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忠」은 그 뜻이 일체 행위를 꿰뚫는다. 충심을 간직하면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가족과 화목하고 친구와 신의를 지키며, 고아를 불쌍히 여기고 난민을 구호하며, 인민을 사랑하고 물건을 아끼며, 여러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충심을 간직하면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자기 본분을 다하고, 본분을 다하면 자기 본분에 속하는 일을 스스로 실행하기에 힘쓸 것이다. 겉으로 대충대충 하면서 실제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눈속임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근대에 이미 군주제가 전복되었지만, 여전히 일마다 충심을 다해야 서로 의심하거나 서로 속이면서 법도 없이 멋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역주] 충심은 그 뜻이 만행을 꿰뚫는다 불법에서는 “법마다 서로 함섭한다(法法相攝)”고 말한다. 원돈의 법일 수록 일체 제법을 함섭할 수 있다. 《화엄경》의 십현문十玄門은 곧 그것을 극치까지 밀어붙인다. 이를테면,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하나의 사상과 많은 사상과의 일체가 융통무애하여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임). 미세상용안립문(하나는 다를 포함하고, 다는 하나를 받아들여, 일다를 파괴하지 않음). 인다라망법계문(모든 사상이 일다가 상즉 상입하면서 계속 영현하니 은영이 서로 나타나 다함없음을 인드라신의 그물에 비유함). 일다상용부동문(하나의 사상과 많은 사상이 그 힘이나 작용을 서로 융섭하지만, 언제나 일다의 특징을 잃지 않음) 등이다.
대승불법의 기초는 즉 보리심이다. 간단히 말하면, 보리심은 곧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어떤 스님은 오히려 효심이 곧 보리심이고, 자비심이 곧 보리심이고, 지혜심이 곧 보리심이고, 대원대행심이 곧 보리심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이 보리심은 곧 일체 선법을 함섭하니, 마음대로 일문을 수학하여 극치에 이르도록 닦으면 모두 종극의 불과를 성취할 수 있다. 불법은 이와 같은데, 세간법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인광대사께서 “충심은 그 뜻이 만행을 꿰뚫는다.” 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 뜻이다. 충심이 원만한 사람은 만행에서 빠짐없이 다 선인의 표준에 부합한다. 만약 처자식에게만 충심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충심이지 않고, 자심에게만 충심이지만 다른 사람을 괴롭힌다면 그게 무슨 충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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