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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
예레미야 27:6-10
6. 이제 나는 이 천하를 나의 종인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맡겨 부리게 하였다.
7. 그 왕과 그 나라도 망할 때가 오겠지만, 모든 민족은 느부갓네살을 그 아들 손자대까지 섬겨야 한다.
8. 그러니 바빌론 왕이 씌워주는 멍에를 메어라. 그 왕 느부갓네살을 섬겨라. 그러지 않는 민족과 나라가 있으면, 나는 그 민족을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여서라도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주고 말 것이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9. 너희의 예언자들과 박수들과 해몽가들과 점쟁이들과 마술사들이, 우리가 바빌론 왕을 섬기게 될 리 없다고 하더라도 곧이듣지 마라.
10.그자들이 하는 예언은 거짓이다. 그 말을 듣다가는 고향을 멀리 떠나게 되며, 나에게 쫓겨나 망하고 말 것이다.
<기원전 588년, 어둠이 깔린 예루살렘. 시드기야 왕은 왕궁 깊숙한 곳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식들. 바빌론의 군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이시여, 바빌론 군대가 유다를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신하들의 목소리는 떨렸다.
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엔, 이집트가 우릴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의 생각이었다.
예루살렘 성문 앞, 바빌론의 사신이 마지막 경고를 전했다. “시드기야왕은 들어라, 바빌론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라. 그러면 성과 백성은 살 것이다. 하지만 반역한다면, 유다는 불타게 될 것이다!”
시드기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는가? 이번만큼은, 저 바빌론의 짐승들에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바빌론의 군대는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왔다. 그들의 창과 방패가 햇빛에 번뜩이고, 공성기계가 성벽을 두드리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예루살렘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1년. 2년. 도시는 고립되었다. 식량은 떨어지고, 우물은 말라갔다.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고, 심지어 자식들을 잡아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예레미야 애가 4:10). 절망 속에서 사람들은 울부짖었다.
기원전 586년 7월, 마침내 성벽이 무너졌다. 바빌론 군대는 성안으로 돌진했다. 불타는 가옥들, 도망치는 백성들, 울부짖는 아이들.
느부갓네살 왕의 장군 느부사라단은 외쳤다. "남김없이 불태워라! 왕을 생포하라!" 시드기야는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집트의 군대는 오지 않았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성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밤의 어둠을 틈타 은밀히 도망쳤지만, 바빌론의 정찰병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그는 여리고 평야에서 사로잡혀 바빌론 왕 앞에 끌려갔다.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냉혹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반역했으니,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리곤 시드기야의 눈앞에서 그의 두 아들을 하나씩 처형하였다. 그게 왕이 자기의 눈으로 본 마지막으로 장면이었다. 바로 직후, 바빌론 군사들이 왕의 두 눈을 뽑았기 때문이다.
피가 흐르고, 시드기야는 비명을 질렀다. 눈이 먼 왕. 쇠사슬에 묶인 채, 그는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바빌론 군대는 그 아름답던 솔로몬 성전을 불태웠다. 하느님의 거룩한 곳이 무너지고, 금과 은 등 성전 보물이 약탈되었다. 거룩한 법궤도 사라졌다.
성전은 불길 속에 사라졌고, 유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다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제 바빌론의 포로가 되었다. 한때 위대했던 다윗 왕국이, 이렇게 끝나버렸다.>
끔찍하고 비참한 이야기입니다. 남유다의 멸망 장면이죠. 왜 유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을 당시 이스라엘 주변의 정세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의 세력이 점점 약해져 가는 시기였고, 바빌론은 아직 그 위용을 떨치기 전이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큰 위협이 없는 평온한 시기에 유다에는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 정책을 펴며 나라를 안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죽고 난 이후 국제 정세는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리고 바빌론의 세 열강 사이에서 유다는 또다시 큰 어려움에 봉착하죠. 게다가 국내적으로도 요아스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 왕은 아버지의 개혁 정책을 따르지 않고 다시 우상숭배에 빠지는 등 하느님 앞에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여호아하스 왕은 즉위 3개월 만에 이집트으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왕하 23:34).
뒤를 이은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때인 기원전 6세기 초, 고대 근동의 국제정세는 급변하였습니다. 기원전 612년, 바빌론과 메디아 연합군이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함락시킴으로 오랫동안 지역 패권을 장악했던 앗시리아 제국이 몰락하고, 바빌론과 이집트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였죠.
유다 왕국은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위치하였기에 이 두 강대국의 세력 다툼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유다는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펼치기 어려웠고,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 변화에 따라 정책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기원전 605년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2세가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앗시리아 연합군을 격파하면서 지역 패권이 바빌론으로 넘어갔습니다. 이후 바빌론은 유다를 포함한 고대 근동지역을 통제하려 했고, 유다는 바빌론의 속국이 되어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여호야긴 왕이 바빌론으로 잡혀간 후 시드기야(기원전 597~586년)가 왕위에 오릅니다. 조카 여호와긴의 뒤를 이은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시드기야의 본명은 ‘맛다니야’인데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개명시켜 꼭두각시로 세운 왕이었습니다. 시드기야란 바빌론 말로 ‘여호와의 의’라는 뜻입니다.
시드기야는 자신을 지지한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나 유다 내부적으로는 친이집트파와 친바빌론파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우유부단하고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 외부 환경에 잘 휘둘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외교정책을 보면 국제 정세에도 매우 어두운 어리석은 자임이 드러납니다.
시드기야를 끝으로 유다가 멸망하게 된 것에 대해 성경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요시야가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느님을 섬기게 했던 경건 정책을 이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수 밖에 없는 큰 죄악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레미야는 울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막아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시드기야에게 전하며 바빌론을 떠나 친이집트 정책으로 선회하는 것은 잘못된 외교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시드기야는 ‘이집트을 의지하지 말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끝까지 거절하고, 이집트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유다 내 친 이집트세력에 꼬임에 바진 것이죠. 그 결과는 유다의 멸망이라는 비극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런 상황에서의 종교나 지식인, 언론인의 역할입니다. 유다의 멸망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느님은 예례미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예언자들과 박수들과 해몽가들과 점쟁이들과 마술사들이, 우리가 바빌론 왕을 섬기게 될 리 없다고 하더라도 곧이듣지 마라. 그자들이 하는 예언은 거짓이다. 그 말을 듣다가는 고향을 멀리 떠나게 되며, 나에게 쫓겨나 망하고 말 것이다(렘27:9-10).”
시드기야 왕에게도 “바빌론 왕을 섬기지 않는 민족에겐 벌을 내리겠다고 하였는데, 너와 너의 백성은 어찌하여 그 벌을 받아 전쟁과 기근과 염병으로 죽으려 하느냐? ‘바빌론 왕을 섬기게 될 리 없다'고 하는 것들은 거짓 예언을 하는 것들이니, 그 말을 듣지 마라. 내가 똑똑히 일러둔다. 나는 그들을 보낸 적이 없다. 그들은 내 이름을 팔아서 거짓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너희는 그 예언자들과 함께 쫓겨나 망하고 말리라(렘 27:13-15)"고 말씀하시죠.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왕 때부터 시드기야 왕 때까지 활동하면서 예언했습니다. 그는 왕과 관리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전했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핍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의 예언대로 멸망 당하였고, 유다 멸망 후 그는 남은 자들과 함께 이집트으로 내려가 유다 백성과 이집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지속적으로 예언하였습니다.
예레미야를 가리켜 성경은 ‘눈물의 선지자’라고 표현합니다. 자기 백성을 벌하지 않으실 수 없는 하느님과 깨닫지 못하는 하느님 백성 사이에 서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예언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예레미야의 인생 또한 눈물 없이 견디기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는 불치의 병으로 인해 끊임없이 육체의 고통을 받았습니다(렘 15:18). 하느님은 결혼도 못하게 하셨습니다(렘 16:2).
하느님은 예레미야에게 엘리야나 엘리사 같이 기적을 행하는 능력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을 예언만 하도록 하셨죠.
그는 이스라엘의 부도덕과 타락을 외면한 예언자들과는 달리(렘 6:14) 처음부터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과 바빌론에 의해 남유다가 멸망하고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을 예언했습니다(렘 1:14-16).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매국노라고 욕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심판할수 밖에 없다고 하시는 하느님 앞에 이렇게 한탄합니다. "이 산 저 산을 보며 저는 목이 메어 웁니다. 광야에 있는 목장들을 보며 슬피 웁니다. 모두 타 없어져 찾는 이 없고, 양떼 울음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날짐승도 들짐승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렘 9:9).
어떤 이들은 구약에서 그리스도와 가장 닮은 인물을 예레미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마 16:14).
요즘 우리 사회는 헌법수호 세력과 헌법파괴 내란세력 간의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자들은 이 나라의 안위와 존폐에는 관심도 없는 자들로 보이죠. 자신들의 이익에 골몰하며 나라도 국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헌법파괴 내란세력을 분류해 본다면 크게 3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해방 후 미군정과 결탁한 친일지배그룹입니다. 이승만 정권에 기생해 살아남은 본일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해방 후 돈과 권력을 무기로 자신들의 과거를 세탁하고 반공을 국시로 독립운동가들과 국민에게 칼을 휘둘렀습니다.
두 번째는 자유 반공을 신앙으로 둔갑시키며 선교사들의 빽으로 미국유학을 했던 자들입니다. 이들이 한국의 개신교회의 지도자들이 되고 대형교회를 장악하며 극우 권력을 지지하고 견인해왔습니다.
세 번째는 양극화된 사회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있는 청년세대들이죠. 이들 중 자신들의 처지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전가하려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극우 매체의 선동에 빠져 행동대원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지금 현재 가장 윗선 지도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거짓 종교인들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의 현실을 더욱 참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극우 선동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입니다.
이자는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영성이나, 사랑, 희생 같은 가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혐오와 증오를 부추길 뿐이죠. 그는 권력이나 돈 같은 세속적인 가치에 무게를 싣는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정치판에 뛰어들었습니다.
2021년 극우집회를 주도하며 이제는 극우의 상징이 되버렸습니다. 현재 전광훈은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으며 내란 선동 혐의 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내란 음모로 볼 수 있는 혁명공약을 집회에서 발표하였고, 서부지방법원 폭동과 헌법재판소와 구치소 침탈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자는 그동안 지지자들을 결집하며 대부분 가족들이 운영하는 13개의 사업장을 만들어 돈을 벌어 왔습니다. 그중 3개는 여론조사와 정보, 데이터베이스 관련 업체라고 합니다. 이중 9개는 사랑제일교회 건물 5층에 입주해 있다고 하죠.
전광훈에게 도전장을 낸 신흥세력도 있습니다.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입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손 목사는 한국사 전한길 강사 등을 영입하면서 20·30 청년을 모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 목사를 광화문파, 손 목사를 여의도파라고 하며,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이후 두 극우 세력이 분열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죠. 손 목사와 전 목사의 내부 갈등이 유튜버들을 통해 공개됐지만 결국 '돈' 때문에 싸운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분열한 극우 유튜버들이 서로를 헐뜯으면서 후원금을 받아서 구독자들에게 '코인 팔이(돈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죠.
2월 28일 이나 3월 4일, 윤석열 파면이 선고되면 이런 극우들의 준동은 수그러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화려한 재기를 꿈꿀 것입니다. 그 화려한 부활을 트럼프가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4년의 와신상담 끝에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국회의사당 폭동을 일으킨 지지자들을 모두 사면하였습니다.
의회 폭동이 있었던 해인 2021년에는 트럼프는 물론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도 폭력을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1년 후, 공화당은 민주당이 폭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물타기를 시작했고, 트럼프는 폭동 참가자들을 ‘애국자’라며 추켜세우고 나섭니다. 폭동이 있었던 날을 ‘Day of Love’이라고 표현하면서 사건의 성격을 180도 뒤바꾼 것이죠.
트럼프의 의회 폭동은 몇 단계를 거쳐 왜곡되었습니다. 윤석열의 법원 폭동 역시 이 단계를 충실히 따를 것입니다.
1) 폭력을 ‘애국’으로 둔갑시킨다.
2) 시간이 지나면 사건을 ‘정치적 탄압’이라고 몰아간다.
3) 끊임없이 여론전을 펼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
4) 정당성을 되찾은 것처럼 적반하장으로 행동한다.
국민의힘과 사이비 종교, 극우 언론이 기꺼이 악에 편에 서는 이유는 이렇게 명백한 성공사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야훼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보내시며 ‘나무로 멍에를 만들어 가죽끈으로 목에 메고’ 나가게 합니다(렘 27:2). 멍에를 짊어진 삶, 아마도 그의 미래의 삶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곤 그를 예루살렘에 보내는데 그곳에는 유다왕 시드기야를 비롯해 주변의 에돔, 모압, 암몬, 띠로, 시돈 왕이 보낸 사절들이 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야훼의 말을 본국의 왕들에게 전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전달해야 할 말은 오늘 본문 6절과 7절에 있는데 ”이제 나는 이 천하를 나의 종인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맡겨 부리게 하였다. 그 왕과 그 나라도 망할 때가 오겠지만, 모든 민족은 느부갓네살을 그 아들 손자 대까지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제 관계의 형세를 제대로 판단하고 현명한 처신을 통해 나라를 보전하고 후일을 도모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입니다. 친위쿠데타는 진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진압하려면 윤석열 파면과 대선에서의 압도적 승리가 필요조건입니다. 이후 내란특검, 김건희, 채상병 특검 등이 이뤄져 그 배후가 철저히 규명되고 처벌되어야 끝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국내 문제로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국제 관계로 얽혀 있다는 것도 속 시원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와 같은 인내와 헌신 그리고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하느님의 약속을 빋으며 진리와 정의의 삶을 올곧게 걷는 길밖에 답이 없습니다.
윤석열 파면과 대선의 압도적 승리, 특검을 통한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고 국민이 소망하는 새 세상을 이루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