운을 타지 않도록 투투투 세 차례 소리 내면서 침을 뱉는 습속이 있다. 눈길을 보낸 사람이 뱉을 수도 있고, 눈길을 받은 아이로 하여금 뱉게 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무의식 중에 가족 자랑을 한참 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이블 아이>를 의식해, 스스로 세번 침을 뱉기도 한다(카작 교민의 제보 ).
이런 전통을 가진 카작에서, 어린 아이를 보고 직접적으로 너무 귀여워하는 모습은 오히려 아이 부모들을 근심시킬 수 있다. 아이를 칭찬할 때도 <참 예쁘다. 잘 생겼다>라는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잘 자랐구나(여자), 용사같이 씩씩하구나(남자)>하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주간한인 제9호, 2006.3.3-3.10).
작명시 이블 아이에 띌까 봐 일부러 <새끼발가락>, <개 젖 먹고 자란 놈>, <강아지> 등의 우스운 이름을 붙여주기 전통도 있다.(카작전통, 64쪽) 반대로 아이에게 액운이 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험하고, 나쁜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어떤 마을에서는 자녀의 이름에 세르게이나 이반 같은 러시아식 이름을 붙이기도 했는데, 지배자 러시아인에 대한 카작인의 감정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하는 국면이라 하겠다. 물론 이런 이름들은 아이가 건강하게 잘 성장하게 되면, 주민등록증 등 공식서류를 하게 될 때에는 정식 이름으로 바꿔준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경주에서 이겼을 때도, 이블 아이에 노출될까 봐, 숨기려 한다. 민간신앙에 따르면, 좋은 사람이나 아이, 경주에서 이긴 사람이나 아름다운 소녀는 이블 아이에 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긴 사실을 숨기려 한다. 그래서 아이의 이마나 뺨에 숯을 묻힌다. 젊은 신부나 아이가 질투를 받으면, 이블 아이에 노출된다고 보아, 신부나 아이로 하여금 <숙-숙> 또는 <트파-트파(tfa-tfa)>라고 말하면서 침을 뱉게 한다. 그렇게 하면 이블 아이로부터 해를 받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블 아이에 노출되면 사람이나 동물이 불가항력적으로 병든다고 믿는다(카작전통, 142-143쪽).
4. 샤슈(사탕이나 돈 등을 뿌리기) : 혼례나 말 경주 등의 큰 행사 기간에, 사탕이나 돈을 뿌린다. 모든 사람은 이 관습을 사랑하는데 어린이들은 특히 좋아한다. 이것들을 주우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5. 출생의례의 특이사항들
1) 잇쾨일렉(개의 옷), 잇 쿠우(개를 쫓다) : 아기는 배냇저고리 같은 속옷을 40일 동안 안에 입는데, 40일이 지난 후, 이 옷의 목이나 소매부분을 막아 그 안에 사탕과 과자를 담아 그것을 개의 목에 묶어 주면, 아이들이 그 개에게 묶여 있는 사탕을 얻기 위해 그 개를 쫓아간다. 그 개가 얼마나 멀리 달아나느냐에 따라 아이를 괴롭히는 각종 질병도 바로 그 만큼 멀리 떠난다고 믿는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우리에게도 배냇저고리와 관련한 민속신앙으로서, 소송사건이나 시험치러 갈 때 몸에 지니거나 넘어다니면 운수대통한다는 믿음은 있지만, 카작에서와 같은 사례는 없다고 보인다.
2) 출생 후 40일째 되는 날을 쇠는 의식 : "두싸우께 쎄르" 즉 첫 돌날 두발을 묶은 고삐를 잘라주는 풍습이다. 대지를 힘차게 걸어나가라는 뜻을 지닌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3) 투싸우 케쑤(걸음마 축하 행사) : 아이가 서서, 막 어떤 물체를 짚고 걷기를 시작할 때, 빨리 아이가 걸음을 떼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의식이다. 대부분 여자 아이 경우 8개월, 남자 아이 경우 좀 늦게 1년 반 정도에 아이들은 걷기 시작한다. 걸음마를 떼는 아이의 양 발에 흰색과 검정색 얼룩 끈을 묶고 아이가 잘 걷도록 기원하는 맡과 노래를 하며, 그 끈을 자른다. 이 끈을 자르는 사람은 삶의 모본이 되고, 특히 걸음걸이가 멋진 사람을 택하기도 한다. 흑백의 얼룩 끈을 묶는 이유는 선파 악을 잘 분별하라는 의미이다. 어떤 경우, 가축의 내장을 다리에 묶고 자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음식이 부족하지 않고 풍성하길 기원하는 뜻이 틀어 있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4) 베쓰케 쌀루 : 아이가 눕혀질 요람에 일곱 가지 다른 물건으로 덮는다. 이 물건들은 아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피 옷은 부유함과 높은 지위, 말 굴레는 강하고 재주 많음, 행진 제복(외출복)은 용사의 영광 등을 초래한다고 믿는다(카작전통, 66쪽).
2) 요람에 눕히기(베쓱케 쌀루)
요람(베쓱)은 유목민족에게는 이동을 위한 필수품이었다. 아기를 출생했더라도, 요람(베쓱)을 말 위에 묶어서 이동하곤 했다. 베쓱은 아이의 대소변을 가리는 데 아주 긴요해서. 특히 젖을 짜는 등 많은 가사일로 인해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는 시골 여인들에게 편리한 도구였다. 베쓱에 눕혀 놓으면 그런 문제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요람에 눕히는 의식을 집전할 사람을 미리 선정하게 되는데, 이 사람은 아이를 많이 낳고, 존경받고, 잘 양육하는 부인에게 베쓱케 살루 의식을 집전하도록 부탁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이 직접 요람에 눕히기 의식을 위해 필요한 요람을 직접 준비한다. 카작인에게 있어서 베쓱은 필수품으로 모든 집에 있다. 이 사람은 천사와 조상영에게 아이를 보호해 줄 것을 기원하면서 아이를 요람에 눕힌다. 남자아이 경우, 베개 밑에 칼을, 여자 아이 경우, 거울을 넣어 놓는다. 그리고는 불을 이용해서 귀신이나 악령으로부터 멀리하기 위한 의식을 한다. 풀을 태우거나, 못을 불에 달궈 요람의 나무에 대면 까맣게 변하게 되는데, 그렇게 될 때 악령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5) 틸라싸르 : 학교 입학 날 그 아이에게 일정한 말로 축복하는 것을 일컫는다. <학자가 되거라>, <명가수가 되거라> 등의 축복을 한다.
6) 바씨르(아이와 한 날 출생한 가축) : 아이의 운명과 그 가축의 운명이 연계되어 있다고 여겨서, 가축을 소중히 여기는 신앙. 가축을 가축으로 여기지 않고, 가축이 아이와 영혼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자연물 신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가축이 그 집의 재산이었던 환경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카작전통, 74쪽).
6. 민간의료
1) 더트 코슈르(병 치료) : 병든 사람이나 동물을 도우려고 시도하는 것을 일컬어 더트 코슈르라고 한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들어, <코쉬, 코쉬!>라고 외치는데, 그 뜻은 <저리 가! 저리 나가!>이다. 사람들의 믿음이 아주 강해서, 피부병조차도 치료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관습은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카작전통 127쪽). 우리의 경우 독경무가 잡귀를 상대로 일정한 경문을 읽어서 잡귀를 퇴치해 치병의 효과를 보려는 경우는 있으나, 카작처럼 일반인이 모여 일정한 언어주술을 걸어 병을 고치는 일은 없는 게 아닌가 한다.
2) 코릭틱 쿠이우(납 붓기) : 놀라서 병든 사람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치료한다. 기름 발라놓은 작은 항아리에 녹인 납을 붓는다. 병든 사람을 앉힌 후, 누군가가 환자 뒤로 다가가서 그 머리 위로 항아리를 넘겨서 다른 항아리에 붓는다. 그 후 굳어진 납에, 환자를 아프게 만든 이미지가 남겨지면서, 그 환자는 낫는다고 믿는다(카작 전통, 155쪽).
3) 틀 케스트루(evil eye의 제거와 치료) : 사람이나 동물이 evil eye에 씌면 이 방법으로 치료한다. 방법은 이렇다. 환자는 며칠 간 혹은 몇 달 동안 주술사에 의해서 격리된다. 치료 기간에, 환자는 아무와도 사귀어서도 안 되며 말을 나눠도 안 된다(카작전통, 183쪽).
Ⅳ. 카작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는 민속신앙들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
1. 가신신앙(성주, 조왕, 조상)
카작 사람의 집은 키으즈 위(러시어로는 유르타)라고 하는데, 몽골의 빠오와 같은 천막집이다. 이 키으즈 위의 중앙천정을 받치는 원형의 구조물 부분을 샹으락이라고 하는데, 카작인들은 이 샹으락을 아주 신성시한다(그림 : 카작전통, 49쪽). 샹으락은 가정의 지킴이(the keeper of hearth)라고 규정하기도 할 정도이다(카작전통, 48쪽). 우리 가신신앙 중의 성주 신앙과 비견될 수 있다 하겠다.
신혼살림용으로 특별하게 꾸며진 집을 오타우라고 부르는데, 이 집의 화롯불에 녹은 버터를 부어넣는 풍속이 있다. 이를 오트카 마이 쿠이우라고 한다. 젊은 신부가 새 집의 문지방을 넘거나, 아이의 출생, 새 샹으락이 들어 올려졌을 때 이 의식을 행하는데, 이 관습은 <화롯속 불이 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불은 신성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카작전통, 188쪽). 우리 가신신앙 중의 조왕신앙과 비견할 수 있다 하겠다.
카작인은 조상의 영을 숭배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상의 영과 신의 이름을 나란히 부르곤 한다. <오, 조상 영이여, 오, 하나님이여, 도우소서! 재앙과 악으로부터 지키소서!>라는 말과 함께, <조상의 영이 함께 하길, 조상 영이 도우시길!>이라고 하는 기원의 말들과 경배 행위들이 흔하게 목격된다. 이 모두 조상 영을 기쁘게 하기 위한 행위들이며, 모든 성공은 조상영의 도움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하여 조상 영을 고도의 힘을 가진 실존적 존재로 받아들이며, 그로부터 도움을 기다린다. 카작인들은 전쟁에 출정할 때도 조상 영의 이름을 부르며 전진했는데 아블라이, 카반바이, 말라이사르 등의 이름을 부르며 나갔다. 현재 씨름선수들이 씨름을 할 때 <오, 조상 영이시여!>라고 자신에게 힘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다(주간한인 제22호, 2006.6.2-6.9). 카작의 조상 영 숭배는 우리의 조상 위하기와 비견되는데, 우리보다 그 강도가 높다고 보인다.
2. 자연물신앙
1) 거룩한 나무와 성수(聖水)
산을 오르다 보면, 앞이 탁 트인 곳에 혹은 무덤 주변에 있는 몇몇 나무들을 특별히 거룩하다고 여겨, 거기에 헝겊이나 끈을 묶어두고 소원을 빈다. 성스런 나무에는 끈을 세 번씩 묶는데 한 번 돌릴 때마다 한 가지 소원을 생각한다. 보통 묶어둔 끈이나 헝겊의 색이 흰색일 경우가 있다. 거기에는 나무를 끈으로 묶으면서 마음으로 빌었던 소원을 하나님께서 성취할 것이라는 신념이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나무 밑에서 나온 물 역시 성스럽다고 간주하여 그 물을 둘러 막고는 물에다가 돈과 동전을 떨어뜨리면서 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한다. 아이를 잉태치 못하는 여인들도 이곳에 와서 밤을 지새기도 한다. 병자들도 이곳에 와서 병 낫기를 기원한다. 치료된다는 신념과 함께 필요한 만큼 물을 떠가지고 와서 마시기도 한다.(주간한인 제22호, 2006.6.2-6.9)
3. 사귀신앙 : 아이 사오기(싸틉 알루) : 아기가 없거나, 아이가 자꾸 죽는 등 손이 귀한 집의 경우에 갓 태어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행하는 의례이다. 키으즈 위에 누더기 옷을 입은 할머니가 와서 그 집의 자녀를 사겠다고 하면, 케레게(나무 살)를 들고 그 아이를 노파에게 판다. 그러면 그 노파가 1~2개월 동안 자신의 처소에서 키웠다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면 다시 돌려준다. 이 전통 역시 액운이 있다고 생각하는 집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다 아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어느 정도 자란 후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어떤 가정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대로 자꾸 죽으면, 주술사(priest magician ; 샤만)가 와서 “네가 내 아이를 훔쳐갔다. 내게 돌려달라.” 이렇게 말하고 데리고 간다. 2-3일 만에 그 부모는 샤만이 집에 가서 사온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오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카작전통, 71쪽).
이는 우리나라에서 무당을 수양어머니로 삼음으로써 자녀의 장수를 기대하였던 이른바 <명다리>, <아이를 바위에 팔기>(53세, 문경 출신 이인선 씨의 전언; 큰오빠의 명을 길게 하려고 그 어머니가 바위에 일정한 의례를 하였다고 함) 등의 민속신앙과 비견된다. 무당에게냐 아니냐, 사고 파는 모의 행위를 하느냐 않느냐 등 그 양상은 약간 다르나, 아이의 생존과 장수를 위하는 동기 면에서 동일한 민속신앙의례라 하겠다.
4. 점복, 예조 신앙
1) 점쟁이에게 복채 주기(발 바씨) : 카작 점쟁이의 유형에 두 가지가 있다. 예언 점쟁이, 책이나 여타 매체(과일씨앗, 양의 어깨뼈 등)로 점치는 사람의 두 유형이다. 이들은 오늘날에는 특별한 능력과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로 인정되고 있는데, 잃어버린 가축이나 물건을 찾아주기, 미래에 있을 기쁜 일과 슬픈 일을 예언해 준다. 이들에 대한 사례금(복채)을 일컬어 <발 바씨(bal basy)>라고 한다. 복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수긍할 만한 수준이면 된다. 사람들은 돈벌이용으로 하는 점쟁이를 경멸한다(카작전통, 113쪽, 156쪽). 우리의 점복신앙과 비견된다.
2) 침뱉기(아우지나 투크르투 : 침을 뱉었을 때, 그 한 방울의 침에 자기 아이의 타고난 재능이 나타나며, 장차 그렇게 성공할 것이라고 믿어, 카작 부모들은, 침 뱉기로써 점괘를 알아본다(카작전통, 82쪽).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 손바닥에 침을 뱉은 다음, 이를 때려 그 튀기는 방향을 보아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과 비견되는데, 카작에서는 아이의 미래를 점치는 데만 이용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를 보인다.
5. 금기, 주술 신앙
1) 금기
(1) 우유(짐승 젖)를 버려서는 안된다 : 낙농식품인 우유, 마유(크므즈), 낙타젖 등은 모두 흰색이다. 카작인들은 흰색이 신성한 힘을 산출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카작인에게, 흰색은 순결과 충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흰 것을 신성시하는 카작인들은 한 방울의 우유도 땅에 떨어지거나, 버려지지 않도록 주의한다(주간한인 제13호, 2006.3.31-4.7). 화재가 났거나 뱀이 집에 접근할 때는 예외적으로 젖을 쏟기도 한다(카작전통 94쪽. 카작전통, 83쪽) 이는 우리가 밥을 함부로 버리면 죄로 간다며 금지한 것과 비견되는데, 유목민에게는 젖이 우리의 밥처럼 소중했기에 밥 대신 흰색의 젖으로 바뀌어 있을 뿐 본질은 같다고 하겠다.
(2) 친척이 죽었을 때, 여자들은 곡해야 하지만, 남자는 곡하면 안된다(카작전통, 142쪽) 우리와는 달리 카작인은 유목민족이다 보니, 용맹하고 강인한 남성상을 더욱 더 요구하는 분위기라서, 남자가 곡하는 것을 금기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3) 양(羊) 고기의 머리는 존경하는 웃어른들을 위한 몫이기에 아이들에게는 양머리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다. 양머리에 손을 대면, 아버지의 죽음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겁주기도 한다. 캐르 즐륵(복사뼈)은 절대 딸에게 주지 않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딸의 만혼을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주간한인 제13호, 2006.3.31-4.7). 우리의 경우, 주술관념에 따라, 임부에게 오징어라든가 자라라든가 특정 음식물을 금하도록 하는 것은 있으나, 딸에게 특정 음식을 금하는 일은 없으니 차이가 있다 하겠다.
(4) 카작에서 샹으락 다음으로 키으즈 위 가운데 특별히 신성시 여기는 부분은 키으즈 위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지방(보싸가)이다. 신혼부부에게 어른들이 축복할 때,<문지방이 견고하길!>이라는 말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문지방을 밟지 마라, 액운이 탈라!>라고 미신적인 말을 하는 것은 모두 문지방을 거룩하고 신성하게 여김을 드러내는 것이다(주간한인 제11호, 2006.3.17-3.24). 우리도 공간의 경계인 문지방을 신성시하여 거기 걸터앉는 것을 금기시하는데 이와 비견되는 민속이라고 보인다.
(5) 며느리가 임신해 있는 동안, 집안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금기 사항들이 생긴다. 아르칸(말을 묶는 끈, 밧줄) 혹은 모든 끈이나 줄을 꽁꽁 묶는 것을 금지하고, 낙타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데 그 이유는 낙타가 새끼를 12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배고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느리의 치맛단 등이 너풀너풀 풀려서 임신한 사람이 괜히 이러한 것에 걸리거나 보고 놀라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여미게 한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우리에게 태교의 전통과 민간신앙의 전통에 따라서 임부가 금해야 할 일이 많은바 이와 비견된다 하겠다.
(6) <알곡을 흐트러뜨리지 말라, 빵을 발로 밟지 말라>, <땅에 떨어진 밀 알곡을 보거든 낙타 등에서라도 몸을 굽혀 주워라> : 카작인 빵을 얼마나 신성시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금기어이며, 우리가 쌀을 소중히 여겨 밥알을 흘리지 못하게 한 것과 비견된다.(주간한인 제13호, 2006.3.31-4.7)
2) 주술 신앙
① 신혼집 꾸밀 때, 자식을 많이 낳은 그 집 사위나 자식을 많이 낳고 존경받는 사람이 샹으락(천막집인 키으즈 위의 중앙천정을 지탱하는 부분)을 들어올리게 한다. 자식 못 낳은 사람이나 더 이상 생산능력이 없는 노인에게는 그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 자식 많이 낳은 부인만이 새로 꾸며진 신혼집에 첫발을 들여놓아 녹인 버터를 화로에 퍼붓기 의식을 한다(카작전통 47쪽).
② 일반적인 언어주술(덕담 등) : 아이가 출생하면,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와서 "쿠티 볼슨(be happy)" 이런 말로 덕담을 한다(60쪽). 아이를 낳은 여인(산부)는 “꺼져!”이런 말로 개를 쫓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그 여자의 이가 썩거나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61쪽).
③ 솥 시합(카잔 자르스) : 출산이 임박한 산모가 진통이 시작될 때면, 동네 여인네들이 집 앞에 모여 누가 서둘러 빨리 음식을 만드는가를 경쟁하는데 이것은 뱃속의 아이가 이러한 경쟁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빨리 나오길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이것은 산모가 오랜 산고를 겪지 말고 빨리 출산하기를 기윈하는 의미를 지닌 의례이다.
④ 이림(Yrym) : 좋은 징조(길조 good omen). 아바이, 알리칸, 올자스, 화리자, 싸켄 등 위인의 이름을 어린이들에게 지어주면, 그들처럼 유명하게 될 수 있는 희망을 준다고 믿는다.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주기, 100살 노인의 옷을 가져가기 등은 모두 좋은 징조라고 여겨져 현재도 믿고 있다(카작전통, 196-197쪽). 피휘법이 강하게 작용하여 웃사람의 이름을 붙이기를 꺼리는 우리의 작명 전통과는 다른 면모라 하겠다.
⑤ 칼자 : 산모 조리와 관련된 의례. 한국의 여성들이 아기를 낳은 후, 몸을 보호하거나 수유를 위해 미역국을 먹듯이 카작인도 갓 아기를 출산한 여인에게 가장 부드럽고 영양가가 많은 연한고기로 몸을 보호하게 하는데 이것을 칼자라고 한다. 주로 어린양이나 염소의 목등뼈 살을 먹게 하는데 절대 뼈를 부러뜨리지 말고, 통째로 살을 한 점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발라 먹게 한 후, 나무에 묶어 케레게(천막집의 버팀살)에 40일 동안 그 뼈를 매달아 둔다. 이는 아이의 목등뼈가 단단해지길 기원하는 의미이다.
⑥ 코닐 수라우(문병인사) : 환자에게 가서 <당신의 병이 곧 낫기를> 하며 인사한다(카작전통, 146쪽).
⑦ 큰득 케쎄르(탯줄 끊기) : 미리 삶에서 존경하고 모본이 되는 어른이나 동료에게 태어날 아기의 탯줄을 끊어주도록 부탁한다. 이렇게 탯줄을 끊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것을 허락한 사람은 탯줄 아비 <큰득 애케>, 탯줄 어미 <큰득쉐쉐>가 되어 부모와 더불어 출생하는 아이의 평생의 지주이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는 반드시 탯줄을 끊는 사람이 큰득 애케, 쉐쉐가 되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큰득 애케, 쉐쉐가 탯줄을 잘랐지만, 지금은 거의 병원의 의사가 자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큰득 애케, 쉐쉐의 역활 또한 탯줄을 자르는 것만이 아니라, 현대에는 출산한 산모를 병원에서 퇴원시켜서. 집에 데려와 사람들에게 잔치를 열고, 베슥을 만들어주는 일들을 한다(주간한인 제16호, 2006.4.21-4.28). 우리도 동네에서 출산 경험이 풍부한 어른을 모셔다 탯줄 끊기를 하지만, 평생을 두고 탯줄어미라는 호칭을 붙여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다 하겠다.
7. 기타
1) 숫자 신앙 : 3, 7, 41 등을 특별하고도 행운을 가져다 주는 숫자라고 생각한다(카작전통, 68쪽). 태어난 지 41일 되는 날, 목욕시키고,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빗고 깎아준다. 다스타르한(명절상차림)을 하여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2) 바우타가르(사냥한 것 나눠주기) : 나눠주지 않고 독점하면 가축을 잃어버린다는 믿음이 있다(카작전통, 111쪽).
3) 연, 월, 요일 관념 : 토끼띠 해에, 흉년이나 가축 불임이나 기근 등 국가적 재난이 많이 일어났다는 해 관념(카작전통, 148쪽), 3월로부터 달이 시작한다는 달 관념(카작전통, 147쪽), 수요일은 여행에 적합한 요일이며 목요 금요일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등 종교적인 행사하는 데 좋다고 여기는 관념(카작전통, 146쪽)이 있다.
4) 불 숭배 : 불을 삶의 근원이라고 여겨온 카작인들은 <불 어머니, 기름 어머니, 나를 축복하소서!>라며 불에 기름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이것 역시 불의 힘으로 사탄과 귀신을 멀리하고, 특별히 아이를 요람에 따로 눕힐 때 방울 <아드라스판, Adraspan>이라는 풀을 들고 불의 힘으로 그 요람 주위를 정결케 하고자 했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행위 역시 오늘날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신앙의 잔재들은 오늘날 일부는 이슬람 종교와 혼합되어 버리기도 했고, 일부는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카작인의 일상적 삶을 통제하는 수많은 미신적 행위와 금기사항으로 남아 있다(주간한인 제22호, 2006.6.2-6.9).
Ⅴ. 카작에도 무당이 있는가? 우리 무당과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카작에도 과거(러시아혁명 이전)에는 무당이 있었다. 초기 연구자들의 보고에 우리의 무당에 비견되는 ‘박스(Baks)’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명 이후 반민족, 반종교 정책에 따라, 벅스와 샤머니즘(좁은 의미의 샤머니즘)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보고에서 밝혀진 카작 무당의 면모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혁명 전에 박스의 노래를 수집하기도 하였는데, 학계에 도입되지는 않았다.
둘째, 카작의 박스는 무병 과정(사지의 경련, 광기, 수면시의 부분적 경기, 발작, 무기억, 폐쇄성, 고독 등)을 거치면서(강신무적), 친부나 친모의 계보를 따라 즉 부모에게서 자식에게 직접적으로, 특히 아버지에게서 전달된다(세습무적). 박스의 세습은 아주 자주 세대를 거쳐 나타나는데, 그 능력은 7세대까지는 상실되지 않고, 그 다음에 점차 사라져가고 약화되다가 결국에는 없어진다고 간주된다. 샤만의 능력은 간접적인 계보, 즉 외삼촌에게서 친족 중의 누군가에게로 전달되기도 한다. 우리는 강신무냐 세습무냐 하는 구분이, 적어도 연구자에게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카작의 경우에는 그런 구분이 사실상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진다고 할 수 있다. 보고대로라면 카작의 모든 무당은 강신무와 세습무의 성격을 다 지니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셋째, 엑스타시에 이르렀을 때, 주문을 외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바꾸어, 수호신인 독수리나 호랑이, 늑대, 말, 곰의 모습을 흉내내며 그 소리를 낸다. 우리의 경우에는 더러 어린아이 혹은 새소리를 내는 명두형무당 혹은 명두점쟁이는 있으나, 야생동물의 영이 실려 그 소리를 내는 무당은 없는 것으로 안다. 이는 아마도 유목민족으로서 독수리로 야생동물을 사냥하던 카작인의 생활환경과 우리와의 차이에 따른 게 아닌가 한다.
넷째, 박스로서 몸주(수호 신령)인 <쥔으> 혹은 <이예(주인)>는 인간의 모습을 하기도 하고, 야생동물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이 신령은 박스의 조력자로서 부정한 신령과 싸워 몰아내기도 하며, 예견하거나 점치고 초월적 기적을 일으키며 비밀을 알아내는 능력을 행사한다. 우리와 비교하여, 몸주에 야생동물도 들어간다는 점만 다를 뿐, 몸주의 기능은 우리와 같다고 보인다.
Ⅵ. 맺음말
이상 살펴본 것처럼, 카작에도 민속신앙은 있으며, 우리와 같은 것도 있고, 카작에만 있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 민속신앙이 우리의 풍토와 삶의 조건에 따라 특징지워지는 것처럼, 카작의 민속신앙도 그렇다는 것을, 대체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컨대 유목민족이다 보니 가축이 소중하여 젖(흰색)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금기가 있으며, 이동식 주거공간인 천막집(키으즈 위)의 샹으락을 특별하게 여기는 신앙, 가족이나 부족이 단합돼야만 남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기에 가부장의 권위가 중요한 나머지 옹 바타(축복)와 함께 테르스 바타(저주)가 공존하는 언어주술상의 특징이나 조상 영 숭배하기 등의 민속신앙에서 그런 점을 표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사람들도 그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 잘 살고, 가치있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인가를 믿고 숭배하였다는 사실은, 이번 발표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에서 밝힌 대로, 매우 한정된 경험과 자료만을 바탕으로 구성한 발표문이므로, 미진하기만 하다. 이 발표에서는 빠진 주부(呪符) 신앙의 양상이라든가, 출생과 관련한 민속신앙에서 딸 아들의 차이 여부, 박스(무당)는 정말 없어졌는지, 책과 현실간의 차이, 현재의 변모 양상 등에 대하여 좀더 면밀한 조사를 더해야만 하리라고 본다.
카자흐스탄은 자원(석유) 부국 중의 하나로서, 자원이 부족한 우리로서는 계속해서 교류를 확대해 갈 필요가 있는 나라이다. 그 문화에 대한 이해가 토대가 되어야만 양국의 교류와 협력이 원만하고도 아름답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서, 미흡하나마, 이 발표가 카자흐스탄 문화와 민속 연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을 계기로, 필자도 지속적으로 연구해 가려고 마음 먹어본다.
<참고문헌>
<주간한인> 2006년 1월-6월분(카자흐스탄 알마티 한인일보사)
『Kazakh Traditions and Customs』(Almatykitap, 2005)
P.M. 무스타피나, 「카작인의 민중 종교」, 『카자흐스탄의 문화와 역사』(강남대학교 출판부, 2003),
고부자, 「우리나라 유아 의례와 옷의 비교연구」, 『아시아 의식주 생활의 비교연구』(비교민속학회 2006년 동계학술대회 발표논문집),
김태곤, 한국무속연구(집문당, 1981),
김태곤, 한국민간신앙연구(집문당, 1983)
김태곤, 무속과 영의 세계(한울, 1993),
전경수, 까자흐스탄의 고려인(서울대출판부,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