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막의 별이 빛나는 밤에
우리는 길잃은 하이에나 마냥 캠핑장소를 찾아 헤맸다.
태양은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버섯밭에서 서둘러 자리를 떴지만, 가는 곳마다 다른 팀들이 캠핑 자리를 차지하고 천막을 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가 이러다 텐트도 못치고 깜깜해지는거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말을 꺼내자, 헬미가 "여러분을 위해 미리 봐둔 좋은 장소"가 있다며 걱정하지 말랜다.
우리는 화들짝 놀랄 수 밖에... 눈치를 봐서는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졌던거 같기도 하고, 조용했던 손님들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감으로 때려맞춘거 같기도 하고....
ㅡ_ㅡ ;; 님.. 한쿡말 다 알아들으시는거 아니심?????
나는 그다지 걱정스럽지 않았다. 한두번 장사해본 사람들도 아닐텐데....
"Que sera sera."
가끔 '시니컬하게 될대로 되라'라는 의미으로 내뱉곤 하지만, 숨어 있는 정확한 뜻은 '모든 일은 순리대로 이루어지겠지. 네(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마음에 와닿는 문장 중에 하나다. 완전히 깜깜하게 되어서 캠프를 겨우 마련하게된다한들 상관없었다. 바하리야 백사막 한가운데... 우리는 이미 목적지에 와 있는 셈이었으니까. 약간 초조해하던 세 사람도 걱정따위는 벗어버리기로 했다.
헬미의 말을 믿었던건 아니었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품새도 어쩐지 확신은 없어보였다. 아흐메드도 어쩐지 확신없이 빙빙 도는 거 같았거든....), 그의 말대로 꽤 괜찮은 캠핑장소를 차지하게 되었다.
"Welcome to thousand stars hotel!"
헬미는 평소답지않게 오바하면서 우리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의 멘트에 난 손발이 오그라들거 같은데, 옆에 있던 세사람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같이 오바하며 맞장구 쳐준다.
처음엔 예의상 환호성을 질렀지만 이내 하늘을 바라보고는 진짜로 탄성을 내질렀다. 어슴푸레하게 빛이 남아있는 저녁하늘인데도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머, 너무 이쁘다. 완전히 깜깜해지지도 않았는데 정말 잘보여."
별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뿐, 아직까지는 물건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빛이 남아 있었기에 서둘러 자리를 정해야했다.
아흐메드와 칼릿이 차량 옆으로 아랍식 문양이 나염된 바람막이 천막을 세우는 동안, 우리는 우리 스스로 텐트를 세우기로 했다. 텐트가방을 찾으러 지프로 가는데, 이번에도 헬미는 한발 앞서나가버렸다. 베드윈을 도울줄 알았던 헬미는 텐트가방을 들고 오더니 우리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Help Me!!"
다들 그의 외침을 듣자마자 낄낄거리고 웃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다들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카이로 공항에서 마디로 가는 동안 헬미가 자신을 소개하며 "Help me를 기억해주세요. 그럼 제 이름을 외우기 쉬울거에요." 라고 했던 걸 잘 기억하고 있었다. 헬미도 껄껄 웃는 걸 보니 의도적으로 말한 모양이다.
꽤 오래전에는 텐트를 치다가 별별 일이 다 일어났었다고 하는데, 요새 텐트는 정말 편하게 설치된다. 헬미는 한국제 텐트가 정말 좋다면서 칭찬을 했다. 우리가 쓰는 텐트는 블루마블에서 카이로로 보낸 한국제 전용 텐트였는데, 구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조립하기도 쉬었다. 탄성이 좋은 지지대의 마디를 돌려 단단하게 조립하고 천막의 겉면에 죽 박힌 고리에 끼워준 후 양 모서리를 모래에 꽂고 지지해주면 끝.바람이 거세어서 날아가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양 가장자리에 바람이 파고 들지 않을 정도로만 모래로 덮어주는 걸로 충분했다. 다들 눈썰미가 있어서 두개의 텐트를 치는 작업은 거의 동시에 끝났다. 완전히 고정 시키기 전에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텐트를 보더니 아흐메드가 잔소리를 해댔다. 헬미는 알았다고 대답하더니 우리보고 텐트의 방향을 바꾸자고 했다. 바람때문이라고 하는데, 상세한 이유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왜냐면....
여행내내 우리끼리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저렴한 영어를 쓰거든....(싸구려 영어라고 했다가 S한테 된통 혼났더랬다.)
텐트는 아흐메드의 바람막이 천막과 어깨를 맞대고 줄지어 앉게 됐다. 칼릿이 재활용 처리장에서 발견할법한 모포더미를 들고 다가왔다. 잘때 엄청 추울테니 덮으라면서...
"내가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차마 이걸 덮고는 못자겠다."
그 모포를 펼쳐들고 한숨을 쉬며 말하자 다들 웃어댔다. 헬미는 낙타털로 짠 베드윈 담요라며 한기를 막는데 최고라며 꼭 쓰라고 강조를 했다. 맞는 말이었지만, 낙타털 특유의 냄새(낙타털을 씻기는 하고 만든거니?)와 까슬거리는 촉감이 너무 따가워서 그걸 덮고는 절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잠시 궁리한 끝에 카이로에서 빌려주신 깨끗한 면담요를 침낭에 넣어 쓰고, 우리는 담요를 매트 위에 덮어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우리가 텐트를 정리하고 나오니 동작 빠른 두 베드윈은 벌써 천막을 다 세우고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J는 화려한 바람막이 천막을 보고 멋있다며 좋아했다. 새로 구비한 천막인듯 선명한 붉은색이 백열등 하나가 켜지자 근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지프에 잔뜩 올려져있던 짐들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이다. 모서리가 잔뜩 긁혀 낡은 느낌의 테이블은 모양새가 단단해보여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시 이어지는 아흐메드의 잔소리를 헬미가 통역해주었다.
첫째. 요리하는 중이야. 모래 들어가니깐 절대로 바람부는 쪽에서 걸어다니지 마.
둘째. 여긴 국립공원이야.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마. 여기 비닐 봉지에다 버리도록 해.
셋째. 너무 멀리 가지마.
넷째. 잘 때는 신발을 텐트 안에 두고 자도록 해. 여우가 물어가거든...
여우라는 말에 눈을 빛내는 S와 J.
"정말 여우가 있어요?"
"네. 사막여우가 음식냄새 맡고 캠프 주위로 온다는 군요. 벌써 와 있는 지도 모르죠."
두 사람은 빨리 여우를 보고 싶다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에이. 음식냄새가 좀 풍겨야 할라나..."
J가 투덜거렸다.
그 당시엔 그냥 빈말로 한 말이었는데, 이번에 사진을 정리하면서 큰소리로 웃어야했다.
초승달이 지는 서쪽하늘과 캠프파이어 : 여우를 찾아라.
정말 여우는 이미 그 곳에 와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찍을 당시엔 장작불에 집중하느라 눈이 어두워 지평선을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해떨어진 사막이 얼마나 추워지는지 우리는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해가 기울면서 서늘해지던 기온은 해가 완전히 진 이후 뚝뚝 떨어져내렸다.
바람도 점점 강해지고 제법 쌀쌀한 것이 다들 가방에서 걸칠 것을 꺼내며 부산을 떨어야했다. 조금더 두꺼운 겉옷이 있었으면 따뜻했었겠지만, 어느정도 바람을 막아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질 수 있었다.
밥짓기 위해 화력을 돋우는 칼릿.
백열등 하나로도 충분히 근사했던 야외식당
사막에서 과일 두 접시면 후한 대접
식사 준비는 꽤 오래 걸릴 것 같았지만, 우리는 그 동안을 알차게 즐기며 놀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손전등을 휘두르면서 사막을 뛰어다닌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다들 은근히 체력이 약하고 추위를 잘타서 굶주린 고양이새끼들 마냥 테이블과 장작불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면서 베드윈들이 하는 작업을 구경하고 있었다.
밥상에 차려진 구아바를 하나씩 집어서 먹어보았다. 제철인지 옆에 같이 놓여진 덜익은 오렌지보다 맛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맛있다기 보다 속을 달래주는 맛과 향이랄까, 단맛은 별로 없고 생각보다 물기를 꽤 머금은 과일이라 갈증과 허기를 달래는 데에는 훌륭한 과일인듯 싶다. 키위처럼 부드러운 씨앗을 통째로 먹어야 하는 과일이니 섬유질 대용으로도 좋아보인다. 생각같아선 다 먹어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화장실이 없는 캠핑 지역이라는 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면서 세번째 구아바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았다.
백열등 아래에서
모두가 함께 나온 유일한 사진 (촬영자 빼고...)
누군가가 밥짓는 냄새는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한다. 거기다가 장작불 타는 냄새가 곁들여지면 아련한 감성마저 느껴지게 만든다. 일행중 하나가 살짝 위생상태를 염려하긴 했다. 나 역시 먹을거 만큼은 유난히 깔끔을 떠는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모든걸 놓아야 한다.
처음에는 S가 노트북과 스피커를 들고와서 음악을 켜놓겠다고 했었지만 나는 그에 반대했었다. J도 어느정도 공감해서 S에게 잘 전해준 듯 싶었다. 사막 여행을 선택했다면, 사막에 내던져진 느낌을 그대로 느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명의 이기가 내뿜는 온갖 소음과 공해로 피로해진 심신을 하루쯤은 온전히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런 나의 상념에 J가 한소리 한다.
"아놔. 언니는 시골에서 살면서 그래요?"
-_-;; ㅈㅅ...
에이... 말이 시골이지 누릴 수 있는 문명은 다 누리고 있잖아요.
이런 저런 얘기하고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하는 동안 밥상이 풍성해졌다.
사막기후라 그런가, 이집트의 요리는 종류가 많은 편이 못된다. 어지간한건 열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있을 듯도 싶다.
더 줄이면 다섯개 정도. 매 끼니마다 식사가 똑같을 수 밖에 없다.
최고로 맛있었던 토마토감자수프
아흐메드와 칼릿이 준비해준 식사도 골든밸리에서 먹은 점심과 똑같았지만, 우리에겐 진수성찬이었다.
요리란건 참 신기하기도 하지,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달라진다니...
이집트 여행내내 매일 먹었던 밸래디 샐러드와 볶음밥은 베드윈의 것이 가장 맛있었고, 무엇보다도 토마토수프가 최고로 맛있었다. 룩소에서 점심, 저녁을 먹는 동안 두 사람의 음식이 그리웠을 정도니까. 탄두리 치킨은 약간 덜익혀지기도 해서 골든밸리에 1위자리를 내주어야 했지만,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배불러 다 먹을 수 없었으니 오히려 감사하면서 뼈 가까이 덜익혀진 부분은 눈치 안보고 남길 수 있었다.
S와 J가 멀리 화롯불가에 따로 떨어져서 식사를 하는 베드윈에게 같이 먹자고 하려는데, 내가 말렸다. 어디선가 문득 베드윈들은 손님을 접대할때 절대 겸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났다.
그들만의 전통적인 접대 문화이니 겸상을 너무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내용까지도....(예의를 어기도록 강요하는 거라나....) 아니나 다를까 S가 혹시나 하고 헬미를 통해 물어보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이렇듯 문화와 마인드가 다르니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해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과연 나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다이어트 한다며 새 모이 먹듯 조금만 먹던 헬미도 여기서는 평소보다 꽤 많이 먹는 듯 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건 그들에게 칭찬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 뿐이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그들이 준비해준 음식을 모두 먹어치우고 싶었다.
모두들 똑같은 마음이었지만, 용량 부족..... 크흑 ㅠ_ㅠ
조금 안타까웠지만, 남겨진 음식이 여우를 위해 남겨진다고 생각하니 크게 위안이 되었다. 칼릿이 남은 음식을 모아 화롯불에서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부어두었다. 얼마되지 않아 여우 두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음식을 탐내기 시작했다. 플래시를 터뜨리면 놀라 달아날까봐 어둠 속에서 찍다보니 사진은 죄다 엉망....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베드윈이 먹은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우리는 맥주를 가져와 화롯불에 앉았다.
식사 후에 찍은 샐러드, 많이 남았다.
백열등을 등지고, 눈이 슬슬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밤하늘의 별은 더욱더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지평선으로 숨어버린 해를 따라 희미한 초승달마저 자취를 감춰버린 밤하늘은 별을 구경하기에는 최고의 날이었다. 별뿐만 아니라 푸른 빛을 발하는 성운이 별들과 어우려져 하늘하늘한 푸른 비단을 밤하늘에 펼쳐놓은 듯이 느껴졌다. 성운이 보인다는 내 말을 듣고 다들 불을 등지고 내 손이 가리키는 방향의 하늘을 쳐다보더니 순간 말을 잊는다.
"아...너무 아름답다."
J의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나로서는 예전에 시나이산을 등반하면서 바라 본 별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탓에 백사막의 밤하늘의 첫인상이 크게 감동적이지 않았었지만, 성운과 어우러진 은하수는 정말 아름다웠다. 은하수라는 이름이 괜히 나온게 아닌 듯 싶을 정도....
시간이 조금 지나 오리온성좌와 카시오페이아 성좌를 찾아낼 수 있었는데, J외의 두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도 그럴 듯이, 나도 별자리 들이 그렇게 크게 퍼져 있을거라곤 생각을 못했었으니까. 오히려 별들이 너무 많아 찾기가 쉽지 않은 탓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별자리 자료를 좀 찾아오는거였는데....
우리가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칼릿이 건져냈다. 그는 타악기 두개를 안겨주며 연주해보며 놀고 있으라고 했다.
이때까지의 반응으로 봐선 다들 악기를 두들기며 잘 놀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다들 수건돌리기 하듯 악기를 옆자리로 넘기며 엄청 빼신다. 솔직히, 아흐메드가 들고 있던 템버린 처럼 생긴 납작한 악기는 여자들이 들고 연주하기엔 너무 컸다.
칼릿이 마저 치우고 오는 동안 고참인 아흐메드가 먼저 화롯가로 오더니 북을 잡고 시범을 보인다. 우리가 한두대씩 쳤을 때 엄청 콧대높게 둔탁한 소리를 내던 악기는 놀라울 정도로 힘차고 경쾌한 소리를 발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아라비안 나이트의 느낌이다.
"오~~~~~~~~~~~~~~~"
우리가 환성을 지르자 시종일관 무뚝뚝한 표정으로 운전하던 아흐메드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겹친다.
다들 아흐메드가 남자답게 잘생겼다고 난리...(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결혼한지 6개월밖에 안된 새신랑이었다.)
S를 제외하고 다들 임자가 있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는 상태였지만, 여자도 남자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 일단 잘생긴 남녀는 주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든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미남 미녀들을 옆에 두고 있는 나는 가장 큰 복이 터진셈.ㅋㅋㅋㅋ
"아직은 다들 싱글이니까 여행하는 동안에는 임자없는 것 처럼 즐겨보자구요."
J가 말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가씨가 날 싱글이라고 착각하면 안돼죠."
내가 중얼거리자 Y와 S가 바닥을 뒹굴며 웃어댔다. 멋적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J.
그녀 스스로도 이상하게 내가 올케라기 보다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한 언니로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이런 착각증세는 마지막 코스인 룩소에서까지도 쭉 이어졌다. Y와 S도 J의 편을 들고 나서니 내가 할말이 없다. 아니, 할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겠다, 이왕 포스팅하는거, 두 베드윈에 대해 살짝 언급해야겠다
화롯불 너머로 아흐메드를 보고 있자니 인상이 다르게 느껴졌다. 언뜻 큰 키와 수염때문에 첫인상이 터프하고 남성적으로 보였던 아흐메드는 마주하고 보니 오히려 눈매와 눈빛이 선하디 선한 청년이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조용조용하게 내뱉는 그의 말투는 조용하고 섬세한 듯한 그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제 이십대 초중반(23세라고 했었던가. 기억이 흐릿하다). 개구진 표정과 웃는 얼굴 표정이 트랜스포머의 샤이아 라보프를 닮아 내가 "라보프 짝퉁"이라고 별명을 지어버린 칼릿은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특유의 웃음으로 잘 감춰놓았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을 가져 처음에는 까불거리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흐메드보다 당차고 씩씩한 느낌.
역시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를 얘기하자면, 골든 밸리에서 사파리 투어의 사장님을 만나 악수를 나눴는데, 알고보니 칼릿의 아버지였다. 아흐메드를 따라다니며 캠핑 가이드 훈련을 하는 모양이었다. 칼릿은 훌륭하고 인기있는 베드윈이 될 가능성 95%. 그의 접대서비스는 조금 오바하는 5%만 줄인다면 참으로 좋은 편이다.
두 가지 개성을 절묘하게 교차해서 가지고 있는 두사람을 비교해보니 꽤 재미있었다.
사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샤이아 라보프 사진은 보너스.
스타일을 빼고 생각해보자. 많이 닮았다. 오른쪽은 사진발 제대로 안받는 아흐메드.
아흐메드의 수줍은듯한 연주가 끝나갈 즈음. 칼릿이 흥얼거리면서 아흐메드 옆자리에 앉아 우리에게 다시 악기를 권했다가 다들 설레발을 치니 장난스럽게 '실망이야'라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떠들어대며 악기를 다시 가져갔다.
칼릿의 힘찬 연주와 함께 독특한 창법의 베드윈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얼굴에 특유의 미소를 띄우며 고개는 리듬을 타며 움직인다. 흥겨우면서도 구슬픈 느낌이 우리나라의 창의 느낌과 비슷하기도 했다. J가 공연 녹음에 성공해서 기뻐하는것도 잠시. 다시 제대로 녹음하겠다고 지우는 사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기도 한 세 개의 노래를 끝으로 칼릿의 공연은 끝나버렸다. 맥주 한잔 하시겠단다.
정말 아쉬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중간부터 녹음된거였어도 베드윈의 노래를 계속 들어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 순간만큼은 Sony HD1A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해야했다.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던 칼릿과 아흐메드의 공연
베드윈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 S와 나는 살짝 자리를 비웠다.
-_- 과연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효?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어두운 사막에 앉아 ...... (중략)
두번은 거절하고 싶으니 한방에 해결해야한다. 기분 참으로 묘하면서도 우스웠다.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불편할 줄 알았던 상황을 즐길 수 있었다. S와 나란히 앉아 있는데 캠프쪽에서 갑작스럽게 J의 야유와 함께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없는 사이에 짝퉁이 립서비스 한 모양일세..."
난 아무 생각없이 중얼거리고, S는 뭔일일까 궁금해서 난리고, 냄새는 날뿐이고......
장소를 찾아 왔을 때에는 S의 핸드폰의 조명을 이용했었는데, 어둠 속에 한참 있다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혀 안보일 줄 알았던 밤 풍경이 별빛만으로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가까이서 보면 휴지 봉투에 뭔가가 프린트되었다고 흐릿하게 느껴질 정도?? 신체의 적응력은 정말 놀랍다. 다행히도 다소 떨어져 앉은 S의 모습은 실루엣만 보인다. 보름달이었다면...... S와 나는 참으로 민망했을게다.
(만약, 다시 사막여행을 갈 기회가 생긴다면, 반드시 그믐달을 택해서 가게 될 것 같다.)
우리는 볼일을 보고 나서 서로 팔짱을 끼고 아주 천천히 밤기운을 만끽하며 멀리 돌아 들어갔다. 냄새를 살짝 지우기 위한 지연작전이기도 했지만, 다시 밤사막을 돌아다닐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길지않은 산책이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는 멀리 사막여우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금새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가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J가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가 멀리서 들었던 J의 야유는 칼릿의 갑작스런 고백때문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Y에게 홀딱 반해있었던 거였다. (그래..어쩐지 Y에게 눈길이 꽂혀 있다 했다.)
아흐메드와 달리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하는 칼릿은 우리보다 더 짧은 영어로 Y의 아름다운 눈과 머리카락, 피부를 운운하며 입에 침도 안바르고 찬양을 하더라나....
Y는 멋적어 하면서도 저렇게 콜롬비아급 비행기를 태워주시는데, 싫지는 않은 듯.
하지만 두 사람은 우리에게 두고 두고 놀림당했다.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우리는 화톳불 주변에 둘러앉은 채 맥주를 기울이며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한동안 시간을 즐겼다. 멀리 몇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을 법한 다른 캠프에서 베드윈의 연주와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왔다.
불빛으로 겨우 확인 가능한 캠프는 한 곳뿐이었지만, 노랫소리는 여기저기서 타고 들어온다. 제법 많은 여행객들이 캠핑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멀리서 불빛이 흐느적거리면서 움직이길래 아직도 움직이는 차량이 있나 싶었는데, 그 불빛은 점점 우리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두어명의 베드윈이 갑작스럽게 우리 캠프를 방문했다. (3명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알고서 찾아왔는지, 아니면 그저 도움을 찾아 왔는 지 우리는 알길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같은 사파리 투어의 직원이었다는 것. 아마 모르는 사람의 방문이었다면, 참.. 무서웠을 것 같았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5~10분 정도 자리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캠핑 장비가 모자란 모양이었다. 우리는 전용 텐트를 사용했으니 베드윈들이 들고다니는 텐트가 여분으로 남아 있었다. 아흐메드가 챙겨주는 여분의 텐트를 받아들고, 그들은 작별인사를 남기며 왔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잠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틈타, 헬미에게 자러 가겠다고 했다.
10시도 채 안된 시간.
다들 마음같아서는 밤새 놀고 싶어했지만, 욕망을 따르기에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잠을 청해야했다. 특히 Y와 S는 피곤해서 어쩔줄 몰라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게 아까부터 눈에 띄었으니, 결단은 내가 내려줄 수 밖에 없었다. 안그러면 아마 쓰러질때까지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있었을지도...
가장 실망하는 사람은 칼릿이었지만, 어쩌겠니...
S와 J는 아쉽다면서 텐트 안에 누워 밤하늘을 보겠다고 입구를 열어두려고 했지만, 나는 닫는게 좋을거라고 반 협박했다.
"잠들기 전에 닫을 자신 있어요?"
두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말로는 "좀더 하늘을 구경하겠어요" 하던 이 사람들... 5분도 안되서 골아 떨어졌다. 보통은 잠을 잘 이루지못하는 나조차도 세사람의 잠든 숨소리와 캠프장에서 이집트인 세사람이 속닥이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내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첫댓글 밀레니언급호텔에서의 1박, 밤새 개떨듯이 떨었다나 어쨌다나~~ 그래도 사진들은 하나같이 작품이었다나 어쨌다나~~ 작은 집 찾아가는 길에 사막여우랑 딱 마주쳐서 니가 비킬래 내가 비킬까 하며 눈싸움도 했었네요. ㅋㅋㅋ ^^*
항상 매 시리즈를 읽을 때 마다 느끼는거지만...꼭 드라마 보는거 같아요~ 얼핏 책고양이님이 이순간엔 이런표정이셨겠지 하는 상상도 해 본답니다 ^^ 항상 이렇게 자세하고 재밌는 후기 감사해요 +_+ 너무재밌어서 한 10분은 꿈적도 않고 모니터에서 혼자 낄낄대며 읽었네요~~
작가보다 더 작가같은 책고양이님! 그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