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에서 철쭉의 향연을 느낄 사람은 황매산으로 가라
1. 일자 : 2009. 5. 2 (토)
2.
장소 : 황매산 (1108m)
3.
행로 및 시간
[장백리 들머리(12:00, 고도 450m) ->
(포장도로 10분) -> (긴 오르막) -> 등선 진입(12:53, 850m, 철쭉 군락지 시작) -> 960봉(13:00, 너백이 쉼터, 황매산 1.6km, 장백마을 2.4km) -> 상경마을 갈림길(13:13)
-> (억새밭, 중식) -> 황매산(13:55,
1108m) -> (암봉 내리막) -> 내리막 계단(14:08)
-> 주몽 세트장(14:32) -> 초원지대 옛집(14:41) -> 초소 전망대(14:50,
모산재 2.3km, 황매산 1.8km) -> 깃대
제단(15:02)
-> (베틀봉 우회, 946m) -> 모산재(15:35, 767m) -> (황포돛대바위
전경) -> 황매산성터(15:42) -> 바위슬랩(15:50)
-> 순결바위(16:01) -> (밧줄 내리막 험로) -> 국사당(16:24)
-> 둔내리 주차장(16:45)]
4.
동행 : 홀로, 숲향산악회
< 황매산 산행을 준비하여 >
몇 년 전 관악산, 수리산, 백운산
등 근교산만을 다닐 때, 원주에 사는 친구 집에 갔더니 그 몇 주 전에 황매산을 다녀왔는데 무척 좋았다는
말을 듣고 그 친구가 산에 대해서만큼은 나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때 황매산이란 단어도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었는데, 금주 산행지를 물색하던 중 숲향에서 황매산을 간다하여 별 고민없이 신청해
버렸다. 집에 와 자료를 뒤적여 보니 철쭉명산으로 국내 최고라 한다.
기대하지 않게 횡재를 한 기분이다. ‘黃梅’ 노란색
매화와 인연이 있는 이름일 진데 ‘철쭉이라’,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하다. 조심스럽게 올 봄꽃 산행에 대한 마지막 기대가 생긴다.
어제도 불곡산을 다녀와 몸은 조금 찌뿌둥했지만, 다가올 지리산 1박 2일 종주산행을 대비한다는 생각을 하니 연달은 산행에도 목표의식이
생겨 그런지 전혀 힘든지를 모르겠다. 토요일 아침 양재에서 버스에 오른다. 70대의 할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아 계신다. 조신하게 가야겠다.
< 희망사항 >
1108m 고지 위에 펼쳐진 초원과 초원을 에두르고 있는 암봉들이 만들어내는 모습이
마치 매화 꽃잎 같은 산, 황매산으로 향하며 고원에 핀 흐드러진 철쭉동산을 그려본다. 대학 시절 이맘즈음 백양로에 핀 붉고 분홍빛의 그 꽃의 추억이 봄바람에 실려 다시 다가 온다. 20살 시절의 5월, 그
풋풋하고 아련한 기억들이 시각과 후각을 타고 전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저며온다.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라는 단어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어인 연유인지 모르겠다. 내
청춘의 봄날 같은 흥분이 오늘 황매산에서도 살아나기를 기대하며 산에 올라 붙는다.
< 장백리에서 황매산 정상 >
가나관광 버스는 이번에도 새 버스이다. 양재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오르니 연휴라 그런지 길이 꽉 막혔다. 신갈에서 동행을 몇 사람 더 태우고 본격적으로 달린다. 산청까지 꼬막 4시간이 걸렸는데,
황매산 부근에 가서 기사가 길을 헤매는 바람에 12시가 다 되어 들머리인 장백리에 도착했다.
강대장을 대신 온 젊은 임대장도 길을 모르고 버스를 모는 기사도 직업정신이
부족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은 항상 기분이 언잖다.
오후에 비가 온다하여 흐린 날씨를 기대했는데 하늘은 맑다. 포장도로를 따라 10여 분을 걸으니 작은 입간판과 함께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진다. 고도가 450m, 꽤 가파른 오르막을 50여 분 오른 후에야 하늘이 열렸다.
12시 50분, 고도 850m에 이르러 철쭉꽃이
많아 지더니 곧 이정표가 나온다. 960봉, 너백이 쉼터다. 여기서부터 길은 본격적인 평지능선으로 변한다. 고도 400m를 50분 만에 치고 올랐더니 몸이 지친다. 며칠 전 읽은 신문에서, 산행 중 근육경련이 오는 것은 마그네슘
부족이 그 원인이고 바나나가 마그네슘이 풍부한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베낭에 넣어와서 오르며 한
입 베어 물었더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는만큼 마음도 편해지나
보다.
960봉을 지나며 길은 거짓말처럼 평평하게 변한다. 지나온 길을 살피니 길
너머 산들의 파노라마가 이어지고 그 밑으로 아스라이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산청 이 깊은 골짜기에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나 보다. 억새가 흐드러진 평지길이 이어지더니 상중마을 갈림길이 나온다. 시간은 1시를 넘어서고 있어 배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들린다. 억새숲을
뚫고 길을 내어 만든 좁은 평지 공간에 도시락을 푼다. 언제나 똑 같은 김밥, 그래도 맛나다.
식사를 겸한 10분여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 억새밭을 헤치고 걷는다. 길은 억새에서 곧 철쭉 꽃밭으로 변한다. 아직 본격적인 철쭉평전이
나온 것도 아닌데 벌써 내 평생 최고의 흐드러진 철쭉을 경험한다.
< 960봉 전에 돌아본 산청의 산하 /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서 본 황매산 >
억새와 철쭉이 공존하던 평지길의
끝 지점에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며 황매산 정상이 지척인냥 느껴진다. 고달퍼하는 다리를 위로하며 10분 여 힘을 내니 저 앞으로 바위로 둘려싸인 황매산 정상의 모습이 보인다.
인파로 정상석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정상을 바라보며 한 장, 정상 밑에서 바위를 배경으로 한 장, 두 장의 사진으로 황매산 정상에 대한 추억을 대신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 황매산 정상에서 >
<
황매산 정상에서 모산재 >
정상에서의 하산 길은, 짧은 바위 길을 지나니 길게 계단 길이 이어진, 눈 맛이 그야말로 시원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산 아래는 너른 평원이 이어지고 울긋불긋 꽃피는 낙원이 펼쳐진다. 무릉도원, 상그릴라 라는 단어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노랗게 새 단장을 한 나무계단
길을 한참을 내려서자 초원지대가 나온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철쭉평전을 바라보며 한없는
기쁨을 만끽한다.
< 정상에서 나무계단 길을 거쳐 / 돌아본 황매산 정상부 >
너른 수준을 넘어선 끝없이 펼처진 평원에 감동하고, 그 속을 가득메운
철쭉의 향연에 다시 감격한다. 그 너른 초원의 광활함은 지난 가을 황홀하게 경험한 민둥산 억새밭을 넘어선다. 자연에 광활한 조화에 감동, 감격의 연속이다. 원래 목장터였다는 이곳 초원에 어찌 이리도 많은 철쭉이 피어났는지는 몰라도,
군락이 주는 풍성함이 한없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계단을 다 내려서자 초원의 평탄지대가 나타나며 우측으로는 드라마‘주몽’ 촬영에 사용했던 성곽이 보이고, 머지 않은 곳 좌측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특이한 구조물과 허름한 집이 보인다.
오래 전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사용한 거처로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영화 ‘단적비연수’에 사용된 세트장의 일부라 한다. 새로 생긴 구조물이지만 주변과 잘
어울려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인냥 느껴졌다. 인공이 자연과 어울어진 멋진 풍경이다. 이곳 일대는 ‘영화주제공원’으로
가꾸어져 있고 주변에 커다란 주차장도 있어 봄 나들이 온 행락객들로 붐볐다. 때마침 인근에 산나물 축제가
벌어져서 흥겨운 소리들이 멀리서 들려온다. 이곳은 나이 든 어르신들이 차를 이용하여 와서 철쭉을 감상하기에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나도 가족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아 보아야겠다.
<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초원의 인공 구조물들 >
‘산은 인간의 오랜 흔적이 아니라 산마루의 태평스러움과 5월에 피어나는 꽃의 축제, 그 자연의 경쾌함으로 바라 보아야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사계절의 주기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변하는
자연으로 인해 산은 늘 새롭다. 산으로 이어진 이곳에 산과 산 사이 경계가 덧없는 것처럼 산자락의 정서는
능선을 따라 흐른다. 그 정서의 중앙에 높지만 포근한 산, 황매산이
있었다.
< 초원에서 황매산을 바라보며 >
온 산을 뒤덮고 있는 철쭉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를 누른다. 집사람 생각도
난다. 함께 왔으면 참 좋았을 것을. 한동안 시간이 멈추어진듯
느긋하게 노닐다가 주변을 보니 정자가 있고 이정표가 보인다. 산불감시초소 부근이다. 정상에서 1.8km, 가야할 모산재까지는 2.3km가 남았다 한다. 이곳에서 길은 감암산/부암산 방향과 모산재 방향으로 갈린다. 좌측 길로 들어선다. 깃발이 나붓기는 제단을 지나니 여전히 철쭉은 흐드러져 있지만 인적은 급격히 줄어 든다. 다시 등산 길로 접어든다.
< 황매산 철쭉을 배경으로 >
한없이 평한 ‘꽃길’을 천천히 걷는다. 우측으로
베틀봉이 보이나 가야할 방향과는 어긋나 있어 우회한다. 3시 35분에
모산재에 도착했다. 표지 비석이 2개나 있다. 양쪽 모두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오늘은 볼 것이 많아
사진도 자주 찍는다.
모산재에서 가야 할 길을 가름하는데 우측으로 바위와 저수지가 어울어진 멋진 관경이 눈에 띤다. 황포돛대바위와 대기저수지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오랫동안 눈에 담아 둔다.
< 모산재에서 / 황포돛대바위 주변 풍경 >
<
모산재에서 둔내리 >
비가 내린다. 지난해 하도
자주 틀리던 일기예보인지라 오늘도 맞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기대가 어긋났다. 서둘러 비옷을 챙겨 입는다. 모산재를 지나며 길은 내리막으로 변한다. 임란 때 의병의 전설이 서러있는 황매산성터를 지나니 길은 바위슬랩지역으로 바뀐다. 비가 와 길이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는데 비 맞은 바위의 풍경이
근사하다.
< 대기저수지 풍경 / 비에 젖은 황매산 바위 풍경 >
저멀리 비에 젓은 합천의 산야가 한폭의 산수화다. 산이 있어 멋진 풍경을 선사해 주어 고맙고 비가 내려주어 더욱 감사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의 삶도 근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 황매산 바위에서 비를 맞으며 / 순결바위 모습
>
4시가 지나 순결바위 부근을 지난다. 두개의
바위의 갈라진 틈에서 이름을 연상했나 보다. 가까이 가 보니 갈라진 곳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개다. 희안한 모습이다. 순결바위에서부터 하산길은 무척 가파르고 위험한
길이다. 곳곳에 밧줄과 계단이 이어진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워 더욱 조심성을 요했다. 곳곳에 정체가 빗어져 으야해 했는데 나중에 보니 너댓명의 꼬마들이 주범이다. 길도 막혀 짜증인데 아이들의 짜증소리가 더욱 귀에 거슬린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잠시나마 길을 피해 주었으면 했는데, 무심한 그 부모들이 원망스럽다.
하산길이 생각보다 길어 진다. 국사당을 지나 갈림길에 도달했는데 가야할
방향이 확실치 않다. 다른 산악회가 놓아둔 종이 표지는 많지만 숲향의 것은 없다. 일행들과 망설이는데 임대장이 내려 온다. 이정표용 종이가 날려가
버린 것 같다 한다. 앞선 대장이 분명 종이를 놓아두지 않았을 것인데도 말이다. 빗발이 거세진다. 바람도 분다.
20 여분을 더 걸어 주차장에 도착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
에필로그
>
주차장 한켠의 난점에서 라면으로 속을 데운다. 바람이 들이치는 천막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소박한 음식은 맛났다. 돌아오는 버스는 왜 인지는 몰라도 1시간을 돌아 올 때 들렸던 산청 톨게이트를 거쳐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안내산학회를 조그만 정성이 부족하다.
봄비가 내리는 고속도로에서 오늘 황매산 산행을 되돌아 본다. 초반 1시간 여의 긴 오르막, 이어서 펼쳐지는 고원의 철쭉의 향연 그리고
전혀 다른 이미지의 암름 길, 하루에 모두 경험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많은 것들을 동시에 경험한 날이었다. 산이 있고 꽃이 피어 주어 고맙고 비가 내려 더욱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