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 해전 2 - (철갑상어)
남북으로 길쭉한 카스피해의 면적은 37만 제곱킬로미터로 우리 한반도 면적 22만 제곱킬로미터의 1.7배나 된다.
호수의 해안선은 남쪽의 이란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쪽의 아제르바이잔, 북쪽의 러시아, 북동쪽의 카자흐스탄, 동쪽의 투르크메니스탄 등 5개국에 둘러싸여 접해 있다.
카스피해 북부는 수심이 5m 정도로 낮고 남부는 최대 깊이가 1,000m를 넘는다.
염도는 북쪽 볼가강이 흘러드는 강 하구는 1% 정도지만 증발이 심한 곳은 13%나 된다.
이곳은 오랫동안 철갑상어잡이로 유명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해수면이 낮아지고 좋은 조건의 산란장이 메말라 철갑상어의 수가 많이 감소하였다.
그런데 카스피해에 대규모로 매장되어있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자원개발을 둘러싸고 연안 국가 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카스피해가 ‘호수’라면 이곳에 매장된 지하자원은 연안국이 함께 관리하지만, ‘바다’로 인정되면 배타적 경제수역이 적용되어 각 국가가 해안선의 길이에 따라 독점적으로 자원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해안선이 짧은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보고 자원을 연안국들이 균등하게 배분하기를 원하고 있으나, 해안선이 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은 ‘바다’로 간주하여 각국의 연안 길이에 비례해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볼가강’이 흘러드는 카스피해의 북쪽 끝에서 육지 서쪽으로 800km쯤 거리에 ‘돈강’이 흘러 드는, 흑해와 연결되는 ‘아조프해’가 있다.
볼가강과 돈강을 연결하는 길이 100km의 ‘볼가-돈 운하’가 있어서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대형 선박의 운항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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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메니스탄 세르다르 북쪽 200km 지점에 있는 계곡의 초원지대, 쿠르드족 민병대 YPG 소속인 데킨 부대와 가족들이 은거하고 있는 산골 마을.
움막 같은 데킨 대장의 숙소에서 사막의 여우 페넥 폭스 대장 남창선이 다소 긴장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철갑상어에 받혀서 배가 뒤집어졌다고요?”
“예. 나랑 대원들 세 명이 물에 빠졌는데, 그놈이 우리를 공격했어요.”
“괴뉠 부대장은 찰과상만 입은 것 같은데요?”
“나는 마침 로보캅 슈트를 입고 있어서 가슴을 받혔는데도 상처를 입지 않았습니다. 대원 세 명은 갈비뼈가 나갔어요.”
“아이구, 저런! 그 철갑상어가 대체 얼마나 크길래, 아무리 나무로 만든 작은 배지만, 주둥이로 구멍을 냈단 말입니까?”
“아, 여기 카스피해에 사는 철갑상어는 두 종류가 있소. 우리가 식용으로 잡는 건 루테누스라고 부르는데, 길이가 1미터가 채 안 되오. 그런데, 스텔라투스라고, 캐비어용으로 잡는 아주 큰 놈은 길이가 3미터 되는 놈도 있소. 무게도 200킬로그램 정도 나가요.”
“아, 그렇게나 크게 자랍니까? 몇 년이나 크면 그 정도 되나요?”
“아마 오늘 새벽에 공격한 놈은 백 년은 된 놈일 거요.”
“백 년이라고요? 철갑상어가 그렇게나 오래 산다는 말입니까?”
“그럼요. 수명이 한 이삼 백 년은 될걸요?”
“아이구야~ 철갑상어 그거, 우습게 볼 놈이 아니네요?”
“로보캅 장갑을 끼고 갔더라면 그놈을 잡을 수 있었는데, 아깝습니다.”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어두운 물속인데, 그놈이 주둥이로 얼굴이라도 들이받았으면 어쩔 뻔했습니까? 하하.”
“그래, 창 대장님 말씀이 옳아. 물고기든 짐승이든 함부로 얕보다가는 크게 당하는 수가 있어.”
“거기는 육지에 별도로 생긴 내만이라서 수심이 그렇게 깊지 않습니다. 한 5미터 이내일 거예요. 그놈이 카스피해로 통하는 수로를 타고 들어온 모양인데, 낮에 가보면 어쩌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 ‘카라보가스만’ 이라는 데는 카스피해가 아니고 모래톱으로 격리된 내륙 호수군요?”
“그래요. 그 모래톱 폭이 넓어서 그 위로 도로도 나 있고 송유관도 지나갑니다. 카스피해로 나가는 통로는 폭이 2백 미터쯤 되고 길이가 5km 정도 되는 얕은 수로밖에 없어요. 제 놈이 들어올 때는 쉬웠겠지만 나갈 때는 그 출구를 쉽게 찾지는 못할 겁니다. 하하.”
괴뉠이 자기 부하들을 상처 입힌 그 철갑상어를 꼭 잡고 싶은 모양이다.
하긴 로보캅 장갑 끼고 낮에 간다면 못 잡을 것도 없겠다 싶다.
“데킨 대장님도 로보캅 슈트 입고 운동 좀 해보셨습니까?”
“그럼요! 옷이 얇아서 전투복 안에 내복처럼 껴입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창 대장도 입어봐서 알겠지만, 100kg 정도는 양손으로 거뜬히 들고 한 4km는 달릴 수 있던데요? 허허.”
“그렇더군요. 배터리만 재충전하면 거리야 얼마든지 더 갈 수 있더군요. 장갑 끼니까 손목이랑 주먹 힘이 두세 배는 더 세어지는 것 같죠? 무릎도 그렇고요.”
“맞소. 나는 소총 총부리도 휠 수 있을 것 같습디다. 허허.”
구레나룻 수염의 데킨이 창선의 종아리 굵기의 팔뚝을 자랑스럽게 꺾어 보였다.
“러시아 기술자들은 어떻습니까? 고분고분합니까?”
지난번에 러시아 부대를 쳐부수고 거기에 있던 웨어러블 로보캅 슈트 다섯 벌과 관리 기술자 다섯 명을 데려왔었다.
그중 두벌을 데킨과 괴뉠에게 주고 나머지 세 벌은 창선과 자기 분대장 두 명이 나눠 가졌다.
혹시라도 슈트에 문제가 생기면 러시아 기술자들이 수선해 줄 것이다.
“그렇소. 처음에는 자기들을 어쩔까 봐 잔뜩 겁을 먹더니, 음식 제대로 주고 잘 대해주니까 지금은 포기하고 말 잘 듣고 있소.”
데킨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친구들이 뭐 필요하다고 구해달라는 게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오늘은 그것 때문에 와봤습니다.”
“뭐, 아직은 특별히 요청하는 건 없소. 거기 있던 기계랑 부품들을 깡그리 다 싣고 와서 그런가 보오.”
“예,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한국에서 물건 들어오는 게 있어서요.”
“아, 그래요? 아무튼 여러 가지로 고맙소, 창 대장. 우리가 뭐 도울 거라도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오.”
“예, 그러지요. 데킨 대장님도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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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북쪽, 카스피해 남쪽에 인접한 고르간 시의 창원-터키 훈제칠면조 가공공장 사장실.
사장인 고문도가 공장장 한충석, 전무 남창선과 둘러앉아 회의하고 있다.
문도는 대원 9명을 데리고 거제도 ‘구국대열’ 본부를 떠나 털보 선장 심천보가 모는 밀수품 운반선 ‘창원-03호’에 선원으로 가장하여 올라탔다.
싱가포르와 인도양을 거쳐 근 일주일 만에 이란 남쪽 차바하르 항구 근처에 도착해서 몰래 입국했다.
창선의 제1분대와 제2분대 대원 18명이 나무 포장 상자에 든 흑표전차용 엔진 부품인 실린더를 하역하고, 터키 흑표전차 제조회사인 오토카(사)로 운반하는 도중에 공장에 잠시 들른 것이다.
심천보 선장은 고철과 중고자동차가 가득 실린 1만 톤급 화물선 창원-03호를 몰고 수에즈 운하를 지나 이스탄불로 향한다.
공식적으로는 고철과 중고자동차를 터키에 수출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새로 온 대원들과 서로 인사는 제대로 하고 있나요?”
“예. 식당에 모여서 각자 자기소개하고 얘기들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9명이 전부인가요?”
창선은 오야붕인 단장 신창원 회장으로부터 문도가 대원 36명을 데리고 갈 거라는 연락을 받았었다.
“아니에요. 외항선 선원으로 위장해 오느라고 우선 나까지 10명만 가짜 서류 만들어서 급히 온 겁니다. 나머지 대원들은 항공편 되는 대로 계속 올 거예요. 시국이 어수선하니까 비행기도 정상으로 운항을 못 하나 봅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이 북한 핵미사일 공격을 받고 쑥대밭이 됐는데, 전쟁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고 테러 분자들이 극성을 부릴 것이 뻔해서, 각국의 국제선 여객기의 정상적인 운항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않다.
“아, 그렇군요. 비행기 편 잡기가 쉽지 않은가 보네요? 그런데, 실린더 말고 따로 가져온 큰 상자 속에는 뭐가 들어있습니까?”
창선이 아까부터 궁금하던 걸 물어봤다.
“아, 그거. 드론 잠수정을 몇 대 가져왔어요.”
“예? 드론 잠수정을요? 어디다 쓰게요?”
사막의 이란 땅에 물속에서 운항하는 드론 잠수정을 왜 가져왔나 싶다.
“이정훈 단장 말로는 머잖아 러시아와 터키 간에 전투가 벌어질 것 같답니다.”
문도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들은 얘기를 그대로 알려줬다.
이정훈은 드론 전투단 단장이다.
“그래요? 그러면 혹시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통해서 터키로 군대를 보낼 거라는 뜻인가요?”
창선도 짐작은 하고 있던 터라 금세 이해를 했다.
“그렇소. 그래서 우리가 카스피해에 드론 잠수정을 배치하고 우선 러시아 군대의 동태를 살피자는 겁니다.”
“그렇겠네요. 터키가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서 북쪽 조지아 국경선에는 군대를 쫙 깔아 놨겠죠?”
조지아는 터키와 러시아 사이에 있는 나라이다.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카스피해로 들어와서 군대도 허술한 아제르바이잔에 상륙하고, 우리가 넘나드는 이란 서북쪽 아르메니아 국경을 넘을 가능성이 높지요.”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와 민족 분쟁을 겪으면서 나라도 두 쪽으로 나뉘고 치안도 엉망이다.
그래서 창선도 이란에서 북쪽의 아제르바이잔 국경을 넘어가 서쪽으로 아르메니아를 통과하여 터키의 국경선으로 넘어 들어간다.
“드론 잠수정은 몇 대나 가져오셨습니까?”
“2인승 두 대하고 4인승 네 대 가져왔어요. 더 가져오고 싶었는데, 지금 일본하고 한판 붙고 있어서 우선은 그것만 가져왔소.”
“그 정도만 해도 한꺼번에 20명이 출동할 수 있으니까 적은 수량은 아니네요. 그러면 고 단장님 대원만 사용할 겁니까?”
“아니요! 절반으로 나눠서 남 단장님 대원들도 사용할 겁니다. 대원 중에 드론 잠수정 운전해본 요원은 있지요?”
“예. 석 달 전에 귀국했을 때 운전 연습한 대원들이 절반은 넘습니다. 부대장들은 베테랑 수준입니다. 하하.”
창선이 기분 좋아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드론 잠수정은 ‘고건만’ 별장에 보관할 거죠?”
잠자코 듣고만 있던 한충석 공장장이 감을 잡고 나섰다.
“그렇습니다. 회장님이 이때를 예측한 건지 별장 하나는 아주 잘 잡았어요. 하하.”
문도가 신창원 회장의 선견지명을 칭찬했다.
‘고건만’은 고르간에서 서쪽으로 불과 40km 거리에 있는 항만이다.
카스피해의 남쪽 끝부분으로 방파제로 막은 항만의 폭이 10km나 되고 길이는 50km에 이른다.
그 ‘고건만’의 동쪽 해안에 접한 부지가 아주 넓은 고택을 사들였다.
요트가 정박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춰져 있는 거로 봐서 아마 1970년대 팔레비 국왕 시절에 왕족의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보인다.
그 별장에서 카스피 해변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까지는 500km의 거리이고 가까운 아제르바이잔 국경까지는 400km 정도밖에 안 된다.
드론 잠수정을 타고 수중 1m 깊이로 잠수한 상태의 최고속도인 시속 40노트, 74km로 달리면 7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해상에 떠서 달리면 그 절반의 시간에 도착할 수도 있다.
카스피해 북쪽 끝까지의 거리인 1,200km도 해상에 떠서 최고속도 시속 80노트, 148km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리면 8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그럼 대원들 시켜서 드론 잠수정을 우리 별장에 나르도록 하겠습니다.”
창선이 서두르자며 허리를 폈다.
드론 잠수정 여섯 대를 별장 요트 정박장에 옮겨다 놓고 창선의 부대는 밀수품 운반차 터키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그럽시다. 나는 오늘 밤에 우리 대원 9명 데리고 카스피해 북쪽 절반 정도까지 올라가서 러시아 영해에 한 번 들어갔다 와볼까 생각 중이오. 하하.”
문도가 자랑스럽게 자기 계획을 창선에게 내비쳤다.
“아, 오늘 밤에 당장 저 카스피해를 드론 잠수정으로 정복하게요? 여독도 아직 안 풀렸을 텐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절반 거리라도 경부 고속도로의 1.5배 정도나 되는 거리인데요?”
“아, 그렇게나 먼 거리였던가요? 그러면 물 위에 떠서 야구공 속도로 날아갔다 오면, 8시간이면 충분하겠네요? 하하.”
문도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물속에 잠수한 채 원격 무인 드론 잠수정 ROV를 앞세워서 야간 수중탐사 훈련부터 치를 생각이다.
창선이 뭔가 문도에게 말해주려다가 마음속으로 도리질을 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카스피해에 대형 철갑상어가 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다.
그런데 문도가 너무 의기양양하게 뻐기는 것 같아 약간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괜한 소리를 했다가 다녀와서 철갑상어 흔적도 못 봤는데 괜히 시간만 더뎠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