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남은 먼 여정에 대한 부담감에 6시의 기상은 벌써 습관이 되고 말았다.
지난 저녁에 술 안주로 먹다 남은 삼겹살 볶음과 백반으로 아침을 채우고 어선에 묶어 놓은 요트를 향했다. 우선은 엔진 오일 보충을 위해 오일을 구해야 했다. 마침 출항 준비를 하고 있는 이웃 어선을 찾아가 오일을 구할 수 있었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에 감사하며 오일을 보충하고 우리도 가벼운 마음으로 출항 준비를 했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낀체 머지 않아 비라도 내릴 징조였다. 바람은 비교적 약한 편이었고 파도도 그리 크게 일고 있지 않아 항해에 무리 없어 보였다. 오늘의 일정은 만리포 아래 모항으로 잡았다. 한편으론 밤새 항해하여 직접 탄도로 직행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결국 밤 늦게 탄도에 도착 해본들 그 곳에서 앵커 준비등 할 일이 만만치 않아 모항을 오늘의 목적지로 잡게 된 것이었다.
모항까지는 10시간이면 닿을 정도로 오늘의 항해 스케줄은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더욱이 항해 방향도 북동쪽이어서 북서풍을 받고 있는 터에 부분적으로 쎄일링도 가능 할 듯 싶었다. 어청도를 떠난 후 3시간이 지나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 하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겨울비였다.
목포항을 출발 한 이후부터 표선장의 표정은 항상 밝았다. 그는 우리를 만난 이후 요트를 타는 기분이 천국과 같다고 했다. 제주에서 목포에 오는 동안 겪은 고생에 비하면 우리와 함께한 항해는 너무 편안하다며 하는 이야기였다. 기실 몇 일을 함께 항해하는 동안 표선장이 궂은 일은 다 맡아 하는 편이었지만 그는 이를 당연시 하며 우리에 대한 배려를 항상 잊지 않은 터였다.
Orion M41을 5년간 운영 해 오면서 제주와 부산간을 10번 정도 오갔을 정도로 그는 혼자 배를 타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비록 Orion이 Single hand yacht로 꾸며 있다 하지만 33피트나 되는 요트를, 특히 풍랑이 심한 경우에 혼자 운영 한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의 요트 경력은 십여년에 이르기도 하지만 비교적 정도를 따라 쌓아 온 편인 것 같았다. 능숙한 그의 손 놀림과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융통성 그리고 바다에 대한 다양한 상식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요트맨 쉽(Yachtman-ship)이라는 것이 있을게다.
대양을 따라 세계를 돌며 항해하는 요트맨들, 그들이 불문율처럼 지켜 오는 그들만의 예의와 질서, 초보자인 나는 이에 대해 전혀 무뇌한이지만 우선 그것부터 익혀나가는 것이 이제야 요트 문화를 뿌리 내려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하겠다는 나의 생각에 표선장은 뜻을 같이 했다.
오후가 되면서 점차 비가 멎어 가고 있었다. 바람도 쎄일링하기에 괜찮은 방향이어서 우리는 돛을 펴기로 했다. 돛을 펴면서 4놋트 정도의 속도가 6놋트에 이르고 때로는 7놋트를 넘으면서 오리온은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짓푸른 색이었다. 우리는 이름 모를 섬을 끼고 돌며 짓푸른 물에 하얀 거품을 이르키면서 마음껏 질주 하였다. 그야 말로 오늘의 우리는 바다의 독불 장군이었다.
그 덕에 우리는 속도로서 시간을 초월하여 예상보다 한 시간은 빠르게 목적지인 모항에 도착 하였다.
모항은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의 최대 피해지인 곳이었다. 휘황 찬란한 네온 싸인의 모텔이 몇 체나 있고 회집등 줄지어 많은 가계들이 있었지만 사람이 없어 썰렁 해 보였다.
우리가 찾은 발리라는 모텔 역시 손님이라고는 우리 뿐인 것 같았다. 호텔보다도 더 고급스러운 욕실의 물안마 욕조에 따뜻한 물을 흠씬 받아 온 몸을 담그고 모처럼 지친 몸을 달래 주었다.
나른 했다.
내일이면 목적지인 탄도항에 닿을 기대에 마음은 차츰 설래고 있었다.
-계속-
첫댓글 생생한 세일링 체험 제게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몇 주째 탄도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리온호는 이미 탄도에 입항하여 정박하고 있겠네요. 다음 토요일이나 나갈 계획인데... 그날 뵐수 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