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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비유 경(M22)
Alagaddūpama Sutta
대림스님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533-568쪽
뱀의 비유
10.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문답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1)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2)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1) “다른 이들의 교리에 결점(dosa)을 제기하는 이점 때문에 교리를 배우고,
다른 이들이 자기의 교설(vāda)에 대해 결점을 제기하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그 결점에서 벗어날 것(pamokkha)이라는 이유 때문에
교설을 배운다는 말이다.(MA.ⅱ.106~107)
(*2) “선남자들이 법을 배우는 것은 도(magga)와 과(phala)를 얻기 위함인데,
법을 잘못 파악한 자들은 그 도와 과를 체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MA.ⅱ.107)
이처럼 주석서는 ‘궁극의 의미(attha)’를 도와 과로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의 몸통이나 꼬리를 잡는다면 그 뱀은 되돌아서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물어버릴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도 하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못 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미혹한 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우지만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 그 법의 뜻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피지 않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다.“
11.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땅꾼이 뱀을 원하고 뱀을 탐색하고 뱀을 찾아다니다가 큰 뱀을 보았다 하자.
그 사람이 그 뱀을 염소발 모양의 막대기로 잘 누르고 그런 다음 그 뱀의 머리를 잘 붙잡는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뱀이 비록 그 사람의 손이나 팔이나 몸의 다른 부분을 몸통으로 휘감겠지만
그러나 그 때문에 그 사람이 결코 죽음에 이르지 않고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뱀을 잘 붙잡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이
경 ‧ 응송 ‧ 수기 ‧ 게송 ‧ 감흥어 ‧ 여시어 ‧ 본생담 ‧ 미증유법 ‧ 문답 같은 법을 배운다.
그들은 그 법을 배워 통찰지로써 그 법들의 뜻을 자세히 살펴본다.
그 법의 뜻을 통찰지로 자세히 살필 때 그들에게 그 법들은 확립된다.
그들은 오직 다른 이들을 논박하고 자기 교리를 주장하기 위해 법을 배우지 않으므로
법을 배우는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한다.
그들이 잘 파악한 그 법들은 그들을 긴 세월 이익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법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이 내 가르침의 뜻을 잘 이해하거든 그대로 잘 호지하라.
그러나 내 가르침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나에게 다시 묻거나 현명한 비구들에게 물어보아라.”
뗏목의 비유
13.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하리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길을 가다가 큰 강을 보았다 하자.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3)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그는 생각한다.
'이 강은 참으로 크다. 이 언덕은 위험하고 두렵지만 저 언덕은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저 언덕으로 건너기 위한 배도 다리도 없다.
참으로 나는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가리라.'
그리하여 그 사람은 풀과 잔가지와 큰 가지와 풀잎을 함께 모아서 뗏목을 엮어서
그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갈 것이다.
강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일어날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내가 갈 곳으로 가야겠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그렇게 해야 그 뗏목에 대해 할 바를 다 한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뗏목은 나에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이 뗏목에 의지하여 손과 발로 노력하여 안전하게 저 언덕으로 건너왔다.
참으로 나는 이 뗏목을 땅에 내려놓거나 물에 띄워놓고 내가 갈 곳을 가리라.'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는 자가 참으로 그 뗏목에 대해서 할 바를 다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그대들에게 뗏목에 비유하여 법을 설했나니,
그것은 건너기 위함이지 움켜쥐기 위함이 아니다.”
14. "비구들이여, 뗏목에 비유하여 그대들에게 설한 법을(*4) 이해하는 자들은
법도 버려야 하거늘(*5)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리.“
(*3) “‘위험한(sāsanka)’이란 것은 도둑들이 머무는 곳이 보이고,
서있는 곳, 앉아있는 곳, 누워있는 곳이 보이는 것이고,
‘두려운(sappaṭibhaya)’이란 것은 그곳에서 도둑들에 의해
사람들이 죽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MA.ⅱ.109)
(*4) 또 다른 뗏목의 비유는 「독사 경」(S35:238) §§7~9에 나타나고
이 비유에 대한 설명은 그곳 §§16~21에 나타난다.
이 경 §19에서 부처님께서는 뗏목을 팔정도에 비유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5)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dhammāpi pahātabbā)’에서
법들이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말한다.
세존께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해서도
그 열정과 욕망(chanda-rāga)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사마타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다이여, 여기 비구는 … 초선을 … 제2선을 … 제3선을 … 제4선을 … 공무변처를 … 식무변처를 …
무소유처를 …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우다이여, 그러나 이것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나는 말한다.
버려야한다고 나는 말한다. 넘어서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본서 제2권 「메추라기 비유 경」(M66) §§26~33)
그러면 어디에서 위빳사나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를
집착하고 즐기고 재산으로 여기고 내 것으로 여긴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본서 제2권 「갈애멸진의 긴 경」(M38) §14)
그러나 여기서는 둘 모두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하시면서
‘법들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리
(dhammāpi vo pahatabbā pageva adhammā)’라고 하신 것이다.
이 뜻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와 같이 고요하고 수승한(santa-ppaṇītā)사마타와 위빠사나의 법들에 대해서도
욕망과 탐욕을 버릴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하물며 천하고 비열하고 사악하고 성행위에 빠지게 하는
비법(asaddhamma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런 것에 대해 미혹하여 결점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niddosa-saññī) 아릿타는
다섯 가지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릿타처럼 그대들은 나의 교법(sāsana)에 진흙이나 쓰레기를 던지지 말라고
세존께서 이 교계(ovāda)로 아릿타를 꾸짖으셨다.“(MA.ⅱ.109)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석서는 법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버리라고 해석하고 있지
법 자체를 버리라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처럼 법들도 버려야 한다.‘는 부처님 말씀은 도덕적 허무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깨달은 사람은 선과 악을 초월했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번뇌가 멸한 비구, 즉 아라한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쌓아두고 즐기기라는
다섯 가지를 범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본서 「산다까 경」(M786) §51을 참조하기 바란다.
초기불교에 관한 한 무애도인의 막행막식 따위는 그 어디에도 발붙일 틈이 없다.
첫댓글 이 경의 뱀의 비유와 뗏목의 비유는 유명합니다.
뱀의 비유는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단지 붓다의 교리를 자기 주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못 파악한 그 법들이
그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뗏목의 비유는 수행자가 8정도를 닦아서 얻어진 법(dhamma)들을,
즉 삼매와 통찰지를 법으로 보지못하고
자기 것으로 집착하여 움켜쥐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강을 건넌 뒤에도 뗏목을 이고지고 다니는 것에 비유합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신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주석에서도 배울점이 많네요...^^
이 법보시의 공덕으로 도와 과를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