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성배씨(盆城裵氏)
배씨의 시조는 신라 6부 촌장 중의 하나인 지타공이다. 그는 다른 5부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신라 초대 왕으로 추대했다. 그 뒤 유리왕 9년 배씨로 사성(賜姓)되었다.
배씨의 중시조는 고려 개국공신인 무열공 배현경(裵玄慶)이다. 그 뒤 후손들이 번창하면서 여러 본관으로 갈린다. ▲성주배씨가 90,239명으로 가장 많고 두 번째는 분성배씨로 71,268명이다. 그 다음 ▲달성배씨 61,104명 ▲성산배씨 36,164명 ▲흥해배씨 29,210명 ▲경주배씨 22,069명 순이다.
배현경은 홍유, 신숭겸, 복지겸, 유금필과 함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의 난세를 평정했다. 그는 담력과 지모가 뛰어나 졸병에서 몸을 일으켜 장군에까지 이르렀다.
분성배씨는 고려 말에 분성군에 봉해진 배원용(裵元龍)이 파조다. 분성배씨는 배원용의 증손자 대에서 4파로 갈라진다. 한편 분성은 김해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분성배씨를 김해배씨라고도 한다.
배원용은 우왕 때 계림부윤으로 재직하던 중 왜구를 격파했다. 배명후는 조선 성종 때 사간원 정언, 예문관 수찬관 등을 역임했다. 이조참의 때는 조정의 기풍을 바로 잡는데 앞장섰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배양호(裵養浩, 187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배석주(裵碩柱, 1855 乙卯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삼등(三等), 배정모(裵廷模, 1874 甲戌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28년(1891) 증광시 삼등(三等) 등 3명이 있다.
집성촌은 경남 산청군 생초면 상촌리, 구평리, 평촌리 이다. 주요파는 ▲구연공파 ▲진사공파 ▲목사공파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