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오늘 하느님 나라의 비유가 세 개 나옵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 밀가루 서 말속에서 부푼 누룩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는 이런 모습이라고 세 가지 비유를 들어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주제를 “하느님의 나라는 큰마음이다”라고 정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그런 곳 일뿐 아니라 지금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비록 그 모습이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시작되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가 서서히 완성해 나가는 그런 구조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누군가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곳에 하느님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고 반대로 각박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곳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먼저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보겠습니다.
첫째 밀과 가라지의 비유.
오늘 복음을 보면 자라날 때까지는 밀인지 가라지인지 모릅니다. 복음을 같이 보시면서 들어주십시오. 26절을 보면 열매를 맺을 때쯤 되니까 밀인지 가라지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밀이면 밀 이삭이 탐스럽게 열렸을 것이고 가라지이면 먹지 못하는 형태로 이삭이 열리니 그 열매를 보면 명확히 밀과 가라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농사짓는 종들이 주인에게 말합니다. “저 가라지들을 다 뽑아버릴까요? 그리고 우리 밭에 밀만 놓아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건의합니다. 하지만 주인은 말합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수확 때까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그냥 두어라.” 저는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는 마음이 큰마음이라고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제자매님들도 잘 아시듯이 오늘 복음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말이거든요. 왜 주인은 가라지를 함께 자라도록 놓아두라고 했는가? 오늘 1독서 지혜서의 말씀 마지막 구절(12장 19절)을 읽어 보시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 가라지를 함께 자라도록 그냥 두라는 이 주인의 마음은 가라지로 하여금 회개하는 기회를 주고 시간을 주는 그런 모습을 밀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가라지와 같은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와 시간을 주는 것은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런 것을 허락해줄 수 없는 상태죠. 그러니 오늘 밀과 가라지 밭의 주인은 마음이 큰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주인 밭에 있는 실제 가라지는 밀이 될 수는 없어도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는 가라지와 같은 사람은 밀과 같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 겨자씨의 비유.
겨자씨가 씨앗은 아주 작지만 그것을 땅에 심으면 엄청 커져서 2-3M 정도 되어 그곳에 새들이 와서 깃든다 합니다. 이 복음에서도 겨자나무는 물리적인 크기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겨자나무가 크다는 것은 새가 와서 깃들일 수 있는 만큼의 공간을, 한 팔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큰 나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키가 크고 100kg 넘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큰 것 일뿐 정말 큰 사람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자기 마음을 내어주고 누군가가 자기 품 안에 와서 깃들어 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세 번째 밀가루 서 말 속에 부푼 누룩.
자매님들은 하루 밥 지으실 때 쌀을 얼마큼 씻으세요? 보세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밀가루를 얼마를 반죽했죠? 밀가루 서 말을 반죽했답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분명히 한 가족 식사는 아닙니다. 복음에 나오는 안주인은 왜 서 말씩이나 반죽을 했을까요? 그 동네 밀가루 반죽을 못하는 집을 위해서 서 말을 반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은 오늘 하느님의 나라는 그 여인의 마음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의 마음에 누군가 배고픈 사람이 와서 깃들일 수 있는 마음...... 가라지와 같은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게을러서 그래. 못나서 그래. 능력 없어서 그래.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이런 마음의 구조가 아닌 밀가루 한 말, 두 말을 더 반죽하는 이 여인의 마음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큰마음, 분명히 가라지와 같은 줄 알지만 저 사람이 밀로 변화되길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놓아두는 마음이 큰마음이고 새가 와서 둥지를 틀고 싶을 때, 쉬고 싶을 때 자기 가지를 그대로 새에게 내어주는 마음, 굴뚝에 연기가 안 올라가는 가난한 집이 몇 집인지 보고 그 집 것까지 밀가루 반죽을 하는 여인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 마음이 들어있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완전하지도 않은 가치관과 판단을 가지고 “저것은 가라지다. 저것은 무조건 뽑아야 한다. 뽑아야 한다”는 마음의 구조, 그리고 자기는 물리적으로 큰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와서 둥지하나 짓고 살자고 해도 절대로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물리치는 이런 마음의 구조, 굴뚝에 연기가 나는지 안 나는지 보지도 않고 그저 우리 식구만큼만 쌀을 씻고 빵을 만드는 그런 마음으로는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늘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 외적인 조건을 크게 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미사를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내면을 크게 하기 위한 것이고 예수님은 외적인 것을 크게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가 아니고 내면을 크게 하는 것이 하느님 나라라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미사는 바로 하느님 나라를 크게 하는 것이고 확장시키는 것이고..... 오늘 미사를 통해서 교우님들 마음도 더 여유있는 마음, 누군가가 깃들일 수 있게, 누군가를 위해서 밀가루를 더 반죽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만큼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가 시작되고 확장되는 것입니다.
잠시 묵상합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멀리 해외에서 신부님 강론을 묵상하게 하신 유스티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