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1. 06. 15
대구 매일신문 문화부 jebo@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1-06-12 06:30:00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22>우현서루의 장서들
시대 변화 이끄는 교육기관 명맥 계승…우현서루 이상화 백부 설립
서양 근대문명 서적들 소장, 대구 개화기 계몽기관 역할
1952년 3,937권 기증 받아
▲서기 886년(정강왕 1)에 신라 최치원(崔致遠)이 간행한 계원필경집
(桂苑筆耕) 내표지(內表紙)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장서나 문고의 확보는 도서관의 질적 위상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경북대 도서관 고서실과 개인문고실에는 연륜의 세월만큼이나 많은 개인 문고가 비치되어 있지만 경북대 도서관이 자랑할 만한 기증 도서로 우현서루(友弦書樓) 관련 문고를 들 수 있다.
우현서루 도서가 경북대 도서관에 비치된 것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이다.
그 안내문에 의하면 1952년 이석희(李碩熙) 씨가 3천937권을 기증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중화민국 18년(1929) 상해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간행한 '사부총간(四部叢刊)'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중국의 역대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을 모은 '사부총간'의 내용을 살펴보니 신라 하대의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3책도 보인다.
비록 1910년 전후 우현서루에 직접 비치된 도서는 아니지만 대구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인 우현서루와 경북대가 장서를 통해 지역 교육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기증자 이석희 씨는 우현서루를 경영했던 소남(小南) 이일우(李一雨)의 장손이다.
우현서루는 시인 이상화(李相和)의 백부인 소남 이일우가 설립하였는데, 1910년대 폐쇄될 때까지 대구지역의 근대지식 보급 내지 계몽교육의 역할을 담당한 사립교육기관이자 서고(書庫)라 할 수 있다. 이일우는 1900년대 중반 우현서루를 세우고 우현서루 내에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를 창립하는 한편,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한 대구지역 애국계몽론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집인 '성남세고(城南世稿)'의 '행장'에 의하면 이일우는 갑진년(1904) 서울에 가서 시대의 변함을 보고 각성한 바가 있어 그의 부친인 금남(錦南) 이동진(李東珍)의 후원 하에 육영 사업의 하나로 우현서루를 세웠다고 한다.
당시 국내 신문이나 잡지는 물론이고 러시아 지역의 해외 동포신문인 '해조신문(海潮新聞)'에까지 우현서루가 소개된 것을 보면, 1908년 무렵 우현서루가 교육기관 내지 도서관 서고로서 이미 전국적 명망을 획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서양 신구서적 수천 종을 구득하여 뛰어난 인재를 맞이하여 교육하였다 하니, 우현서루는 뜻 있는 지사들에게 신구문명을 배우고 전파하는 도서관과 교육기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현서루에는 대개 상해(上海) 광지서국(廣智書局)이나 일본, 아니면 대한제국 학부에서 발간된 다양한 서양 근대문명 관련 서적들이 소장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지역의 개화기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한학의 소양을 바탕으로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되는 신문명을 습득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나가고자 하였다.
우현서루의 장서에는 이처럼 시대의 변화를 앞장서 잡고자 했던 당시 지사들의 뜻과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뜻과 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오늘 경북대 도서관을 드나드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경북대 도서관에 자리잡은 우현서루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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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李一雨)선생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