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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변 문학공원 입구 애니고등학교 인근으로 자전거도로와 연결된 문학공원이다.
노벨상 빈자리가 있는 북한강변 문학공원 전경과 터의 문학비에서 조관선소설가,박대용시인,정연휘시인.
서정주 시인의 시비「동천冬天」
김동리 소설가의 소설비「무녀도」
▒▒ 江原道文學記行5, 인제 만해문학박물관 1차:2013,06,22. 2차:2014,06,15,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을에는 스님,독립운동가,시인인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879~1944)의 불교사상과 문학혼 을 기리는 곳이다.만해문학박물관, 문인의 집, 만해학교, 심우장, 서원보전, 광장 <님의 침묵> 등이 시설 되엿는 데 만해문학박물관을 찾았다.
만해마을 만해문학박물관
만해마을 강원문예축전 후 만해문학박물관 옆에 있는 만해동상에서 강복순여사,이봉자시인,서순우시인, 정금자여사,정순란시인.
초당 신봉승 시서부채
징에 올린 김남조 시인의 '숭례문'
시화를 보고 있는 서순우시인,이봉자시인 외
2013 강원문예축전 후 만해문학박물관에서, 시계방향으로,정연휘시인,홍승자시인,김은숙시인, 서순우시인, 김경미시인,김진광시인,최효열시인,김진자시인,정순란시인, 2013,06,22.
▒▒ 江原道文學記行6 인제 박인환문학관 1차:2013,06,22.~2차:2014,06,15.
박인환(1926-1956)시인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시로 유명한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고향 인제시내 산촌민속박물관과 나란히 있는 박인환문학관에는 그의 삶을 느껴보고 그를 만날수 있었다. 박인환문학관은 당시 명동백작으로 불리며 명동을 누볐던 40 - 50년대 명동거리, 시인들의 아지트 '마리서사' 명동술집 '포엠', 선술집 '유명옥' 등 문인들의 교류지와 「세월이가면」을 지은 술집 '은성' 등을 재현해 놓았다. 문학관 일대에는 박인환의 거리가 조성되어 시비, 시가 열리는 사과나무, 하늘이 비치는 시벤치, 책읽는 목마상 등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박인환 시인은 열한 살 때 고향 인제를 떠나 서른한 해의 짧은 생을 살다간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천재시인이다.
잔디밭에서 삼척 동해 강릉의 문인들| 시계방향으로 정연휘시인, 김진자시인, 김경미시인,정순란시인, 박대용시인, 박종철수필가, 조관선소설가, 김은숙시인, 이봉자시인, 서순우시인,최효열시인, 김진광시인, 심동석 시인. 2013 강원문예축전 후 2013,06,22.
박인환문학관 앞에 있는 시인상은 시인이 코트를 입고 바람을 맞으며 시상을 떠올리는 조형물이다. 속이 빈 공간의 의자에 앉으면 센서에 의해 시인의 대표시와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시계방향으로 정연휘시인,김은숙 시인, 서순우시인, 조관선소설가, 정순란시인,박종철수필가, 심동석시인. 정금자여사, 김진광시인, 이봉자시인, 박대용시인, 강복순여사. 2013,06,22.
박인환시인 시대 40 - 50년대의 서울도심 거리 풍경 속에 선 2014년도의 문인들
박인환시인이 함께 했던 40-50년대의 '마리서사','유명옥','봉선화다방','모나리자다방','동방싸롱','포엠','은 성' 등을 배치한 골목이다. 명동의 막걸리 집 '은성'은 <세월이 가면>노래가 만들어진 술집이다.김수영,박인 환,변영로,이봉구,오상순,천상병 등 문화예술인들이 막걸리 잔 너머로 문학과 예술의 뜻을 피웠던 '은성'이란 술집은 50~60년대 예술의 중심지인 명동에서 가난한 시대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온 곳이다.명 동백작으로 불렀던 소설가 김봉구씨가 은성의 단골이기도 했으며 박인환이 죽기 얼마 전에 <세월이 가면>이 라는 작품을 이곳에서 남기고 죽었다.
모더니즘의 시운동 시초가 된 선술집,'유명옥'이 보인다.당시 김수영시인의 모친은 충무로 4가에서 '유명옥' 빈대떡집을 운영 하였다.이곳은 모더니즘 시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김수영, 박인환, 김경린, 김병욱, 임호권, 양병식 등이 모여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출발과 후기 모더니즘의 발전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눴던 곳이다. 또한 후에 동인지 『신시론』제1집 발간의 밑거름이 된 역사적인 곳이다,
박인환문학관의 40 - 50년대의 박인환 시인이 직접 경영한 '마리서사' 서점에서 정연휘시인,박대용시인, 조관선소설가가 박인환 시인의 체취를 느끼고...
박인환시인은 부친과 이모로부터 차입한 돈 5만원으로 종로3가 낙원동 입구에 20평 남짓한 서점'마리서사' 를 열었다. 마리서사에는 앙드레 브르통, 장 콕토 등 여러 문인들의 작품과 문예지,화집 등이 갖추어져 있 어 김광균,김기림,오장환,정지웅,김광주,김수영 등 여러 시인과 소설가들이 자주 찾는 문학 명소이자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이 일어난 발상지였다. 은성에서 외상값 때문에 작사했다는 "세월이 가면" 시詩가 노래로 만들어지게 된 일화가 숨어 있다.박인환 등이 밀린 외상값을 갑지도 않은 채 계속 술을 요구하자 은성 주인은 술값부터 먼저 갚으라 요구하기 시작 했다.이때 박인환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펜을 들고 종이에다 무언가를 황급히 써 내려 가기 시작했 다.그것은 바로 은성 주인의 슬픈 과거에 관한 시적 표현이였다. 작품이 완성되자 박인환은 즉시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에게 작곡을 부탁하였고, 가까운 곳에서 술을 마시던 가수 현인을 불러다 노래를 부르게 했 다. 이 노래를 듣던 은성 주인은 기어이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밀린 외상값은 안 갚아도 좋으니 제발 그 노 래만은 부르지 말아달라고 도리어 애원했다는 일화이다.명동백작으로 불리던 소설가 이봉구의 단편 "명동" 에 소개 되어 있다.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문학관에서 서순우시인과 정순란시인.
문학관 뜰 박인환시인 동상 뒤의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조관선소설가와 박대용시인 외
▒▒ 江原道文學記行7 강릉 김동명문학관
'파초' '내 마음' 등의 시로 유명한 근·현대 대표 시인 초허超虛 김동명(1900∼1968)의 문학관과 시비를 을 찾았 다. 시인의 문학관은 시인의 고향 강릉 사천 생가터 8천650㎡ 부지에 연면적 285㎡의 1층 규모로 생가 복원과 문학관으로 조성돼 있었고, 시비는 사천 김동명문학공원에1,경포호변에 2점이 있었다.
김동명문학관과 생가
초허 김동명문학관 내부
초허 김동명 시인의 발자취 초허超虛 김동명金東鳴 (1900.6.4 강릉~1968.1.21서울) 시인은 전원을 소재로 향수·비애·고독을 노래했다.어린시 절 함흥으로 이사하여 영생중학교를 마친 뒤 서호진 등에서 교사를 지냈으며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종 교과에서 공부했다. 1923년〈개벽〉에 〈당신이 만약 나에게 문을 열어주시면〉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 다. 첫 시집 〈나의 거문고〉(1930)를 발표할 때까지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았으며 본격적인 창작활동은 1930 년대 이후,이전의 퇴폐적인 시에서 벗어나 건강한 전원시를 쓰면서부터이다. 1938년〈파초〉를 펴냈는데 그중 〈파초〉〈수선화〉와 해방 뒤에 발표한 〈하늘〉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빌어 조국에 대한 향수를 노래했다. 1942년〈술노래〉〈광인〉 등을 발표한 뒤에는 작품활동을 한동안 그만두고 목상木商을 하며 살았다. 해방 뒤 에는 정치활동을 주로 하여 조선민주당 함남 도위원장을 지냈으나 함흥학생사건으로 탄압을 피해 월남했다. 그뒤에는 창작에만 힘써 강한 사회성과 고발정신이 담긴 시를 썼다. 북한의 체제를 비판한 시집 〈삼팔선〉(194 7)을 펴냈고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비판한 시집 〈진주만〉(1954) 등을 펴내 아세아자유문학상을 받았다. 1957년 사회현실을 고발한 시집 〈목격자〉를 펴낸 뒤 4·19혁명을 고비로 시보다 정치평론을 주로 썼다. 참의원으로 당 선되기도 했으나 5·16군사정변으로 정치적 뜻을 펴지 못하고 말았다. 정치평론집 〈적과 동지〉·〈역사의 배후에 서〉(1958) 등이 있고 마지막 시집으로 〈내 마음〉(1964)이 있다.
김동명시인 집필실
문학관에서 만난 시인들 시계방향으로 박대용시인, 신에밀리아 수녀님, 김문수시인, 김혜경시인, 강복순여사, 정연휘시인.위는 조관선소설가.
사천 김동명시비공원의 시비「 파초芭蕉」「내 마음은」
김동명 「호수시비」 경포대호 산책길|조관선소설가와 박대용시인,
▒▒ 江原道文學記行8 강릉 허난설헌許蘭雪軒 생가 -조선조 중기 여류시인 허난설헌 생가의 담장|허난설헌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별도의 건물이지만,전체적으로'ㅁ'자형 구조이다. 담장으로 가옥 전체를 두르고 있다. 본명 허초희는 황진이, 매창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여류시인이다.
허난설헌 생가 안채 내실 허난설헌 시와 초상화
강릉 초당 경포호 부근에는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안에 솔향 짙은 허균·허난설헌 생가가 있다. 경포대에서 약 1.5km 떨어진 울창한 솔숲이다. 교산 허균과 난설헌 허초희는 문향 강릉이 낳은 오누이 문인이다. 허난 설헌(許蘭雪軒, 1563년~1589년 3월 19일)은 1563년 조선시대 사대부인 초당 허엽의 3남 3녀 중 세째딸로 태 어났다. 남동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홍길동전」의 저자인 허 균 이다. 허균(1569~1618)과 허난 설헌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 안에 있는 생가와 기념관을 찾았다.
초희 허난설헌은 시작詩作으로 유명하지만, 불행했던 개인적인 삶이 더욱 더 애닯게 한다. 이미 8세 되던 해
에'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시를 지어 그 천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유명했던이달의 사사를 받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