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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어디서 나는가? (김영준목사님/기쁜소식교회)
성경: 로마서 10장 8-17절
극동방송 12월3일 믿음의 시간에 방송된 내용입니다.
목사님이 캐나다 이민 가서 교회다니기 시작했을때,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 여쭤보았습니다."제가 아무리 믿으라고 해도 믿어지지 않는데,어떻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그 전도사님이 " 베니힘" 목사의 집회에 참석하기를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 그 분의 집회를 참석해 보아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병이 낳는다고 했지만 내가 그것을 직접 확인 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리고 설사 여기서 병이 낳는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저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지는 불분명했습니다.결국은 무위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정작 믿음을 갖게되면 계기는 교회 성경공부를 통해서 였습니다.
분반공부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셔야 했는가?" 예수님의 죽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이 되는가 하는 원리를 설명하셨는데 저는 그때 그것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해가 되고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예수님이 죽기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얻는 다는 이야기입니까? 제가 뭔가 이해가 되니까 질문을 하지요. 이해가 되는 것이 없는 사람은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온전히 거듭나게 된 계기는 빌리그레이함 목사님의 책을 읽는 후 였습니다. 그 분이 아주 쉽게 성경에 근거해서 복음을 설명한 책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하루저녁에 다 읽고, 그 책 끝에 예수님 영접하는 기도가 있었는데 그 기도를 저의 기도로 드리고, 그리스도 인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때가 제가 만17살 때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믿고자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고민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첫째로 의지로 안됩니다.
믿어라하고 강요하는 것이 소용이 없는 이유는, 강요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어져야 믿을 수 가 있습니다.
둘째로 의지로 안된다고 해서 그렇다고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예정에 좌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칼빈주의의 맹점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전만큼 강조하다 보니까 사람이 믿음을 얻는 것이 마치 로또에 당첨되면 것 같은, 운에 의한 것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것같은, 이런 생각을 하기 쉬운데 이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무력하고 소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디에서 오느냐?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
오늘 로마서10장 10-17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니암았느니라."
이것은 아주 중요한 원리인데, 이 원리를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성경구절이 사실 이부분 한 구절밖에 없다는 것이 사실 좀 의아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들이 이 원리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보고 믿는 종교가 아니고,듣고 믿는 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성경부터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당신의 말씀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 민족의 유명한 기도문이 쉐마 이스라엘 이란 말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는 것입니다.들을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성경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도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God said",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왜 하나님은 말씀하시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시, 예언, 성경의 기록,글로 기록된 구약, 신약,그리고 설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들어야 믿음을 얻을 수 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성경말씀의 권위, 쏠라 스크립춰 라 오직 성경을 강조한 이유도 믿음이 성경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말을 들으시는 여러분 중에는 믿음이 말씀을 들음으로 온다는 말이, 어떤 학습효과라든가, PR이라든가, 선전이라든가 주입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TV광고를 자주 접하면 어떤 제품에 대해 익숙해지고, 그 제품을 사고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마치 공산주의를 선전하면 물에 물들듯이 기독교도 선전효과를 통해서 사람들이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선전효과나 주입에 의해서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 있다면 서구유럽사람들은 믿음이 아주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랜세월동안 기독교문명에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갖는 원리는 "서당개가 3년이면 풍월을 읇는 그런 원리"가 아닙니다
그냥 사람이 성전에 안뜰을 밟는 것만으로 믿음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믿음이 사람에게 온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기에 신비한 역사가 따라야 합니다.
신비한 원리가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 다른 이유로 고민한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이유로 고민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미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고, 성 어거스틴도 암브로스 주교의 설교를 즐겨 들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강이 없었습니다.그에게는 믿음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오후 어거스틴이 자기의 침상에 누웠는데, 창밖에 놀고있는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때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마치 하나님이 자신에게 명령하는 것같이 들렸다고 합니다."일어나 일어나 책을 보아라" 이런 식의 노래를 애들이 부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 어거스틴이 침상에서 일어나 책상위에 있는 성경책을 무심코 폈는데 로마서 13장 12절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밤이 깊고,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그 순간에 그 말씀이 그 가슴에 와 밖혔고,그리고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성 어거스틴의 유명한 회심의 순간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목사의 집에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미국 식민지에 선교사로 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확신이 없었습니다.늘 의심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에 올더스게이트란 곳을 지나가다가 거기에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서, 누가 사도바울의 로마서주석을 읽는 것을 듣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요한 웨슬레의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 웨슬레의 유명한 올더스게이트 회심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중에 온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경험이 사람들에게 좀 더 자주 오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요. 그건 알수 가 없지요.
그건 사람이 알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조정할 수 없고, 유도할 수 없고,분위기로 좌우할 수 없고, 인위적으로 조작한 수 없습니다. 어떤이들은 기도회할때 사람들이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어야 된다 이런 위험한 말을 하는데,이건 이단에서나 하는 말입니다. 사람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고,또 사람의 반응을 인위적으로 조장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가로 막습니다.
진정한 회심과 믿음은 그런 식으로 조작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범사에 예배를 드릴때나, 교회모임을 할 때나,신앙생활을 할 때에 말씀,기록된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큐티교재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지만, 여러분 아무리 큐티자료가 잘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오리지널 성경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어떤 큐티도움을 받기 전에 성경 원문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합니다. 남이 먹기 좋게 씹어놓은 것을 누가 먹습니까?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말씀에 말씀중심으로 시작을 했는데,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다른데 신경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열린예배,음악퍼포먼스,영상이니, 순수한 말씀보다는 사람의 경험담,듣기 좋은 예화, 그리고 팝, 심리학 그런 것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말씀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축복에 대한 성경말씀을 강조하는 교회는 성도들이 축복을 받고,
성령에 대한 성경말씀을 강조하는 교화는 교인들이 성령을 받습니다.
선교에 대한 성경말씀을 강조하는 교회는 교인들이 선교를 열심히 합니다.
기도에 대한 성경말씀을 강조하는 교회는 성도들이 기도 은사를 얻습니다.
신유에 대한 성경말씀을 강조하는 교회는 사람들이 병에서 나음을 받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말씀을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성도들이 어느 분야의 믿음을 가느냐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축복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듣다 보니까 축복을 얻을만한 믿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성령이 함께 역사하셔야 됩니다.
믿음이 오는 순간에 신비한 역사가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이 취해서 우리의 마음속에 던지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이 왜 평소에는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그것이 마음에 와 닿는냐? 성령께서 그 말씀을 취해서 우리에게 던지시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은 성령이 즐겨타시는 수레와도 같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다가오실때 말씀의 수레를 타고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올때 마음에 와닿고, 믿어지고 그것이 우리 속에 확신이 되는 그런 역사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성경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고, 성령에 감동을 받은 사람에 의해서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감동에 의해서 기록됐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서 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교회도 다니고,세례도 받고,예배도 드리지만 그러나 뭔가 2% 부족하다." 라고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부족한 부분은 바로 성령이 역사하시는 부분입니다.
아직까지 성령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생소하고, 성령을 두려워하고, 원치않고,성령이 여러분 신앙에 역사학 공간을 아직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교회도 다니고,설교도 듣고,세례도 받고,예배도 드리는 데,뭔가 내가 믿는 사람 같지만 정작 믿음이 없는 이유는 성령이 역사학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느냐?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어떤 신비한 경험을 말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기록된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아주 단순한 구절, 이미 알고 있는 구절,이미 여러번 들은 적이 있는 구절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성령으로 그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시면,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심오한 진리가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와 닿을 수 가 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을 내가 벗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랑과 상반된 삶을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구나. 왜 나는 사랑을 지향하지 않고,미움과 경쟁과 다툼을 지향하면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 길이 엇갈리는 구나. 이런 식으로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내게 주시는 말씀,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가 있는 이유는 성령께서 기록된 성경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매일 매일 경험하도록 하기위한 것이 소위 QT입니다.
QT란 성경을 의도적으로 읽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의도를 말하느냐?
그냥 성경을 읽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을 통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기 위한 예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번째로 성경을 접할 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라고 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경말씀을 읽어야 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성경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를 기다린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말씀을 전할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셔야 합니다. 읽을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전할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마가복음16장에 제자들이 두루 나가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두루나가 전파할 새,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다시 말하면
사람만이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주님만이 이 일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사람과 주님이 함께 일하는 것은, 사람이 말씀을 전할 때 주님이 함께 역사하셔서 따르는 표적으로, 이 말씀이 정영 하나님의 음성인것을, 우리에게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하심으로 우리를 믿음으로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들음으로 믿음을 얻게 하시고, 믿음이 들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믿음은 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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