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 수,금요일은 내가 집에 있어야하고 화,목,토요일은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날이기에 어젠 화요일이여서 인천광역시 남동구 소래포구 주변을 트레킹할 예정이었다가 오후엔 우천시라는 일기예보가 되어 있어서 비가와도 피할 수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소재한 유서(由緖) 깊은 봉은사 주변을 트레킹하려고 새벽부터 계획을 세우면서 자차로 갈까했지만 지하철 로선(路線)을 검색해보니 양주역에서 1호선 전철로 가다가 회기역서 중앙선으로 환숭 왕십리에 가서 다시 분당선으로 환승 강남구 선정릉역에서 9호선에 다시 환승 봉은사역에서 내리니 01:35분이 소요시간이었는데 정차 시간없이 정상적으로 가면 85분인데 청량리역에서 지체(遲滯)하던 시간이 길어서 도착시간이 늦었답니다. 조선국 건국시에 종교이념이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자기의 주의나 주장, 처지를 어떤 명목을 붙여 앞에 내세워 표방(標榜)했는데 려말선초(麗末鮮初)를 거치면서 고려말 학자이면서 고관(高官)이었던 정도전이 조선건국에 일정한 자격으로 주도적으로 자신이 하여야 할 맡은바의 역할(役割)을 진행하면서 고려말 부패한 불교와 정도를 어지럽히는 요사스러운 승려들의 일탈한 행위가 백성들의 원성을 불러일으키는 말기현상(末期現象)을 보이는 상태여서 조선건국의 이념에 부합(符合)하지 못하여 산으로 내몰렸다가 내세가 없는 유교가 세퇴하면서 세조를 비롯한 조선 후대의 제왕들이 불교의 사찰들을 재건하고 생명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석가나 승려가 열반계로부터 부활한다는 이른바 살아생전의 업보에 따라 윤회(輪廻)한다는 불교의 교리가 민중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고려 때의 불심(佛心)이 되살아나 오랜 불교의 맥(脈)을 이어주어 오늘 날 봉은사 주변은 자유 무역을 통한 업계의 이익 옹호와 공동체 회원국 무역업계의 환경 개선 및 발전을 목표로 1977년에 설립된 한국 무역협회가 유럽 무역업계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유럽 공동체의 자유 무역을 주창하며 무역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교환한다는 국영 기업인 KOTRA가 민간기업의 수출 진흥을 위하여 해외 시장 조사, 국내 산업과 상품의 해외 소개, 수출입 거래 업무 등을 담당하여 우리나라의 무역 진흥을 위한 일을 하는데 무역협회 관련기관들이 강남구 삼성동에 몰려있어서 대한민국의 경제중심지가 되어 작은 산을 포함한 터를 가진 봉은사는 자연재해와 전쟁피해를 입은 세상의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돕거나 구하여 주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도(濟度)하기 위한 불심(佛心)을 이루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봉은사경내를 돌고 스님들이나 불자들의 명상코스인 산길을 걸으면서 사찰(寺刹)의 웅장함과 땅에서 오래 묵어 높이 자란 나이가 많고 키가 큰 고목(古木)들이 숲을 이룬 자연속의 향기를 호흡하며 걷다가 산과 봉은사 경내를 나와서 코트라 빌딩들이 숲을 이룬듯한 그 앞의 대로에는 큰 지하 시설물을 건설하느라 대형 공사가 한창인 빌딩 앞의 인조 잔디 길을 걸으며 멋지게 꾸며놓은 조형물(造形物)들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다가 해질 무렵 집에 돌아오니 20:30분이었습니다...
봉은사 감로도[奉恩寺甘露圖]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감로도.
내용
1892년(고종 29년)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00㎝, 가로 316.5㎝, 서울특별시 봉은사 소장, 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세기 중엽 이후 경기 지역 감로도의 도상을 따르면서 그것을 응용하여 새로운 도상을 창출해 낸 작품이다. 동시대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가로가 유난히 긴 화면에 상·중·하단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비교적 대형 화면이라 그런지 장면 사이에 공간이 넉넉하여 정돈된 느낌을 준다. 상단은 중앙의 7여래가 유난히 크게 묘사되었다. 중앙의 합장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6여래는 다양한 수인을 취하고 있다. 7여래 모두 합장한 모습으로 그려지던 19세기 전형적인 감로도상과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좌우로는 구름을 타고 내영하는 아미타삼존과 지장삼존 및 인로왕보살이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었다. 7여래 아래로는 법신불·화신불·보신불의 이름을 적은 삼신불번(三身佛幡)이 바람에 휘날리듯 늘어져 있다.
화려한 공양물이 가득 차려진 제단 위에는 주상 전하와 왕비, 왕대비, 세자의 복을 비는 위패가 세워져 있다. 제단 오른쪽에는 천막 안에서 병풍을 치고 경전을 외우는 스님의 모습과 큰 북과 바라 등을 두드리고 승무(僧舞)를 추는 스님들의 모습이 넓은 화면에 여유롭게 표현되었다. 이들 옆으로는 커다란 공양물을 머리에 이거나 들고서 제단을 향해 나아가는 인물들과 상복을 입고 재를 지내는 인물들이 보인다. 제단 아래 중앙에는 마주 앉아 합장하고 있는 아귀가 표현되었다. 아귀의 좌우로는 수목과 나무에 의해 분리된 화면 속에 하단의 장면들이 표현되었다. 전쟁 장면, 불타는 지옥성 안에 죄인들이 갇혀 있고 밖에서 시왕이 망자를 심판하는 모습, 밭 가는 농부의 모습, 집이 무너져 깔려 죽는 장면, 북을 두드리며 춤추는 남녀의 모습, 물구나무서서 줄타기하는 광대, 무당이 굿하는 장면 등 세속과 지옥의 장면들이 다양하게 전개되어 있다. 하지만 황토색의 바탕에 여러 장면을 공간감 있게 배치하여 답답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황토색의 바탕에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로 하여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도 청색과 흰색 등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여 밝은 색감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조선말기 문신이자 재력가인 민두호(閔斗鎬)와 문씨(文氏) 부부의 시주로 한봉 창엽(漢峰 瑲曄), 혜산 축연(蕙山 竺衍) 등이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서울의 사찰불화 Ⅱ』(서울역사박물관, 2008)
『감로탱(甘露幀)』(강우방·김승희, 도서출판 예경, 1995)
「봉은사(奉恩寺) 불화(佛畵)의 도상 특징」(김정희, 『봉은사-奉恩寺의 寺院構造와 文化』, (사)한국미술사연구소, 2008)
「서울 봉은사(奉恩寺) 불화고(佛畵考)」(김정희, 『강좌미술사』28,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7)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6-21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