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1일 나는 모교인 수창국민학교를 20여년만에 다시 찾았다
그날은 서중일고 총동창회 주최 운동회가 열린 날이었다
나는 모처럼 광주 내려가는 기회에 무등산을 오르고자 하루전에 혼자서 내려갔었는데
산에서 내려오다보니 밤늦은 시간이 되어 피로도 풀겸 시내 중심부에 있는 24시간 사우나에서 쉬었다
이튿날 아침 답답한 휴게실에서 있기도 뭣하여 이른 시각에 사우나를 나섰다
오전10부터 시작하는 운동회에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아침을 먹고 모교와 가깝게 위치한 수창국민학교를 찾은 것이다
수창국민학교 교사는 일부 증축된 건물이 있었지만 검붉은 벽돌 2층 교사 건물이 옛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서있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복도를 지나가던 교무실이 있는 정중앙 출입문 입구 벽에는 모교 교사 건물이 도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는 인증 동판이 붙혀 있었다
교사 전면의 한쪽편에는 등나무가 옛모습 그대로 작은 정자 지붕을 만들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길게 휘어진 등나무를 어루 만지니 조막손으로 만졌던 옛날의 감촉이 선연하여"야!몇십년만이냐?너도 많이 늙었구나"라는 인사말이 등나무에 그대로 전달되어 등나무도 반가워 하는 것 같았다
"ㄱ"자형 교사의 꺾인 안쪽편 터에 있던 작은 연못과 그 연못 가운데 서 있었던 버드나무도 그대로였다
물고기가 헤엄쳐 놀고 연꽃잎으로 덮혀있던 연못은 지금도 물이 있고 연꽃도 있었으나 이제는 지하수가 고갈되었는 지 작은 웅덩이로 줄어 버드나무의 화분처럼 되어 서로 일심동체로 긴 세월을 함께 하고 있었다
정장한 귀부인처럼 아름답고 풍성하게 가늘고 푸르른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던 수양버들나무는 할머니가 되어 밑둥만 굵은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소방서에서 울려주던 정오 사이렌 소리에 따라 오전반 오후반 아이들이 등하교로 떠들석했던 운동장은 비만 오면 배수가 안되어 장화신고 물장구치며 걷던 그때의 흙이 아니라 그동안 오랜 세월 속에 황토흙이 많이 쓸려간 탓인 지 모래흙의 운동장으로 변해 있었다
학교의 자랑이었던 둘이서 손을 이어 잡아야 안을수 있었던 둥근 대리석 원주의 대강당도 옛모습 그대로였다
창문으로 내부를 들여다 보니 발코니식으로 되어있던 2층은 개조되었으나 아래층은 그대로 였다
50여년전 저기 모여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감니다 "라고 노래를 부르면 뒷편에 앉았던 후배들이"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라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던 졸업식 날이 떠올려졌다
박상배군이 영광의 도지사 상을 연단에 올라 받을 때 모두 박수를 쳤던 것도 떠올랐다
아침 이른 시간에 코흘리던 시절의 그때를 추억하며 교사를 둘러보니 지난 그 시절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없었다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고 또 지금도 자주 떠올리는 그 때의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하나씩 모아보려 한다
첫댓글 아 옛날이여! 이선희의 노래가 생각되며, 나도 사범부속국민학교시절이 떠올려집니다.
상배가 도지사 상을 탄 장면을 읽고 나를 떠올려 봤습니다. 나는 지금은 광주로 편입되었지만 당시는 광산구 비아면에 위치한 비아 국민학교에서 도지사 상과 한글사전 상품을 졸업식 시상식때 받았답니다. 아스라한 추억입니다.신구친구는 무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