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의 발전
초기에 등장한 소화기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길이가 10인치 정도에 구경이 25~45 밀리미터에 불과하였고, 사격법도 한 손으로든 체 다른 한 손으로 발화시켜야만 했다.
이는 너무 소형이었기에 작동 및 조준에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총신이 너무 빨리 뜨거워져서 손으로 잡고 있기가 어려웠다. 이를 보완할 목적으로 14세기 중엽에 소화기 총신에 손잡이를 꼽은 일명 ‘핸드 건’이 등장하였으나 사격의 정확도는 여전히 보잘 것 없었다.
이외에 소화기 발달을 저해한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불량한 화약의 질이었다. 무엇보다도 화약 제조에 필요한 원료의 수송과 이의 배합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 예로 우마차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목탄은 가벼워서 위쪽으로 몰린 반면에 상대적으로 초석은 무거워서 아래쪽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투 장소에 도착한 다음에는 실제 접전이 벌어지기 전에 재빨리 화약을 배합시켜야만 하였지만, 이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으로 화약 입자 간에 간격이 생겨서 간혹 폭발이 지연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초창기에 소화기는 적군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보다는 폭발 시에 나타나는 소음, 연기, 그리고 화염 등으로 기병의 말을 놀라게 하는 데 활용하였다. 화약무기의 발달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것은 15세기에 접어들어 일명‘소금에 절인 화약(corned powder:탄소에 소금을 혼합)의 제조법이 발견된 점이었다. 이러한 분말화약이 사용되면서 수동식 화포내의 압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보다 즉각적이고 균일한 형태의 폭발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폭발력이 향상된 신종화약을 사용하면서 사용거리가 무려 4배(50야드->200야드) 정도로 늘어났다. 한마디로 그 동안 소화기의 문제점으로 곱혀온 안전한 발화와 정확한 조준사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 면이 개선되었다. 우선 화약투입구의 위치가 변경(꼭대기->총신의 오른쪽)되었고, 점화화약의 발화를 도와주는 팬이 부착되었다.
다음으로 불심지(match:화승)와 이의 보존에 필요한 발명품이 도입되었다. 불심지는 팬 안에 흩뿌려진 점화화약을 발화시키는 것으로 단단히 꼬아진 천 조각을 초석에 적셨다가 건조시켜 만들었다.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불심지가 타들어가면서 화약이 채워진 약실에 불을 붙이게 되고 폭발력이 발생하여 탄환을 발사하는 원리였다.
바로 격발장치에 이불심지를 사용한 화승총(matchlock musket)이 등장하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재래식 무기에 화약을 접목시켜 사용하였지만 서양에서는 화약무기를 재래식 무기와 구분하여 별도로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소화기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주로 격발장치의 개선으로 집중되었다. 이 신형무기는 독일지역에서는 핵버트(hackbut), 프랑스에서는 아퀴버스(arquebus)로 불렸는데 일반적으로 화승총으로 총칭되었다.
초기에 등장한 화승총은 무게가 약 10-15 파운드에 사거리는 100~200 야드에 달하였다. 하지만 화승총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즉 무엇보다도 발사속도가 3분에 2발 정도로 기존의 장궁 및 석궁에 비해 느렸고, 불심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전투시 갑자기 비가 오게 되면 거의 무용지물이 될 수가 있었다. 이외에도 연기, 냄새, 그리고 불씨 때문에 적군에게 쉽게 발견될 수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화승총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1530년대에 이탈리아 침공시 스페인 군대가 사용한 ‘화승식 머스켓(matchlock musket)’이었다. 이는 기존 것에 비해 총신이 길고 탄환이 무거웠기 때문에 기병대의 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후에 소화기는 바로 이 격발장치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집중되었다. 16세기에 접어들어 일명 ‘차륜식 방아틀총(wheellock musket)'이 개발되었다.
이는 황철광이나 부싯돌을 강철에 그어 불꽃을 일으키면서 팬 속의 점화약을 발화시키는 기계적인 고안품이었다.
이제 불심지가 타 들어가는 시간을 없앰으로써 소총수는 좀더 정확한 조준사격을 가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너무 정교한 탓에 여전히 발화에 문제를 안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비싼 가격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보급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특수보병대나 기병대만이 이를 사용하고 나머지 일반 보병대는 기존의 화승식 머스켓으로 무장하였다.
휠록 머스켓을 이어서 ‘수석식(燧石式) 머스켓(flintlock musket)' 이라고 명명된 좀더 개선된 소화기가 등장하였다. 이는 공이와 약실뚜껑이 하나로 결합되어서 방아쇠를 당기면 용수철의 작용으로 공이가 불심지 대신에 들어 있던 부싯돌을 때리면서 약실에 담겨있는 화약에 불꽃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이러한 개선 덕분에 불씨를 보존하느라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우천시에도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투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소화기가 발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의 전장은 신구무기의 혼재속에서 여전히 밀집창병대 및 중기병대가 주도하고 있었다. 초창기에 소화기는 부정확한 조준, 짧은 사정거리, 느린 발화율, 그리고 복잡한 조작법 등으로 인해 장궁이나 석궁보다 살상력이 떨어져서 그렇다할 만한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전투시에 소화기 무장한 병사들은 독립부대가 아니라 밀집투창대 속에 편제된 상태로 운용되었다. 당시에 소화기가 갖고 있던 제반 문제점으로 인해 16세기의 전장에서는 이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고, 여전히 창과 활이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남아 있었다.
17세기에 들어서서 전술적 운용방식이 정교화된 덕분에 나름대로 전장에서 기여하였지만, 소화기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화약의 폭발력, 탄도학, 그리고 금속학 등의 발전이 어우러진 19세기 중엽 이후였다.
출처:Monthly Magazine DEFENSE & TECH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