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슬프게 하는 것들>/구연식
사람에 따라서는 계절의 감각은 다르겠지만, 나에게 가을은 모든 것이 떠나가는 아쉬움으로 남아 한 해의 마지막 계절로 사로잡혀있다. 오늘은 가을의 여운이 더 사라지기 전에 전주 근교 운암산과 동성산, 위봉산 등 아래 계곡을 막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대아 저수지 20km의 아름다운 호반 도로를 가보기로 했다.
완주군 소양면 순두부 먹자촌 부근 동양초등학교를 왼쪽으로 두고 동상면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고 있다. 전주로 이사 온 이후 나만의 긴 사색을 요하거나, 분위기를 쇄신을 위해서는 가끔은 이 코스를 택하는 경우가 있다.
시가지 쪽과 얼마 안 되는 거리인데 금방 산중이라 괴암과 처녀림 숲들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변덕이 죽 끓는 생각인지 공간은 감성을 자극하여 이성을 바꾸어 어느 사이 모든 시름과 걱정은 무장해제 되어 누구한테도 천사가 된 기분이다. 이렇다가 머릿속이 영원히 하해 질까 두렵다.
올해는 날짜는 빠른데 계절은 늦어서 다행히도 가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게으름뱅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다행이다. 길가를 지키던 구절초 찬 이슬로 단장하여 마냥 탐스럽고 고운 우윳빛 얼굴일 것 같았는데, 가을 찬바람 불더니 초췌한 자주색 얼굴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그래도 기다려 주고 있다.
가로수의 벚꽃나무는 팝콘 같은 꽃으로 꿀벌과 사람들을 유혹하더니 어느새 가을이 가지마다 흔들어 낙엽이 지고, 이제는 싸리비처럼 앙상한 가지를 쳐들고 그 팝콘의 전설을 못 잊어 먼 하늘의 백설을 맞이할 모양이다.
늦가을의 햇빛은 한 줌도 아쉬운데 구름 속에서 배시시 얼굴을 내민다. 먼 산 단풍의 화폭은 해님의 조명에 따라 파노라마처럼 가을 끝 고운님 얼굴을 바꿔가며 보여준다.
언덕 상수리나무 아래 잠깐 쉬고 있다.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기척을 들렸는데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숨을 죽이고 훑어보니 상수리 낙엽과 보호색으로 다람쥐가 보이지 않았다. 다람쥐는 이미 나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접근 거리가 가까워지면 도망갈 기세였다. 벌써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입에는 볼이 터져라 상수리를 물고 앞발로 몇 개의 상수리를 움켜쥐고 캥거루처럼 거동이 불편한 자세였다. 나는 살며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미물들도 가족들과 지낼 겨우살이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나는 밴댕이 속 같고 훨훨 털어 버리면 그만인 것을 그냥 허송세월을 보내기 위해 이곳을 지나간다 생각하니 다람쥐만도 못한 인간이라 생각이 든다.
심술꾸러기 드렁칡은 여름 내내 온 산을 점령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위 나무는 목까지 휘감고 숨통을 조이더니, 간밤에 된서리를 맞아 이파리는 모두 다 삶아지고 덩굴만 앙상하여 바람에 흐느적거리고 있다. 아마도 자연의 업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산중이라 벌써 해는 서산으로 숨어버려 땅거미들이 기어 내려오고 있다. 저 멀리 마을 구석에 작은 외딴집 굴뚝에서는 실연기가 가물거리면서 올라오고 있다. 군불을 때는지, 저녁밥을 짓는지 고향 집 사리문 밖 어머니 모습이 아른거려 나그네의 갈 길을 재촉한다.
동상면 일대는 감나무가 지천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국적으로 동상 곶감이 랜드 마크로 소문이 나 있다. 집마다 곶감을 말리려고 걸어놓은 풍경은 일품이어서 사진작가들의 스케치 장소로도 유명하다. 작년에는 해갈이로 감이 별로이더니 올해는 어디를 가나 감 풍년이다. 산기슭 작은 감나무에는 벌써 감잎은 다 떨어지고 감들만 많이도 매달려 세모의 상징이기도 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색 조명등처럼 햇빛에 반짝거려 캐럴이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다.
대아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대아정(大雅亭)에 올랐다. 대아 저수지는 일제강점기 독일 기술진이 설계로 1920년 7월에 착공, 1922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제당(堤塘) 구조는 아치형 콘크리트 댐이고, 우리나라에서 100년이 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댐이기도 하다.
봄에 왔을 때는 주위의 산들이 금방이라도 물속에 잠기는 것처럼 풍덩 하더니 가을은 저수지 물까지 인정머리 없이 뺏어가서 바닥이 보일 정도다. 봄의 저수지는 젊은 날 어머니의 풍성한 앞가슴 같더니 이제는 자식들 모두 키워낸 슬픈 노년의 어머니 젖처럼 바듯해 버렸다.
만경강 지류인 고산천 갈대숲이 머무르게 한다. 황혼의 들판에 수만 마리의 양 떼들이 우리로 성낸 파도처럼 기어들어 오고 있다. 아마도 파스칼(Pascal)의 명언을 반증하는 시위적 행동 같다. 생각 없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이처럼 강인하고 집단 능력이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별이 총총한 밤이면 모두 다 휴식을 취하면서 철새와 들짐승들에게 잠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생각만 있지 바른 행동은 나 몰라라 하는 인간보다 낫지 않은가?
가을이 슬프게 해도 가슴의 빗장을 열어 놓고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것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섣달그믐이 넘어도 마냥 기다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