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봄이 되었는데
<중주> 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달 5일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날 정도로 날씨가 풀린다는 경칩(驚蟄)이고, 21일은 남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봄날인 춘분(春分)입니다.
조선조 후기에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음력을 기준으로 매달의 농촌 풍경과 농가에서 해야 할 일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농가월령가의 2월령(二月令)은 “이월은 한창 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라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계절은 이렇게 봄인데 지구상의 일들은 봄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세가 조금도 꺾이지 않고 있는 코로나 때문에 그렇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저희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중국 당국의 통제가 날로 심해진다는 사실 때문에 특히 그렇습니다.
<중국을 주께로>는 지난 2월호 기획으로 “인터넷종교정보서비스관리방법(互聯網宗敎信息服務管理方法)”을 다루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그 법은 이 달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2월 하순에 저는 <중주> 2월호를 열어 그 기획 기사를 다시 한 번 정독하였습니다.
2월호가 나왔을 때 한 번 읽었지만 시행일을 눈앞에 두고 꼼꼼하게 읽어보니 그 범이 중국에서의 종교활동을 그야말로 치밀하게 옭죄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새삼스럼게 몸을 움추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국은 지금까지 종교를 규제하기 위한 법규들을 많이 반포했습니다.
최근의 것이고 또 대표적인 것이 2004년 11월 30일에 공포된 종교사무조례와 2018년 2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신수정종교사무조례입니다.
“인터넷종교서비스관리방법”은 종교 규제의 총화
인터넷종교정보서비스관리방법은 이런 규제 법규들의 총화(總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관리방법은 중화인민공화국사이버안전법, 인터넷정보서비스관리방법과 함께 종교사무조례의 법률 규정을 근거로 제정되었고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공업정보화부, 공안부, 국가안전부, 그리고 종교사무국이 공동으로 확정했다는 것이 중국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종교사무국의 이름을 제일 끝에 두었습니다만 이 관리방법의 원문에는 국가종교사무국 국장 왕쭤안(王作安)의 이름이 제일 위에 나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국가종교사무국 국장의 서열이 이렇게 높은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중주> 2월호에서 이 관리방법의 전문(全文)을 찬찬히 읽으면서 ‘<웹진 중국을 주께로>도 인터넷 종교 서비스 가운데 하나인데 영향이 없으려나?‘ 하는 염려가 생겼습니다.
이 법의 제2조는 “본 방법은 중화인민공화국 국경내에서 이루어지는 인터넷 종교 서비스에 적용한다”라고 되어 있어서 영향이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여하튼 신경은 쓰지 않읓 수가 없었습니다.
매월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갖고 있는 국내의 영향력 있는 두 선교단체가 2월 모임의 주제를 중국 문제로 정했습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기독교적 관점에서서 본 중국과 중국교회”, 기독교통일포럼이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의 변화와 한번도” 라는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는데 저는 이 두 모임에 다 참석을 했습니다.
두 모임에서는 “현재 행해지고 있는 중국의 기독교 박해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것도 아니다. 중국의 특성상 필연적인 것이고 장기적인 것이 될 것이다.”라는 점이 공통으로 강조되었습니다.
저는 그 발표들을 들으며 ‘중국의 종교현실이 저렇게 엄혹(嚴酷)한데 나는 “발행인 통신”을 너무 나이브(naive0하게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저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춘래불사춘”은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는 뜻인데 한나라의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여인을 노래한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왕소군은 뛰어난 미모를 지닌 한나라의 궁녀였는데 흉노족과의 친화정책을 위해 흉노왕 호한야선우에게 시집가서 그곳에서 생을 마칩니다.
그 일을 두고 시인 동방규가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이라고 한 것입니다.
복수초를 보며 배워야 합니다.
계절은 춘삼월, 봄이 되었으나 중국사역은 봄 같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움츠리고 있어야만 할까요?
복수초(福壽草)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입니다.
이른 봄에 노란색 꽃이 피는데 이 식물의 꽃을 ‘눈색이꽃’이라고 부릅니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2월 경이 되면 사진 작가들이 눈 사이에서 핀 복수초를 찍기 위해 여기 저기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중주> 가족 여러분도 그런 사진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필요하시다면 인터넷을 검색하면 눈과 복수처가 어우러진 사진들을 수십 점 대할 수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저는 한 식물학자에게 복수초를 수복초로 이름을 바꿀 수 없냐고 물은 일이 있습니다.
한자를 달아놓지 않으면 ‘복수초’라는 말이 ‘복수하기 위해 핀 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수초처럼 눈 밑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번호는 그런 길을 함께 찾기 위해 앞에서 말한 한국복음주의협의회의 2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에서 발표된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중국과 중국교회”라는 주제의 글 두 편을 기획 기사로 다루었습니다.
이를 허락해주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중국을 주께로>를 향한 <중주> 가족들의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 드리며 격동의 달 3월, 더 많은 기도 가운데에서 중국복음화의 행진을 함께 해 나가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