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탐욕에 눈멀어 무기를 들고 몰려왔던 스페인 정복자들과 호기심을 앞세워 카메라 등으로 무장한 채 현지 주민의 일상에 끼어드는 21세기 여행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A: 대학원에서 관광정책학을 공부했는데 날 가르친 선생님은 첫 시간에 한 이야기가 여행은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문화적 제국주의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보다 100년 먼저 유럽 사람들이 해왔던 여행 자체가 굉장히 비판받을 만한 모습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그래서 여행할 때마다, 특히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스스로 모순적인 어떤 것을 많이 느낀다. 예컨대 이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자격이 내게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볼리비아의 탄광에 갔을 때도 그런 고민을 했다. 이 사람들의 삶을 겨우 두 시간 들여다보기 위해 코카 잎과 음료수를 사들고 카메라를 들고 거기 들어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그때 나한테 위로가 된 건, 그 투어를 제안한 게 광부들이었고 광부들은 누구라도 그 깊은 갱도 속으로 찾아와 자기들을 들여다보고 말 걸어주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버마를 여행할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버마는 코미디 전통이 강한 나라다. 결혼식을 하거나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코미디언을 불러 만담이나 마당극을 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콧수염 3형제도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감옥에도 간다.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라는 영화 도입부에도 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휴 그랜트가 친구들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버마라는 나라에서는 콧수염 형제라는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했다가 감옥에 갔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난 버마를 여행할 때 콧수염 형제를 찾아가 공연을 보고 공연에 대한 기부도 하고 그 이야기를 썼다. 그때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버마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우리를 불러주지 않는 상황이 됐는데, 외국인 여행자들이 찾아오면서 우리 이야기가 바깥으로 알려져 동생도 감옥에서 빨리 나올 수 있었고 우리가 이렇게 먹고살 수 있다. 외국인 여행자들이 버마의 현실을 외부에 알리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들이 찾아오는 것이 너무나 고맙다."
열 명 중 한 명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걸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쓰도록 해보자, 이것이 내 생각이다.
Q: 좋은 여행에 대한 고민을 성가신 존재로 여길 수도 있다. 우리도 사는 게 힘들고 그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라도 풀까 싶어서 떠난 건데 여행지에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만들어진 과정, 즉 탐욕과 착취,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함께 떠올린다. 그것에 대해서도 '여행하면서 꼭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는 건가
A: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이라는 책을 같이 쓴 쓰지 신이치 선생님이 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은 주류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우리가 택한 삶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를 누군가가 묻는다. 그때 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니, 우리는 너무나 소수이고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이 사회는 결국 다수에 의해 망가지고 부서져갈 것이라고. 그러나 사회가 망가지고 부서져가는 그 순간에 우리 같은 사람이 꾸준히 지켜온 대안적인 삶의 방식, 소수자의 삶을 보면서 누군가 희망과 아주 사소한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삶을 즐겁게, 지속 가능하게 꾸려가는 것이다. '이게 대안이고 사회를 바꿔낼 것이다',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이 대안적인 삶을 기쁘고 즐겁게 이어가는 것 자체가 결국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Q: 작가는 칠레에서 1973년 피노체트의 9.11쿠데타를 말하며 네루다와 빅토르 하라를 이야기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오월광장의 어머니들부터 떠올린다. 아마존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되살리고, 쿠바에서는 체 게바라와 쿠바의 오늘에 관심을 둔다.색깔론이 횡행하는 한국에서는 시쳇말로 빨간색 작가로 오해(?)를 받기 쉬운데, 그런 일은 없었나.
내 기준은 '아 우리는 이미 충분한 민주주의를 가졌어'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를, '아 우리 인권 이 정도면 됐지'가 아니라 더 많은 인권을, '아 우리가 정의와 평등은 충분히 일궜지'가 아니라 더 많은 정의와 평등을 요구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내게는 좌와 우라기보다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면에서 난 죽을 때까지 진보이고 싶다. 그런 면에서 형이 내게 좌냐 우냐를 묻는다면, 그래 난 왼쪽에 서겠다." 난 그 정도일 뿐이다.
가진 것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운동에 몸담거나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나 개인의 자유였고, 개인의 의지에 따라 내 삶을 꾸려가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였다.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개인의 자유 의지가 너무나 많은 면에서 존중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한두 가지 반항을 하며 살아온 정도다. 그런 나한테 좌다, 빨갱이다 같은 딱지를 붙인다면 그건 지나친 영광이 될 것 같다.
Q : 이달 중순에 다시 떠난다고 들었다.
A: 스리랑카에 간다. 작년부터 겨울을 한국에서 안 나려 하고 있다. 너무 춥고 난방비도 많이 나오는데다, 도시에 사는 한 도시가 강제하는 소비 규모와 생활 방식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돈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면 놀랍게도 여기보다 훨씬 저렴하게,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작년 겨울엔 발리에서 두 달을 보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작은 주택을 통째로 빌려서 지냈는데 집 빌린 돈이랑 생활비를 합쳐 한 달에 70만 원만 쓰고 살았다. 발리는 고급스럽게 여행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저렴하게 여행하려고 하면 또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이다. 올겨울엔 스리랑카에서 석 달 정도 지낼 생각이다. 스리랑카도 물가가 저렴하다. 서울보다 생활비는 훨씬 적게 들면서 따뜻한 그곳에서 책도 읽으면서 천천히 겨울을 나고 들어올 생각이다.
Q: 하기 어려운 여행경험을 했는데, 정리하면서 들려주고 싶은 말은?
A: 일상에서 여행자의 시선과 감수성을 되살리는 훈련을 하자. 여행을 가면 '평생 언제 다시 와 보겠나', 이런 마음이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그래서 하나라도 더 본다든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든지 일찍 깨어서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나? 평상시라면 그냥 지나갔을 것들조차 새로운 눈과 감수성으로 대하지 않나?
여행지의 그 감수성을 일상을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 키우는 훈련을 하자는 이야기를 늘 해왔다. 이 삭막한 공간을 여행자의 감수성으로 보는 훈련을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매일 버스 타고 가던 길을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고 가보고, 걸어도 가보고, 혼자 걷던 길이라면 좋아하는 친구를 데려가서 함께 걸어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하나를 추가했다. 일상의 공간을 좀 더 살 만한 곳, 스트레스가 덜한 곳, 좀 더 인간적인 온기가 있는 곳으로 바꿔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서 해가면서 우리가 사는 공간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함께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