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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3000년 전 | |||||
정찬 |
밥 |
조밥 · 기장 |
가찬 |
밥 |
차조밥 · 쌀밥 |
국 |
맑은 소고기국 |
곰국 |
소고기 · 양고기 · 돼지고기 | ||
형갱 |
(소고기· 돼지고기 · 양고기) + 나물 |
구이 |
소고기 · 양고기 · 돼지고기 | ||
초장 |
장 + 초 |
육회 |
소고기 · 양고기 · 돼지고기 | ||
김치 |
김치 (부추 · 무 · 창포뿌리) |
육장 | |||
육장 ( 소 · 돼지 · 사슴 · 노루 ) |
생선회 |
생선회 | |||
수육 |
소 · 돼지 · 양 · 토끼 · 생선 | ||||
술 |
겨자장 |
의례(儀禮) 의 기록에 의하면 귀족들의 집에서 손님 접대를 위한 상차림은 정찬(正饌)과 가찬(加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정찬이나 가찬 모두 밥과 국이 한 조가 되어 있습니다.
밥은 음[陰], 국은 양[陽]이니 유교의 음양오행사상이 바탕에 깔렸습니다.
백제 초기의 주식은 좁쌀밥, 세금을 좁쌀로 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조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 당시 귀족들만 먹었을 밥 짓는 쌀은 밭에서 나는 육도[
33년 다루왕 때 논농사를 지으라고 지시했다는 기록을 보면 논농사의 보급은 한참 후의 일인 셈이 됩니다.
그리고 조를 비롯하여 보리와 콩, 기장, 수수 같은 오곡을 재배하였습니다.
' 형갱 '은 찌개, 초장에 고추장을 못 썼다는 것은 상식이겠지요 ? ^^^
무김치는 무를 숭숭 썰고 물 붓고 소금 치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고,
된장국 먹은 뒤 텁텁한 입 안을 개운하게 행궈주니 아마 좋아라고 먹었을 것입니다.
육장[
생선회는 지금처럼 겨자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일본에서 주신[
술은 누룩과 함께 술 빚는 양조법을 수수보리가 일본에 전할 만큼 발달했다고 보입니다.
술을 마신 응신천황, 취흥[
" 수수보리가 빚은 술에 / 나도야 취했네 / 태평 술 즐거운 술 / 나도야 취했네 "
<김제의 벽골제> <남해의 다랭이논>
<쌀>
1만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기원한 벼는 → 인도→ 티벳고원 → 중국 사천성 → 산동반도의 경로를 거쳐가며 논농사가
이루어집니다. 벼를 최초로 재배한 민족도 동이족입니다.
논에 강물을 대어 벼를 재배하면 붕어 같은 민물고기도 잡게 되고, 붕어에 소금을 섞고 쌀밥을 넣어 발효시키면 붕어식해,
식해의 기원입니다. 붕어에 소금만 넣어 발효시키면 붕어젓갈, 그래서 쌀밥과 식해와 젓갈은 세트음식이 됩니다.
일본의 대표적 음식인 스시(초밥)는 백제의 교역로인 오사카 시가현의 비와호수에서 잡은 붕어로 처음 만들었는데,
붕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3개월 정도 절인 다음, 물에 담가 소금기를 제거하고 내장에 밥을 채운 다음 큰 통에 밥과
소금에 절인 붕어를 넣어 1년에서 2년 동안 발효시키는 과정이 백제의 붕어식해와 만드는 방법이 똑 같습니다.
일본에 논농사를 가르쳐 준 나라도 백제이니 백제문화의 전수가 놀랍도록 많습니다.
쌀을 갈판이나 맷돌에 갈아 쌀가루를 시루에 앉친 다음 형편에 따라 밤이나 배, 대추를 넣고 시루떡을 찔 때,
양봉기술이 뛰어난 백제 사람들은 벌꿀을 넣어 단맛을 더 즐겼다고 합니다.
시루는 3,000년전 중국 상류사회에서 사용하던 찜기인데 떡은 물론 술밥이나 육고기를 쪘으며,
최고로 치는 떡은 밤 대추 꿀에 찹쌀까지 섞어 만든 약식이었습니다.
<밀과 보리>
지중해 연안에서 처음 생겨난 밀과 보리는 양이나 염소, 소가 뜯어 먹던 풀을 개량하여 만든 곡식입니다.
양이나 염소에서 짜낸 젖을 발효시킨 치즈와 버터, 밀가루를 구워 만든 빵, 빵과 치즈와 버터 역시 세트음식이 됩니다.
밀은 껍질이 단단한데 껍질을 깨면 알갱이가 부숴지니 밥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부서진 알갱이를 고운 가루로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만든 기구가 맷돌과 채 , 맷돌과 채의 기원이 됩니다.
밀가루가 가늘수록 부드러운 빵이 되는데, 40 데니어(Denier)의 머리카락보다 10분의 1의 굵기인 실크를 채의 바닥
재료로 쓰게 되면서 실크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니, 바로 실크로드가 생겨난 직접적인 원인이라 해서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산 실크는 처음에는 옷감의 재료가 아니라 취사도구, 채의 재료였던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워먹지 않고 쩌 먹는 찐빵과 만두를 만들어 먹는데,
고운 밀가루를 내는 맷돌과 채가 귀족들의 필수품목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 무 · 갓 · (배추) >
무와 배추와 갓은 원래 밀밭 보리밭에서 자생하는 잡초였다고 합니다.
무와 배추는 한대성, 갓은 온대성, 그래서 무 배추는 북쪽지방에, 갓은 남쪽 지방에서 많이 재배합니다.
삼국시대의 김치 재료는 배추가 아니라 무였고, 아무런 양념이 섞이지 않은 소금에만 절인 것이었습니다.
북위(北魏) 사람 가사협이 저술한 농학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나오는 저(菹),
즉, 발효식품의 종류는 " 염저, 곡물저, 술지게미저, 초저 , 시저 " 다섯 가지인데 무김치는 염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자강 (=長江) 상류의 산악지대인 사천(四川)은 바다가 멀어 저장식품인 소금과 절임 생선을 많이 쓰며,
강한 향과 신맛, 아린 맛, 톡 쏘는 매운 맛을 내는 음식으로 우리의 입맛에 잘 맞습니다.
김치가 유명해서 전채로서 몇 종류씩의 김치를 내는 것이 특징인데,
무에 쌀죽을 발효시켜 김치를 담근 것은 바로 " 총각김치 "의 원조입니다.
또 보리밭 가에 자생하는 갓에 쌀가루죽을 발효시켜 갓김치를 먹었는데 " 촉저[蜀菹] "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의 생선 젓갈에 해당하는 어장(魚醬)과 같은 발효식품도 먹었는데, 한 무제(漢武帝)가 동쪽으로 오랑캐(夷)를 쫓다가
해변가에서 얻었다는 "축이[逐夷]"라는 젓갈은 숭어내장젓갈로 추정한다고 보았습니다.
또, 제민요술에 소개된 하장(蝦醬)은 민물새우에 소금을 섞어 세 달 동안 숙성시켜서 먹는 젓갈인데,
서민들은 꽁보리밥에 비벼 별미로 입맛을 다셨고,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소화가 잘 돼 임금이 계시는 왕성에 진상되던 젓갈이었습니다.
백제 사람들이 담궈 먹던 '무절이 김치'가,
배추에 고추, 파, 마늘, 생강, 젓갈이 함께 버무려지는 오늘과 같은 김치로 바뀐 것은 불과 200년 밖에 안 되었습니다.
<공주 수촌리 계수호>
< 차 >
백제의 맛-음식 이야기] 특별 전시회에서 눈길을 끄는 큰 그림 한 장,
강 건너 산이 보이고, 갈대가 날리는 것을 보니 바야흐로 깊은 가을,
소나무 아래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 안에 마주 앉은 두 선비 .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있습니다.
멍석 위에 놓인 작은 소반에 계수호와 청자 찻잔 , 꿀에 잰 귤과 생강이 몇 점 썰어져 있고, 파 썬 것도 보입니다.
소반 옆에 놓인 맷돌과 공이,
그 옆에 있는 떡차를 곱게 빻아 계수호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꿀에 잰 귤과 생강 , 파를 넣고 잠시 기다리면 현미차 비슷한 차향이 정자 안에 가득 향기롭게 감돕니다.
차[
사천 차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기원 전 1C, 낙양에 사는 한 할머니가 사천에 와서 차를 넣어 만든 떡차 , 즉 차병(茶餠)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차의 역사는 오래 됩니다.
도교[
불교에서도 " 깨달음의 도구 "로 차를 귀하게 여긴 것은 조선시대 다산(茶山)과 초의선사의 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의 귀족들은 숙취 해소에 효능이 뛰어난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하니 차는 어디서나 대접 받는 "귀하신 몸"입니다.^^^
담로 지역에 속하는 공주 수촌리 고분에서 계수호와 차 그릇 한 세트가 출토된 것도 차를 귀하게 여긴 증거입니다.
<김상보교수>
두 시간에 걸친 특별강의가 끝났습니다.
김교수의 강의는 우리가 현재도 먹고 있는 음식이야기라서 시간의 간격을 느끼지 못하는 현장감이 있어 좋습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이야기처럼 우리 생활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를 세세히 들려준 게 고마워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듣기만 해도 배가 부른 이야기^^^,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워 집에 돌아와 많은 자료를 찾아보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특별전시회]의 하이라이트는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문 어귀에 있는 "화장실 이야기"입니다.
이제까지 보고 들은 음식만도 수십가지이니 그만큼 먹었으면 '배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10년 전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공동화장실 2칸 3칸 5칸짜리 3동,
왕의 변기인 매화틀처럼 생긴 기구와, 환자용 변기처럼 납작한 기구는 왕비용 ?
그리고 처음에는 목간[
제주도에서는 새끼줄을 사용했는가 하면, 농가에서는 콩잎이 쓰기에 가장 좋았다고 주장하는 관람객도 있었습니다.^^^
" 먹고 싸는 " 것은 인간의 순수한 역사, ^^^
남성용 변기인 호자[虎子]와 여성용 변기를 설명하면 해설사도 웃고, 관람객들도 스스럼 없이 웃음을 비치고,
우리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입니다.
특별전시회가 열린 첫 주, 전시실 앞에서 떡메로 떡을 쳐서 인절미 만들어 시식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시루떡은 미리 쪄가지고 왔는데, 백제사람들처럼 맛나게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