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중탐구의 첫 번째 대상은 인정옥 작가. <환상여행>에서 처음 작가의 이름을 올린 그녀는 <테마게임>에서 자신의 진수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토요일 밤에 방송했던 테마게임을 나는 한편도 안 빼고 다 보았다. 한사람의 운명을 두가지 갈등의 길에서 고민하게 만들면서 어느 운명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길을 걷게되는 전개의 특이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결코 시청자에게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시청자들에게 드라마가 끝난후 그 선택의 결론을 짓도록 만들었다. 이런 작가의 습성은 이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오늘이지만 우린 명확이 이 드라마의 결말을 모른다. 더구나 이 드라마에서는 복수의 죽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결말을 낸다는 것이다. 결국 시청자는 마지막회를 보고 나서 계속 고민할 것이다. 성공적인 수술로 복수가 계속 경과 행복하게 살것인지, 아니면 얼마 안가서 죽을 것인지. 물론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극히 일부분이다. 작가는 복수의 준비(?)를 통해 삶과 죽음이 어차피 다름이 아니라는 아주 종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 옆에서 이를 바라보는 경을 통해 죽음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여고괴담>과 <해바라기>를 거쳐 드디어 <네 멋대로 해라>의 대본을 쓴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 드라마 처음 시작 당시 시놉소스나 줄거리 또는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면 현재 드라마는 처음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드라마의 일관성을 잃지 않고 처음의 의도대로, 주제대로 드라마를 전개 시켰다. 따라서 작가는 처음의 의도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 처음 생각한 것을 변경하면서 작품을 완성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느낀 작가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처음 드라마를 보면서 '왜 저 장면이 들어갔지' 라는 생각은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드라마의 전개와는 크게 상관없는 장면이 드라마의 전개와 전개 사이에 자주 숨어서 삽입된 장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난 이 드라마를 17편을 보고 나서야 작가의 세심함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아버지의 죽음이후 어항속에 있던 10,000원 짜리 지폐이다. 1부에서도 10,000원 지폐가 등장한다. 아버지가 복수를 고아원에 버리면서 주고간 1만원.!! 17편에 나온 만원은 이와 같은 의미다. 어려서는 고아원에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지만 지금은 아버지는 자살로 또 다시 복수를 버렸다. 어쩌면 복수가 아버지를 버렸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1부에서 만원이 크게 클로즈업 되는데, 굳이 클로즈업 시킬 필요가 없는 1만원을 크게 잡은 의도를 17편에 와서야 난 알 수가 있었다. 이 얼마나 세심한 작가의 의도인가.
직설적이면서도 사람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포착해낸 대사는 이 드라마를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나 연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작가의 서른 다섯 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삶의 성찰이 묻어나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썼나 싶게 아기자기한 면도 보인다. 특히 죽음을 앞둔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애인 경의 감정을 객관화해 자제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시청자가 드라마에 몰입되기 보단 한발짝 떨어져 모든 것을 판단하도록 하는 장치를 감춰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붙게 되면 둘이 머리채 잡고 싸우거나 뺨 한 대 때리는 게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경과 미래는 오히려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언니, 우리 이런게 정상이에요!' 라는 경의 대사처럼 말이다.. <네 멋대로 해라>의 감정 이입은 이렇게 절제된 대사와 감정의 표현으로 이뤄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