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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엔 비만 내리고(부산을 다녀와서)
창밖엔 봄을 재촉하는 비가 오랜만에 제몫을 한답시고 그간의 가뭄으로 인한 겸연쩍음도 잊은채 집 앞 아스팔트 도로를 두들겨 튀어 오른 물방울이 길가는 사람들의 발등을 적셔댄다.
아직은 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다소 스산한 분위기를 안겨 주지만 그동안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셔지고 있고, 또한 농사준비를 해야하는 농촌을 생각하면 차마 마다할 수가 없는 처지이다.
어느새 창밖은 어둠이 짙어지고 있다.
비 내리는 날 늦은 오후.
이 불쌍한 영혼은 남겨져버린 이 시간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경도 사치스럽고, 스트레스라는 결론에 이르자 생각을 바꾸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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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風惟苦吟 (추풍유고음) 가을 바람에 괴로이 (시를) 읊조리지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세상에 (나를) 알아 주는 이 없네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창 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 고향을 내닫네
-최치원 '추야우중(秋夜雨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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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친구들과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기 위해 몸을 실은 시외버스는 거침없이 달린다. 아침나절인데도 방학이 거의 끝나는 시기인지라 버스 안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탈 때면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들은 잠을 쉽게 들곤 하는데 나는 그런 것이 부러웠지만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잠을 자지 못하는 나의 피곤한 습관에 어쩌지를 못한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면 책한권을 가져가거나, 아니면 창밖을 지나치는 경관도 즐기고, 마음속에 전원주택도 짓고, 목장도 만들어 보는 편이었다. 내가 손수 운전을 할때는 되도록이면 국도를 이용한다. 왜냐하면 국도는 주변의 자연을 보면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차안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피곤한 듯 잠을 청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나의 건너편 여학생은 가는 시간 내내 스마트폰으로 누구에겐가 문자를 보내고 있다. 나는 스마트폰이 좋다더니 저렇게 좋은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무슨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한 시간이 넘게 계속 문자를 입력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학생 너 뭐하냐?"고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휴대폰 사는데 돈 보태 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남이야 전화요금을 올리거나 말거나 괜히 뭔 쓸데없는 궁금증이냐고...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입구쪽 에스켈레이터 부근으로 진입하여 남포동 뒷골목을 걸었다. 살아가며 어쩌다 노래방에 가면 '용두산 엘레지'를 자주 불렀었는데, 그 노랠 부를 때면 예전 미화당극장에서 2편 동시상영 영화를 보고 용두산 365계단을 올라가던 생각도 나고, 공원에서 박보장기에 지고 속알이 하던 생각도 났었다.
남포동 거리는 통행에 연령제한은 없다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온통 젊은이들뿐이어서 마치 내가 외계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짐을 어떡하랴!
처음엔 무엇인가를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곳을 왔었지만 막상 거리를 지나다 보니 이 복잡한 곳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갔다.
오랜만에 영화관거리를 걸어보며 그 옛날 친구들과 남포동 초빼이가 어떻고 하며 한잔 술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철없이 까불대다 Man-Group(조직사람들)에 잘못 걸려 얻어 맞던 시절도 떠오르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새롭게 조명되질 않는다.
자칫 한눈을 팔다간 하의를 상실 하다시피한 가냘픈 하체를 가진 미녀들과 부딪치는 불상사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불경기엔 아가씨들의 치마끝이 점차 올라간다더니....누구 이들에게 긴 치마를 사줄 독지가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 거리를 향해 외치고 싶어졌다.
"누구 돈 많이 번 사람 좀 없소?"
시내 간선도로변에는 신공항 후보지 유치를 위한 시내 단체라는 단체이름의 현수막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리라.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썩을 놈의 정치, 저 돈은 어디서 나오며, 서민들에겐 무슨 놈의 혜택이 온다냐?"
지난달 말에 산악회원들과 금정산 등반을 마치고 뒷풀이를 신명나게 하였던 자갈치시장으로 들어섰다. 이곳 자갈치는 나에겐 쉽게 잊혀지지 않을 장소이다.
결혼생활 초기에 근처 충무동 입구에 살았었는데, 그땐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 남포동에 버스를 내려 이 시장을 한 바퀴 돌고서야 집으로 돌아가야 세상을 다 본 듯 속이 후련했었고, 아침이면 부지런한 갈매기 먹이찾던 이곳으로 비린 생선내음을 맡으며 산책을 하곤 하였었다.
자갈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바닷가 횟집에서 생선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선 간혹 일본 사람들도 들리고, 나도 예전에 웃옷을 한번 구입했던 도로변의 의류매장을 두어군데 돌아보았다.
서면의 롯데백화점에는 요즘 세상살이가 어렵다는 말이 무색하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고객들은 돈을 버는 사람들보다는 주로 돈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네들은 요즘세상 남의 돈 벌어 먹기가 얼마나 힘든줄은 썩 잘 알리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는 것이 시간이라 이층 저층을 돌아다보며 공짜물건이라도 없나 살펴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귀태 나는 상품들에다 콧대 높은 이름표들뿐이다. 백화점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비싸거나,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이다.
싸고 좋은 물건이라고? 그런 것은 처음부터 기대를 말아야지 좋으면 비싼 것이 세상의 이치일 뿐 싸면 그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서면 지하도는 토요일을 맞이하여 수많은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친구들과 눈요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지하철 구내에서 무료공연을 하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명의 삼십대 초반의 젊은이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같은 패거리인 듯한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유난히 환호성을 지른다.
약장사는 아닌 것 같고, 조금은 그래 보여 공짜구경 하는 처지에 박수라도 크게 쳐주고 싶었지만 어째 그것마저도 촌스럽게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회관을 지나는데 무지하게 비싼 차들만 주차되어 있다. 하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트렁크가 커야 하는 것이다. 1회용 인품도 싣고, 사과상자도 실어날라야지...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상위계층엔 오히려 도덕적 기준이 낮아져 있기도 하고...
해저문 동래천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대답은 오래살기 보단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인데 그게 그거 아니가???
모임의 약속시간은 7시이다. 그런데 5시에 한 친구를 만나 모임장소도 알아보고, 남은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일찍 나온 것이다.
우리는 세상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하천변을 걸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더라도 다 그렇듯이 주변을 잘 정리하여 두었다. 결국은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 진 것이고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은 국가에 대한 책무를 더 많이 감당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청계천보단 백배 낫다. 자연이 많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길가에 심어 놓은 벚꽃들이 화사하게 필 것이고 하천에 흘러가는 물도 더 한층 흥겹고 맑은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내가 참석한 중에 제일 많이 모였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뻔한 것이다. 자식들 이야기며, 자신들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들뿐이다. 그 어릴 적 추억은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려버려 기억을 들추어 내기엔 무리가 있는 때문일까?
회의라지만 별다른 안건도 없고, 나온 안건에 이의를 다는 사람도 없다. 그저 오가는 건 술잔과 가벼운 이야기들뿐이다. 이젠 현역에서 점차 은퇴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앞에 용기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친구들아 가는 세월은 예전 촛불시위때 쓰다남은 'ㅁㅂ산성'으로 막아도 감당 못한다. 그냥 두고 보자꾸나."(정치적 의도는 없음. 그냥 웃자고...)
2차 가자는 것을 마다하고 어머니가 계시는 형님 집으로 향했다. 지금은 비록 그 높이가 달리진 것을 제외하면 예전에 다 추억으로 남겨졌던 거리의 불빛은 술기운 가득한 나의 마음에는 다소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바쁘게 달리는 자동차들, 휘청거리며 걷는 남자들의 발걸음, 차가운 밤기운으로 소금처럼 뿌려지는 별빛마저도...
어머니의 옛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움도, 가슴에 오래 남기고 싶지도 않은 일정시대 그 암울하던 이야기들로부터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까지도 오늘은 왠지 내 가슴을 적시진 못했다.
원망을 해야 할지? 한탄을 해야 할지? 아니면 누굴 붙들고 하소연을 해야 할지를 모를 우리민족의 서글픈 역사들을 이야기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나는 어머니더러 잊어버리고 사시라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관광버스춤을 추며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흥겹게 불러대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노랫소리가 구슬픈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러한 한이 서려서였던가?
역사는 돌고 도는 것.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그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함에도 그들과 언제 그랬냐는 듯 군사교류까지도 계획하며 북한을 압박하자는 우리의 현실에 어째 가슴속 한구석이 갑갑함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하고...
문득 예전 민주화운동 시절의 '미국은 믿지말고, 일본은 일어선다'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텔레비전에선 ‘세시봉 Concert(컨서트)’라는 프로그램을 재방송하고 있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하나같이 정감이 가고 훌륭한 가수들이다.
그중 나는 송창식씨를 좋아 하였다. 특히 ‘왜 불러, 피리부는 사나이“는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다. 그래서 젊은시절 기타를 배운답시고 또래들과 어울리고...지금도 기타는 어디엔가 보관되어 있을 듯...
흘러간 노래, 지나간 이야기들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추억에 휩싸이게 한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에 흥얼흥얼 따라 불렀던 주옥같은 노래들을 다시 들으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고, 각박한 지금의 세상에 대한 회의도 느껴진다. 그렇다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밤은 깊어가고 빗소리도 조금은 잦아들었다.
지금껏 내가 생각한 결론은 무엇으로 이 빈 시간을 메워볼까 하는 조바심이나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을 지우고, 내일엔 그저 가벼운 가슴으로 생각하고, 그 마음 가는대로 살아가 보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도 내 꼬락서니를 아신다면 "아야 그냥 자거라. 고민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회적 비용 더 들고, 너는 네 앞가림이나 잘 하거라. 불면증, 우울증 피하려면 잠이나 일찍 자 두어야지!" 하실 것이다. 백번 생각해봐도 지당하신 말씀이로소이다.
* 모레는 다시 부산을 가야한다. 또 왜냐고? 누군가가 부산에다 귀중품을 두고 왔다나....이래저래 별 소득없이 인생살이만 바빠졌다. 그래도 그게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첫댓글 부산오면 전화해요
늘 읽을때마다 감동되는 말만 적는 것 같네요..느티나무님 부산 어디세요??저두 부산ㅎㅎ
증말 쎄시봉 좋은 멤버죠 부르는 노래마다 애절한 송창식, 부드러운 듯 장난꾸러기 윤형주, 귀여운 막내 김세환, 정말 천방지축 럭비공 맏이 조영남 천재들의 모임이죠 이장희, 이익균, 넘넘 감동 행복 진주에선 그런 것 좀 안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