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구 표면에는 2백여 개의 확인된 충돌구가 있다. 그중에서 일반 대중에게 가장 널리 소개된 것은 아마도 아리조나 운석 충돌구라고 흔히 불리는, 미국 아리조나 주에 위치한 배린저 충돌구(Barringer impact crater)일 것이다. 배린저 충돌구는 지름이 1 km가 조금 넘어 지구의 충돌구 중에서 비교적 작은 것에 속한다. 규모가 작은 충돌구 임에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는 생성 연대가 비교적 젊어(약 5만 년 전) 그 외형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충돌구 중에서 가장 먼저 학문적으로 연구되었으며, 관광지로서 유명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지구에 현재 보존되어 있는 충돌구 중 가장 큰 것은 남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는 브레데포트 충돌구(Vredefort impact crater)이다. 약 20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거대한 충돌구의 지름은 무려 300 km가 넘어 그 면적이 우리나라보다도 넓다. 이와 같이 지구에도 크고 작은, 또 오래된 것부터 젊은 것까지 다양한 충돌구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달, 수성, 화성 등에 비하면 매우 적다. 그 이유가 뭘까?
먼저 지구로 외계의 물체가 진입할 때 지구 대기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유인 달 탐사계획인 아폴로 계획 중 아폴로 13호만이 달로 가는 도중에 고장으로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지구로 돌아왔다. 이를 소재로 만든 〈아폴로 13호〉란 영화를 보면 우주인들이 지구로 돌아올 때 지구 대기로의 진입 각도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구 대기와 수직에 가깝게 진입하면 대기와의 마찰로 우주선이 불타 버리며, 수평에 가깝게 진입하면 대기 표층에서 튕겨져 우주 미아가 되어 버리고 만다.
지구로 진입하는 소행성이나 혜성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다면, 아폴로 13호가 고민한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대기 상층부에 대해 매우 작은 각도를 가지고(수평에 가깝게) 접근하는 물체는 마치 물 위로 납작한 돌을 수평에 가깝게 던지면 물에 빠지지 않고 튕겨 나가듯이 지구 대기에 의해 튕겨 나가 버린다. 조금 더 큰 각도로 진입하는 물체는 대기로 진입하면서 마찰에 의해 표면이 녹거나 증발하면서 동시에 속도가 줄어든다.
요즘은 도시의 밝은 불빛과 대기오염 때문에 관찰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맑은 날 깊은 산골의 밤하늘에서는 길게 꼬리를 끌며 떨어지는 별똥별(유성)을 볼 수가 있다. 이는 수센티미터 정도의 아주 작은 암석이나 얼음조각들이 지구 대기로 진입하다 대기와 마찰해서 타는 현상이다. 이처럼 작은 조각들은 대기 상층부 70km 부근에서 모두 타버린다. 좀더 큰 암석은 타고 남은 조각이 땅 위에 떨어지게 된다. 운석(meteorite)이 이런 것들이다.
만약 매우 약한 물체(아마도 혜성의 경우)라면 대기와의 충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하기도 하며, 약한 암석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다. 운석은 여러 개가 동시에 낙하하는 일이 흔한데, 이는 대부분 지구 대기로 진입하는 도중에 부서진 조각들이다. 이런 현상을 운석우(meteorite shower)라고 한다. 하지만 충돌체의 크기가 커질수록 대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예를 들어 진입하는 물체가 매우 단단하여 대기에서 부서지지 않는 경우, 크기가 10 m 이상인 물체에 대해 지구 대기는 고작 10% 정도 감속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지구의 대기는 우주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물질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는 비교적 크기가 작거나 약한 물체에 국한된다. 지구에 충돌구가 적은 더 중요한 이유는 지구가 지질학적으로 살아 있는 행성이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지질 활동에 의해 충돌구를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달의 충돌구를 연구하면 알 수 있듯이 태양계에서 충돌의 빈도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감소하고 있다. 태양계 탄생 초기에는 수많은 소행성들이 태양계 곳곳에 존재했다. 사실 현재의 행성들은 수많은 소행성들이 충돌에 의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충돌구 중 생성 연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오래된 것보다 젊은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계에서 지구에만 유일하게 충돌의 빈도수가 증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지구에서는 오래된 충돌구들이 지워져 버렸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달의 바다에 충돌구가 적은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지구에서 충돌구를 지우는 지질 활동으로는 비, 바람 등에 의한 풍화, 화산 활동 등이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판의 이동을 들 수 있다.
지구 표면은 10여 개의 크고 작은 판(plate)으로 나뉘어 있다. 지각과 맨틀의 상부를 일부 포함하는 지구의 판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1년에 평균 수센티미터를 이동하면서 지구 표면에 여러 가지 지질 현상을 일으킨다. 거대한 규모의 지진, 화산 활동, 산맥과 해구의 형성 등이 대부분 판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대륙의 모양까지도 변화시키는 것이 판의 움직임이다. 따라서 지구 표면의 충돌구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구 면의 3분의 2를 덮고 있는 바다 역시 충돌구가 적은 원인 중 하나이다. 바다의 역할은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바다는 대기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충돌 속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단, 바다가 충돌체의 크기에 비해 충분히 깊은 경우). 둘째로 깊은 바다에 형성된 충돌구는 발견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판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바다 밑을 형성하는 해양지각은 중앙해령이라고 불리는 해저산맥에서 생성되어 서서히 이동하다가 대륙을 만나면 맨틀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이런 곳에 깊은 해구가 형성된다). 해양지각의 수명은 2억년을 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보다 오래된 해양지각은 충돌구를 간직한 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