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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본적인 최소 충족 요구 조건은 의식주가 아닌가 합니다. 그 가운데 의(衣), 즉 옷은 나약한 인간의 육체로부터 추위를 막아주고 나아가 신분 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옷에 대해서는 이미 『이미지로 읽는 한자』(263쪽)에서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옷을 짓는데 가장 기본적인 재료가 되는 실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의 재료는 무명실을 만드는 목화, 비단의 원료가 되는 누에고치, 삼베를 만드는 삼, 은자들의 옷인 갈의(葛衣)를 만드는 칡섬유, 그리고 화학섬유인 나일론 등 참으로 많습니다. 실을 다 만들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보관하기 좋도록 타래로 만들어 부피를 줄입니다. 위의 실은 무명실타래입니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실은 양쪽 끝이 있습니다. 한자로는 단서(端緖)라고 합니다. 어떤 복잡하게 얽힌 사건도 실의 끄트머리인 단서를 찾듯이 해야하죠. 실마리를 나타내는 서(緖)자에 보면 실을 나타내는 글자인 糸자가 들어 있습니다. 이 글자는 음이 멱인데 '가는 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는 실 멱(糸)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갑골문에서는 그냥 실타래만 표현하였습니다만 금문부터는 실타래 아래 위로 실타래 양끝의 실마리[端緖]를 표현해놓았습니다. 이미 서(緖)자에서 말한 것처럼 요즘 이 멱(糸)자는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고 실과 관련된 한자의 부수자로만 쓰이게 되었습니다. 많은 상형 한자들은 단독자로는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부수자만으로 쓰이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한자 창제의 원리인만큼 무시해서는 안 되겠죠. 이 실타래가 여러 개 있는 모양이 '실 사(絲)'자입니다. 실 사(絲)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위 멱(糸)자와 비교하면 똑같은 모양 2개를 겹쳐 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멱(糸)자는 부수로만 쓰인다고 하였는데 '실사 변'이라고 합니다. 단독으로 쓰이지 못하게 된 것만 해도 억울한데 명칭까지 내주고 만 셈이지요. 사(絲)자에는 실타래가 두 타래 밖에 표현되지 않았습니다면 앞에서도 몇 번이나 보았듯이 문자상으로 2개만 중복하면 그건 이미 단순히 2개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매우 많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위 명주실타래처럼 네 타래나 되어도 실상은 부족할 지도 모르지요. 요즘은 집에서 실을 쓸 일이 사실상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반짇고리도 옛날처럼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엄마가 저런 실타래를 시장에서 사오면 실꾸리에 감아야 했고, 실타래를 사온 날이면 아이들도 꼼짝없이 붙잡혀서 봉사를 하여야 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사진처럼 엄마나 할머니가 실을 감을 때는 실타래를 저렇게 두 손으로 벌려서 감는 방향에 따라 손을 좌우로 움직이며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실꾸리는 종이를 꼬깃꼬깃 접은 것과 막대 모양의 두 가지가 있었는데, 종이 실꾸리는 실을 둥글게 감을 때 썼고 막대 모양의 실꾸리는 길쭉하게 감을 때 썼습니다. 어릴 때 붙잡혀 실 감는 것을 도와줄 때는 정말이지 지겨워서 혼이 났는데 지금은 다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런 경우는 실타래의 실마리를 잘 찾아내어 푼 경우이고 잘 풀지를 못하여 얽히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낭패였습니다. 모든 물자가 풍족해진 요즘이야 쓰기에 편하게 아예 거의 감겨져서 나오기도 하거니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그거 몇 푼 한다고' 하면서 굳이 풀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의 어머니들은 포기할 줄을 몰랐죠. 실값도 실값이지만 쓸데없이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곰곰이 잘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 감은 실은 실통 속에 담아서 보관을 하였습니다. 사진에는 고작 네 개의 실뭉치 밖에 없습니다만 우리 어릴 때는 커다란 대광주리에 각종 실뭉치가 종류별로 정말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실타래가 실통 안에서 서로 얽히고 꼬여서 푸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어지러울 란(亂)'자입니다. 어지러울 란(亂) 금문대전-소전-해서 란(亂)자는 자세히 분석을 해보면 갑골문의 '가는실 멱(糸)'자 같은 모양이 중간에 보입니다. 그리고 H 같은 형태가 보이는데 아마 실을 갈무리해둔 상자를 나타내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위로 손을 나타내는 요소인 조(爪)와 우(又)가 있습니다. 옆의 'ㄱ'처럼 굽은 긴 것은 코바늘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쉽게 말해서 실상자 안에서 얽힌 실타래를 두 손과 코바늘을 써서 푸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자가 바로 '어지러울 란(亂)'자입니다. 그러나 심하게 꼬인 경우는 인내심이 아무리 강한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라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을 것입니다. '어지러울 란(亂)'자 만큼이나 복잡하게 꼬아놓은 매듭으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소아시아의 프리기아라는 나라에 고르디우스라는 사람이 신전의 기둥에 묶어놓은 마차가 있었는데 이것을 푸는 사람이 소아시아를 통치하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돌에 박힌 엑스칼리버를 뽑아 왕이 되려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이 그 매듭을 풀려고 시도하고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케도니아의 정복왕 알렉산더가 나타나게 됩니다. 알렉산더는 결과적으로 이 매듭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페델레 피셰티(Fedele Fischetti)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더 알렉산더의 해결책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그 복잡한 매듭을 하나하나 푸는 방법 대신 과감하게 칼로 쳐서 잘라버린 것이지요. 콜럼버스도 아마 알렉산더에게서 영감을 받은 모양입니다. 꼬일 대로 꼬여서 더 이상 풀 방법이 없어서 알렉산더처럼 과감하게 끊어서 해결하는 방법을 나타낸 글자가 있는데 바로 '끊을 단(斷)'자입니다. 끊을 단(斷) 금문대전-소전-해서 상자 안에는 네 개의 실타래가 있는데 서로 얽혀서 엉클어진 것 같습니다. 이에 알렉산더처럼 칼(도끼: 斤)을 써서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글자에 과감하다는 뜻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결단(決斷), 과단(果斷) 등의 단어에 잘 나타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죽도 밥도 되지 않는 상황과는 정반대지요. 반면에 실꾸리의 실을 다 쓰면 위처럼 실을 갈무리해놓은 실 통에서 그야말로 단서(端緖), 즉 실의 끝을 찾아서 서로 이어 계속(繼續) 써야 했습니다. 계속(繼續)이란 한자에는 모두 '실사 변(糸)'이 있고 훈은 '잇는다'입니다. 위의 실 통에 담겨 있는 여러 개의 실꾸리에서 실을 이어서 쓰는 글자가 바로 '이을 계(繼)'자입니다. 이을 계(繼) 금문대전-소전-해서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실을 넣어두는 통은 란(亂)자와 단(斷), 계(繼)자에 모두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세 자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금문대전 이후에, 비교적 늦게 나타나는 글자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한자들이 아주 옛날에는 제사나 점복(占卜)과는 비교적 거리가 멀었다는 글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실도 실로 그치면 별 효용성이 없습니다. 실로 할 수 있는 일은 옷감을 꿰매는 일이지만 한 오리의 가는 실(糸)은 옷감을 만드는 천의 원료가 됩니다. 옛날에는 옷감도 집에서 다 짰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집에서 베를 짜는 베틀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가마니 짜는 기계가 있었는데 베틀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베틀은 사진과 같이 생겼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에게는 정말로 눈물의 베틀이라고 할 만할 것입니다. 웬만하면 거의 모든 베를 집에서 짜야하기도 했지만 부인네들의 손재주, 곧 능력의 잣대가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때의 악부민가에 「산에 올라 궁궁이를 캐고(上山采蘼蕪)」라는 시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新人工織縑 새 사람은 누런 비단을 잘 짜지만, 故人工織素 옛 사람은 흰 비단을 잘 짰지요. 織縑日一匹 누런 비단 하루에 한 필 짜지만, 織素五丈餘 흰 비단은 하루에 다섯 길 넘게 짰지요 비단의 품질로 치면 무늬 없는 하얀 비단이 누런 비단보다 훨씬 고급이었습니다. 한 필은 네 길[丈]입니다. 곧 새부인은 고급 비단인 흰 비단을 하루에 한 필하고도 한 길이나 짜던 옛 부인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누런 비단조차 고작 하루에 한 필밖에 못 짠다는 옛 남편의 푸념입니다. 복잡한 남자의 심리를 보여줍니다. 지금의 부인이 외모는 더 뛰어나지만 손재주는 한참 못 미친다는 뜻도 되지만 현 부인과 헤어질 생각도 없이 옛 부인에게도 미련이 남아 있는 그런 심리가 엿보입니다. 어쨌든 옛날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베를 짜야 했고 또 베짜기를 통하여 이런저런 비교도 당했음이 틀림없습니다. 한 여인이 베틀에 앉아 열심히 베를 짜고 있습니다. 베틀에는 앉은 방향에서 세로로 미리 실을 걸쳐놓습니다. 이렇게 미리 걸쳐놓는 실을 날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대추씨(럭비공) 비슷한 모양의 물건을 손에 들고 벌어진 날실 사이로 넣고 있습니다. 한번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한번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날실에 실을 넣는데 이것을 북이라고 하며 한자로는 저(杼), 또는 사(梭)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shuttle이라고 하는데 왕복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북이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실을 풀어주어야 옷감을 짤 수 있다는 말이지요. 노선 버스를 셔틀(버스)이라고 하고, 우주 왕복선도 (스페이스) 셔틀이라고 하는데 중국어로는 태공사(太空梭: 타이쿵쒀)라고 합니다. 발음(셔틀, 쒀)도 비슷하거니와 뜻이 북에서 나왔으니 중국인들의 조어력이 참으로 기가 막히다고 할 수밖에요. 발에 건 신끈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손으로는 북으로 실을 좌우로 넣고 바디로 탁탁 치면 옷감이 촘촘하게 짜여지지요. 날실 경(經) 금문-소전-해서 위의 글자는 지금은 지하수라는 훈으로 쓰입니다만 원래 베틀에 날실을 걸쳐놓은 모양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위 베틀을 가지고 비교를 하면 아래쪽이 사람이 앉는 곳이고 위쪽은 먼저 걸쳐놓은 실 곧 날실을 보여줍니다. 걸쳐놓은 물건이 실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나중에는 가는 실을 나타내는 한자인 멱(糸)자를 덧붙여서 다른 글자를 만들어내어 원래의 뜻을 보존하게 되었죠. 지날 경(經) 금문-금문대전-소전-해서 베틀로는 북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지나다'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경과(經過)라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은 경유하여 지나간다는 뜻인 경(經)과 지나는 길에 잠시 들른다는 뜻의 과(過)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베틀에 미리 걸쳐놓은 날실에 북으로 교차되게 넣어서 짜는 실을 위(緯)라고 하고 씨줄이라고 합니다. 경위(經緯)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옷감에서 세로로 짜넣은 실과 가로로 짜넣은 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 옷감이 어떻게 짜여졌는지 알아보려면 옷감의 가로실인 씨줄과 세로실인 날실을 하나하나 풀어보면 됩니다. 어떤 사건을 해결할 때도 실마리 즉 단서를 잘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위를 잘 파헤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날실과 씨줄을 만들기도 합니다. 지구의에 보면 가상의 선을 표시해 놓았는데 남북으로 세로로 그어 놓은 선을 경(經), 동서로 가로로 그어놓은 선을 위(緯)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경과 위를 가지고 방위를 나타냅니다. 서울의 경우 북위 37도 30분, 동경 127도가 됩니다. 그런데 경과 위 가운데는 먼저 걸쳐놓아야 할 경(經)이 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보다 중요한 것에는 경자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중국에는 유가 경전(經典)이 있는데 모두 13종이며 이를 보통 13경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실과 관련된 한자 몇 가지만 더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국가에서는 밭을 갈고 일구는 도구로 삽과 쟁기 등을 많이 썼습니다. 이들은 한자로 력(力: 삽), 또는 방(方: 쟁기)이라 한다고 앞에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농기구 특히 쟁기 같은 것은 1년 내내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밭을 갈고 무논을 갈아엎을 때, 그리고 감자같은 것을 수확할 때도 이따금씩 썼습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주로 한쪽 벽에 기대어 놓거나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아예 광의 벽 한쪽에 매달아두었습니다. 바로 쟁기를 매달아놓은 모습인데 쟁기를 달아놓으려면 적어도 쟁기의 하중(무게)을 견딜 수 있는 굵은 새끼줄 같은 끈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약한 실로 묶어두면 어떻게 될까요? 어릴 유(幼) 갑골문-금문-소전-해서 유(幼)자는 농기구인 삽(力)과 쟁기(方)그리고 실(幺)로 구성된 글자입니다. 갑골문과 금문에는 삽인 력(力)이 보이고 소전에는 쟁기에 가까운 형태인 방(方)이 보입니다. 요는 이런 무거운 농기구를 약한 실로 매달아놓았다는 것입니다. 실은 약해서 무거운 농기구를 지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약하다는 뜻이 생기게 되었고 어린이는 약하기 때문에 '어리다'라는 뜻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불을 자세히 관찰하면 아래쪽은 불꽃이 격렬한 반면 위쪽의 불꽃은 가늘어져서 실오리처럼 가늘게 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아래의 사진과 같이 말입니다. '그윽할 유(幽)'자는 실오리(幺)처럼 가는 불꽃을 형상화한 문자입니다. 그윽할 유(幽) 갑골문-금문-소전-해서 아래쪽의 '메 산(山)' 같이 생긴 글자는 사실 '불 화(火)'자입니다. 옛날에는 불()과 산()을 나타내는 글자가 아주 흡사했습니다. 그리고 불꽃 위의 두 幺자는 실오리를 나타낸 것이지요. 지금에 와서는 그윽하다는 뜻으로 쓰여 원래의 가는 불꽃이란 뜻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실의 재료는 목화, 누에고치, 화학섬유 등이 있다고 하였는데 더 강하고 장력이 센 경우를 요구할 때는 동물의 힘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질기기가 고래 힘줄 같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지요. 바로 활의 현이나 현악기의 활 같은 것이 그런 질긴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여러 가닥을 꼬아서 만들었는데, 실로 만든 것과 다른 점은 색깔이었습니다. 목화 등의 실은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 색을 띠었는데 활 등의 경우에는 색을 띠게 되었습니다. 활을 만드는 장인이 활의 시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시위의 색이 검게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완전 희지도 않습니다. 글자를 만드는 사람은 여기서 착안하여 '검을 현(玄)'자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검을 현(玄) 금문대전-소전-해서 위 유(幽)자와 유(幼)자에 보이는 실의 요소인 요(幺)자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만 여러 가닥을 꼬아서 만든 실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형태입니다. 활의 화살을 발사하는 끈을 시위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현(弦)이라고 하는데 궁(弓)자가 덧붙은 것은 현(玄)자가 일찌감치 활시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이지 않아서 원래 글자의 뜻을 보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가한 요소입니다. 반면에 현악기의 현(絃)을 마찰시키는 막대는 또 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활을 조작하는 것을 운궁(運弓)이라 하니 원래 모두 여러 겹의 동물의 힘줄이나 내장에서 추출한 끈으로 꼬아 만든 색이 있는 굵은 실이라는 뜻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에서 나온 글자를 정리하다보니 이렇게 많을 줄을 몰랐습니다. 마치 실타래에서 긴 실을 푸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첫댓글 설 잘 쇠셨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