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스 디아스는 'Tres Dias'의 우리말입니다. 필자가 이 '트레스 디아스'란 용어를 듣게 된 것은 이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한 분의 질문을 통해서였습니다. 필자는 트레스 디아스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기에 이것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트레스 디아스 운동을 펼쳐 나가는 싸이트를 통해서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Agapia Tres Dias'가 그 하나인데, 트레스 디아스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의 기원을 밝혀주고 있는 설명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여기에 소개되어 있는 'Tres Dias의 기원'의 내용 그대로를 옮겨 봅니다.
"Tres Dias의 기원은 스페인 내란과 제 2 차 세계대전의 격동과 폐허속에 텅빈 교회와 공허감 그리고 퇴색되버린 소망과 꿈의 와중에서 시작되었다. 1940 연대 후반에 로마카톨릭 교회 내부에서 부흥의식이 싹트고 있었다. 카톨릭 내의 신앙심이 돈독한 소수의 작은 그룹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그리스도안의 신앙을 부추기며 그리스도안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을 향한 그들의 인생을 불태우는 신앙의 순례행진이 그리스도인 남녀에 의하여 조직되었다.
그리스도적 헌신활동의 지도자이며 Majorca섬에서 남자교인들을 대상으로 부흥활동을 주도하고 있던 Juan Hervas주교와 순례여행을 주도하고 있었던 Eduardo Bonin은 이러한 신앙의 소그룹들과 모여 자리를 같이 하게되었다. 그들은 교회가 무엇을 할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서로 같이하며 신앙캄구 생활을 같이 함으로써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이 변화될수 있는가를 토의하였다. 이러한 조그마한 신앙 모임의 확대된 비젼속에서 그들은, 주일마다 신앙의 은둔지에 모여 그리스도인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이 어떠한 것이며 Reunion Group을 통한 교제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가 등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경험케 하였다. 이러한 신앙의 은둔지를 그들은 "Cursillos de Christiandad" 라 불렀으며 원천적으로 이러한 은둔지의 신앙생활은 Reunion Group활동에서 발전된 것이었다.
처음에 Cursillo운동은 남자에게만 공개되었다. 그런데 Spain에서의 지극적인 전쟁후 교회에는 거의 남자가 없었다. 이 운동의 목적이 교회를 활성화 하자는데 있었으므로 이러한 운동은 결국 남자들을 교회의 활동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Tres Dias인 당시의 Cursillo 운동은 1950 연대말까지 Spain에 국한돼 있었다.그러다가 미국 Texas에서 훈련중이던 스페인 공군의 몇몇 사람이 Reunion Group의 모임을 갖던중 미국에서 처음으로 Cursillo 행사를 거행하게 되었다. 스페인어로 실시한 이 Cursillo운동은 미국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960 년초 기에 처음으로 영어로 실시한 Cursillo행사가 거행되었다.
신교도들이 weekend행사에 참여하게 되자 로마카톨릭은 이행사가 신교도들에게도 제도적으로 가능한 행사가 되게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급기야 이운동은 초교파적인 Tres Dias 가 된 것이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초교파적으로 실시된 최초의 Tres Dias Weekend는 1972 년 11 월 2-5 뉴욕 뉴버그에서 개최되었다. 로마카톨릭 Cursillo에 신교도로서 참가하였고 Tres Dias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Dave McManigal이 이 최초의 초교파적 Tres Dias의 초대 Rector가 되었다. 여기에서부터 Tres Dias는 뉴잉글랜드, 뉴저지, 그리고 펜실바니아로 퍼져 나갔다. 1980년 7 월 11 일 미국전역의 Tres Dias 공동체는 전체 Tres Dias조직을 구성하기 위하여 연합하였다.
Tres Dias는 전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Tres Dias 단체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는다. Tres Dias는 그리스도와 보다 깊은 관계를 갖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초교파적으로 공개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Tres Dias는 기독교 한 교파에 의해서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Tres Dias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 운동이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계속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새힘을 공급하는 도구로서의 크리스챤 리더들속에 우리가 포함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멘-"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에 의하면, 트레스 디아스(Tres Dias)는 스페인 내란과 제 2 차 세계대전의 격동 속에 있던 1940년대 후반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로마카톨릭 교회 내부에서는 소수이지만 신앙심이 돈독한 자들이 그룹을 이루고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그리스도 안의 신앙을 부추기며 그리스도안의 사랑을 나누는 순례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교인 후안 헤르바스(Juan Hervas)와 에두알도 보닌(Eduardo Bonin)은 이러한 신앙의 소그룹들과 모여 자리를 같이 하고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생명력 없는 무기력 상태에 있는 정신적 궁핍에 직면하고 있는 세계를 보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서로 같이하며 신앙 탐구 생활을 같이 함으로써 가져올 사람들의 생활의 변화를 토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조그마한 신앙 모임의 확대된 비젼속에서 주일마다 신앙의 은둔지에 모여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재회모임'(Reunion Group)을 통한 정규적 프로그램에 의한 교제를 통하여서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경험케 하였는데 그 내용은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 크리스챤 영성을 바르게 형성하는 일, 그리고 사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둔지의 신앙생활은 '꾸르지오'(Cursillo) 운동으로 불려졌습니다.
꾸르지오 운동의 초기는 남자들만 참여하였습니다. 이는 전쟁으로 교회는 남자들이 매우 적은 까닭에 남자들을 교회에 끌어들여서 교회를 활성화 하고자 하는 까닭에서였습니다. '꾸르지오 운동'은 1950년대 말까지는 스페인어 사용권 나라들에 국한돼 있었으나 미국 텍사스에서 훈련을 받던 스페인 공군의 몇 사람이 재회모임을 가지면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 '꾸르지오'를 행하게 되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어로 실시한 이 꾸르지오 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1960년대 초기에 처음으로 영어로 실시되었습니다.
트레스 디아스는 꾸르지오 운동의 원칙과 방법,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는데 3단계 과정 - Pre-weekend, Three-day weekend, Fourth Day - 을 거칩니다. 참가자들(Candidates)은 Tres Dias Weekend 행사로 불려지는 약 72시간인 3일간의 행사를 통해서 Team과 Candidates는 Weekend 전체를 격리 운둔된 장소에서 Tres Dias를 거행하여야 합니다. 이때 평신도의 임무를 성직자가 대행할 수 없고, 성직자의 임무를 평신도가 대행할 수 없습니다. 이 3일간의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풍성한 삶이라는 것과 그리고 4일째 되는 날 이후가 자신들의 나머지 인생이라는 것을 중점적으로 배웁니다. 그래서 3일간에 배워 터득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 의식을 뚜렷이 가지고서 성공적인 생활을 해 나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 그럼에도 세상이 가지고 있는 잡다한 문제와 유혹과 혼동 상태로 인해서 새로이 습득한 그 열정이 서서히 퇴색되다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트레스 디아스의 경험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재회모임에 계속해서 참여해야 할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트레스 디아스는 처음에는 카톨릭 신자들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만 Tres Dias Weekend에 개신교도들도 참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카톨릭 교회는 이행사를 신교도들에게도 제도적으로 가능한 행사가 되게 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습니다. 이에 이 운동은 카톨릭 교회 신자만이 아닌 개신교 신자들도 참여한 초교파적인 트레스 디아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 및 개신교도 신자를 포함한 초교파적인 Tres Dias Weekend가 1972년 11월 2-5일 뉴욕 뉴버그에서 개최되었으며, 1980년 7월 11일에는 미국 전역의 Tres Dias 공동체가 전체 Tres Dias 조직을 구성하기 위하여 연합하였으며 계속해서 확산되어 전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Tres Dias 단체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현재 트레스 디아스 본부는 뉴욕에 있으며, 지부는 우리 나라에도 있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경북 등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나라에는 트레스 디아스의 활동이 상당한 상태에 있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트레스 디아스의 회원들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개신교도들에게서도 말입니다.
2. 트레스 디아스(Tres Dias)가 개신교도들에게 미친 영향
이제, 트레스 디아스가 개신교도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레스 디아스는 자신들이 펼쳐 나가는 운동을 정의하기를, "트레스 디아스(Tres Dias)운동은 그리스도인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 가까이, 더 친밀하게 하고자 하는 성인운동(Adult Weekend)이며, 그리스도인 들로 하여금 그들이 처한 다양한 환경(가정, 교회, 직장등)속에서 지도자적인 자질과 사도적인 능력을 함양케 하는 초교파 평신도 운동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트레스 디아스 운동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화하고 확장하는데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수용합니다. 이는 트레스 디아스를 통하여서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배우게 함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레스 디아스는 크리스챤이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고백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하는 사람들을 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트레스 디아스는 자신들의 이 운동이 '교회'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가정적 모임이나 소규모 예배의식에 있어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 트레스 디아스의 목표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트레스 디아스 운동은 초교파적이요 범교회적입니다. 그래서 모든 지역사무국은 기독교의 모든 교파를 망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하는데 각 교파가 가진 공통점을 강조하고 각 교파가 가진 다른 특성을 존중하여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트레스 디아스는 카톨릭과 개신교의 교파를 초월에서 범교회적으로 공개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그렇지만 트레스 디아스는 자신들이 펼쳐 나가는 운동이 평신도 운동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여기에는 평신도들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성직자의 적극적 참여는 필수적이며 장려되고 권장되어야 할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개신교의 목사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이 트레스 디아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참가도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도 적극 권장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트레스 디아스는 교회적으로 신자들에게 권장 할만한 것일까요? 트레스 디아스 운동이 카톨릭 교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을 전적으로 부정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면 개신교 목사들이 트레스 디아스 운동에 관심을 가지며 또한 참여하고 자신들이 섬기는 교회 신자들에게도 권장하는 것은 권장할만한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 것일까요?
첫째, 초교파적이요 범교회적인 연합 운동에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습니다. 트레스 디아스의 시작은 스페인 내란과 세계 2차 대전의 전쟁을 겪는 격동 시기에서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기력하며 정신적 궁핍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를 보고서 어떻게 하면 여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할 것인지를 찾는 것에서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뿐이라고 생각하고서 이에 대한 의식 변화를 가지게 할 수 있는 정규적인 프로그램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꾸르지오 운동'이며, 이것이 지금의 트레스 디아스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초교파적이요 범교회적인 연합 운동의 성격을 띠어갔습니다.
우리는 카톨릭 신자가 트레스 디아스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개신교의 목사와 신자들이 이 트레스 디아스 운동에 동조하여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트레스 디아스 운동을 통해서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간의 연합이 꾀해져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 시피 카톨릭은 이교화된 기독교로서 개신교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비록 트레스 디아스가 자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교회를 대신해서 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신자들 간에 이 운동을 펼쳐나가는 것일지라도 개신교를 다니는 신자들에게서는 이단종교인들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여기서 신앙 운동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니 참으로 가당치 않습니다. 더욱이 개신교는 개혁신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구교인 카톨릭 신앙으로부터 나와 교회의 개혁 신앙을 지닌, 그러니까 개혁교회의 신앙을 지닌 자들인 것인데 카톨릭 신자들과 함께 하다니요!. 이것이 지금 이웃 간에 오고 가는 것으로서 갖는 자리가 아니라 신앙 운동으로 갖는 자리로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에 대한 아무런 의식이 없습니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 하는 식입니다. 즉 카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간에 함께 신앙 운동에 참여하는것이 무엇이 대수이며 문제될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단지 좋은 뜻으로 만나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는 카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간에 연합하면 구교와 신교의 연합을 하는 것으로 교회의 화합을 꾀하는 참으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화합이란 교회가 보편적 교회에 놓여져 있을 때 되어지는 것입니다. 카톨릭 교회는 결코 개신교회와는 하나의 교회가 될 수 있는 보편의 특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개신교회의 신앙을 가진 개신교 신자들이 카톨릭 교회의 신앙을 가진 카톨릭 신자들과 신앙 운동을 함께 가져나가다니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둘째, 트레스 디아스가 초교파적이고 범교단적인 성격을 띠고서 개신교도들에게 권장되고 있는 것이 지닌 위험성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네 교회에 불고 있는 트레스 디아스 운동 바람은 각 지역에서 종교인 여부를 떠나서 무슨 사회적이고 문화적 행사를 하는 것으로 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초교파적이요 범교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 트레스 디아스는 분명히 개신교에서는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레스 디아스는 한국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문제성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트레스 디아스를 한국에 처음 전파한 사람이 이단자로 알려진 귀신파 계열의 이명범이라는 점에서도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에 의해 트레스 디아스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단 사상이 첨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는 이명범은 귀신파[또는 베뢰아파]로 알려진 성락교회의 김기동 목사와 함께 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한만영 장로와 함께 김기동 목사와 헤어져서 독립하여 레마선교회를 만들어 끌고 나가면서 이 트레스 디아스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그들의 세력을 확립하고 확장해 나가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에서 펼쳐 나갔던 트레스 디아스는 이명범에 의해서 도입되면서 혼합적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베뢰아식 훈련이 포함이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한국에서는 '트레스 디아스' 라고 하면 레마선교회의 이명범과 함께 생각이 될 정도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한편 이명범과 함께 김기동으로부터 독립한 한만영 장로는 가 있었는데 그는 동서가 되는 로스엔젤레스의 은혜교회에 시무하는 K목사에게 영향을 주어 미국 한인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들에 의해서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현재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과 발전이 되어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단체도 여러 곳으로 늘었는데 트레스 디아스를 자신의 독특한 교리와 합쳐 사용하는 이단적인 단체도 있는가 하면, 트레스 디아스를 개신교의 프로그램화하여 활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중에서 개신교화된 트레스 디아스의 대표적인 곳 세 군데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Agape Tres Dias가 있습니다. 이곳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회인 승복교회를 중심으로 여러 통합측 교회들과 목사님들이 협력하여 교회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으로 실시하는 공동사역이 있습니다.
(2)Golden Tres Dias가 있습니다. 이곳은 기독교 감리교회인 금호제일감리교회가 중심이 되어 목사들간에 긴밀한 협력체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3)여의도 Tres Dias가 있습니다. 이곳은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하는 것으로 교회 내 프로그램으로 활발히 실시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갖는 이들 트레스 디아스는 비록 개신교화하였을지라도 이 운동이 카톨릭 교회에서 출발점을 가졌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적인 면을 다분히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인 면과 시각적인 면, 심리적인 방법에 치중하는 면이 있으며, 용어 사용에서도 카톨릭 교회적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트레스 디아스를 연구 보고한 기관인 장로교회의 고신측과 통합측 교단에서는 트레스 디아스 운동을 펼쳐 나가는 교회간에는 강단 교류를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서 집회나 모임에 참여하는 일을 허용치 않아 금지하는 규제를 하고 있거나 만일 신자가 트레스 디아스에 참가하고자 할 경우에는 그 참가 여부를 각 교회의 목회자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단체로만 제한을 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트레스 디아스는 이를 행하는 교회 간에 강단 교류를 할 수 없는 것으로 금지하면서도 교단 교회가 이 운동을 펼쳐 나가는 것에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트레스 디아스가 문제성이 있어서 이를 교단이 연구하고 이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보고하였다고 하면 교단은 교회가 이를 통해서 교회의 신앙을 바르게 잡아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교단 교회는 트레스 디아스를 교회의 신앙 운동으로 삼고 이를 교우들에게 권장하면서 펼쳐나가는 것을 놔두고 있습니다. 당연히 트레스 디아스는 힘을 얻고 확장되어 가기 마련이며 많은 신자들이 여기에 참여하기 마련입니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말입니다. 트레스 디아스가 비록 카톨릭 교회의 신자들에 국한되지 않고 초교파적이며 범교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을지라도, 그리고 나아가서는 개신교화된 신앙 운동으로 삼을지라도, 귀신파의 이명범에 의해 전개된 것에서도 보게 되듯이, 그리고 개혁교회의 신앙에서 떠나 있는 교회들에 의해서 전개되어 가고 있는 것에서도 보게 되듯이 이를 사용하는 자들의 숨은 의도에 의해서 이들의 세력에 미혹될 수 있는 위험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트레스 디아스의 신앙 운동을 전개하여 이 프로그램에 신자들을 참여시키는 목적이 교회된 신자의 생명을 발휘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지극히 인본주의적 발상에서 되어지고 있습니다. 혹 트레스 디아스가 개신교화하여서 이 운동을 펼쳐나갈지라도 무엇 때문에 트레스 디아스를 도입하여서 교회의 이 프로그램에 신자들을 참여시키려고 하는가를 살펴보면 이것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비평과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하는 의도는 신자들을 교회에 묶어 두고 새로운 사람들을 교회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소위 경건의 훈련과 이것으로 내세우는 영성 회복을 빌미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개신교에서는 트레스 디아스를 신자들이 교회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그리고 이를 전도의 한 방편으로 삼음으로써 교회 부흥의 목적으로 삼고 있고 있는데 이것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이 다름 아닌 경건의 훈련이요 영성의 회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트레스 디아스의 프로그램이 갖는 목적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트레스 디아스의 프로그램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화하고 확장한다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수용하여 참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들을 프로그램의 훈련을 통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자 합니다. 트레스 디아스 운동의 기본 방침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고백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고자 하는데 있는 것으로 이를 트레스 디아스의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적용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트레스 디아스의 프로그램은 '전도'의 목적을 담고 있는데, 왜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전도를 하고자 하는가 할 때 그 의도는 교회를 부흥시켜서 성장해 가겠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교회에서 갖는 어떤 이름의 운동일지라도 그러한 운동을 갖는 발상(發想)을 보면 예외없이 이런 의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이런 저런 운동이나 이런 것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것은 다분이 인본주의적 발상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설사 이런 것에 의해서 교세를 이루고 또한 그 교세가 커진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생명체로서의 교회는 아닌 것입니다. 즉 주님의 교회로서의 참된 교회라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음에 의해서만 세워집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장이란 것은 교세의 확장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자들이 진리를 통하여서 그리스도로 완전히 충만한 상태에까지 이르러 가는 믿음의 장성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카톨릭 교회에서 시작한 트레스 디아스를 도입하여 교회의 운동화 함으로써 꾀한다는 것은 참으로 옳지 않으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점은 트레스 디아스의 프로그램이 신자와 일반인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므로 여기에는 결코 그리스도의 생명다운 생명력이 발휘된다는 것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신자는 생명 있는 '산 자'이나 일반인은 생명 없는 '죽은 자'로서 죽은 자가 교회가 갖는 프로그램에 참석한다고 해서 생명의 실질을 느끼고 누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일반인에게 생명을 주는 일을 하시는 것은 이런 프로그램에 의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속죄 피에 의해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전도의 접촉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를 위해서는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하나, 전도라고 하는 십자가의 도 그 자체만 가지고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에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고 역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도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능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신자와 일반인이 함께 참석할 수 있는 트레스 디아스는 교제에 있어서도 결코 그리스도의 생명다운 생명을 누리는 기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존재 목적도 다르고 삶의 방향도 다르고 살아가는 가치가 서로 다른 존재가 한데 섞여서 갖는 교제에서 그리스도의 생명다운 생명을 누리는 기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것을 기대한다면 이는 지극히 인본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가령 항상 하늘의 것을 바라보면서 진리만을 생각하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생각 속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과 함께 있어도 항상 땅의 것을 바라보면서 온갖 육체의 정욕을 좇아 탐심으로 살아가려는 것으로 생각이 가득차 있는 사람들과 무슨 대화가 통하겠으며 사상(思想)의 일치를 가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트레스 디아스가 프로그램에 '전도'와 '교제'의 명분을 담고 있으나 이는 전도와 교제의 의미를 모르고서 갖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트레스 디아스는 교회론에서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트레스 디아스는 이것이 시작되었을 때 이것을 교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런 트레스 디아스는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교회의 무형적 의미가 강조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기 때문에 이것이 특별히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트레스 디아스가 교회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신자들의 운동으로 펼쳐 나가는 것에서 강조되고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교회의 본질적인 의미와 교회의 존재 형태에서도 트레스 디아스가 강조하는 교회의 무형적 의미는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으로 있는 생명체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상합한 가운데서 또한 몸의 다른 한 부분인 지체와 연합하여 하나의 몸을 이루어갑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의 성격과 모습을 띱니다. 여기에서 교회의 본질적 속성과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의 공동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위하여 공교회적인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자들이 '보편적 교회'로서의 특성을 지님으로써 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신앙을 고백하며 그의 법도를 순종하는 것에서 교회로서의 보편성이 확인되지 않고서는 하나의 교회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나 보편교회가 한 곳에 다 함께 모일 수는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교회는 지교회의 형태를 취하여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교회는 지체 밖에서 다른 지교회들과의 연합체를 이루기 위하여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지교회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보편적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에 세계 공교회에 속해 있는 하나로서의 위치와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트레스 디아스는 비록 개신교화하고 이를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갖는다고 할지라도 그 영향이 무시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왜냐하면 트레스 디아스에 참석한 사람들은 자신들은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인 것처럼 특권의식을 가진다거나 마치 기수 모임을 중요하게 여기듯이 자기들끼리 모이는 분파 행동은 한몸된 교회의 특성을 무시하는 요인이 됩니다. 마치 CCC가 자신들의 모임을 교회 모임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점을 갖고 있듯이 트레스 디아스도 교회 내부적으로 그러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친목회 모임이라 해서 수련회 기간동안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을 교회 안의 어떤 모임보다 더 귀하게 생각해서 트레스 디아스에 대한 봉사나 친목회모임을 통하여 신자들을 교회의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 외의 일로 교회 밖에 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3. 맺는 말
지금까지 트레스 디아스가 어떻게 시작이 된 것이며, 이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과연 교회는 트레스 디아스에 신자들을 권장하여 참석시킬만한 것인지를 문제점들을 살펴보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비록 대략적인 설명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트레스 디아스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독자들이 속해 있는 교회에 시무하시는 목사가 트레스 디아스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서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교우들에게도 강력하게 권하고 있는 경우라면 이로 인해서 고민하며 마음에 고통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기에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부디 잘 헤아려 신앙의 바름에 있기를 원하며, 교회 또한 진리에서만 서 나갈 수 있기를 주님께 의지하여 구합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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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자료 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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