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Ray Jung (레이 정) ... 'I (Waltz For Her)'
이보리
* 솔밭에 와서 - 유치환
솔밭에는 솔바람 여울이 울고
솔바람 여울 위에 가치떼 설레고
가치 설레는 위에 하늘만 푸르고
내사 외로워 생각이고 무에고
* 별 - 유치환
어느날 거리엘 나갔다 비를 만나 지나치던 한 처마 아래 들어섰으려니
내 곁에도 역시 나와 한 가지로 멀구러미 하늘을 쳐다보고 비를 긋고 섰는
사나이가 있어,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문득 그 별이 생각났다.
밤마다 뜨락에 내려 우러러 보노라면 만천의 별들 가운데서도
가장 나의 별 가차이 나도 모를, 항상 그늘 많은 별 하나-.
영원히 건널 수 없는 심연에 나누어져 말없이 서로 바라보고 지낼 수 밖에 없는
먼 먼 그 별, 그리고 나의 별!
* 봄소식 - 유치환
꽃등인 양 창 앞에 한 그루 피어 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 가지 새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적막한 겨우내 들녘 끝 어디메서
작은 깃을 얽고 다리 오그리고 지내다가
이 보오얀 봄길을 찾아 문안하여 나왔느뇨?
앉았다 떠난 아름다운 그 자리에 여운 남아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나니,
꽃가지 그늘에서 그늘로 이어진 끝없이 작은 길이여.
* 그래서 너는 시를 쓴다? - 유치환
서을 상도동 산번지를 나는 안다
그 근처엔 내 딸년이 사는 곳
들은 대로 상도동행 버스를 타고 한강 인도교를 지나 영등포 가도를 곧장 가다가 왼편으로 꺾어지는 데서 세번째 정유소에 내려 그 정류소 바로 앞골목 언덕빼기 길을 길바닥에 가마니 거적을 깔고 옆에서 우는 갓난아기를 구박하고 앉아 있는 한 중년 사나이 곁을 지나 올라가니 막바지 상도동 K교회당 앞에 낡은 판자로 엉성히 둘러 가리운 뜰안에 몇 가구가 사는지 그 한 편 마루 앞 내 셋째 딸년의 되는 대로 걸쳐 입은 뒷모습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그 상도동 산번지 어디에서 한 굶주린 젊은 어미가 밥 달라고 보채는 어린 것을 독기에 받쳐 목을 졸라 죽였다고
― 이 새끼 또 밥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그러나 그것은 내 딸지식이요 손주기 아니라서 너는 오늘도 아무런 죄스럼이나 노여움 없이 삼시 새 끼를 챙겨 먹고서 양복바지에 줄을 세워 입고는 모자를 얹고 나설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는 어쩌면 네가 말할 수 없이 값지다고 믿는 예술이나 인생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인가
그러나 이 순간에도 굶주림에 개같이 지쳐 늘어진 무수한 인간들이 제 새끼를 목 졸라 죽일 만큼 독기에 질린 인간들이 그리고도 한마디 항변조차 있을 수 없이 꺼져가느 한겨례라는 이름의 인간들이 영락없이 무수히 무수히 있을 텐데도 그 숫자나마 너는 파적거리로라도 염두에 올려 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끼니는 끼니대로 얼마나 배불리 먹고도 연회가 있어야 되고 사교가 있어야 되고 잔치가 있어야 되고 ― 그래서 진수성찬이 만판으로 남아 돌아가듯이 국가도 있어야 되고 대통령도 있어야 되고 반공도 있어야 되고 질서도 있어야 되고 그 우스운 자유 평등도 문화도 있어야만 되는 것
― 이 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어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그러므로 사실은 엄숙하다 어떤 국가도 대통령도 그 무엇도 도시 너희들의 것은 아닌 것
그 국가가 그 대통령이 그 질서가 그 자유 평등 그 문화 그 밖 에 그 무수한 어마스런 권위의 명칭들이 먼 후일 에덴 동산 같은 꽃밭 사회를 이룩해 놓을 그날까지 오직 너희들은 쓰레기로 자중해야 하느니
그래서 지금도 너의 귓속엔
― 이새끼 또 밥 달라고 성화할 테냐 죽여버린다
― 엄마 다시는 밥 안 달라께 살려줘, 고
저 가엾은 애걸과 발악의 비명들이 소리소리 울려 들리는데도 거룩하게도 너는 시랍시고 문학이랍시고 이 따우를 태연히 앉아 쓴다는 말인가
* 치자꽃 - 유치환
저녁 어스름 속의 치자꽃 모양
아득한 기억 속 안으로
또렷이 또렷이 살아 있는 네 모습
그리고 그 너머로
뒷산마루에 둘이 앉아 바라보던
저물어가는 고향의 슬프디슬픈 海岸通의
곡마단의 깃발이 보이고 天幕이 보이고
그리고 너는 나의, 나는 너의 눈과 눈을
저녁 으스름 속의 치자꽃 모양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켜만 있는가
* 울릉도 - 유치환
동쪽 먼 심해선(深海選)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튀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새없이 출렁이는 풍량 따라
밀리어 밀리어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어린 마음의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선 울릉도로 갈거나
* 수(首) - 유치환
십이월의 北滿(북만) 눈도 안 오고
오직 만물을 苛刻(가각)하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街城(가성) 네거리에
匪賊(비적)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寒天(한천)에 模糊(모호)히 저물은 朔北(삭북)의 산하를 바라고 있도다
너희 죽어 律(율)의 처단의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四惡(사악)이 아니라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도 鷄狗(계구)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除(제)함은 또한
먼 원시에서 이어 온 피의 法度(법도)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險烈(험렬)함과 그 결의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넋이여 暝目(명목)하라!
아아 이 불모한 思辨(사변)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은혜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고지고
* 광야에 와서 - 유치환
흥안령(興安領)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광막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도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暗愁)의 비 내리고
내 망난이에 본받아
화톳장을 뒤지고
담배를 눌러 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함이러뇨
이미 온갖을 저버리고
사람도 나도 접어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의 길에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앓음을 어디메 호읍(號泣)할 곳 없어
말없이 자리를 일어나와 문을 열고 서면
나와 탈주할 사념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정차장도 이백리 밖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 같은 절망의 광야!
* 일월(日月) - 유치환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을소냐
머언 미개적 유풍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삼가 애련에 빠지지 않음은
― 그는 치욕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에 짐승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에
또한 무슨 회한인들 남길소냐.
* 어디로 갔느냐 사랑하는 것들이여 - 유치환
어디를 갔느냐 사랑하는 것들이여
나도 모를 어느 사이 어디로 다 가 버리고 말았느냐
그 빛나는 세월과 더불어 그지없이 즐거웁던 나의 노래여
높다란 가지 서느런 매미울음이여
가벼운 잠자리여. 제비떼여. 명멸한던 나비의 책색이며
그 벅찬 남풍의 가슴이여
어디로 죄다 자취없이 사라지고 말았느냐
어느 아침 내 문득 나의 둘레를 살펴보고
나를 에워 있던 이 모든 것들 기억처럼 사라지곤
아무리 내저어도 닿을 곳 없는
크낙한 크낙한 공허 속에 내 홀로 남았음을 보았으니
이제는 발 아래 낙엽만 쌓여 짙어오고
긴긴 밤을 다시 은총같은 고독에 우러러 섰다..
* 죽음 앞에서 - 유치환
그날 절벽같은 너의 죽음앞에서
다시도 안 열릴 석문을 붙들고
아무리 불러 호곡한들
내 소리 네가 들으랴?
네 소리 내게 들리랴?
* 그리우면 - 유치환
뉘 오는 이 없는 골에는
하늘이 항시 호수처럼 푸르러
적은 새 가지 옮으는 결에
松花가루 지고
외떨기 찔레
바윗돌 하나
기나긴 하루해 지키기 제우노니
참으로 마음속 그리운 이 있으면
이런 골짝 호올로 숨었기도 즐거워
고운 松花가루 松花가루
손에만 묻다
* 세월 - 유치환
끝내 올 리 없는 올 이를 기다려
여기 외따로이 열려 있는 하늘이 있어
하냥 외로운 세월이기에
나무그늘 아롱대는 뜨락에
내려앉는 참새 조찰히 그림자 빛나고
자고 일고
이렇게 아쉬이 삶을 이어감은
목숨의 보람 여기 있지 아니함이거니
먼 산에 雨氣 짙은 양이면
자욱 기어드는 안개 되창을 넘어
나의 글줄 행결 고독에 근심 배이고
끝내 올 리 없는 올 이를 기다려
외따로이 열고 사는 세월이 있어
* 거리에서 - 유치환
지극히 허전한 시간이 있다
지극히 허전한 공간이 있다
오후도 해 지기는 아직 이른 때쯤,參差히 人車의 오고가는 명동입구 같은 데를 지나치다 우연히 남쪽 백화점 위에쯤에 걸려있는 희멀건히 퇴색한 헌 손수건 같은 하늘 쪼각을 보라
그리면은 너는 오늘 이 시간까지를 진실로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왔으며 또한 살아 있는지, 천길 벼랑 끝에 딛고 선 절망의 공허감에 시방 이빨을 갈고 내닫는 차쇠바퀴에 반드시 두개골을 부딪고 말리라
* 너에게 - 유치환
물같이 푸른 조석(朝夕)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거리에서
너는 좋은 이웃과
푸른 하늘과 꽃을 더불어 살라
그 거리를 지키는 고독한 산정(山頂)을
나는 밤마다 호을로 걷고 있노니
운명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하지 않음이 운명이니라
* 생명의 서 일장(一章)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알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아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을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는 회한에 회한(悔恨)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슬픔은 불행이 아니다 - 유치환
모색(暮色)이 초연한 거리 끝에 서서
내가 이렇게 눈물짓는 것은
불행(不幸)하여서가 아니다.
시방 기척 없이 저무는 먼 산이며
거리위에 아련히 비낀 초생달이며
자취없이 사라지는 놀구름이며-
이들의 스스로운 있음과 그 행지(行止)의 뜻을
나의 목숨이 새기어 느낄 수 있음의
그 행복(幸福)에 흐느껴 눈물짓는 것이다.
- 진실로 진실로
의지없고 덧없음으로 하여
보배롭고 거룩한 이 꽃받침자리여.
* 목숨 - 유치환
하나 모래알에
삼천 세계가 잠기어 있고
반짝이는 한 성망에
천년의 흥망이 감추였거늘
이 광대무변한 우주 가운데
오직 비길 수없이 작은 나의 목숨이여
비길수 없이 작은 목숨이기에
아아 표표한 이 즐거움이여
* 깃발 -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그리움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아즉히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인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려 나부끼고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엉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시인에게 - 유치환
영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정수리 위에 도사려
내가 목숨을 목숨함에는
솔개에게 모자보다 무연(無緣)한 것.
이 날 짐짓
나를 붙들어 놓지 않는 것은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 되는 무가내한 설정에
비바람에 보듬긴 나무.
햇빛에 잎새같은 열망.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 짧은 인생의 사무치는 뜨거움에
차라리 나는 가두 경세가(經世家).
마침내 부유의 목숨대로
보라빛 한 모금 다비되어
영원의 희멀건 상판을 기어 사라질 날이
얼마나 시원한 소진이랴.
그러기에 시인이여
오늘 아픈 인생과는 아예 무관한 너는
예술과 더불어 곰곰히 영원하라.
* 나무의 노래 - 유치환
외로움, 그것이 외로운 것 아니란다
그것을 끝내 견뎌남이 진실로 외로운 것
세월이여, 얼마나 부질없이 너는
내게 청춘을 두고 가고 또 앗아가고
그리하여 이렇게 여기에 무료히 세워 두었는가
무심히 내게 와 깃들이는 바람결이여, 새들이여
너희 마음껏 내게서 즐검을 누리고 가라
그러나 마침내 너희는 나의 깊은 안에는 닿지 않는것
별이여, 오직 나의 별이여
밤이며는 너를 우러러 드리는 간곡한 애도에
나의 어둔 키는 일곱 곱이나 자라 크나니
허구한 낮을 허전히
이렇게 오만 바람에 불리우고 섰으매
이 애절한 나의 별을 지니지 않은 줄로 아느냐
아아 이대로 나는 외로우리라, 끝내 정정하리라
* 산처럼 - 유치환
오직 한 장 사모의 푸르름만을 우러러
눈은 보지도 않노라
귀는 듣지도 않노라
저 먼 땅끝 닥아 솟은 산,
너메 산, 또 그너머
가장 아슬히 지켜 선 산 하나--
아아 그는 나의 영원한 사모에의 자세
무수히 침부하는 인간의 애환의 능선 넘어
마지막 간구의 그 목마른 발돋움으로
계절도 이미 絶한 苛熱에 항시 섰으매
이 아침날에도
그 아린 孤高를 호궤받듯
정결히도 백설 신령스리 외로 입혀 있고
내 또한 한 밤을
전전(轉輾)없이 안식함을 얻었음은
그 매운 외롬 그같이 설은 축복 입더메서랴
아아 너는 나의 영원--
짐짓 소망없는 저자에
더불어 내 차라리 어리숙게 살되
오직 너에게의 이 푸르름만을 우럴어
귀는 듣지 않노라
눈은 보지 않노라
* 열애 - 유치환
-생떽쥐베리에게
-- 행동의 작가이자 비행가인 그는 1944년 7월 31일밤 지구를 이륙하여 길 떠난 채 상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저 절대한 광막앞에선
인간의 유대란 얼마나 의지없는 것인가
그러기에 너를
항로에서 놓친 험상스런 밤이면
모든 공항들이 목마르게 불러 찾는 그 어디에도 없는
그 어디메 막막한 절벽 속
너는 너대로 홀로
진실로 홀로
도시 간 데 없는
열애하는 인간의 가녀린 등불
그 귀로에의 틈바구니 바늘 구멍을 찾기에
아련한 계량반의 진량(震量)을 지키며
죽음의 비정과 암흑 위를 비상(飛翔)하는
고독의 신
그리고도 너는
그 열애하는 인간을 구하여 차라리
이웃 나들이 가듯 매양 가벼운 몸매로
저 허허로운 하늘로 길 나섰던 것이니
그리하여 어느 날 그대로 마침내
너는 영 아니 돌아오고
오늘도 여기 나의 문전 거리엔
너의 信愛하는 인간의 모습들은
아쉬운 천냥을 얻기에
종일을 분산히 다툼들의 꽃밭인데
너는 은하수 근처 어디메
돌아올 수 없는 성운 골짜기에서
그 성실한 사유의 사래 긴 밭을
호올로 호올로 일으키고 있단 말인가
* 바위 -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遠宙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유치환 초기시 31편 첫 공개 - 한겨레신문
청마 유치환(1908~1967)의 미발표 초기시 31편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영문학자 이성일씨(연세대 교수)가 발굴해 <현대문학> 5월호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청마는 말년에 <초고집I>(청마시초 이전)이라는 제목의 신국판 크기 공책에 모두 41편의 초기시를 따로 정서해 놓았다. 이 가운데 10편은 청마가 등단한 1931년부터 그의 첫 시집인 <청마시초>를 간행한 39년 사이에 발표됐지만 시집에는 수록되지 않은 작품들이며, 나머지 31편은 아무 데도 발표되지 않은 작품들로 이번에 처음 공개된 것들이다.
이성일 교수는 <현대문학>에 기고한 발굴 경위문에서 지난 89년 자신이 영역해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현대시인선집>에 삽화로 실을 시인의 육필 원고를 찾던 중 청마의 딸인 인전씨에게서 이 공책을 건네받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청마 스스로 시집에 포함시키지 않은 시들을 세상에 공개하는 문제를 놓고 망설였으나 '후세의 문학도가 청마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 공책에 담긴 `감골에서 온 아이'는 작품 옆에`1966. 10.29. 筆'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청마가 교통사고로 숨지기(67년 2월13일) 불과 얼마 전에 스스로 정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들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서울대 국문과)는 '지난날에 써두었거나 발표된 작품 중 시집 <청마시초>에 묶이지 않은 작품에 대한 애착이 솟아 다른 공책이나 기발표된 잡지에서 옮겨 적은 것이 <초고집I>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이 공책에 정리된 초기시들은 뒤에 청마 시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고독한 정신의 높이, 선비적 염결성의 초기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가령 미발표작의 하나인 `정물'은 "속에는 정염의 불꽃을 담고/겉으로는 차디찬 말 없는 정물/…/죽은 듯 정좌한 정물의 마음은/저 천공에 준립한 태산과 통하였고나"라고 노래하고 있어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희노에 움직이지 않고"로 시작되는 청마의 대표작 `바위'를 떠오르게 한다.
이 교수도 '청마가 원숙기에 쓴 작품들에서 우리에게 말하여주는 삶에 대한 웅혼한 철학이며, 이를 전해주기 위해 그가 사용한 심상들, 그리고 그가 즐겨 쓴 시어들이 이미 이 41편의 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08년 7월14일 경남 충무에서 태어난 청마는 31년 <문예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는 생전에 모두 14권의 시집을 상재했으며, 지난 84년 정현기 교수의 편집으로 정음사에서 <청마전집>이 간행되었다.
* 귀고(다시읽는 한국시) - 조선일보(이어령)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깃발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내가 트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그 길을 찾아가면
우리 집은 유약국
행이불신하시는 아버지께선 어느덧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나는 끼고 온 신간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정지용의 [고향]과 청마 유치환의 시 [귀고](돌아갈귀, 고향 고)를 놓고 어느쪽이 더 시적으로 느껴지는가라고 물으면 어떻게 될까. 백이면 백 모두가 정지용쪽을 손꼽을 것이다. 노래가사로 널리 불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향풍경을 묘사한 이미지도 음율도 그리고 그 정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에비해 선창가에서부터 고향집에 돌아와 부모님에게 절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청마의 [귀고]는 시라고 하기보다는 무슨 중학교 학생이 쓴 작문 한토막 같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로뇨]의 지용의 시에서 반복적인 음악성을 제거하고 [아니로뇨]와 같은 종결어미를 [아니다]로 바꿔놓으면 [고향에 돌아와도 옛날 고향이 아니다]라는 지극히 밀도없는 산문적 진술이 되고 만다. 그러고 생각하면 오히려 산문적인 것은 지용쪽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말은 귀향객들 누구에게라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상투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현란한 시적 수식어를 붙여도 지용의 [고향]은 근본적으로 [고향은 옛날 고향이 아니다]의 예문을 항목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나는 끼고 온 신간을 그림책인양 보았소]라는 [귀고]의 고향은 일상적 의미공간으로는 환원불가능한 시적고향인 것이다. [고향 선창가]의 바다로부터 시작한 그 [물리적 고향]은 책력이나 그림책과 같은 [책의 공간]으로 전환되어 가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고]의 고향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일상적인 고향공간이 시적 언어공간으로 바뀌어가는 그 변형과정을 읽고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바다가 남쪽으로 트인 조각난 하늘과 송백의 산으로 바뀌고, 그것이 다시 돌다리와 집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로, 그리고 그 마을은 다시 유약국이라는 고향집으로 좁혀진다. 이러한 공간의 수축작용은 집에서 대문으로, 대문에서 문지방으로, 문지방에서 방안으로 이어지고, 이윽고 그 내부의구심점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리하게 된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공간이동은 행동축과 연계되어 있다. [배에서 내리다]로 시작된 고향으로의 접근행동은 무수한 경계영역을 통하여 아버지에게 절을 하다로 이어진다. [절하기]는 아버지의 몸과 자기의 몸의 거리를 최소한으로 좁혀주는 접근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고향과 자신의 거리는 절하기에 의해서 거의 제로상태가 된다. 하지만 고향에의 접근을 멈추지않고 거기에서 더 한발짝 들어간 것이 이 시의 마지막 행에 나타나 있는 [어머니의 몸]이다. 아버지의 신체공간이 [돋보기]로 줄어들듯이 [어머니의 몸]은 [책력]이라는 비유에 의해서 공간과 그 시간이 모두 응축된다. 돋보기가 아버지의 시간을 나타내는 환유이고([아버지께선 어느덧/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책력은 어머니의 시간을 나타내는 은유이다([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니 곁에서]). 돋보기…책력들은 모두 [책읽기]라는 행위소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청마는 이 [독서의 추상공간]으로 고향의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다.
실제 물리적 거리를 놓고 보더라도 인사를 하고 받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어머니 곁]에서 신간을 읽고있는 나는 거의 거리를 느낄 수 없게 좁혀져 있다. 내가 끼고 온 신간이라는 말에서도 엿볼 수도 있듯이 여기의 신간은 자기자신의 몸과 일체성을 나타내는 환유로서 어머니의 몸으로 비유된 헌 책력의 은유와 대비를 이룬다. 이 대비를 통해서 지금까지 나와 고향사이의 공간적 거리가 시간적 거리로 그 위상이 바뀌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새책과 헌책으로 상징되는 나와 어머니의 신체적 차이는 책읽기에 의해서 소멸되고, 내가 모태속으로 회귀해가는 시간의 소급운동이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신간을 그림책인양 보았소]라는 언표에 의해서 드러난다. [어머니의 곁에서 책읽기]란 어른들이 읽는 [신간]을 유아들이 보는 옛날 [그림책]으로 바꿔놓는 내면적 행위이다. [책읽기에서 책보기]로, [문자에서 그림으로], [어른의 몸에서 아이의 몸]으로 어머니의 몸(고향)은 그 시간성을 역류시킨다.
그렇게해서 고향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신체성)으로 수축되고, 그 몸은 다시 책으로 상징되는 언어공간으로, 그리고 그것은 시간을 나타내는 책력장의 숫자나 유아의 그림으로 환원된다. 고향의 섬이 육지=도시와 대비되는 공간을 해체하고 있듯이 신간을 그림책처럼 읽고있는 어머니 몸의 그 공간은 지식(책읽기)과 역사성(신간)을 모두 해체해버린다.
그래서 육지에서 섬으로, 어른에서 아이로, 책읽기에서 책보기로 끝없는 구심점을 향한 공간의 수축작용과 모태로 돌아가는 시간의 소급행위의 이중렌즈에 의해 찍힌 [귀고]의 고향은 우리가 추석때 돌아가는 그런 고향의 의미와는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시적 공간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고향인 것이다.
일상적 공간은 많은 경계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귀고]의 시에도 다섯개의 경계영역이 나타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번째 경계가 바다와 뭍사이에 있는 선창가이고, 두번째 경계가 마을안과 마을밖을 나누는 [돌다리]의 경계영역이다. 세번째는 유약국으로 이 시에서는 무표항으로 되어 있으나 그것은 담이라는 경계영역으로 표시된다. 넷째 경계영역은 아버지 어머니와 나의 몸이라고 하는 생체적 경계영역으로 성명처럼 추상적인 것과 피부처럼 구상적인 것으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경계영역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경계영역은 완전히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추상적인 내면의 경계영역에 속한다. 절을 하다와 절을 받다는 아버지와 나의 경계영역과 그것을 넘어 들어가는 행위를 나타낸다. 그리고 어머니 곁에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신간책을 그림책처럼 보고있는 것이 바로 내부영역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이다.
고향은 이같이 많은 삶의 경계영역을 돌파하여 보이지않는 내부의 구심점으로까지 돌아가려는 공간과 시간으로 출현한다. 인간의 행위와 역사는 크게 말해서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원심운동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구심운동으로 되어 있다. 그 원심운동에서 생겨난 것이 객지이고, 그 구심운동에서 탄생되는 것이 고향이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라고 한탄한 지용의 고향이 [시적으로 표현된 산문적인 고향]이라고 한다면 [어머니 옆에서 내가 끼고 온 신간을 그림책인양 보았소]라고 한 청마의 [귀고]는 산문적으로 표현된 시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마는 고향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무수한 경계영역을 넘어 끝없이 수축해 들어가는 구심적 공간, 그리고 출생의 모태를 향해서 끝없이 역류하는 시간으로서 고향의 의미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석학교수>
* 유치환
호는 청마(靑馬)
1908 7월 14일 경남 충무시 태평동 출생
1922 통영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도일하여 도오야마중학(豊山中學) 입학. 박명국, 김거주, 최두춘, 유치진과 함게 동인회 <토성> 조직
1931 시 <정적>을 <문예월간>2호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1937 문예동인지 <생리(生理)>를 장응두, 최상규 등과 함께 발행
1946 청년문학가협회 회장 역임
1947 제1회 청년문학가협회 시인상 수상
1950 한국전쟁시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를 조직
1957 한국시인협회 초대회장에 피선
1967 2월 13일 윤화(輪禍)로 사망
시집 <청마시초> <생명의 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깃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마침내 사랑은 이렇게 오더니라
호는 청마(靑馬)
1908 7월 14일 경남 충무시 태평동 출생
1922 통영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도일하여 도오야마중학(豊山中學) 입학. 박명국, 김거주, 최두춘, 유치진과 함게 동인회 <토성> 조직
1931 시 <정적>을 <문예월간>2호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1937 문예동인지 <생리(生理)>를 장응두, 최상규 등과 함께 발행
1946 청년문학가협회 회장 역임
1947 제1회 청년문학가협회 시인상 수상
1950 한국전쟁시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를 조직
1957 한국시인협회 초대회장에 피선
1967 2월 13일 윤화(輪禍)로 사망
시집 <청마시초> <생명의 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깃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마침내 사랑은 이렇게 오더니라
첫댓글 대학시절에 유치환 시를 참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생명의 서와 행복은 특히 좋아했구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