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벤틀리 호텔
무엇이 나를 붙들고 있었을까?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는 말에 다 떨쳐내고 마음을 잡았다. 아시아 문화전당에 오후 5시까지 도착하면 되니까 서둘러 나가면 고속버스를 탈 수 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섭섭해 하시는데 무엇에 걸려서 나중에 넘어지고 깨지면서야 아파하고 후회할 것인가! 황홀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나는 쓸쓸하고 외로운 축제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지를 않는가. 대구 터미널에 도착해서 오후 1시 버스표를 끊었다. 광주에 도착하면 4시다. 행사장에 깜짝 나타나서 선생님을 놀라게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우울해하고 계실 선생님을 생각하니 전화라도 드리고 싶었다. “그래. 와야지. 내가 호텔 예약해놓고 내 제자도 붙여줄테니 불편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시면서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신다. 연세도 놓으신 우리 선생님을 생각하자고 주문을 외면서 버스를 탔다. 가을이 깊어만 간다. 대구에서 광주까지 3시간이 걸린다. 버스에서 선생님 시집을 읽으면서 가노라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뭇가지를 꺾어 놓고 가시는 우리 선생님의 마음을 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광주에 도착해서 호텔까지 택시를 탔다. 미리 행사에 도착해서 호텔에서 쉬고 계신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프런트에서 키를 받아서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행사장인 아시아 전당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갔다. 식사를 안하시면 행사 마칠 때가지 선생님이 힘드실 것 같았다. 어중간해서 나도 점심을 걸렀는데 잘 되었다 싶어서 함께 행사장 근처에서 초밥을 먹었다. 선생님과 이렇게 마주해서 점심을 먹으니 마음이 더없이 편안하다. 예전과 별반 다름없이 건강하시니 더없이 감사하다.
아시아 문화의 전당 예술회관 3에서 진행이 된 ‘포엠 토크’는 시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함께 시집을 발간한 고재종 시인도 만나고 가깝게 알고 지내는 강대선 시인도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불편하시지 않게 강시인과 행사를 마치고 따로 시내에서 맥주 한잔을 하면서 가을밤을 시로 쓰고 있었다. 일찍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낯선 도시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낯설고 설레는 밤을 보내고 있다.
호텔 조식을 함께 하자고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오셨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선생님을 모시고 7층 스카이라운지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행사장에서 말씀을 많이 하신 선생님도 잠을 편히 주무시지 못했다고 힘들어 하셨다. 아침을 먹고 일찍 대구로 가기로 했다. 그래야 선생님도 쉬실 수 있으니까.예매한 버스표를 바꿔서 일찍 대구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내 잠을 잤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깨어나라 가르쳤고 공부를 하라고 회초리를 들었다. 선생님 책을 들춰 한 줄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