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매雪中梅를 탄식하노라
한 기 운
경기민요 12가중의 ‘매화타령’을 노래하는 대목에는 “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이란 구절이 있다.
이는 땅위의 만물이 제 각각 한창일 때가 일시적으로 있다는 것을 명시하는바, 개화의 시기를 보나, 풍기는 향기를 보나 어느 면에서든 간에 매화의 명분이 그 중 우위로 뚜렷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듯 다른 수종에서는 꽃눈이 맺히기도 전에, 이미 개화를 서두르는 것이 유독 매화인지라, 대개의 매화나무들은 2월을 전후해서 앙증스럽게도 꽃망울을 터트린다.
종류에 따라서 다른 점이 섣달에 피기도 하고 2, 3월에도 피며 늦게는 4월에도 피는 것까지 하여 시간차는 엄청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 또한 매화만의 다른 점이다.
식물중에서 가장 먼저 휴면을 털어내며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야 말로, 반가운 계절의 전령사임에는 틀림없다.
몰아치는 눈보라 한풍속에서 신산스러움을 참아내며 꿋꿋한 의지력으로, 맑게, 깨끗하게, 기질을 다스려 온 나무!
그 인고의 정신력을 가이 높이 사고도 남을 것이려니, 중국의범석호(笵石湖)도 매보에서 적었다시피, 이야말로 천하의 꽃중에서 으뜸으로 꼽혀 무방할 것이다.
“정심불개(貞心不改)의 군자절(君子節)” 이라. 어떤 경우에는 곧은 마음 변치 않는 의인의 기개를 상징함일진데 아마도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지 않을까 싶다.
꽃피는 시기야 물론 이거니와, 화형이나 색상에서 두드러 지며, 향기에서 조차도 일품으로 친다.
꽃의 이름도 각각 다르게 지칭되는데 성품에 따라 명칭 또한 다양한 것이 이것들의 특징이다.
흰색도 있고 연연히 파르란 옥색도 있으며 붉은색도 있으려니와 백매, 옥매, 홍매 등등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홑 꽃잎도 있는가 하면 겹꽃잎도 상당수 있다.
꽃받침이나 가지와 줄기가 파란것도 보이나니 이름하여 녹엽매라 하던가.
꽃이 희면 백배요, 붉다하여 홍매로다. 가지가 버들처럼 휘늘어 처지는 것은 능수매라고 한다지? 개화의 시기에서도 차이가 나서 동지 전에 피는 조매와 섣달에 피는 납매 하며, 향기에 따라서도 다르게 호칭된다.
한겨울 밤, 차디찬 달빛 아래서, 그를 벗삼아 향기를 전하며, 운치 있게 피어나는 한중매를 비롯하여, 종류에서도 수십가지를 훨씬 넘는다.
이렇게 나름 나름으로 분류되듯이 여기에 따른 시인묵객들의 예찬론이나 매화도가 처처에 남아서 즐비한 것을 알겠다.
예로부터 선인들이 사군자라 하여 매, 난, 국, 죽으로 짝지어 놓고 반열의 첫머리에 매화를 놓은 까닭 또한 이와 같은 정황들이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이나 저나 간에 우리는 겨울에 피는 매화를 통칭하기로 막연히 한매라고도 부르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청경하게 두드러진 이름 하나를 듣게 된다.
대부분의 매화가 그렇듯,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 피고지고 하지만, 그 중 하나는 동절기의 한가운데 쯤에서 핀다. 분분하게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면서 말이다. 그 백설의 기운을 머금어 다소곳이 꽃술을 터트려 내는데 하도 기품이 있어 설중매라 일컫는다지?
이 얼마나 깨끗한 혼백일까 보냐,
설중매, 설중매!
마음 가득히 부동하는 암향이여!!
뉘라서 너와 더불어 동락하는 것을 마다 하리오.
하지만 연중 내내 마주할 수 없음만 탄식하노니, 아뿔사!
매화 한철이 천지간에 조락하는 줄 내 몰랐다네.
<경주문학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