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1821~ 1846)
탄생>
한국천주교회는 이벽 세례자 요한의 권고로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이승훈 세례자 요한을 탄생시키며 탄생하였다. 이 땅의 최초 사제는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시다. 그는 1794년 12월23일 조선에 입국하여 6년의 사목 후 1801년 신유박해로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로 순교하셨다.
그로부터 45년 만에 한국인 첫 사제가 탄생하였다.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이다. 그는 1821년 충남 당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술라 사이에서 탄생하였다. 조선인 출신 첫 사제이며, 최초의 서양 유학자로 한글, 한문, 라틴어, 프랑스어 네 개의 언어에 능통하였다.
1846년 순교했다.
유학>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다. 열다섯 어린 세 소년은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요동을 지나, 무려 구천리 길을 걸어 마카오에 이르렀다. 낯선 음식과 일상생활과 낯선 언어인 라틴어와 프랑스어와 신학과 철학을 기초부터 익혀야 했다. 1837년 함께 떠난 동무 최방제는 열여섯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대건은 마카오에 민란이 일자 필리핀으로 피난을 가야 했고, 병약한 몸으로 온갖 질병과 싸워야 했다. 1839년 조국에서는 기해박해가 터져 아버지와 스승과 주교가 순교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귀국>
1845년 김대건과 최양업은 중국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같은 해인 1845년 귀국선 라파엘 호를 타고 오던 중 서해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가까스로 제주도에 표류 끝에 강경에 도착하여 비밀리에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순교>
1846년 그분은 뱃길로 선교사들이 들어올 입국 길을 뚫으려 지도를 그리고 바닷길을 살피다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고. 같은 해 서울 한강 변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되었다.
사제로서 사목은 고작 일 년이었다. 하느님은 십 년을 쌓아 일 년을 쓰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든다. 하느님께서는 그 시대 그토록 필요했던 분을 왜 그토록 준비되고 아까운 분을 그렇게 일찍 데려가셨을까. 십 년을 공들여 길러낸 사제를 겨우 일 년 쓰시다니, 이보다 비효율적이고 반복음적인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정말 그럴까?
순교 전 10년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수난 전 고난과 풍요의 그 십 년이 있었기에 장렬한 순교가 가능할 수 있었다. 걸음마다, 사제들과 신앙의 만남마다. 공부로, 피난마다, 죽을 고비마다, 그분의 영혼에는 하느님과 조국에 대한 복음의 열정이 차곡차곡 쌓였다.
요즘 스물다섯은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든 나이다. 그러나 1946년도 스물다섯의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은 얼마나 확고하고 위대한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남긴 마지막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때와 지금의 존재, 시간, 환경에 대해 반성하고 통찰하고 회개할 일이다.)
유훈遺訓>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다.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스물한 번째 편지,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유언의 글은 다음과 같다(1846년 8월 말)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라고 기록하였다.
신부님은 배움과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일치시키며 큰 사랑과 믿음을 지켜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도 그렇게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17-22)하고 말씀하셨다.
짧은 세월 그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목자로 위대하고 찬란한 신앙과 믿음을 완성하셨다.
*2016년 7월 5일 김대건 사제 순교 기념일에
**덧붙임:전삼용 신부님의 묵상글 일부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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