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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디자인 일을 하던 하현웅씨는 2011년 겨울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정착했다. 하씨는 매주 토요일에는 플리마켓인 '벨롱장'도 열고 있다. 표성준기자
'꿈꾸는 물고기' 허현웅씨는 제주에 살면서 외모를 바꾸고 취미는 버렸다. 짧고 단정했던 머리를 기르고, 수염은 깎지 않고 놔둔다.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누비던 취미도 더 이상 즐기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사진 찍는 순간이 행복했지만 이곳에선 굳이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지요. 서울에선 남의 시선 속에서 살았지만 제주에선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됐지요." 바꾸고 버린 것이 아니라 서울 삶을 버리고 제주 삶을 택한 뒤 자연스레 바뀌고 얻은 것이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서울에서 디자인일을 하던 허씨는 2011년 겨울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정착했다. 함께 제주에 정착한 지인들의 도움으로 공사를 마무리한 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전기공사만 업체에 맡겼다.
날로 치솟는 집세 때문에 2013년에는 종달리의 옛 양어장 건물을 매입한 뒤 다시 6개월 간 공사를 거쳐 지난해 8월 새로운 게스트하우스 '꿈꾸는 물고기'를 완공했다. 게스트하우스는 2인실 5개와 1인실 2개로 규모가 비교적 작다. 서울에서 맞벌이할 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생계 걱정은 없다. "벌이가 적지만 소비가 적으니 생활은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제주의 삶은 서울처럼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잖아요."
제주생활 초기에 월간지 편집 디자이너로 서울에서 근무하던 아내도 이 과정에서 제주살이에 합류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에 맛을 들인 허씨와 아내는 2세에 대한 생각도 갖게 됐다.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과 학원으로 끌려다니는 조카를 봐서인지 서울에 살 때만 해도 아이 낳을 생각이 없었지요. 하지만 제주도에 살아보니 초등학교 때까지는 맘대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어서 키울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부부는 지금 생후 4개월된 아이를 기르고 있다.
허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주민들과 함께 지난 2013년 2월부터 세화포구에서 매주 토요일(오일장날 제외)에 일종의 플리마켓인 '벨롱장'도 열고 있다. 7개 팀으로 시작한 벨롱장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현재 135개 팀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역주민들도 동참해 지역 특산품을 선보이고 있다. 어떤 관광객들은 벨롱장에 맞춰 관광일정을 짤 정도다. 이주민들의 욕구를 해결하고 작품을 선보이기 위한 자리가 이주민, 지역주민, 관광객이 관계를 맺는 축제의 현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