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찻간의 일본인 중학생들-한 시간 동안 관찰
해도 휴대전화를 거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일본은 철도망이 시골 구석 구석까지 들어간다. 新幹線이 동맥이라면 전국
방방곡곡까지 스며든 支線은 실핏줄이다. 나는 지난 화요일 후쿠오카의
하카다역에서 新幹線을 타고 혼슈의 남쪽 야마구치縣의 아사에서 내려
나가토로 가는 支線 기차로 갈아탔다.
운전사 한 사람이 움직이는 한 輛(량)짜리 원맨카였다. 승객은 거의가 통학
하는 중학생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들을 한 시간 동안 관찰해보았다. 12명중 책 읽는 학생이 8명, 조는 학생
이 3명, 한두 명은 휴대전화기를 열고 이리저리 누르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지켜보아도 휴대전화기로 통화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도 조용조용하게 했다. 잠을 자는 학생도 단정하게 앉아 고개를 숙이
고 있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어선 안된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현장이었다.
앉은 자세가 좋은 것은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자세, 보행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자세는 마음가짐의 반영이고 자세에서 마음가짐이 생기기도
한다.
요사이 한국 지하철 안에서 중고교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오고가고 전화
걸고 대화하는 모습과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 말라"라는 말 한 마디에 교육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신문 광고에 이시하라 신타로 동경도 지사가 쓴 책 광고가 실렸다. 제목은
'젊은이가 꿈을 갖지 않은 나라는 망한다'였다.
2.서울시청광장의 싸가지 없는 시민들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 자녀들에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마음이 아닌가?
자동차가 아니라 리어카도 끌어선 안되는 시민의식이다.
오늘 오후 안성에 다녀오는 길에 한남대교와 1호 터널을 지나 을지로로
진입 하려고 40분을 기다렸다. 좌회전하여 시청을 지나는 데 30분을 더
정체해야 했다. 교통체증의 원인은 서울시청광장 주위 不法주차였다.
광장에 마련된 스케이트장을 찾은 청소년들을 태우고 온 차가 광장을 삥
둘러 2차선을 차지하면서 주차해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막힌 것이다.
경찰이 이런 不法주차를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인지, 아니면 집단 不法에
경찰이 손을 들고 말았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한심한 시민이고 경찰이란
생각이 들었다.
. 일본의 시골 어디를 가도 거리에 세워둔 차를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서울 한복판에, 배운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
그러니 친북 좌파들이 국가조종실을 장악하고 온갖 행패를 부려도 끌려간
것이다. 스스로 법을 어기니 좌파들의 헌법 유린에 대해서도 관대해진 것
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선거의 자유는 쟁취했으나 法治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 민주주의는 위선자와 범법자들의 노리개로 전락한다. 시민윤리
가 생활속에 자리잡지 못하면 선거를 백번 하고 좌파정권을 열번 종식시켜
도 발전은 없다.
한국인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런 法이 어디 있느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法은 지키지 않겠다는 생각이 이런 언어생활을
통해서 표출된다.
민주국가에서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일이
이번 보수정권이 할 일이다.
[ 2007-12-23, 21:41 ]
3.거리에 不法주차를 하지 않는 일본
-모든 집이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마당이나 건물
속을 주차장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며칠 전 시모노세키의 뒷골목을 한 시간 동안 걸어다녔다.
한국의 거리풍경과 다른 모습이 하나 있었다.
거리에 자동차를 주차해놓은 것이 하나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모든 집이 주차장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마당이나 건물
속을 주차장으로 내어놓고 있었다. 좁은 길임에도 마음
놓고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일본인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항상 강조하는 말이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말라"이다. 자동차를 거리에 세워두면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폐를 끼친다.
서울의 거리 풍경은 어떤가? 차를 길 양쪽으로 세워버린다. 4차선이 2차선
으로 줄어든다. 거리질서 확보는 불법 노점상과 불법주차 단속이 열쇠이다.
거리질서가 혼란스러운 것은 단속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한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이다. 좌파는 원래가 법치와 질서를 싫어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즐긴다.
4.잊을 수 없는 일본 택시 기사와 미국의 老교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을 대하듯이 친절하다면 그는 一流
시민이다.
1975년 4월 어느날 저녁 일본을 혼자서 여행하던 나는 유명한 해안 휴양지
아다미(熱海)의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린 나는 근처의 여관에 들었다.
저녁을 먹을 겸 도시구경에 나섰다. 택시를 타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여관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차"했다. 여관 이름을 기억해두지 않았다.
명함이나 성냥 곽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우선 택시를 잡아탔다.
"아다미에 여관이 몇 개입니까"
"400개입니다"
택시로 그 400개를 뒤지다간 날이 샐 것 같았다. 택시 운전자에게 여관을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말했다.
"같이 찾아봅시다. 그런데 역으로 돌아가서 거꾸로 내려옵시다"
택시기사는 역에서 바다쪽으로 내려오면서 골목을 누볐다.여관마다
들린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아닌데요"
"혹시 바다가 보였습니까"
"기억이 안나요"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정도 헤맨 끝에 눈에 익은 한 여관 앞에 닿았다.
내 여관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택시 기사도 "야, 참 잘 되었습
니다"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요금도 더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나는 첫 일본여행에서 만났던 이 택시 기사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만큼 일본 홍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 택시 기사가 나에게 베풀어준
好意가 몇 배의 효과를 보고 있다.
5. 며칠 전 한 전직 장관 K씨로부터
이런 체험담을 들었다.
1990년대 초에 일행과 함께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을 방문했다고 한다.
출발시간이 되어 버스로 돌아가기 위하여 교정을 걸어가다가 유학을 와
있는 친구를 만났다. 서로 손을 잡고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관광 버스
출발시간을 지나치고 말았다. 버스는 다음 행선지인 샌 프란시스코 호텔로
출발한 뒤였다.
난감해진 K씨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마침 책을 들고 지나가는 교수풍의
노신사를 붙잡고 물었다.
"택시를 부를 수 있습니까"
"어디까지 가시는데요?"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여기선 곤란한데, 그런데 잠시 봅시다"
그 노교수는 팔목 시계를 보더니 "시간이 되겠는데"라고 했다."잠시 여기서
기다려요"라고 하더니 사라졌다. 그리곤 자신의 차를 몰고 오는 것이었다.
노교수는 K씨를 태우고 한시간 이상을 달려 샌프란시스코 호텔에 도착했다.
미안하기 짝이 없는 K씨는 최상급 인사를 했으나 노교수는 무뚝뚝할 정도로
사무적이었다. 응당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사람처럼 간단한 인사를 남기곤
아무런 생색도 내지 않고 돌아가버리는 것이었다.
잘 아는사람에게 친절하기란 쉽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을
대하듯이 친절하다면 그는 一流시민이다.
6.일본인의 친절 사례, 그 하나
“나는 일본이라고 하면 세 단어가 생각난다”
일본회사와 오랫동안 거래하면서 돈을 벌어온 한 기업인은 “나는 일본이라
고 하면 세단어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정직, 청결, 친절. 평소 생활이 청결
하니 정직하고 친절한 것이다. 淸潔은 남에 대한 배려이다. 친절의 표현이
청결이다. 청결하지 않는 음식점이 친절할 순 없다. 청결은 형식이고 정직은
내용이다. 내용에서 형식이 생기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오늘 오전 일본 북해도 삿포로 근방의 新치도세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4박5일 동안 尙美會 여행단을 태우고 다녔던 관광버스 운전사는 30대의
말 없는 사나이였다. 눈이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그렇게 부드럽게 달릴 수가
없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暴雪과 한파 속의 장거리 운전을 해준 것이
고마워 여행객들이 헤어질 때 박수를 쳤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헤어졌던 운전사가 뛰어오더니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짓고 있는 尙美會 여행단을 찾았다.
버스를 주차장으로 몰고가서 정리하다가 손님이 놓친 물건을 가져왔다는 것
이었다. 운전사는 아마도 한 30분간 차를 몰고가 車內 청소를 하다가 이
안경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달려온 듯했다. 그가 내어놓은 것은 돋보기
안경이었다.
주인을 찾아보니 40대 주부가 버스 안에 놓고 내린 안경이었다. 이 주부는
그때까지도 놓고 내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2년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한 여성이 버스 안에 막 구입한 화장품 세트를 놓고 내렸다. 회사에 연락했
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한 평범한 일본인 운전자의 정직과 친절은 오늘 수십 명의 한국인을 감동
시켰다. 이런 친절이 국제경쟁력이다. 안경을 찾은 한국인은 자주 일본을
찾을 것이고, 화장품을 잃은 한국인은 이탈리아에 대한 險談(험담)을 열심히
하고 다닐 것이다.
[ 2008-01-19, 22:12 ]
7.一流국가 국민들의 특성
1. 화장실이 깨끗하다.
2.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다(일본의 경우 텔레비전 뉴스 앵커들
의 목소리가 특히 낮다)
3. 인물을 기리는 銅像과 기념관이 많다.
4. 사람들이 친절하면서도 절도가 있다.
5. 옷차림이 간소하다.
6. 일을 하는 모습이 즐겁게 보인다.
7. 보통국민들도 글을 잘 쓴다.
8. 경찰에 대드는 사람이 없고, 경찰도 듬직하고 친절하다.
8.KTX 특실에서 만난 예의 없는 네 사람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어제 밤 9시30분에 부산역을 출발한 KTX 특실에 올랐다. 출발하자 말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실내에선 전화를 걸지 맙시다' 따위의 안내방송
이 나왔다. 東대구역에서 20세 전후의 여자 두 사람이 올라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한 여자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전역까지 오는 동안 쉬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옆 자리에 앉은 친구한테 "좀 조용히 하라"고 말했
더니 말소리는 다소 약해졌지만 전화는 끊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건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했다. 20세 전후의 나이에 특실을 탈 정도이면 수입이
많은 직장에 다니든지 부모가 부자일 것이다.
다행히 대전역에서 두 여자는 내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뚱뚱한 아줌마 두 사람이 탔다. 두 사람은 목소리가 문제였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실내가 쩡쩡 울렸다. 그 큰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걸고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완전히 교정 불능의 수준이었다.
聲帶(성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크다고 한번도 경고를 받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기고만장 그 자체였다. 야간열차여서 승객들은 거의가 잠을 자고 있었다.
두 아줌마의 목소리는 끝에서 끝까지 들렸다. 충고도 희망이 있을 때 하는
?痼訣?, 저 수준이면 포기하는 것이 낫다. 다행히 두 아줌마는 천안역에서
내렸다.
20분 달리는 데 특실을 탈 정도라면 생활 수준이 상층에 속할 것이다.
오늘 내가 만난 문제적 인물 네 사람은 남한테 폐를 끼치고도 폐를 끼친다는
의식조차 없었다. 한국 교육의 실패를 보는 듯했다. 그런 아줌마 아래서
그런 20대 딸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교양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수준의
예절이고 언동이다. 민주주의를 잘못 해석하면 깽판 치는 자유를 뜻하는 것
으로 여긴다. 그 모범을 보여준 자가 이틀 있으면 청와대를 떠난다.
공중도덕은 法治의 기본이다. 교양과 예절이 무너진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선동가의 노리개로 변한다.
한국 보수층의 自淨항목 중에서 예절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예의 없는 보수
층은 보수의 자격이 없다. 보수는 역사와 전통, 미풍양속과 예절감각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서울역에서 내려 집까지 모범택시를 탔다. 요금이 5100원이었다. 1만원짜리
를 내면서 "4000원만 주세요"라고 했다. 택시 기사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도 없이 1000원짜리 네 장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으로 건네주었다.
[ 2008-02-24, 01:27 ]
KTX 화장실 문을 치고 받는 손님들
-열고 닫는 장치가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어 승객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왜 우리식으로 간단하게 바꾸지 못했던가?
경부고속전철(KTX)를 타고 다니면 화장실 안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고
더러는 발로 차는 소리를 가끔 듣게 된다. 화장실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문을 열지 못해 몸부림 치는 듯하여 지켜보고 있노라면 승객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문을 비집고 나와선 '이상한 문'을 한번 흘겨보고는 화난
표정을 풀지 않으면서 객실로 돌아간다.
왜 이런 불편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가? 문의 잠금장치가 복잡하게 설계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여는 데는 두 동작이 필요하다. 손잡이를 돌리고
밀어야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문을 닫고 잠금 스위치를 돌린다. 나올 때는
먼저 잠금 스위치를 푼 다음 문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밀어야 한다.
세 동작이 들어간다.
이를 비행기內 화장실과 비교하면 너무 복잡한 설계임을 알 수 있다.
비행기에선 화장실이 비어 있다는 뜻의 파란표시를 확인한 뒤에 문을 밀어
버리면 열린다.
한 동작이다. 안으로 들어가선 잠금장치를 오른쪽으로 밀어버리면
된다. 나올 때는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밀어버리면 열린다. 두 동작이다.
KTX보다도 한 동작씩이 적다.
물론 KTX 열차의 객실과 화장실은 프랑스에서 설계한 대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편하게 왜 바꾸어 발주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남는다.
프랑스 사람들에겐 지금 것이 편리할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에겐 불편하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꿨어야 하지 않았나? 外來 문물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사대주의이고 自國의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이 주체성이고
자주적 태도이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백제, 고구려와 달리 신라에
선 저항이 있었고,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다. 그런 신라에서 불교가 제대로
꽃피어 삼국통일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 外來문명은 비판적으로 수용
해야 자기 것이 된다. 화장실 문제는 작을지 몰라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뜻은
결코 작지 않다.
[ 2007-07-06, 10:01]
9."부디 화장실에서 구토해주시기 바랍니다"
一流시민은 어려운 게 아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그게 一流시민이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오피스텔 빌딩 복도 벽엔 이런
요지의 告知文이 붙어 있다.
<밤중에 술에 취해서 고층의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구토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구토물이 강한 산성이고, 벽을 타고 내리면서 더럽힌 것은 청소
하기도 어렵습니다. 부디 화장실에서 구토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오피스빌딩 엘리베이터 안 스크린엔 이런 당부의 말씀이 나온다.
<문을 열고 깡통이나 병을 바깥으로 던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一流국가를 꿈꾸는 10大 경제大國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一流국가는 一流시민이 되어야 가능하다. 一流시민은 어려운 게
아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그게 一流시민이다.
대통령이란 인간이 時도 때도 없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있으니 그를
따라 배우려는 국민들도 많을 것이다. 一流국가로 가는 길의 가장 큰 장애
물이 바로 노무현類의 폐 끼치는 인간형이다. 올해와 내년의 두 차례
대청소 기간에 역사의 쓰레기들을 치우자!
[ 2007-06-20, 16:34 ]
KTX의 화장실과 新幹線의 화장실
40년이나 뒤에 건설된 KTX가 더 지저분하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승객과 관리자의 정신 문제이다.
오늘 나는 일본의 혼슈 남단 야마구치縣의 新야마구치역에서 하카다(후쿠오
카)로 가는 新幹線 열차를 타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깨끗했다. 종착역에 가까이 왔으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지저분한
법인데 출발역인 것처럼 청결했다.
나는 KTX 열차를 자주 탄다. 특실 화장실도 출발하여 몇 정거장 가지 않으면
지저분해진다. 사용하는 이들도 함부로이고 열차 관리자들도 청소를 소홀히
한다. 화장실이 그 모양이니 KTX 전체가 불결해 보인다.
일본의 新幹線보다도 40년이 지나 개통했으면 모든 면에서 더 좋아야 한다.
定時출발률도 더 높아야 하고 더 깨끗하고 더 편해야 한다. KTX는 7~10분
연발착이 보통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같지도 않다. 新幹線은 아마도
1년분 연발착 시간을 다 모아도 10분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을 깨끗이 유지하는 것은 무슨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종업원들의
정성, 서비스 정신의 문제이다. 그러니 더 창피한 일이 아닌가? 할 수 있는
일을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니 더 문제인 것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일자리와 공공장소를 깨끗이 하는 일은 인간의 기본이다. 이 기본을 가르치
는 일이 국민교육이고 公民윤리이다. 좌파정권은 국민들을 속이는 일에만
전념하다가보니 국민들에게 公德心을 가르치고 국민들을 一流시민으로 교육
하는 일을 잊었다.
KTX의 특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한국의 지도층일 것이다. 그들이 화장실을
깨끗이 이용할 줄 모른다면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만 불까지
올라도 一流국가가 될 순 없다.
[ 2007-06-06, 23:56 ]
-
10.피렌체의 더러운 화장실에서 생각난 것
"일본인은 청결을 善, 불결을 惡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왜 이탈리아에선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지 알 듯했다
지난 달 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도시인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카르미네 성당을 찾아가 르네상스 畵風의 선구자 마사초의 15세기 프레스코
벽화를 구경했다. 이 벽화는 베드로의 일생을 그린 것인데 도입부에 '아담과
이브의 추방'이란 유명한 그림이 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드 다 빈치는
마사초의 그림 기법을 연구하기 위하여 이 성당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尙美會 관광단이 이 성당에서 곤욕을 치렀다. 입장을 기다리면서 화장실에
갔다온 여성 한 분이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 도저히 용변을 보지 못하겠다고
했다. 남자 화장실에 다녀온 사람도 같은 반응이었다. 나는 취재차 가 보았
다. 중국 화장실 수준이었다.
일행중의 한 분이 가이드를 통해서 성당 관리자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켜달
라"고 했더니 답은 "청소부가 나오지 않았다"였다. 비싼 입장료는 어디 쓰는
지, 이 세계적 문화재가 불쌍했다.
문득 그 며칠 전에 다녀왔던 일본 니가타 지방의 청결한 화장실이 생각났다.
"일본인은 청결을 善, 불결을 惡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떠올랐다.
왜 이탈리아에선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지 알 듯했다.
지금 이탈리아는 미국, 스페인, 프랑스, 중국에 이어 관광수입 5위의 나라
이다. 한때는 不動의 1위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더럽고 불친절하고
비싸며 정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세계 여론으로
확산된 듯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조상들이 워낙 위대했으므로 공짜로 年間 300억 달러 이상
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오늘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조상들의
위대한 유산이 거대한 공짜 자산이다.
문득 중동에서 돌아온 한국인의 말이 생각났다.
"중동에선 석유가 천벌이 되고 있습니다. 석유라는 공짜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요"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은 의외로 기후가 나쁘고 자원이 부족한 경우
가 많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그렇고, 영국과 독일도 자원이 부족한
편이다.
인간은 공짜를 얻게 될 때 타락하고 어려운 처지에 던져질 때 총력을 다해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강해지고 부유해진다.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통계에 따르면 3國중 新羅에서 천재지변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땅도 가장
척박했던 곳이었다. 그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긴 신라의 저력이 통일
을 쟁취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을 휩쓸고 있는 좌파 이념은 공짜심리를 확산시킨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조직을 가장 빨리 무능하게 만들고 망가지게 하는 방법이다.
[ 2006-03-07, 23:57 ]
11. 대통령 취임식장의 '예의 없는 사람들'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연주될 때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면서 '야,
가자!'하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3분의 1쯤 나가버렸다."
어제 국회 앞에서 있었던 李明博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은
오늘 이런 불평을 했다.
"李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고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연주될 때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면서 '야, 가자!'하니까 내 주변 사람들이 3분의 1쯤 나가
버렸다. 유세장에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연설을 한 뒤 빠져나가는
식이었다.
단상에서 각국의 축하사절들이 이걸 보고 한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李 대통령은 선진화를 강조했지만 지도층의 예절이 이 정도라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의 없는 국민들이 一流국가를 만들 순 없을
것이다."
예절은 남에 대한 배려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아온 사람이라면
초대해준 李明博 대통령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초대 받은 손님이
주인을 배려하여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들이 하는 민주주의는 이기주의를 근사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민들에게 예절 교육을 시켜야 할
것인지?
[ 2008-02-26, 16:21 ]
12.南大門 잿더미 유리관에 넣어 영원히 보존하자!
復製品은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 세울 수 있다. 戰火의 잿더미 속에서
不死鳥처럼 일어섰던 우리는 가슴속에서 남대문을 복원하고 잿더미는
어리석음의 물증으로 영구 보존하자. 세계적 名所(명소)가 될 것이다.
南大門(崇禮門)은 잿더미가 됨으로써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우리가 남대문을 그렇게 사랑했다는 것을 그가 죽고나서 깨닫게 되었다.
남대문은 민족사 600년의 목격자이자 동반자였고 우리의 기억과 생활의
일부가 된 우리의 몸둥아리 자체였다는 사실을 잃고나서 알게 되었다.
남대문의 잿더미는, 게으름과 어리석음과 狂氣(광기)를 고발하는 물증이자
새로운 문화재이다.
역사적 건물은 하나의 생명체이다. 영광과 오욕을 다 체험한 기억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대화를 하고 그리하여 사람들을 성숙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역사는 건물로 표현되며 사람들은 건물을 통해서 역사를 느낀다.
崇禮(숭례)는 역사와 선조들에 대한 예의를 뜻한다. 숭례문 잿더미는,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경종이다.
남대문은 잿더미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復原(복원)되었다. 보이는
것이 사라지면 보이지 않는 것이 남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할 수가
있다.
사라진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며 살려면 차라리
남대문을 잿더미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잿더미를 유리관 속
에 보존하여 오가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면
남대문은 죽어서 사는 것이다.
남대문 복원은 어차피 復製品(복제품)이다. 복제품은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
세울 수 있다. 서둘 필요가 없다. 적어도 남북통일 때까지라도 잿더미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어떨까?
대한민국이 戰火의 잿더미 속에서 不死鳥(불사조)처럼 일어섰듯이 남대문의
잿더미 속에서 자유통일과 一流국가 건설의 의지가 솟아날 수 있다.
건국, 호국, 근대화에 피땀 흘렸던 선배세대의 勞苦(노고)를 저주해온 皎
忘德(배은망덕)의 풍조를 잿더미 위에 던지고, 비판과 부정만을 美德視하고
건설과 생산을 不德視하는 노예근성을 잿더미 위에 던지고, 낡아빠진
주체사상을 잿더미 위로 던지고,
역사적 건물을 政敵視하면서 때려부순 어리석음도 잿더미 위에 던지고
전진하자는 다짐을 하는 장소가 되려면 복제품보다는 잿더미라는 現物이
낫다.
보이는 복제품보다는 보이지 않는 남대문의 기억이 낫다.
한국의 역사적, 정치적 심장부는 청와대-경복궁-중앙청-광화문-남대문을
잇는 축선이었다. 金泳三 정부는 역대 대통령의 고뇌가 서린 청와대내
집무실이 과거 조선 총독의 관저였다고 부숴버렸다.
건국이 선포되고 9.28 幟 때 태극기가 올라갔던 중앙청(당시 국립박물관)
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金泳三 정부는 중앙청이 한때
조선총독부였으니 민족정기를 회복해야 한다면서 광복 50주년을 맞는 날
이 아름다운 건물의 목을 잘랐다.
2년 뒤 정부는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일본에 돈을 꾸어달라는 특사를 보냈
으나 거절당하고 IMF에 구조를 요청해야 했다. 前 정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
을 갖고 이 건물에 서린 한국 현대사의 기억을 깡그리 말살한
중앙청 철거는 민족정기 회복이 아니라 민족의 치욕으로 연결되었다.
권력자가 건물에 사형선고를 할 정도라면 합리적 國政운영은 불가능하다.
건국과 개발 시대를 저주하는 마음을 담아 중앙청을 때려부수고 남산 외인
아파트를 폭파시킬 때 환호했던 사람들이 남대문의 잿더미 앞에서는 눈물을
흘린다. 대한민국의 最高 건물 중앙청도 조선조의 最古 건물 남대문도
우리 손으로 없애버린 서울엔 잿더미라도 남았다.
이 잿더미라도 소중하게 보존하면서 게으름과 어리석음과 狂氣에 대한 경고
로 삼는다면 중앙청과 남대문의 희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남대문 잿더미는
국민 반성의 교육장이자 세계적 名所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 교수 부부의 친절
지난 5월22일 나는 일행 19명과 함께 일본 가고시마에 있었다. 현직 일본인
교수 부부가 종일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오후 늦게 우리 일행을 가고시마
시내에 데려다 주었다.
우리는 전세 버스에서 내리면서 두 시간 뒤에 버스가 그곳으로 오게 한 뒤
시내 구경에 나섰다. 일본인 교수 부부와는 작별 인사를 했다.
오후 6시 우리는 내렸던 장소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 두 시간 전에
헤어졌던 교수 부부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부부는 우리 일행이 시내에서 길을 잃지 않고 빠짐없이 재집합 장소에 모였
는가를 확인한 다음에 귀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교수 부부는 일부러
두 시간 동안 시내에 머물러 있다가 점검차 다시 들른 것이었다. 부부는
다시 헤어지면서 과자가 든 봉투를 선물로 주었다.
차중에서 이 과자를 나눴더니 1인당 하나씩 정확하게 스무 개였다.
생전 처음 만난 사이이고 다시 볼 일도 없는 외국인에 대한 이런 친절과
배려가 습관화된 것이 일본사람들이다. 알수록 무서워지는 사람들이다.
13. 감탄! 일본의 목욕 문화
이번 일본 東北 지방 여행에서 새삼 일본인의 목욕문화와 한국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온천탕에 들어가면 우선 시설이 간단한 데 놀랍니다.
샤워기가 앉은 키와 같은 높이에 붙어 있어 서서 할 수 없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몸에 먼저 비누칠을 한 다음 옆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물을
튀기지 않도록 조심조심 샤워기 물을 머리에 뿌립니다.
욕탕실로 들어올 때는 호텔방에서 가져온 얇은 수건 하나만 휴대할 수 있습
니다. 이 수건이 특이합니다. 때를 미는 데도 쓰고 몸을 닦는 데도 씁니다.
아주 얇은 데도 흡수성이 좋고 빨리 마릅니다. 저는 이것 하나로써 다 처리
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보면 한 사람이 평균 3장 이상의 수건을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목욕탕에서는 물을 옆자리로 튀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인식으로
목욕을 하니 물도 줄여쓰고 조용하며, 또 수건도 덜 쓰니 얼마나 좋습니까.
문제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훈련받은 일본인과 목욕문화에 대해서 아무런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인의 차이입니다.
저는, 돌아올 때 하나에 200엔 하는 일본 목욕탕 수건을 몇장 선물로 사와
서 나눠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목욕을
즐길 것인가, 우리나라의 타월 만드는 분들도 좋은 수건을 만들어 건전한
목욕문화 만들기에 동참합시다.
줄을 선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잘못은 무조건 덮으려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
를 다른 사람이 반대하면 화부터 낸다.
< 惡들을 너무 미워하다가 보니 인간을 너무 적게 사랑하게 되었다
(By hating vices too much, they come to love men too little).>
-에드먼드 버크(영국의 정치인, 보수주의자)
일부 한국인들은 누구 앞에 줄만 서면 패싸움 논리의 포로가 되어 이성과
예의를 잊어먹는 습성이 있다. 한나라당 경선과 요즘의 대선판에서 자주
보이는 추태이다.
1.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잘못은 무조건 덮으려 한다. 기자, 지식인,
애국운동단체 회원 등 객관적 입장에 서야 할 이들도 是是非非(시시비비)의
정신을 너무 쉽게 팽개친다. 신념이 사실보다 더 소중하다는 태도이다.
2.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다른 사람이 지지하지 않거나 반대하면 화부터
낸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다른 사람도 반드시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것 자체가 양심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3. 어제까지 함께 투쟁했던 동료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그가 지지
하지 않으면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인간이 갑자기 표변한다. 친구보다도
상전을 더 따른다. 눈이 뒤집히는 것이다.
4. 자신과 다른 줄을 선 同志를 비판할 때는 두 번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
인 것처럼 야비하고 무례하게 한다. 어느 후보 편이 되는 순간 갑자기 인간
이 돌변한다. 6·25 때 멀쩡한 사람도 좌익 완장을 차더니 야수가 되어버리
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5. 이렇게 속 좁게 싸우니 싸우고 나서 후유증이 심각하다. 친척끼리, 친구
끼리 원수가 된다. 줄서기와 패거리 의식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싸움 기술은 F 학점이다. 싸움을 절도 있게 하고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을 하면 공멸한다. 애국운동을 했던 많은 인사들이 이번 大選을
통해서 무례한 사람, 신념과 진실을 증오나 욕심 때문에 희생시키는 사람,
권력자에 아부하는 사람, 분수를 모르는 사람, 객관성을 포기한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이렇게 되니 그동안 애국운동을 한 목적이 무엇이었나 의심까지 생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전에 그동안 애국운동이 견지해왔던 원칙, 예컨대
6·15 선언 및 햇볕정책 폐기를 요구해야 하는데 이런 최소한의 의무도
다 하지 않고 몰려가고 있다.
6. 孔子는 논어에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더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을 小人同
而不和라고 표현했다. 소인배들은 같으면서도 不和한다는 뜻이다.
같은 우물, 같은 밥솥에서 먹고 마셨던 이들끼리 더 치열하게 싸운다는 뜻
이다. 이런 인간형은 평생 사냥개 역할만 하다가 늙어죽는다. 자신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