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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례음악 원문보기 글쓴이: 좋은소리
이 글은 교회음악 잡지 Choir & Organ 2012년 3월 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사순시기의 전례음악 2
김건정
지난 호에서 사순시기(재의 수요일~ 성주간)의 전례음악 전반에 대하여 총론적인 내용을 소개한데 이어 합창과 오르간에 대하여 상술하기도 한다.
사순시기를 예술적으로 요약하여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어떻게 정의할까? 색으로 말하면 자색(Violet)이다. 보라색이라고도 하는데 서양에서 청색(Blue)계통의 색상이 상징하는 분위기는 밝은 색조가 아니다. 사제의 제의(미사 예복)은 자색이고 제대 꽃꽂이도 단순 소박하고 흰색과 보라색 계통을 자주 쓴다. 음악적으로 표현한다면 단조 모드이다. 단조 모드라고 해서 다 비장하고 슬픈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전에 유행한 영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하면 분위기가 그려진다. 날카로운 쇠조각들이 끝에 달린 가죽 채찍을 휘두를 때 마다 살을 찢고 피를 쏟아내는 고통에 피와 땀이 범벅된 예수님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는데 기뿐 노래가 나올 수 있을까?
교회의 전례음악은 어찌보면 전례에 종속된 제사음악 개념이다. 그러나 음악을 하는 예술가 입장에서는 뭔가 예술성을 드러내고 싶어지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기에 음악도 자꾸 화려해지려고 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종교적 경건함 보다는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음악의 유혹을 받게 되고 또 이를 제재하려는 교회의 음직임이 반복된 것이 교회 움악사이다. 그래서 교회의 가르침은 ‘음악이 미사 안에 있는 것이지 미사가 음악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라며 경각심을 상기 시키곤 했다. 이런 가르침은 사순시기에 더욱 자중하고 지켜야 할 기준이다.
성가 선곡에서 사순시기용으로 분류된 그레고리오 성가, 코랄, 찬미가를 선호하게 되고 참회와 속죄를 주제로 한 곡들을 많이 부른다. 찬송가와 공유하는 곡도 있다. 성가대의 특별찬미는 예물 준비(봉헌) 행렬이나 영성체 행렬 때 부르게 되는데 선곡에 유의하여야 한다. ‘할렐루야’ 나 ‘영광’, ‘성삼위를 찬양’하는 가사가 들어간 곡은 지양하여야 하고 예수님 수난과 관련된 성경이 들어간 곡을 고르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팔레스트리나나 빅토리아 또는 인제넬리의 모테트 “어둠이 온 땅에 덮여....Tenebrae factae sunt<마태 27:45, 마르 15:33, 루카 23:45>”나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태 26:40>...Una hora non potuisti> 같은 다성음악곡을 무반주로 부를 수 있으면 훌륭하고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인 “주여, 돌보소서...Attende Domine) 같은 곡이나 W.H.Doanne의 ”십자가에 가까이“ 같은 곡도 회중이 제창하기 좋은 노래이다.
독창이 요구되는 미사 고유문인 전례 곡(사순시기 복음환호송이나 화답송 시편구)에서도 소프라노 소리보다는 바리톤이나 베이스를 기용하는 것이 좋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교회의 오랜 관습이고 전례 분위기에도 잘 어울린다. 큰 교회에서도 원래 마이크를 쓰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남자 목소리가 장중하고 더 멀리 가기 때문이다.
기악에서도 관현악기 중에 금관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오르간 반주는 제한 없이 허용된다. 반주의 범위는 넓게 해석하여 합창과 연결되는 전주와 간주 그리고 종지로 가는 후주까지도 가능하다. 사순시기에 오르간 독주를 금지하였다고 하여 너무 좁게 해석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스탑의 적절한 배합이 중요하다. Vibrato(또는 Tremuler)나 Mixture, Trumpet 같은 스탑은 쓰지 않고 기본 스탑(예컨데 Principal, Diapason, flute 계열과 리드) 위주로 쓰면 좋다. 옥타브 가감은 선택사항이다.
사순시기에 오르간을 비롯한 악기의 독주를 금지하는 원칙은 오랜 관습과 함께 명문화 된 것이다. 초세기에 이교도의 문화 유입을 경계하고 사순시기라는 전례적 특성 속에서 절제와 단순함을 추구하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로마 보편 문헌으로 “성음악훈령<1967년>”이 있고 한국 지역 교회 규정으로 “성음악지침<2009년>”이 있다. 위 두 문헌에 의하면 오르간을 비롯한 악기의 독주는 사순시기에만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사순시기 외에도 위령미사, 위령성무일도가 그러하고 대림시기 역시 사순시기처럼 긴 기간을 금지한다. 물론 사순 제4주일(Laetare주일)과 대림 제3주일(Gaudete 주일)에는 예외적 조항으로 이 제한을 풀어놓고 있음은 전월호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날 사제의 제의와 성가대 전례복 깃은 빨강색인데 진홍색 장미꽃을 연상한다고 하여 두 주일을 ‘장미주일’이라고도 한다. 부활(성탄)의 기쁨이 멀지 않았음을 일깨워 주는 주일이란 의미도 있다.
오르간 연주곡으로 바흐나 북스테후드 같은 대가의 독주 곡은 언제 연주하는가? 사순시기에는 미사 중에 악기 독주를 하지 말라고 한 원칙 아래서 이 곡들은 언제 빛을 볼 수 있을까? 사순시기에 맞는 오르간이나 다른 기악 곡들은 사순 제4주일 미사 외에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사순 음악회’에서 얼마든지 연주를 할 수 있다. 특히 사순시기가 무르 익어가는 사순 제5주간 쯤이면 절기는 3월 하순이나 4월 첫 주 정도가 되므로 완연한 봄이다. 그러므로 주간 평일 저녁에 이뤄지는 교회음악회는 백성들의 음악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부활을 맞이하려는 준비 단계로 좋은 묵상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난곡(Passion) 종류에서도 코랄 유형의 제창과 합창 곡을 떼어 전례 중에 부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곡이 마태 수난곡의 주제가 되는 코랄로 하슬러 원곡/바흐 편곡인 가톨릭성가 116번 “주 예수 바라보라”, 찬송가 145번 “오 거룩하신 주님”같은 곡이다.
사순시기의 전례음악은 미사와 예절의 성격에 따라 적절히 선곡, 연주되어져야 한다. 이 모두 것이 결국 지휘자 능력의 일부이다. 이 시대의 성가대 지휘자는 탁월한 음악가를 필요로 하기 보다는 전례와 전례 정신에 합당한 음악으로 찬양할 수 있는 교회음악가를 요구한다. 오직 같은 곡이라도 템포, 악상 표현이 전례 분위기와 맞아야 한다. 신자들의 전례 상식과 음악성이 예전과 달리 높아져서 자칫 분심이 들게 해서는 안된다.
끝으로 유념할 것은 교회의 정신은 획일적인 규제가 아니라 ‘금지되지 않은 것은 폭 넓게 용인한다’는 융통성을 내재하고 있다. 물론 교회의 오랜 전통과 공식 문헌을 존중하면서...
글 김건정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음악위원/ 가톨릭전례학회 학술위원)⃒
[다음호 예정: 파스카성삼일과 부활시기의 음악] -----------------------------------------------------------------------------
주: 가톨릭성가 116번(또는 찬송가 145번) 악보를 두 줄 첨부해도 좋을 듯...합니다.(이 글에서 악보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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