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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변산반도) 관음봉(옥녀봉 424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9월25일, 새벽 하늘에는 눈썹달이 구름사이로 들락날락 숨바꼭질을 하는데 별들은 어디로 숨었는지 천지(天地)는 감감하도다! 간단히 조반(朝飯)을 들고는 이것 저것 챙겨서 가방을 메고 출발지(반고개)에 도착하니 아직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원우님과 간단히 통화를 한 뒤 잠시 기다리니 염종우님, 안언니(안순옥), 송영달님 부부, 홍현문님 등 금새 10여명이 모여든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추석은 잘 지내셨는지 안부가 따사롭다.
차에 올라 서부장(서경철)님과 포옹으로 인사를 나눈 뒤 차례로 모든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니 처음 오신 분들도 상당하다. 차는 서행으로 달려서 서남시장, 성서홈플러스, 칠곡IC를 최종 출발하니 오늘따라 앉을 자리가 모자란다.(49명)
새로 확장(4차선)됀 ‘광대(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논공휴게소’에서 준비해온 조식(朝食)을 회원님들이 드실 동안 주위를 잠시 둘러보니, 그 새 넓은 부지에 휴게소가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일취월장(日就月將)이라드니... 나날이 다달이 발전해 가는 조국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름니다. 사람 한 평생이 짧고도 길게 느껴져서 자동차며 유선전화, 휴대폰, 컴퓨터, 카메라 등 상상도 못 했던 물건들을 현실에서 부대끼며 사용하는 오늘날의 내 생활이 그저 꿈만 같슴니다 그려!
차는 신나게 달려서 담양, 고창, 줄포IC를 거쳐 변산의 내소사 주차장에 당도하니 시계는 11를 조금 지나고 있다. ‘남산플래카드’를 펼치고 단체로 기념촬영을 한 뒤 A,B조로 나뉘어서 출발하니 선두와 후미가 어찌나 긴지 끝간데를 모르겠슴니다.
출발기점을 찾아서 ‘곰소장모님젓갈’ 방향으로 진행하니 연변(沿邊)에는 ‘구지뽕나무’가 많이도 심어져 있다. 짙은 녹색잎 사이로 붉게 익어가는 열매가 ‘토종 구지뽕’과는 완연히 달라서 그 크기가 밤알만 하도다.
한참을 우왕좌왕 해서 ‘원암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주위에는 누런 감들이 앙상한 가지에 주렁 주렁 매달려서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며, 그 아래는 꽃무릇(상사초)이 얼마나 많이 피었는지 파란 줄기 끝에 붉음을 토해내고 있슴니다. 잎이 지고 재가되어 다시 꽃대공이 피어 오르니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의 “환생(還生)”을 보는 것 같슴니다.
마을을 지나 ‘내소 힐링캠프’ 이정표를 따라 “재백이고개” 방향으로 오르니 등산로는 잘 정돈되어서 진행이 순조롭다. 왁자지껄 안도의 숨을 내 쉬면서~ 우거진 소나무 숲길을 10여분 정도 올랐을까? 등산로는 거의 돌 밭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참을 오르니 온 몸에 땀이 배어난다.
경사진 소나무 그늘 아래서 가져 온 포도를 나눠 드시면서 얼마를 휴식한 뒤 다시 오르니 퍅퍅하던 입안에 침이 돌고 새로 기운이 남니다. 10여 분을 더 걸어 “재백이고개”에 당도하니 ‘직소폭포’와 ‘관음봉’ 가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며, 오고 가는 등산객들이 어찌나 많은지 시끌벅쩍 활기가 넘쳐남니다.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오래전(1995, 2006)에 추억이 새록새록 남니다. 그 때는 무박(無泊)으로 ‘남여치고개’에서 출발하여 월명암, 직소폭포를 거쳐 이 곳에 당도하니 겨우 동이트서 이른 새벽이었지요.
살(矢)같이 빠른 세월의 흐름을 느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니 솔바람에 흐르던 땀도 말라 한결 시원합니다. 그럭저럭 335고지 부근에 오르니 남서 해안가에는 천일제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가로세로 반 듯 반 듯하게 구획 지어져 햇빛에 반짝인다.
이곳의 염전들은 한 때 번성했던 ‘줄포항(茁浦港)’이 쇄락(灑落)해 감에 따라 1938년경 ‘곰소항’을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로 개항(開港)하면서 바다를 막을 때 생긴 것들이라 한다. 1960년대 이전만 하드래도 이곳에서 생산됀 소금이 국내에 많이도 보급됐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겨우 명맥(命脈)만 유지되어 있는 셈이다.
‘관음봉삼거리’로 오르는 암벽에는 경사가 심하여 철계단을 설치해 놓았으며, 그 옆으로 이어진 능선의 바위절벽에는 마른 폭포(瀑布)의 흔적이 보인다. 수량(水量)이 많을때는 참으로 장관이겠다는 생각이든다.
몇 몇 회원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는 철계단을 오르기전에 많은 회원님들과 함께 쉼니다. 가져 온 과일들도 나눠 드시면서~ 이런 저런 주제(主題)없는 얘기들로 만담(漫談)의 꽃이 피어남니다.
부지런히 올라 뒤따라 오르는 남산님들의 모습을 디카에 담으면서 10여 분을 더 오르니, 관음봉삼거리 부근의 널찍한 암반에는 여러 곳에서 모인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을 드신다.
시계는 12시 20분을 조금 지나고 있어 다소 시장끼도 느껴지지만 정상을 한 뒤에 들자며 모두들 열심히 진행합니다. 오를수록 시야도 넓어서 주위의 경관들이 한 눈에 들어오니 몸도 마음도 시원합니다 그려!
호젓한 암릉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니 정상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다. 전체가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덮여 있으며, 그 틈새 틈새로 왜소한 소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다. 험로(險路)를 따라 오르면 5~60미터의 거리인데도 빙~둘러 철책을 따라 오르니 250미터 정도는 더 걸어서 정상에 도착합니다.
선착한 노장님(서경철님. 80세)과 디카맨 김해진님, 황까페지기님, 백문주님 부부와 홍현문님, 안언니, 송영달님, 박현숙님 등 많은 분들에게 정상표석을 배경으로 차례 차례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바로 옆에 있는 전망대로 가서 사방을 둘러 봅니다.
전망대는 난간대를 빙~둘러 놓아서 안전을 기했고, 여러곳에 ‘변산 8경 안내판’을 예쁘게 달아 놓았다. 제1경(웅연조대:줄포에서 곰소까지 전경), 제2경(직소폭포), 제3경(소사모종:내소사 전경) 등이 보이며 특히 이곳을 “사진찍기 좋은 녹색명소”라 부르고 있다.
이곳 변산반도 관음봉(옥녀봉 424m)은 호남정맥의 내장산 부근에서 서남으로 뻗어나온 ‘영산기맥’을 따라 방장산 근처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작은 지맥(支脈)이 흘러나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산줄기를 거쳐 배풍산(109m), 관음봉, 매봉, 신선봉, 감남산을 지나 봉화봉(174m)에서 그 맥을 서해바다(채석강 부근)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변산지맥(邊山支脈)”이라 한다.
부안(扶安) 땅은 내륙으로 김제, 정읍, 고창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8경의 하나인 아름다운 변산반도를 품고 있으니... 이름난 명소(名所)와 천년고찰 및 오고 간 인걸(人傑)도 많슴니다.
부안읍내에는 동문안 당산과 서문안 당산이 있어 읍민들을 수호(守護)하고 있으며, 읍내 서림공원에는 이고장 출신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 시비가 있다. 그는 부안의 아전인 이양종의 서녀로 태어나서 시와 글, 노래와 거문고에 뛰어 났으며, 개성의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었다고 한다. 또 그와 교류하던 사람 가운데 임진란 당시 의병활동을 했던 유희경과 교산 허균이 있었다고 하며 허균의 ‘홍길동전’도 이곳에서 지었다고 한다. 나이 40을 못 다 채우고 가신 님의 시(詩)중에 61수가 전하는데 간단히 옮겨 봅니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도다
연하여 구암리(龜岩里) 일대에는 ‘고인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강화도 일대의 고인돌과 고창 일원의 고인돌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다. 이어서 계화도 간척지의 쌀, 물 맑은 변산해욕장, 서해바다 수호신 수성당(守城堂)할머니, 전라북도 기념물 28호 29호인 채석강과 적벽강, 고려청자 가마터인 진서리 도요지와 유천리 도요지, 또 우동리 산 기슭에는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유형원(1622~1673)이 살던 집이 있으며, 그는 이곳에서 20여 년에 걸쳐 “반계수록”을 저술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서기 660년 나당(羅唐)연합군에 의해서 백제가 망한 후 개암사 일원과 백강(오늘날 동진강) 부근에서 활발한 백제 부흥운동을 전개했다고 하며, 그 유적(遺跡)이 오늘날 울금산성(주류성)으로 남아있어 그저 꿈만 같슴니다.(이상 부안자료집 참조)
오늘 따라 시계(視界)가 흐려서 원거리(遠距離)를 다 조망(眺望)할 수 없어 그 아쉬움이 큼니다. 훗날 아름다운 부안을 골고루 답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염원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하산길에 접어듬니다.
10여 분을 걸어나려 적당한 곳에서 모든 회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중식을 맛나게 드심니다. 식후 디저트로 맛있는 과일과 차를 마시고 충분한 휴식을 한 뒤 다시 세봉으로 전진합니다.
점심 후라 배도 든든하여 한결 걷기에 수월하고 좌 우측 벼랑끝에는 기이한 소나무와 바위들로 신비감을 더해 주심니다. 그럭저럭 세봉(402m)에 도착하여 잠시 쉬면서 벽송님(최영수)과 최정애님에게 종친끼리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뒤 이어서 이원우님, 김두열님, 금발례님, 박명옥님 등에게도 단체촬영을 해 드림니다.
얼마를 걸었을까?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내소사는 거대한 배가 나아가는 형국(行舟形)으로 보이고 질서 정연하게 기와지붕만 한눈에 들어오며, 그 앞으로 전나무 숲을 지나 사하촌(寺下村)의 풍광도 정겨웁게 다가옵니다.
하산길 중간 중간 남산님들에게 기념촬영도 해 드리면서 바지런히 걸어 나려오니, 오래전에 청련암(靑蓮庵)으로 내려가던 등산로는 철책으로 가리워져 있어 계획대로 진행을 못하고 10여 분을 더 내려와서 샛길(내소사 방향)로 하산합니다.
지정 등산로는 내소사 일주문 밖으로 하산하도록 되어 있어 조금은 망설이다가 필자를 비롯하여 백문주님 내외분과 박현숙님 등 7~8명이 연이어 하산 하는데, 경사가 심하고 외진 곳이라 하산길이 그리 만만치 않슴니다 그려!
신나게 한참을 걸어 나려서 경내(境內)에 도착하니 절집은 비교적 한산하고 고즈넉하게 느껴진다. 여러개의 돌계단을 올라 정전(正殿) 마당에 이르니 맞은편에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이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의 건물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
안내문에 내소사는 백제 무왕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스님이 창건하여 ‘소래사’라고 했으며, 이 후 여러차례 중건을 거듭해 오다 임진란 당시 소실됀 것을 조선 인조11년(1633)에 청민선사가 건립했다고 한다.
대웅전은 못을 쓰지 않고 지어졌다고 하며, 지을 당시 도편수(책임목수)는 3년동안 나무를 목침덩이 만한 크기로 자르자 이에 장난기가 발동한 어느 스님이 한 토막을 숨겼다고 한다. 이윽고 나무 자르기를 다 마친 목수는 숫자를 세어보고는 자기 정성이 부족하여 더 이상은 법당을 지을 수 없다며 연장을 챙기자 그제서야 숨겼던 나무토막을 내어놓자 부정 탄 나무를 사용할 수 없다며 끝내 사용하지 않아 지금도 오른쪽 앞 천장만 왼쪽에 비해 한 개가 부족하다고 한다.(이상 안내문 참조)
연하여 대웅전 건립을 다 마치고 단청(丹靑)을 하려할 즈음에 어느날 해어스럼제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잠그며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고 하면서 들어갔다.
한데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간데없고 이쁜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칠하고 있었는데, 들여다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어져 마루바닥에 사지를 뻗고 늘어지는 걸 보니, 그것은 커어다란 한 마리의 불호랑이었다.
“대호(大虎)스님! 大虎스님! 어서일어나시겨라우!” 이곳 사투리로 목청껏 불러댓지만 영 그만이어서, 할 수 없이 그럼 내생(來生)에나 소생(蘇生)하라고 이 절 이름을 내소사(來蘇寺)라고 했다.(이상 서정주 著 “내소사 대웅전 단청” 참조)
이 밖에도 전해오는 얘기로는 조선 태종 15년(1415) 이씨 부인이 죽은 남편 유근의 명복을 빌기 위해 법화경(法華經)을 일자일배(一字一拜)의 정성으로 필사하여 공양한 ‘절본 사본(보물 제278호) 7권’이 전해져왔는데, 지금은 ‘전주시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 사경(寫經)이 끝나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여인의 머리카락을 만졌다는 애절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도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대웅전의 문살에 새겨진 꽃무늬들이다. 단청이 바래져서 나무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순진무구(純眞無垢)함이 느껴지며, 국화문양과 연꽃무늬가 섬세하게도 새겨져 있다.
아울러 고색창연한 추녀밑에 걸린 대웅보전의 글씨는 동국진체(東國眞體)의 대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의 글씨다. 이 외에도 강진 백련사와 해남의 대흥사(대둔사),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의 글씨는 수기(水氣)가 흐르고 있어 화재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법당에 들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마치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주산(관음봉&세봉)은 웅장하고 찬란하며, 백호(白虎)는 그만 그만 한데 청룡은 힘차게 뻗어나려 멀리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연하여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공백이 주는 허전함을 비보림(전나무 숲)으로 조성하였으며, 더구나 일주문과 천왕문의 방향을 약간 다르게 하여 일직선이 주는 허(虛)한 기운을 절묘하게 차단하고 있으니, 선현(先賢)님들의 지혜로움에 탄복을 금치 못하겠슴니다.
우측 한켠에는 조그마 한 전각(殿閣) 안에 고려 고종9년(1222)에 주조됀 청림사 종으로 절이 불타고 없어지자 조선 철종4년(1853)에 옮겨 온 동종(銅鐘, 보물 제277호)이 걸려있다. 종고리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양이며 유곽(乳廓)내에는 9개의 종유(鐘乳)가 있고, 몸통에는 삼존상이 새겨져 그 아름다움이 특별하다.
수조(水槽)에는 감로수(甘露水)가 철~철 넘쳐나고 그 앞에는 잣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있다. 화두(話頭)에 “뜰앞에 잣나무라(庭前柏樹子)!”드니... 수도자(修道者)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또 천왕문 가까이에는 ‘할머니 당산나무’가 고목(枯木)가지들은 말끔히 전지되어 파란 잎들이 새로 돋아나 있어 천년의 세월에 회춘(回春)을 하는 것 같슴니다. 아름다운 전각들을 디카에 담으면서 천왕문을 걸어 나오니, 네분의 사천왕상이 8개의 왕눈을 부릅뜨고 있어 잡귀는 얼씬도 못하겠심더 그려!
아직은 단풍철이 아니라서 녹색의 잎들이 울울창창 하지만 약간은 누린빛도 느껴집니다. 벚나무 군락지를 지나 전나무 숲으로 들어서니 좌측에는 “대장금 촬영장소”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장방형의 작은 연못에 수련(睡蓮)이 함초롬이 자라서 수면(水面)을 장식하고 있다.
누군가 모델이 되어 줬으면 하고 찾는 중이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남산님들은 보이지 않고, 마침 지나는 세분의 선녀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청해 오는지라 염원(念願)이 성취되어 되로 주고 말로 받았슴니다.
우측 산 기슭에는 열반 고승님들의 부도탑이 질서정연하게 영겁(永劫)의 침묵속에 잠들어 있어 선채로 예를 올림니다. 울창하고 호젓한 전나무 숲길을 걸어나와 일주문 앞에 이르니, 일주문 현판에는 ‘능가산내소사(愣伽山來蘇寺: 봉래산, 영주산)’라고 적혀있다. 그렇다!봉래산(蓬萊山)이나 영주산(嬴州山)은 다같이 신선들이 사는 곳이 아니던가!
바로 문앞에는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금년 정월대보름에 당산제를 모신 흔적으로 굵은 새끼당줄이 여러겹으로 감기워져 있다. 일설에 내소사 스님들과 마을에서 함께 국태민안과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고 하며, 이는 임진란 이후 불교와 민간 전통신앙이 접합됀 결과라 여겨짐니다.
허허(虛虛)로운 마음으로 일주문 밖의 사하촌(寺下村)을 걸어 나오니, 좌(左) 우(右)로 도열해 있는 사바세계(裟婆世界)가 노을에 찬란하고, 5분 여를 더 걸어서 주차장에 당도하니 모든님들이 질서정연하게 하산주(下山酒)를 들고 계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디카에 담슴니다.
심신(心身)은 산천(山川)의 정기(精氣)로 단련되어
영혼은 맑아져 관음봉에서 찬란히 꽃피는구나!
산 기슭 내소사에는 설화(說話)가 만발하고
아름다운 변산(邊山)에는 풍요의 물결이 넘쳐나는구나!
단기 4349년(서기 2016년) 9월 25일
전라북도 부안군(변산반도) 관음봉(424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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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고문님 변산 관음봉 긴장문의 산행후기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남산의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에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족모두 행복하세요
벽송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부족한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남산의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늘 강건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남산님들, 그리고 까페 모든회원님들 그간 강녕하신지요?
산행을 다녀 온지도 어언 일주일이 되었군요.
몇 개월동안 여러가지 바쁜 사정으로 오랜만에 졸문의 산행후기를 올려봅니다.
당일 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분들(49명)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오며,
아울러 산행 진행에 수고하신 구회장님을 비롯하여 벽송대장님, 윤총무님, 금총무님, 이원우님 등
수고하신 모든분들께도 감사 감사를 올림니다.
이제 9월이 가고 국화향기가 천지를 진동하는 10월이 왔슴니다.
모든님들, 10월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마다 소원성취 하시길 기원합니다.
고고문님 산행후기 집필하시느라 정말고생하셨습니다.장문의 후기를 읽고보니 그날의 기억이생생합니다. 많이 힘들었지만 함께한 변산반도 관음봉은 좋은추억이되었습니다. 후기 즐감했습니다.늘 건강하세요^^.
사랑스런 해바라기님이 오셨네요.
보잘 것 없는 후기를 늘 읽어주시고 또 댓글까지~
님들이 계셔서 항상 기쁨니다.
그 출발은 미미 했지만 건전하고 유익한 산행문화의 정착을 위해서
노력 해 주실 것을 님들에게 당부드림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을 창조하시길 기원합니다.
관음봉 산행 중에는 힘이 들지만 산행후기를 접하니 새로운 역사를 많이 보고 배우고 갑니다.


항상 수고 하심에 감사함을 전 합니다.
황까페지기님 반갑슴니다.
가내 두루 편안하신지요?
항상 보이지 않게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드리며,
보잘 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시고 격려까지 해 주셔서 고맙슴니다.
늘 강건하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