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안개가 내려앉은 신선한 어휘로 써내려간 수채화
수필가 이숙진
그의 글을 보면 새벽안개가 살포시 풀잎에 내려앉아 신선한 어휘가 가슴 한 쪽으로 부터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도 은은한 향이 묻어있다. 그는 지난 6월 29일, 그동안 크고, 작은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수필가로, 칼럼니스트로 차고 넘치는 글을 정리하기 위해 터닝포인트(전환점)를 찍었다. 등단한지 근 10년간의 작품에 대한 치열함과 싸우면서 쌓아올린 창작의 궤적을 ‘가난한 날의 초상’에 담아내었다. 그의 수필을 해설했던 김광한 문학평론가는 “고급스런 어휘 속에 담겨진 삶의 진솔함이 그대로 담겨있다”고 말했다. 또한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어휘로 새로운 수필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했다. 그의 수필을 보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담하면서도 부드럽다. 그러면서도 삶을 진지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또한, 문맥에 적당한 긴장감까지 더해져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의 그러한 글은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숙진 수필가. 그의 글을 들여다보면 삶이란 진지하면서도 결코 가벼울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사어(死語)에 생기를 불어넣다
그는 남들과 달리 유년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서울에 유학하던 사촌 오라버니는 ‘월간 학원’과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 같은 호기심이 가득한 소녀의 눈높이에 맞추어 책을 보내주었고, 이웃집 아재는 ‘죄와 벌’, ‘데카메론’ 같은 책을 이웃 동네에 까지 가서 문학전집을 빌려다주곤 했다. 그는 그때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더 일찍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삶의 향방을 바꾸어놓았다. 1976년, 그는 지금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주례선생님이었던 故 박목월 선생님과의 기이한 인연도 우연이 아닌 듯싶었다고 한다. 그때의 감회를 잊을 수 없어 수필로 남겼는데, 그것이 ‘가슴속에 숨어 든 밀알 하나’였다. 이 수필은 각종 언론에 노출되면서 이숙진 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글을 보면 참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낯선 말들이 참 많다. 그 낯선 말은 백과사전에는 등재되었지만 현재는 쓰고 있지 않는 말들이다. 그는 그렇게 사어(死語)를 찾아내고, 발굴해낸다. 또한 그런 단어들에 생기를 불어넣으면서 자신의 수필에 걸맞은 언어로 요리해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요즘 작가들은 너무 공부를 안 하는 거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언어는 우리의 얼이요, 혼입니다. 그 나라의 정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지요. 우리말에 대한 애착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공부를 안 한다는 증거이지요.”라며, 현재 우리나라의 작가가 반성해야할 부분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렇게 언어의 영역을 넓히고, 부지런할 정도로 왕성한 창작열을 보이며, 작품을 쏟아낸다. 특히 그에게 2007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2007년은 헤르만헤세가 탄생한 지 꼭 130년 되던 해였다. 그해 그는 그동안의 꾸준한 노력과 끊임없는 작품 창작이 인정되어 ‘헤르만헤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심사위원 구인환 교수는 “이숙진 작가의 장점이라면 꾸준한 독서와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입체감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라 하겠다”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진솔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함
그는 삶 자체가 참으로 진솔하다. 거기에 겸손함까지 더해져서 문학인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수필이 자신을 정리하고, 내면을 가꾸는 문학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당당히 삶의 주체가 되어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는 작가이다. 처음엔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리 오래지 않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남편은 수필을 줄줄 외울 정도로 열성팬이 되었고, ‘가난한 날의 초상’이라는 에세이집 표지 그림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며느리의 작품이고, 둘째 아들은 어머니의 수필집을 발간하도록 적극 지원해주었다.
그래서 “수필을 더 잘 쓰겠다는 욕심을 가지게 한 것도 가족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햇살 한 줌에도 감사할 줄 알고, 따뜻함이 담긴 차 한 잔에도 감사해할 줄 아는 여린 감성을 지녔다. 그러한 감성은 동심하고도 맞닿아있다. 그래서인지 참으로 순수하다는 느낌과, 소박하고 담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무엇이 착하게 사는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 줄뿐 아니라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성하게 만든다.
그는 “앞으로는 글을 더 아름답게 요리하고, 아름다운 말을 많이 발굴함은 물론, 좋은 작품을 많이 써서 후배들이 읽을 때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을 할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체험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살아 숨 쉬는 깔밋하고 돌올한 글을 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숙진 수필가.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신선한 어휘로 자신의 삶을 담백한 수채화처럼 그려내기를 소망해본다.
글․사진/ 박다윤 기자
2009년 월간 <아시아 아시아> 8월호 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