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식장산을 다녀와서!
2014년엔 대전 충남회원님들이 주관했던 계족산(鷄足山)을 오르면서
물로괴여진 황토 길을 맨발로 밟으며 힐링하는 즐거움의 기회을 가졌고
그 해 가을엔 충북회원님들의 주관으로 상당산성 길을 걸으며 심미(審美)에
바탕을 둔 정서적 흥취에 빠지듯 진한 가을의 정취(情趣)를 음미(吟味)
하였고 2015년10월25일에도 양성산과 작두산을 함께 오르며 똑같은 계절
이었는데도 풍기는 정취가 다르게 느껴지는 힐링(Healing)을 맛보았는데
2016년6월19일 여름이 문턱에 선 듯한 유월에 대전 충 남북의 회원님들이
서울 회원님들과 합동으로 대전의 식장산을 함께 오르니 이젠 아름다운5060
대전 충청지역방에 지역회장님이 누구시냐 물으면 아! 그 분이시지요하고
대답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지방마다 원거리이다보니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텐데 세월 가기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자는 당위성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깊은 배려가 묻어나는 듯한 정성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앞으론 대전이나 청주에 가서 그리운 님들이 보고싶어
서울 나그네가 왔는데 적조함을 풀 수 있는 대포잔이나 기울이다가
헤어집시다하고 전화하면 나오실 수 있으실까????
연인(戀人)이란 말은 맘속에 품은 어떤이를 마음에 두고
애틋하게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사모(思慕)함을 말함이고
연애(戀愛)란 두 사람이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을 말함인데 요즘 내가 누구랑 연애한다는 말을 심심
찮게 듣게됩니다. 그런 말이 누구와 어떤 관계에서 연유
(緣由)한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인간적으로나 이성적
으로나 격(格)이 있는 마음으로 나를 좋아하는 여인이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어느 여인과 섬싱(something)이 있는 것 같은
뉘앙스(nuance)를 풍긴다는 미루어 짐작하여 확실하지 못한
성질의 추측성(推測性) 소문이 자칫 추문(醜聞)이 될 수도
있으니 가십(gossip)적인 말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식장산(食藏山) 598m 의 유래와 현황
대전광역시 동구 대성동에 있는 산.
내용
높이 598m. 이 지점은 옥천에서 대전평야로 넘어오는
곳으로 노령산맥의 지맥들이 연립하여 산악지대를
이루는 지역의 주요한 길목이다. 이 산마루는 백제멸망과
관계 깊은 곳으로 탄현(炭峴) 또는 숯고개·숯재라 불리었다.
즉 백제 때 성을 쌓고 군량(軍糧)을 많이 저장하여 신라를
방어하는 요새지였으며, 신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백제 의자왕 때의 충신 성충(成忠)은 백제의 국운이
위태로움을 간하다가 옥에 갇힌 몸이 되었다.
성충은 옥중에서 상서하기를 “앞으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니 만일 적병이 오거든 육로는 탄현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로는 기벌포(伎伐浦)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고 하였다. 그러나 의자왕은 이 말을 듣지 않고 황산벌과
백강에서 적병을 막았고 신라와 당나라 군사들은 탄현을
넘어 침공하여 결국 백제는 패망하였다.
식장산의 험난한 지형은 자연의 요새지로 백제 때뿐만
아니라 6·25 때에는 연합군과 괴뢰군의 격전지가 되었고
현재도 국방상의 요지이다.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양국의
길목으로 험난하지만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현재도
경부선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요지다.
이 구간은 경부선철도를 부설할 때 작업이 어려운
구간이었고 경부고속도로에서도 이 지역에
터널이 집중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한국지명총람(韓國地名總覽)』(한글학회, 1975)
『한밭승람』(변평섭, 호서문화사, 1972)
『한국사(韓國史) -고대편(古代篇)-』(진단학회, 을유문화사, 1957)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전(大田) 부르스1959년 발표
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안정애 노래
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들어 고요한 이밤
나만이 뿌리치며 울줄이야
아 ~ 아 ~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
기적소리 슬피우는 눈물의 풀랫트홈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말자 맹세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심정
아 ~ 아 ~ 구슬비에 젖어가는
목포행 완행열차
2016-06-20 작성자 청해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