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교회 이해-04. 말라바르 전승
인도교회가 사도 도마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것은 말라바르 시리아 기독교 전승이다.
이 믿음은 말라바르 시리아 신앙공동체에서 강하게 지속적으로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 전승의 문서적인 뒷받침은 여전히 부족하다.
또 교부들의 언급들이 있지만 3세기의 약간은 모호하고 일치되지 않는 언급들뿐이다.
그리고 위경의 이야기는 사도 도마가 북인도 파르티아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 증거는 의심을 떨치고 진실을 밝히기에는 미흡하고 억측의 요소가 있다.
이런 속에서도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가 있다.
1. 사도 도마가 인도에서 설교하고 순교의 고난을 겪었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존재해왔다.
도마가 크랑가노르(Cranganore)에 도착했다는 것과 특정한 장소들에 교회를 설립했다는 것.
그가 특정한 가족들에 안수했다는 것과 마일라포르에서의 죽음에 대한 말라바르 전승이 있다.
그 일반적인 전승은 3세기 이후로 교부들의 언급들을 통해 지지를 받았고, 그 전승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굳게 믿어지고 있다.
2. 몇몇 역사가들은 사도 도마가 인도에 왔었다는 전승을 전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 사람들은 17세기 말의 프랑스 역사가 바스니지(Basnage, 개신교)와 틸레몽(Tillemont, 카톨릭), 18세기의 라 끄로제(La Croze)와 19세기 영국의 제임스 휴와 존 케이 등이 있다.
이들은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1세기 유대인들이 인도까지 여행했을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에 인도의 서부해안과 로마제국 사이에 홍해와 알렉산드리아를 통과하는 정규적인 교통수단과 바다를 통한 교역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따라서 그러한 여행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더 나아가 인도 서해안의 항구들과 북서쪽 모두에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도마가 인도에서 사역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경향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3. 어떤 사람들은 사도 도마가 북인도와 지금의 파키스탄을 방문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문헌자료들의 인도-파르티아에 대한 암시들을 받아들이며 남인도의 전승을 부정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마드라스 기독대학의 교수로서 ‘인도에서의 시리아교회’의 저자인 밀네 레이(G. Miline Rae)와 독일의 달만 신부(Fr. J. Dahlmann) 등이다.
이들은 시리아 이민자들이 도마가 자신들의 고향에 시리아교회를 세웠다는 전승을 도마가 인도에 갔었다는 초기교회의 믿음과 연결해 말라바르 전승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남인도 사도직의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으로 판단을 유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4. 시리아교회의 필립(E. M. Philip)이나 다니엘(K. N. Daniel)같은 저술가들은 남인도의 사도직을 방어하면서 사도 도마가 북인도에 방문했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들은 말라바르 전통에 서서 이에 부합하는 문학적인 증거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로마제국과 인도의 무역관계가 주로 남인도와 드라비다인 사이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사도 도마가 바다를 통해 왔다면 그는 북인도보다는 말라바르에 왔을 것이라고 한다.
5. 모든 증거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사도가 북인도와 남인도 모두를 방문했다고 주장한다.
메들리코트 주교는 두 가지 여행을 생각했는데 하나는 육로로 팔레스타인에서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를 가로질러 파키스탄에 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간 후에 이집트와 에디오피아를 거쳐 소코트라에 이르러 아라비아 해를 건너 말라바르에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들의 어느 것도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것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인도교회사의 저자 시릴 퍼스는 도마가 파르티아와 남인도를 다 방문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사도 도마의 전승은 일반적이며,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