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마지막 길,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배웅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최근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장례식이 엄수됐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묘지로 가는 운구 행렬의 선두에 섰다. 마침 고인도 199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임종 직전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이번 장례식의 메시지는 ‘평화’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고르바초프 장례식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모스크바 도심의 ‘하우스 오브 유니언’ 필라홀에서 거행됐다.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수천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고인의 외동딸인 이리나와 두 손녀가 곁을 지켰다.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이 엄수된 가운데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독립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의 영정을 든 채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예상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푸틴 정부는 고인이 전 세계에서 누린 엄청난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장례식 불참에 대해 크레믈궁은 “일정이 꽉 차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고만 했다. 이와 관련해 BBC는 “푸틴은 소련을 해체하기로 한 고인의 결정을 ‘20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불렀다”며 “두 사람은 2006년 마지막으로 회동한 뒤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고르바초프는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성명에서 “즉각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평화협상을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러시아 정부의 냉랭한 태도와 달리 모스크바 시민들의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장례식에 참가한 한 시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고르바초프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고 우리가 자유를 꿈꿀 수 있도록 도왔다”며 “우리 사회가 부디 자유에 작별을 고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민은 “고르바초프가 우리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고 탄식했다. 발인을 마치고 노보데비치 묘지로 가는 운구 행렬은 러시아 독립언론인 무라토프가 이끌었다. 생전에 고인과 절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진 무라토프는 마침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고인은 자신보다 31년 늦게 노벨평화상을 받은 후배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길을 떠난 셈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이 엄수된 가운데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독립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선두에 선 운구 행렬이 노보데비치 묘지에 들어서고 있다. 모스크바=타스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노벨위원회는 무라토프를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푸틴 정부의 언론통제에 맞서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싸웠다”고 이유를 들었다. 전쟁 발발 후 러시아의 언론 환경은 그때보다 더 악화했지만 무라토프는 여전히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푸틴 정권에 맞서고 있다. 지난 6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경매에 자신이 받은 노벨평화상 메달을 선뜻 내놓은 것이다. 메달은 무려 1억350만달러(약 1336억원)에 낙찰됐고, 이 돈은 전쟁으로 집을 잃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주거지 마련 등에 쓰인다. 러시아가 배출한 두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고인, 그리고 ‘상주’의 입장에서 전 세계에 전한 메시지는 다름아닌 ‘평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