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채소 중에 억울하게(?) 본래 이름을 빼앗기고 새로 지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있다. 돌림자로 ‘깨’가 들어가는 들깨와 참깨가 있다.
그러나 식물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둘 중에 누가 먼저 우리나라에 터를 잡고 살았을까 ?
들깨는 꿀풀과 식물로 원산지가 한국, 중국, 인도의 동부아시아 지역이다.
삼한시대 이전부터 재배하였다고는 하지만 산과 들에 야생상태로 있던 식물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열매가 둥글다는 의미로 ‘두리깨’라고 부르다가 들깨로 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한반도에 늦게 전래된 참깨로 인하여 들에서 자라는 ‘깨’라는 의미의 들(野)자가 들어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참깨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참깨과 식물로 고농서에 중국에서 불리는 이름과 동일하게 ‘호마’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전래되어 들깨 보다는 조금 늦게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들깨는 백소라 하며 자소와 같은 종류이면서 다른 종이다. 민간에서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였고 세종때 발간된 《농사직설》에는 ‘길가나 밭둑에 심는 것이 좋고 포기 사이는 한 자 간격으로 하고 밀식을 하면 가지가 없어 수량이 적다.’라고 했는데 600여년이 지난 요즈음에 우리 농촌에서 심고 가꾸는 방법과 너무 유사하다.
한국인의 ‘쌈’ 사랑은 지독할 정도로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음식문화이다. 옛날부터 채집하여 이용하였던 산채는 물론 도입된 서양채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채소를 쌈으로 해결할 수 있다.
산마늘, 취나물은 물론 상추, 호박잎, 배추, 쑥갓, 콩잎 등 수없이 많은 채소를 이용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상추와 쌍벽을 이루는 잎들깨가 아닐까 싶다. 서양 사람들이 바질을 좋아한다면 한국인은 단연 잎들깨이다.
향이 워낙 강하여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 사람들만 먹고 있다. 외국으로 수출도 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차조기가 식용으로 많이 재배되고 있다.
잎의 색은 녹색종과 자색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녹색종을 재배하고 잎의 뒷면이 옅은 자색을 띠는 품종도 있다.
또한 들깨와 식물학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는 차조기(자소)는 약용과 색소용 식물로 오래전부터 재배하여 왔으며 잎은 진한 자주색, 녹색, 보라색 등 다양하며 향기도 들깨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추정해 보면 시중에 유통되어 판매되는 잎들깨는 연간 31천톤에 2,300억원 이상이다.
잎들깨 한 장의 무게가 약 2g 정도 되니 155억장이 팔리는 것이고 한 줄로 연결하면 지구를 거의 네 바퀴 돌 수 있는 길이로 자가 생산 소비량까지 포함하면 어마어마한 양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들깨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식물이다.
잎은 채소로 열매는 기름뿐 아니라 기름을 짜고 난 찌꺼기는 가축 사료로 마른 줄기는 땔감으로 쓸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독특한 향은 곤충이나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치므로 농약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논밭두렁에 심어 해충을 쫓고 해로운 짐승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경비병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멧돼지나 고라니도 먹지 않고 유일하게 기피하는 작물이다.
늦가을 ‘톡톡’ 소리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내면서 아궁이에서 타오르던 깻대를 생각하면 아련한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들깨 모는 석 달 열흘 가뭄에도 침 세 번만 뱉고 심어도 산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가뭄에 강한 작물로 자연재해로 인해 다른 작물의 재배가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쓰임새가 큰 작물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없고 가슴에 있는 담과 기운을 내려가게 한다고 하였고 《본초강목》에서는 위를 튼튼하게 해준다고 하였다.《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황해도에서 약재로 심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들깨는 비타민과 철분의 함량도 높지만 들깨 기름에는 DHA, EPA와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이 많아 성인병 예방과 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최근에는 페닐라알데하이드, 리모넨, 로즈마린산과 같은 식물성 정유성분의 특유한 향은 일반 허브식물 보다 많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치매예방과 피부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코로나 시대 배달음식의 이용이 늘면서 다이어트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살찔 걱정도 없고 영양도 많은 깻잎김치, 쌈, 장아찌, 샐러드로 더운 여름을 날려 보내고 시원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