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자.
누가복음 24:13-35
들어가며
올해도 어김없이 부활절을 맞이했는데,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 어떤 자세로 부활절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
오늘 제목이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자.’인데,
우리는 과연 부활의 능력을 확신하고 있는지,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주님의 부활이 그다지 가슴 깊이 와닿지 않는,
자신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봄으로써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 속으로
1.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걸으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까? (13-24절)
13절에 ‘그들 중 둘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 두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인 듯합니다.
예수님은 70인을 따로 세우셔서 전도대로 파송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개 그들을 ‘칠십 문도’라고 하는데,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그 두 사람은 아마도 칠십 문도에 속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내려가던 중에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라고 물으셨는데,
이렇게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18-23절입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로 알고 이스라엘을 속량할 분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예수님을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그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는 것 등입니다.
글로바의 말과 행동에서 두 가지를 주목해 봅시다.
첫째, 여인들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서도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로, 그들이 엠마오로 내려갔는데,
이는 예수님을 따르던 공동체를 떠난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믿음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는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25-27절)
25-26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5-26절은 예수님의 책망입니다.
예수님은 글로바와 그의 일행을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라고 부르며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고난의 의미와 부활의 영광에 대해 말해주셨습니다.
이어서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님은 아직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당신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당신의 손과 발에 있는 못 자국,
허리에 있는 창 자국을 보여주면서 당신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부활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점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당신의 몸에 있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주면서
부활을 말씀하셨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우리와는 아무 관계없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성경을 가지고 부활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글로바와 그의 일행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두 사람에게 말씀해 주신 성경은 구약 성경을 가리키지만
오늘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지식이 정보 수준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듣기는 했으나
믿지는 못한다면 우리 역시 글로바와 그의 일행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이고,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믿고 확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그들의 강권에 의해 음식을 함께 잡수시게 된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그런 후에 예수님이 곧 떠나시자 그들은 서로 무엇이라 말했습니까? (30-32절)
먼저 30-31절을 봅시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예수님은 그 두 사람이 강권하는 바람에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인 줄 알아보게 되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떠나셔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셨습니다.
그 두 사람이 처음에는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가
예수님이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을 때 예수님인 줄 알아보았을까요?
그들이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16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들의 눈이 가리어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이
그 이전의 예수님의 몸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인 동시에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는 것은 예수님이 종종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실 때도 그러셨고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실 때도,
부활하신 후 디베랴 호수에서 일곱 명의 제자들을 만나실 때도 비슷하게 행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두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놀라운 표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은 신앙생활을 뜨겁게 해”라고 말할 때
그 ‘뜨거움’에 해당하는 표현이 성경에 나옵니다.
종종 우리는 집회를 참석했거나 기도회 등에서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주님이 성경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차갑게 식은 심령을 뜨겁게 하여 주님 앞에서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모하는 심령 위에 말씀으로
역사하셔서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은 곧 어떻게 했습니까? (33-35절)
33-35절을 봅시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3절은 ‘곧 그 때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자신들과 함께 동행했다가 사라지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안 바로 그 때,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는 말을 서로 주고받은
바로 그 때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있던 자들이 모여 있으면서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고 말하고 있던 바로
그 공동체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던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채 예수님이 죽으셨다고만 생각했을 때
그 두 사람은 영적으로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떠나 엠마오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곧 바로 공동체로 돌아왔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채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한다면 그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길을 잃거나 낙심했거나 침체되어 있더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확신한다면 우리 역시 마음이 뜨거워지고 신앙 공동체에서
뜨겁게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런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부활 신앙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 내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과 관련해 부활 신앙은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한 주간의 실천/ 부활에 관한 이모티콘이나 그림 등을 하루 한 사람에게 보내기
마무리하며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이듯이 부활 신앙 역시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부활할 것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 신앙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힘겹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 내야 하고
영적 공동체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부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찬송: 171장 하나님의 독생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