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치유시 모음집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처음 이 시를 소개할 때 게재 허락을 받기 위해 연락처를 수소문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파리 지하철 공사가 매년 공모하는 시 콩쿠르에서 8천 편의 응모작 중 1등으로 당선된 작품이기 때문에 지하철공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한 끝에 어렵게 시인의 주소를 받을 수 있었다. 전화도 이메일도 없는 사람이었다. 주소로 편지를 보내고 한 달을 기다려도 답장이 없었다.
파리에 사는 화가 친구에게 찾아가 달라고 부탁했다. 겨울이었고 아침 일찍 집 앞에 도착했는데 빌라 현관이 번호키로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렸지만 30분이 지나도 기척이 없었다. 옆 건물 1층에 있는 빵가게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자 빵가게 여주인이 오트텅스 블루틀 안다며 비밀번호를 알려주어 빌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꼭대기 층 현관에서 벨을 누르자 아시아계 남자가 문을 열었다. 오르텅스 블루의 전남편이었다.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니까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오트텅스가 말했다.
“당신을 알아. 하지만 시 게재를 허락할 수 없어. 시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어떤 점에서 시가 완벽하지 않은가 묻자 그녀는 전남편에게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가로 50. 세로 30센티미터 정도의 누런 종이를 남자가 가져왔는데, 그 종이에 시가 인쇄되어 있었다. 지하철 공모전에서 시가 전시될 때 사용된 것인 듯했다. 오르텅스가 한 부분을 짚으며 말했다.
"여기 이 '너무도(불어 원문에서는 si)'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그녀는 말했다.
“그때 내가 느낀 외로움은 이 '너무도'로는 표현이 안 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허리를 구부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내친구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고 했다. 그녀는 걸을 때 비틀거렸고, 몸집이 작았으며, 말랐다. 30대인데도 등이 구부정하게 휘어있었다. 그녀는 친구에게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화가라고 하자 자기도 그림을 그린다며 자화상을 보여 주었다. 볼펜과 사인펜으로 그렸는데, 입술만 붉게 칠해져 있었다. 그림이 좋다고 했더니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테이블 옆 단지 안에서 이것저것 꺼내 보여 주었다. 젊었을 때 어린 아들을 안고 웃는 사진, 첫사랑이 준 소품 그림 한 점, 그리고 몇몇 사진들.
<사막Desert〉은 몇 해 전 정신병원에서 쓴 시라고 했다. 첫사랑과 헤어진 충격으로 정신발작을 일으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병이 호전되자 영화관에서 일하며 동양인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정신병이 재발해 또다시 병원을 들락거리고, 이혼을 하고, 돌봐줄 이가 없어 전남편과 아들과 여전히 한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집 안에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가 있고, 몇 안 되는 가구는 쇠사슬로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발작이 일어나면 힘이 세져 가구를 집어던지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가야겠다며 친구가 일어서자 오르텅스가 말했다.
"시가 완벽하진 않지만 당신이 좋아졌어. 그러니까 허락할게. 내시를 책에 실어도 좋아."
'너무도'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될 만큼 고독의 밑바닥까지 간 사람, 거기서 시라는 밧줄을 붙잡고 간신히 일어선 사람이 쓴 시가 <사막>이다. 이 시가 소개된 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치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 뒷걸음질로 걸어서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이라도 보려는 것은 눈물겨운 생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여기에 다시 소개하면서 사용 허락을 받을 겸 안부가 궁금하던 차에 대학생이 된 그녀의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그리고 오르텅스 블루와 통화할 수 있었다. 다행히 목소리가 밝았다. 그녀는 새로 쓴 시를 보내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다시 희망이 솟았다.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