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제니퍼 코넬리는 단순히 성인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맥거번과 코가 닮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됐지만 엘리자베스 맥거번보다 훨씬 더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최고 실수는 제니퍼 코넬리가 성장해서 엘리자베스 맥거번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제니퍼 코넬리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로 데뷔했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간직되고 있다.
제니퍼 코넬리는 뉴욕주의 캣츠킬 마운틴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성장은 맨하탄에서 브룩클린 브릿지를 건너면 바로 나오는 동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곳, 브룩클린 하이츠에서 자랐다. 10살때부터 이미 부모는 어린 제니퍼의 재능을 발견했고 모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지면 광고 모델이나 TV 시리즈의 단역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세르지오 레오네와 만나 데뷔를 하게 됐고 그 이후로 호러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에게 픽업돼 <페노미나>(정말 이뻤다^^!)를 통해서 첫 주연을 따내는 성과를 얻는다.
서로의 작품세계는 다르지만 이탈리아의 색다른 거장 두 명의 영화에 출연한 그녀는 앞으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제작한 <라비린스>에서 제니퍼 코넬리의 아름다움으로 본격적인 팬터지를 구현할 기획을 한다. 화면 속에 럭셔리한 드레스를 입은 제니퍼 코넬리가 앉아있다면 그것 만으로 모든 팬터지의 조건이 충족될 일이 아닌가. <라비린스> 이후로 제니퍼 코넬리는 침체기를 겪게 된다. 최고의 인기, 최고의 전성기는 그대로 끝나버린 듯 했다.
제니퍼 코넬리가 팬터지를 떠나 현실 속으로 들어오자 모두가 외면하는 듯 했다. 열여덟살이 되면서 마이클 호프먼 감독의 <썸 걸즈>나 또 다른 이탈리안 감독 피터 델 몬트의 <발레> 등의 영화에서 재기의 신호탄을 던져봤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게 된다. 거의 모든 제니퍼 코넬리의 팬들이 아마폴라와 발레복, 때로는 데이빗 보위와 춤을 추던 환상 속의 소녀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영화인들이 선천적인 조건만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버렸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니퍼 코넬리는 성인이 됨과 동시에 당대의 인기 스타였던 돈 존슨, 그리고 버지니아 매드슨과 함께 데니스 호퍼 감독의 영화인 <핫 스팟>에 출연한다. 성인으로의 변신에 큰 욕심을 부린 탓인지 제니퍼는 이 영화 속에서 누드(!)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조금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0-
이후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제니퍼 코넬리 왕년의 누드'라는 제목으로 그 장면을 캡춰한 사진이 돌아다니면서 '어두운 꼬리표'로 남은 영화가 돼버렸을 뿐이다. 최근 '제니퍼 코넬리의 가슴 말고도 볼만한 장면이 많은 영화'로 재평가되긴 했지만 제니퍼 코넬리의 재발견은 결코 아니었다.
<핫 스팟>의 악몽을 딛고 일어나기 위해 제니퍼가 선택한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국내 개봉제는 <백마 타고 휘파람 불고>였던-0-++ 엉뚱한 백화점 주인의 딸로 출연한 제니퍼는 역시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그럴 만한 영화도 아니었고, 그럴 만한 역할 역시 아니었던 것이다. 연기자로서의 성공도, 대중적인 지명도 얻어내지 못한 채 제니퍼 코넬리는 그냥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1995년, 존 싱글턴 감독의 <캠퍼스 정글>을 통해서 그녀는 재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캠퍼스 내의 반 성차별 모임의 리더로 출연한 제니퍼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지만 짧은 시간동안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그 모습은 이제 더 이상 환상 속의 소녀가 아니었고 어린 시절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공주 출신 연기자도 아니었다.
그 이후로 제니퍼 코넬리는 제대로 된 '배우'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리 타마호리 감독의 필름 느와르 <멀홀랜드 폴스>나 리브 타일러,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악의 꽃>등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출연했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한 제니퍼 코넬리의 팬들을 제외한 관객들마저 그녀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 영화는 <다크 시티>였다. 알렉스 프로야스의 출세작인 이 영화에서 그녀는 클럽의 가수로 등장해, 아니타 켈시의 목소리에 립싱크를 하면서 다시 한 번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2000년 제니퍼 코넬리의 선택은 탁월했다.
면도날과 같이 날카로운 테크니션 대런 아르노프스키의 두 번째 작품 <레퀴엠>....
정신병력이 있는 여인으로, 마약중독자 연인과 함께 마약 장사를 시작하면서 점점 중독이 심해져서 결국 부자들의 섹스 파티에서 몸을 팔게 되는 역할의 제니퍼 코넬리는 심해지는 중독의 그라데이션을 잘 표현했고 중독의 위험이나 파괴력보다는 그 속에 깊숙이 잠겨져서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슬픔을 꺼내는데 성공했다.
제니퍼 코넬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02년 오스카에서는 <뷰티풀 마인드>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84년, 14살의 나이로 대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작품을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지 18년만의 일이었다. 언제나 연민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흐르는 그녀의 이름에 걸맞는 역할이었다. 천재 수학자, 동시에 정신병과 싸우는 한 남자의 곁에서 그의 투병을 돕는 헌신적인 아내의 역할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