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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그대를 닮은 그대의 색.
빨간 립스틱으로 얼굴을 화장하고,
빨간 립스틱으로 눈물을 화장하고,
빨간 립스틱으로 감정을 화장하고,
빨간 립스틱으로 죄를 화장하고.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그대와 똑같은 그대의 색.
* * *
화려하게 화장이 된 얼굴로 거울을 봤다.
커다란 눈동자나 오똑한 콧날, 앙 다문 입술.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었다.
달칵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로 명품 화장대에서 싸구려 립스틱을 꺼냈다.
조잡하게 큐빅으로 장식되어 있는 붉은 립스틱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다시 거울 속의 나로 시선을 옮기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립스틱을 발랐다.
싸구려 붉은 색 립스틱이 붉은 선을 그리며 입술을 칠했다.
입술까지 완벽하게 변하자, 거울 속의 나는 치장된 인형이었다.
똑똑
넓은 방 끝에 있는 문에서 작은 노크소리가 들렸다.
크고 사치스런 방에 있는 것은 혼자였기에, 작은 소리 조차도 크게 울렸다.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만……"
사적인 감정이라고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목소리로 밖에서 남자가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거울을 바라보다가, 붉은 립스틱을 값비싼 화장대 깊숙히 넣어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이 끌리지 않게 조심하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검은 양복의 사내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를 본 사내들은 말 없이 내 뒤로 섰다. 나는 우아한 몸짓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엉덩이까지 오는 긴 새까만 생머리를 묶어서 말아 올렸다.
몸에 딱 달라붙은 옷이 내 가는 허리선을 강조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발끝까지 덮는 붉은 옷이다.
몸에 그가 좋아하는 향수를 뿌렸다. 걸을 때 마다 향수가 기분 좋게 대기 중으로 흩뿌려졌다.
얼마 걷지 않아서 나는 화려한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수 많은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나를 보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커다란 침대에 있는 남자를 본 나는 싱긋 웃으며 남자에게 쓰러지듯 안겼다.
그렇지만 이미 남자의 곁에는 서너명의 미녀와 미남들이 나체의 몸으로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유리, 지금 왔어요ㅡ"
남자의 곁으로 몸을 밀어 넣어 억지로 남자의 옆에 달라붙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며 나는 남자에게 애교를 떨었다.
"유리는 엄청 엄청 주인님 보고 싶었는데ㅡ."
남자의 몸 위로 올라타며 싱글 웃었다.
묶여있던 머리카락이 풀려, 남자의 몸 위로 흩어졌다.
남자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른 손의 손가락을 내 입에 넣었다.
나는 달콤한 과실이라도 먹듯이 남자의 손가락을 입에서 떼지 않았다.
남자의 손이 머리카락에서 점점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엉덩이까지 내려온 손이 익숙한 몸짓으로 치마 속으로 들어갔다.
"아앙…읏…"
남자의 몸에 더 달라붙으며 나는 신음을 흘렸다.
남자의 옆에 있었던 미인들이 당황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입꼬리가 길게 말려올라갔다. 그들을 보며, 나는 소리를 더 크게 내질렀다.
"…흐읏…유리…부끄러워……앙…이렇게…하앙…사람들…많으니까아……"
내 말에 남자가 잊고 있었다는 듯이 나체의 미인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했다.
순간적으로 말을 이해 못해서 멍하게 앉아있다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한 번 더 말함에 의해 쫓겨나듯 방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내 밑에 있는 남자가 잘 볼 수 있도록 다리를 벌리며, 남자의 입술에 키스했다.
* * *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그대를 떠올리게 하는 빨간 립스틱,
그대가 내게 선물했던 빨간 립스틱.
울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내게 선물했던,
웃는 것이 예쁘다고, 웃는 것이 예쁘다고, 내게 선물했던,
새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 * *
"도망 가자……도망 가자…응…? 나, 너 없으면 안 돼…안 됀단 말이야…"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에게 애원했다.
"아무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어…오직 너 밖에 할 수 없어…오직…오직 너만……"
어깨를 들썩이며 쉰 목소리로 그에게 애원했다.
"…나랑 같이 도망가자…나를 이곳에서 구해줘……"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유리 건너편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예전과 눈에 띄게 말라있었다.
몸 구석구석에 새로 생긴 자잘한 상처도 얼핏 보였다.
"……울지마."
그의 갈색 눈동자가 슬픈 빛을 내며, 그는 메마른 손을 뻗었다.
그렇지만 딱딱한 유리에 막혀 닿지 못했다.
"그렇게 울면, 예쁜 얼굴도 흉지잖아."
그는 피로로 가득한 얼굴로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죄수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죄인이었다.
"너는 무척 예쁘고, 앞으로 살 날도 많잖아. 분명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야."
울면서 흐느끼고 있는 내게 그가 끔찍한 말을 내뱉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거야. 그 때쯤이면, 지금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겠지."
도망가자며 애원하고 있는 내게 그가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
"늦었어…늦었다구……이미 그러기엔 늦었어……"
너무 울어서 눈가까지 빨개진 내가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어…"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슬픈 표정이었다.
"이런 더러운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것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도, 너 밖에 없단말이야…"
"…울지마."
"매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예쁜 인형인 척, 남자들에게 다리를 벌리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졌어."
"…울지마."
"명령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총으로 사람을 쏘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져버렸다고!"
"……울지마."
그를 바라보면서 울었다.
울지말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그가 밉다.
전부 다 자신의 탓이면서도, 그를 미워하는 내가 밉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울만큼 끔찍해."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끔찍한 침묵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시간 끝났습니다."
면회시간이 끝났다는 말에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푸른 눈의 외국인 교관에게 힘 없이 처진 어깨로 다시 수용되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도 등을 돌렸다.
다시 그를 찾아오지 않겠다고 중얼거렸다.
분명 머릿속으로 그의 생각을 수 백번 할게 뻔하면서도, 막상 입으로는 거짓말.
밖으로 나오니 무척이나 추웠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달, 1월에 나는 혼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의 1월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추웠다.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나는 눈이 내리는 교도소 앞에서 다시 울었다.
눈 때문에, 춥기 때문에, 이유 없는 변명을 몇 개나 붙이면서.
* * *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그대가 내게 선물해준 빨간 립스틱.
피처럼 붉은 립스틱으로 입술을 바르고,
피처럼 붉은 립스틱으로 그대를 그리고,
피처럼 붉은 립스틱으로 나를 죽이고.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그대가 내게 선물해준 아름다운 립스틱.
* * *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방에 도착하자 바로 잠들어버렸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정력제까지 먹은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꽤 버겁다.
얇은 이불도 없이 자고 있다가 으슬으슬 느껴지는 추위에 눈을 떴다.
창문이 반쯤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느끼지 못한 내게 놀라움을 표현하면서 창문 고리를 잡았다.
열려진 창문 밖에는 눈이 오고 있었다.
예전에 그를 찾아갔던 러시아의 눈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곧 고개를 저으며 창문을 닫았다.
창문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에는 찬 공기가 이미 많이 들어온 상태였다.
좀 더 껴입을 옷을 찾기 위해 옷장으로 걸어갔다.
그다지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손에 잡히는데로 꺼냈다. 하나같이 전부 명품 브랜드의 옷들이다.
거울을 보며 옷을 입으려다가 가슴 쪽에 깊이 새겨진 흉터를 보며 손으로 어루만졌다.
러시아 교도소에 수감된 그를 만나러 갔다가, 보스에게 발각되어 심하게 맞은 날 생긴 흉터였다.
내 몸에는 보스가 남긴 수 많은 흉터가 가득했다. 그의 소유라는 일종의「증거」였다.
그 날은 그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말도 하지 않고 러시아로 갔었다.
돌아와서 얻은 것은 마음과 몸뚱아리의 상처만 가득했지만.
나는 꺼내든 옷을 입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화장대로 갔다.
흰색의 깔끔한 화장대 역시 값비싼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거울을 보며, 화장대에서 빨간 립스틱을 꺼냈다.
내가 매일 쓰던 립스틱이 거의 다 닳아있었다.
거울이 비추고 있는 나를 보고 씁쓸하게 웃으며 입술에 발랐다.
이 립스틱이 다 닳아 없어져버리면, 내게 걸린 마법도 없어지겠지.
그가 죽은 것 처럼, 억울하게 사형당한 것 처럼, 내게 걸린 마법은 사라지겠지.
* * *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그대가 내게 준 마법의 립스틱.
어떤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립스틱만 있으면 뭐든지 해결되지.
살인도, ㅅㅅ도, 립스틱만 있으면 괜찮아.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그대가 내게 준 신기한 립스틱.
빨간 립스틱으로 모든 것을 화장하면, 아무도 알지 못해.
오늘도 빨간 립스틱으로 우는 얼굴을 화장하고,
오늘도 빨간 립스틱으로 슬픔을 화장하고,
아무도 알 수 없게 화장하고, 화장하고.
* * *
"유리, 이번에는 러시아야."
어젯밤에도 그에게 안기느라 체력을 거의 다 쓴 내가 졸린 눈으로 남자의 팔에 매달렸다.
남자는 그런 내 모습이 귀여운지 쿡쿡 웃으며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남자의 옆에 있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이미 빛이 바래고 퇴색되어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나는 굶주림을 참다 못해 남자에게 찾아간 것 같다.
가끔 남자가 지나칠 정도로 먹으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기에, 아마 확실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남자의 애인이라는 것이 나쁘지 않다.
그 남자는 돈이 많고, 밤일도 꽤 좋은 편이기에 불만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비싼 것이라도 사주었고, 또 얻어다 주었다.
남자의 옆에서 인형처럼 웃으며 사는 것이 나는 꽤 만족해하고 있었다.
바보처럼 미련하게 일해서는 평생도 못 벌 돈을 나는 그 남자의 옆에서 하루만에 쓰기도 하니까.
"이번에 약간 문제가 생겼어. 귀찮지만 러시아에 다녀와야 되더군."
남자는 귀찮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나는 옆에서 응,응, 고개만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남자는 마피아의 보스였다.
나는 마피아 보스의 애인이었다.
남자는 내게 타국의 언어를 교육시켰다.
많은 나라의 언어를 배우게 하여, 인형에 실용성까지 억지로 쑤셔넣고 있었다.
남자의 교육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살인도, ㅅㅅ도, 남자는 전부 내게 교육시켰다.
러시아에 도착하자, 나와 남자는 익숙한 모습으로 커다란 호텔로 들어갔다.
러시아의 추위는 모국의 추위와는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추워서, 마음까지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남자는 호텔에서 기다리란 말만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혼자서 침대에 자고 있다가 뒤늦게 잠에서 깨어났다.
호텔 침대에서 멍하게 누워있다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호텔을 나왔다.
높은 굽의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지리도 하나 모르는 길가로 걸어갔다.
하얀 눈이 내리는 러시아의 1월에, 나는 홀로 눈을 맞고 있었다.
반쯤 익숙해진 높은 하이힐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가만히 있으면 얼어서 죽을 것 같았다.
"그만 둬요!"
뒤에서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약간 부정확한 발음이기는 하였지만, 분명 그는 한국어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큰 키와 부드러운 갈색빛의 머리칼을 가진 남자였다.
"나 알아요?"
나는 그에게 비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상관없는 사람은 신경끄고 꺼지라고.
"지금 처음 봤어요. 그렇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남자는 긴 다리로 빠르게 달려와서 내 뺨에 손을 얹었다.
"봐요. 뺨이 이렇게 차갑잖아……"
그의 갈색 눈이 푸근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마음이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러시아의 1월은 너무 추워서 한국인에게는 많이 힘들거에요. 여기 근처에 제 집이 있어요. 잠시 쉬었다가 가세요."
그는 어린애를 상대하듯 부드럽게 말하며 내 손을 이끌었다.
얼음처럼 차갑게 꽁꽁 얼어있던 내 손은 뜨거운 그의 체온으로 녹아서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나는 말 없이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갔다.
그의 집은 구석지고 어두운 길목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작고 가난한 것이 빤히 보이는 집이었지만, 내 눈에는 일류 호텔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죄송해요……, 집이 좀… 작죠? 잠깐만 몸을 녹였다가 가시면, 좀 더 편하실거에요."
그의 집으로 들어가며 그가 미안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그는 집 안에 들어가, 핫초코를 가지고 왔다. 투명한 유리컵 안에 들어있는 핫초코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그가 가져온 핫초코를 입에 대지도 않고 내가 말했다.
그가 아무리 한국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외향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네. 저희 어머니가 한국인이거든요. 아버지는 러시아인이구요. 한 마디로 혼혈이에요."
그는 방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마시는 것이 꽤 기대된다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를 잠깐 바라보다가, 핫초코를 들어 마셨다. 과할 정도로 단 맛이 혀에서 느껴졌다.
지이잉ㅡ
치마 속에 들어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컵을 내려놓고 액정을 보니 보스였다.
나는 액정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마워요. 잘 마셨어요."
짤막하게 인사하고 나가려던 차에, 붉게 물든 얼굴로 땅에 시선을 두고 있는 그를 보았다.
아픈것이 아닌가, 나는 상체를 굽혀 그의 이마에 손을 뻗었다.
의외로 속눈썹이 꽤 길고 잘생긴 얼굴이었다고 생각하며 손을 얹었다.
그는 크게 당황하며 자신의 이마에서 내 손을 뗐다.
"아, 아니에요. 그게…치마가……"
"아아ㅡ."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흐렸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미니스커트에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었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체를 다시 일으켰다.
정말로 나가려는 순간에, 이번에는 묶고있던 머리끈이 풀렸다.
인사하기 위해 일어선 그는 머리끈을 찾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나는 그의 행동을 저지하며 괜찮다고 말했다.
"가끔 머리를 푸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는 미니스커트로 인해 붉어졌던 얼굴이 더 붉어져 있었다.
"저어, 정말 예쁘신 여성분이신데, 이, 이런 누추한 곳에…"
나는 몸을 돌려 그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내 치마 속으로 그의 손을 넣었다. 치마 속의 물건을 만진 그가 당황한 얼굴을 했다.
"미안하지만 남자에요. 그럼."
짧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는 제정신을 차리고 이번에는 내 손목을 잡았다.
"이, 이름…알려주세요…"
그의 따뜻해 보이는 갈색눈을 계속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유리. 내 이름이에요."
나는 그에게 대답하고 그 집에서 빠져나왔다.
밖에는 어느새 눈이 그쳐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쌀쌀한 날씨였다.
그가 잡았던 손목을 한 번 어루만지다가, 내가 있던 호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자신이 혐오스럽고 싫어.
그러니까 화장을 해서 전부 가려야지.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붉은 핏빛으로 그대에게 인사.
* * *
짙은 눈이 내리는 날, 낯선 이국의 땅 러시아의 한 공원에서 나는 총을 쥐고 있었다.
"왜, 왜 왔어……왜 왔냐고!"
나는 악을 쓰며 그에게 화를 냈다. 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힘겹게 주저앉아 있었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위험하니까 오지 말라고 했잖아…"
총을 쥔 내 양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를 향한 새까만 총구는 끔찍할 만큼 무심했다.
"일반인이 오면 어쩌겠다는거야, 너 따위 일반인이…도대체 무엇을 하겠다고…?"
눈물이 흘러나와 그를 가릴 것만 같았다.
입술을 세게 깨물어 억지로 눈물을 집어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마피아가 쉬워보였어? 네가 와도 될 만큼 쉬워보였어?"
울지마, 울지마, 울지 말란말이야.
떨리는 몸으로 억지로 뇌에 세뇌했다.
"네가 구하겠다고…? 나를 마피아에서 꺼내겠다고…? 가능할 것 같아? 가능할 것 같냐구!"
그는 말이 없었다. 그의 이마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울지마."
마음을 읽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울음을 억지로 다시 참아내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나, 마피아 보스의 애인이야. 매일 같이 그 돼지 같은 남자랑 ㅅㅅ하는 사이라고. 나를 놔줄 것 같아……?"
깨물고 있던 메마른 입술이 덜덜 떨렸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우리는 만나면 안 되었던거야.
그 날, 그 거리에서, 나를 무시하고 지나쳤다면, 네 집에 데려가지 않았다면…이런 일은 없었겠지……"
총을 쥐어잡은 손가락 끝에 마비가 왔다.
정말로 그에게 총을 쏠 것 같았다.
"어서 돌아가…지금까지의 일 전부 잊고, 나 같은 년 잊고, 돌아가…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
힘겹게 앉아있던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에게 협박하듯 양 손에 억지로 힘을 주며 총구를 다시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는 내게 걸어와 처음 만났을 때 처럼 내 양 뺨을 따뜻한 체온으로 어루만져 주었다.
"뺨…또 차갑다."
그가 웃었다.
바보 같이 웃었다.
마피아 보스에게 나를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서 이용당했으면서, 그렇게 지독한 꼴을 당했으면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이 웃었다.
"울지마…"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그는 피가 묻은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내 입술로 손이 옮겨갔다.
"정말 예쁘다."
그는 허리를 굽혀 내 입술에 키스했다.
뜨거운 입술에 눈물샘이 망가진 것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미안해, 그런 싸구려를 사줘서……"
내 입술에서 그가 입을 떼며 속삭였다.
아니, 이 세계 그 어떤 것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빨간색 립스틱인걸.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에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려고 했다.
탕!
총 소리가 들렸고, 그가 배를 움켜잡으며 내게 쓰려졌다.
그의 붉은 피가 내 옷에까지 흘러,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응답하라, 응답하라, 여기는 A-z. 범인을 검거했으나, 같이 있던 피해자가 쏜 총에 맞고 정신을 잃은…"
나는 쏘지 않았어…나는……,
나는…정말 쏘지 않았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쥐고 있는 총을 바라보았다.
그가 총을 맞았다는 생각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얗게 망가져 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 총을 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차가운 눈이 그의 얼굴과 뺨과 입술에 떨어졌다.
내 머리카락에도 떨어졌다. 푸른 눈의 경찰들이 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말 없이 그의 피로, 그의 입술에 붉게 발랐다.
그가 내게 사준 빨간색 립스틱을 발라주듯이.
* * *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마법은 부셔지고, 현실은 망가지고.
빨간 립스틱, 빨간 립스틱,
마법에서 깨어난 나는 비참할 정도로 슬퍼라.
* * *
나는 오늘도 익숙한 몸짓으로 화장대에 가서 앉았다.
그가 내게 사주었던 붉은 립스틱을 꺼냈다.
그렇지만 립스틱은 이미 다 닳아 없어져 있었다.
"다음 뉴스 입니다. 오늘 러시아에서 한국인 34명, 일본인 15명, 러시아인 4명을 죽인 흉악범의 사형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사람이 했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살인을 연달아 했는데요, 한국인과 러시아인의 사이에서 태어나 혼혈아였던 범인은, 어렸을 적 부모의 잦은 폭행에 대한 것에 앙심을 품고 무차별 묻지마 살인을…"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나는 울었다.
이미 닳아 없어진 빨간색 립스틱을 보며 울었다.
그 대신이라고 생각하며 남자와 ㅅㅅ하는 것도 억지로 참아내게 한,
마법의 립스틱은 이제 없어져 버렸다.
그와 함께한다고, 언제까지나 함께한다고, 립스틱을 바르며 생각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면서, 그가 예쁘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그 모든 것을 가린 채 화장을 하게 했던 립스틱은 다 닳아버렸다.
마법이 풀려버린 나는 울면서 그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이미 사형 당한 사형수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 * *
"시체는 언제봐도 기분이 나쁘다니까요."
"네가 신참이라 그래, 여기서 한 몇 년 있으면 시체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체가 그 끔찍한 묻지마 살인의 범인이잖아요?"
"글쎄……소문에 의하면 그것도 아닌가 보더라고."
갈색 머리카락의 시체를 끌고 가던 한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에 있던 선배에게 물었다.
"그게, 꽃뱀한테 물렸다나 뭐라나…아무튼 그래서 이용만 하다가 버려졌다던데."
"에이…설마요……"
"그럼 너는 이 말라깽이 형씨가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하냐? 그게 더 이상하다고."
"그렇긴 해요…."
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시체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이 남자 검거할 때, 경찰에서 먼저 총을 쏴 놓고는 같이 있던 사람에게 뒤집에 씌웠잖아. 그 사람은 어찌 됬는지는 모르지만."
"……불쌍하네요."
"이미 죽은 사람에게 동정할게 뭐 있어. 세상은 결국 돈이야, 돈."
말을 하던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사람 하나 없는 새까만 밤이었기에, 순식간에 짙은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을 틈타, 하늘에서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 하얀 눈은 모든 것을 덮고나서야 멈춘다.
눈이 덮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눈물도, 슬픔도, 감정도,
눈은 전부 덮어서 가려버린다.
마치, 빨간색 립스틱으로 화장을 하듯이.
빨간 립스틱 完
안녕하세효리..
ㅈㅅㅈㅅ...
글 쓰기가 귀찮아졌네여..
...
어느 날 쓰기 귀찮아서 예전에 있던거 올려여..
ㅈㅅ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