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뵈지 않는 세계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기능- 영의 기능을
상실하고 '육'이 되어버렸다. ...육신이 됨이라(창6:3)
그래서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 고 했다.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거듭난다. 우리들의
깊은 곳에는 '성령'께서 거하신다. 육을 움직여 보이는 세계에 살듯 영을 움직여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살 수 있다. 모든 하나님의 일에는 순서가 있다. 영적 세계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나면 이 땅에 변화를 가져온다. 혼과 육을 움직이기에 앞서 영을 먼저 움직여라.
우리는 육으로 살아왔기에 영으로 사는 것에 무지하다. 육으로 살면서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가? 그렇다면 육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영으로 사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이다. 영으로 살아본 사람만이
아! 이게 영으로 사는 거구나! 하고 안심한다. 그것은 기도와 말씀이 기초가 되 삶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하고 순종하여 따라가는 삶이다.
그렇다면 영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 이다. 생명의 근원, 즉
영이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육체를 움직이고 영을 움직이는 컨트롤 타워는 '마음' 이다.
어떻게 마음먹느냐 따라 영이 움직이기도 하고, 멈춰있기도 하고, 잘못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을 '올바른 상태' 에 있도록 지켜야 한다. 그러면 영을 움직이는 마음의 상태를 보자
첫째 불편한 마음이 있다. 예물드리러 가기전에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 나거든
그 일을 풀어내고 예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마5:23,24) 생각은 마음에서 나온다. 영을 움직일
영적인 일(예물드리는것) 하려는 데 마음이 불편하면 영을 움직일 수 가 없다. 화목한 마음, 평안한
마음이 있어야 영을 움직일 수 있다. 마음이 근심, 두려움, 찝찝함 등의 불편함음 우리가 '혼적인
삶'을 살도록 한다. 불편함이 있으면 '혼'이 계속 돌아간다. 찬양을 하면서도, 예배를 드리면서도
, 기도를 하면서도 계속 '혼' 돌아가니 (영이 움직일 수가 없다, 두 마음이 되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한 지체를 미워한 적이 있는데 그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니 도저히 은혜가 안되었던 경험이 있다.
나중에 그냥 용서하기로 하니 그 예배가 천국같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 )
마음의 불편함을 방치하지 말라. 마음을 '평안' 하도록 지키라. 영은 마음을 평안하게 지킬때 정상적
으로 작동한다.
영의 세계를 움직일때 마음을 다하여 움직여라, 억지로 하는 것은 영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
특별히 주의 일을 할때는 더욱 그리하라,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며, 사람을 대할때 마음을
'다하여' 하라. 다하는 마음의 반대는 '종의 마음' 이다. 종의 특징은 마음없이 하는 것이다.
종이 무슨 소망이 있다고 마음을 다해서 움직이겠는가?( 한 사명자가 있다. 그는 영을 움직여서
중보기도 사역을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뜻에 순복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는데
돈을 버는데 기쁨이 없고 대화할때 마다 한숨이다. 왜 그런가, 그가 하는 일이 사명이 아니기에
마음을 다해 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작은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상의 일을 해도 마음을
다하여 하라, 그럴때 '영' 이 움직인다.) 진리에 기초해 마음을 다해 움직일때 비로소 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람을 만날때 마음을 담아서 만나라. 혹시 억지로 하는 일이 있는가? 골로새서에는
'종의 일' 도 마음을 담아서 하라고 했다. 그렇게 할때 하등의 직장의 일도 영적인 일이 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여 주님을 만난 사람만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덧붙인다.
기도와 말씀의 성령의 지도없이 마음만 다하기는 쉽지 않다)
함께 일하며서 가장 힘든 것은 파트너가 그 일에 '마음이 없는 경우' 다. (이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설득해서) 일이 되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영적인 일은 아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나는 웬만하면 일을 멈춘다.( 주님 제게도 지혜를 주소서!) 내가 원하는 것은
'영적인 돌파' 이고 하나님의 지지하심' 이지 일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 없이 드려지는 것들에 하나님은 마음이 상하신다. (사1:14) 예배, 헌금,직분, 마음을 담아 드려라
그럴때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이신다. 마음은 마음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양과 소가
아니라 마음에 반응하신다. (종교적인 매너리즘을 조심하라!)
그렇다면 마음을 다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일까? 그것은 '자원하는 마음' 이다. 사람을 대하다
보면 이 사람이 지금 정말 좋아서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2)
자원하는 심령의 즐거움이 영을 움직이는 열쇠이자 하늘의 복을 끌어오는 비밀이다.
또한 마음을 다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마음' 이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
아니 그 이상 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무열 선교사(라는 분)는 교회건축을 하는데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채를 썼다고 한다. 너무도 황당한 일이지만 그 당시 초신자였던 선교사님의 미숙함이
빚어낸 황당한 일이었다. 그러데 이분 이야기를 들으면 신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느껴진다. 당신의 자녀가 , 아내가 아프면 사채라도 들여서 치료하려 하지 않을까? 이분을 보면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온다. 마음을 다하는 곳에 항상 성령님의 놀라운 임재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그곳에 머물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맞다. 맞아. 그러사람이 있다.)
또 마음을 다하는 마음은 ' 순전한 마음' 나뉘지 않은 마음이다. 하나님을 바라고 , 또 다른것도 바라고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부끄럽다) '나는 하나님 뿐이다,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 다른 거?
다 없어도 괜찮다. 이 나뉘지 않는 마음이 ' 다하는 마음' 이다.
넷째, 마음을 다하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 이다. 무언가를 포기할때 보면, 마음이 다 소진되어 있다.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육으로 사는 사람은 ' 많이 수고' 하지만 열매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
눅5:3~6의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 했는데 아무 열매를 얻지 못하고 , 예수님의 한마디에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열매를 맺었을까요? 베드로는 육의 힘으로 밤이 새도록 수고했지만, 예수깨서는 육이
아니라 영으로 정확히 ' 명하신 것' 이다. 육으로 사는 인생은 불쌍하다. 밤새 수고하지만 잡은 것이 없다.
그러나 영으로 행한 일에는 ' 하나님의 지지하심' 이 있다. 그렇기에 '열매' 가 있다. 이복을 누려라
마음으로 움직여라, 평강의 마음 다하는 마음으로 이것이 당신의 삶을 영으로 사는 인생으로 인도할
것이다.
리뷰: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저자와 동의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영으로 움직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