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
: 중세의 기사들의 이야기는 시는 물론 온갖 문학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게임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통해 다시금 거듭나고 있다. 그 중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음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본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Dark Age of Camelot(다크 에이지 오브 카멜롯)'은 바로 그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이야기를 중심 소재로 채택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들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 작은 지식으로 나마 그에 대한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램하며 이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1.중세에 대한 간략한 지식.
1.중세(中世)란? : 사전적인 의미로 '고대 사회 이후 지속되어온 근세사회에 선행하는 역사적인 사회개념'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게르만 족의 이동과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르네상스까지의 시기를 일컫는다. 고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래 근 1000년 가까이 지속된 시기로 고대의 역사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역사인데 반해 중세는 본격적으로 서유럽 전체를 무대로 확대되어진 시기이다. 중세는 흔히 카톨릭과 기사들의 시대라 불린다. 실제로 중세는 '카톨릭'과 '봉건질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였다. 카톨릭은 실제적인 문화의 기반이 되었는데 중세인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신을 지배했다. 당연히 중세의 지적, 문화적 활동은 카톨릭 신앙 위주의 종교적인 편향이 강할 수 밖에 없었다. 카톨릭이 중세인의 정신을 지배했다면 중세인의 생활을 지배한 것은 봉건질서를 중심으로 한 신분제 사회였다. 봉토를 매개로 상하 신분이 성립되고 그 질서 안에서의 생활이 강요되어졌다. 중세는 철저한 계급사회로 귀족과 성직자, 자유민, 농노와 천민으로 구분되었다. 귀족과 성직자는 모든 문화적 경제적 이득을 거의 독점하며 계급의 최상위층에 위치했다. 자유민은 약간의 토지를 소유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했는데 이들의 경우, 보다 힘이 있는 영주의 가신(家臣)이 되거나 하급귀족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숫자는 매우 적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노와 천민으로 구분되어졌으며, 이들의 모든 수입은 영주 혹은 지주의 소유였다. 이들은 그들의 땅을 경작하는 대신 약간의 의식을 제공받았는데 이들은 언제나 땅에 예속되어 땅과 함께 거래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중세를 가리켜 '암흑시대(Dark Age)'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대 이후, 고대에 비해 크게 발전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근세에 비해 턱없이 뒤떨어지는 어느 한 순간에 멈춰버린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생각들은 중세라면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를 하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주의자들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중세는 전혀 가치 없는 시기가 아니었다. 이 시기를 통해 카톨릭은 그 발전을 이루었고, 로마제국이 무너진 혼란기가 종식되었으며, 무엇보다도 르네상스를 통해 사상적, 물질적인 발전을 이루게 한 토대가 된 시기였다. 또한 이 시기는 현재까지 유럽인들의 정신적인 토양을 건설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 우리는 '기사'라고 하면 철로 된 갑옷으로 완전히 무장을 하고 무장된 말 위에 올라 커다란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거나 십자군을 떠올리기도 한다. 과연 기사란 누구일까?
'기사(Knight, Chevalier)'라는 말은 '말을 타다(Cheval)' 혹은 '종복(Chiht)'을 그 어원으로 한다. 기사는 일반적으로 중세에 활약하던 직업 기마무사를 말하는데 실제로 이들 모두가 말을 타지는 않았다. 중세 초기의 기사들은 직업적인 기마 전사들로 영주에게 봉토(封土)를 받고 군역의 의무를 제공하던 봉신들이었다. 기사는 일반적으로 귀족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 기사가 되기 위해 굳이 귀족일 필요는 없었다. 기사는 자유민은 물론 신분적으로 예속된 사람도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기사는 그 자신이 지위가 있는 자 이거나 다른 지위가 있는 자에게 봉사하는 사람이었다. 기사들은 전시에는 자신의 영주와 함께 야영지에서 전투를 지휘하거나 성을 지키기도 했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영주의 궁전에서 시중을 들었고, 제후들이 여가를 즐기는 연회와 마상경기(토너먼트)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기사제도가 가장 성행했던 것은 11~12세기 경으로 기사들이 모두 봉토를 소유하지는 않았다. 기사들 중에는 봉토를 매개로 한 [신종의 서약]을 맺지않은 기사들이 많았고, 금이나 돈을 대신 받기도 했다. 이들은 종종 어떤 의무나 서약(실제로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을 위해 전국을 방랑하기도 했는데 이런 기사들은 '무사수행자(Knight-Errant)'라 불리며 따분한 생활의 귀족들에게 환영을 받기도 했으며, 야심가들에게 용병으로 고용되기도 했다. 기사들은 수도원에서도 매우 환영을 받는 존재였는데 이는 수도원의 수입의 많은 부분에서 기사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종의 기사수업이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우리가 게임이나 만화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장차 기사가 될 소년은 대략 7살 무렵부터 기사수업을 받게 되는 데 주로 아버지나 친족의 기사나 영주에게서 수업을 받았다. 이들은 주로 신앙과 영주에 대한 존경과 경의, 궁전의 의식들을 가르쳤다. 이들은 '시동(侍童)이라 불렸는데 주로 식탁에서 고기를 저미고 시중을 들고 잔심부름을 도왔다.(당시에는 이런 일이 결코 천한 일이 아니었다.) 이들은 종종 시를 짓거나 음악을 배우기도 했으며, 수영을 하고 사냥을 하고 씨름 등을 하며 기본이 되는 훈련을 받았다. 이후, 14살이 되면 '종자(從者)'가 되어 자신의 후원자를 따라 전장을 누비거나 그의 무기를 손질하는 등의 일을 하며 기사가 되기 위한 보다 강한 훈련을 받는다. 주로 말 타기와 마상에서 창을 쓰는 법 성벽을 오르거나 도랑을 뛰어넘는 등의 보다 전투적인 훈련을 받았던 것이다. 18세 경 어느 정도의 능력을 습득하였고, 기사로서 갖춰야 할 장비들을 갖출 수 있는 자금력이 인정되면 기사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때에 따라 14세를 전후로 기사가 되거나 20세가 넘어서 기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사 작위식은 매우 성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왕실에서 식을 올리거나 대축제일의 경우로 대부분은 매우 간단하고 형식적인 의식을 통해 기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십자군 전쟁과 함께 그 명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사들이 보병대와 궁수들에게 참담한 패배를 거듭하고 새롭게 전래된 화약의 발달로 대포를 비롯한 무기들이 발달하게 되자 전장에서의 그들의 자리는 점점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의 잇단 실패와 십자군 운동의 정당성의 실추, 국왕들의 왕권강화에 따른 중앙집권정치로의 전환으로 말미암아 급기야 15~16C 에 들어서서는 그저 명예뿐인 작위로 전락하고 말았다.
: '기사도'는 중세 기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었다. 11C 경에 등장했다고 여겨지는데 여기에는 용맹심 이나 명예심 등 기사가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기사상이 담겨 있었다. [충성], [공정], [자애], [예절], [봉사], [관용]등의 덕목을 모두 갖춰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모습은 주종의 원칙과 카톨릭의 가르침, 궁정예절등에 의해 습득되어진 것으로 결국 가장 중요하고 마지막으로 남았으며, 실제로 필요한 것은 전사로서의 본질인 [용기]였다. 기사도는 중세의 모든 기사들이 원하던 궁극적인 가치였다. 악을 증오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고픈 기사들의 이상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사도가 특권층에 의해 자행된 중세 기사들의 악행이라 하지만 그들은 그 시대의 가치에 맞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인간으로서 이상과 꿈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인간의 가장 고결한 품성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지금의 잣대로 그들이 악행을 행했다고 해서 과연 그들이 세운 이상마저 부정하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2.아더왕(King Arthur) : 아더왕은 영국의 전설적인 왕으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전설(원탁의 기사)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존재다. 아더왕과 그의 충직한 기사들, 그리고 기네비어와 수많은 아름다운 귀부인들. 위대한 마법사 멀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들이다. 아더왕은 잉글랜드의 왕으로서 색슨족과 야만인에 대항하며 나라를 구하고 수많은 무훈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롭고 용감하며, 따뜻한 자애심을 지닌 왕으로 아더는 영국을 넘어서 전유럽,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더는 남 웨일즈에 거주하고 있던 브리튼 족(켈트 족의 한 일파)의 군주로 그는 유더 펜드리건의 아들이었는데 펜드리건은 '왕들의 수장'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는 약 AD 500년 경의 인물로 여겨지는데 색슨족에게 열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두고 영국을 수호했다고 여겨진다. 아더와 그의 나라는 더 이상 색슨족의 침입을 받지않았으며, 매우 평화로운 시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의 조카 모드레드가 반역을 일으키고 542년에는 콘월(영국 남서부) 주의 켐런에서 커다란 전투가 일어나고 모드레드는 살해당하지만 아더 역시 중상을 입게 된다. 이후, 귀부인들에 의해 애발로니아(아발론) 섬으로 이송되었다고 전해진다.
: 브리튼의 왕 콘스탄스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인 모이네스와 유더, 그리고 펜드리건이 그들이었다. 콘스탄스가 죽고 모이네스가 왕위에 오르자 신하인 보티전이 반란을 일으키고 모이네스는 살해당한다. 이때 성에서 탈출한 펜드리건은 형인 유더를 찾아가 보티전에게 복수를 하고 왕위를 되찾는다. 펜드리건이 모이네스의 뒤를 이어 왕이 되지만 색슨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고 그의 형인 유더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유더는 고문인 멀린의 조언에 따라 전국의 모든 영주들을 모아 그들의 충성을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그 자리에서 유더는 틴터디엘공(公) 골로이스의 아내인 이전느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구애하지만 이전느는 한마디로 거절한다. 이 사실을 안 골로이스가 아내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가버리자 유더는 골로이스를 반역자로 결정하고 그를 포위한다. 이때 유더는 멀린의 도움으로 골로이스로 변신해 이전느와 밀애를 가지게 된다. 마침내 골로이스는 전사하고 이전느는 유더의 아들인 아더를 낳게 된다. 아더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액터 경에게 맡겨져 자라게 된다. 이때 아더의 아버지인 유더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야심가들이 유더의 다음 자리를 노렸지만 모두들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때 브라이스 주교가 자신의 교회 앞에서 검이 박힌 바위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검을 뽑는 자가 왕이 될 것'(원전에는 '나는 엑스칼리버라고 일컫는데 왕의 아름다운 보물이다'라고 한다.) 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전국의 수많은 기사들과 야심가들이 이 검을 뽑아보려 애를 썼지만 그 누구도 바위에서 검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아더가 15세 되던 해, 아더는 종자로서 당시 양아버지인 액터 경과 젖 형제인 케이 경과 함께 마상경기에 따라 나서게 되었다. 케이 경은 매우 용감하게 싸웠지만 그만 검이 부러지고 말았다. 케이 경은 아더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내 새로운 검을 가지고 오게 했다. 아더는 황급히 말을 몰아 집으로 갔지만 유감스럽게도 케이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상심해 발길을 돌리던 아더는 교회 앞 바위에 꽂힌 검을 떠올리고는 그곳으로 달려가 한 손에 쉽게 검을 뽑아낸다. 케이 경은 아더가 가져온 검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사람들은 그가 지닌 검이 바위에 박힌 검임을 상기하고 매우 놀라워 한다. 그러나 케이 경이 검을 소유한 것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은 케이 경에게 다시 검을 바위에 꽂은 뒤 빼내어보라고 요구한다. 케이 경은 다시 검을 바위에 꽂은 후, 검을 뽑으려 했지만 검은 뽑히지 않았다. 케이 경은 아더가 그 검을 가져왔음을 실토하고 사람들은 아더에게 검을 뽑아보게 한다. 아더가 검을 잡아들자 검은 쉽게 바위에서 빠져 나왔고, 아더는 신에 의해 선택된 왕으로 여겨지게 되고 곧 왕위에 올랐다.
:(아더왕의 일대기와 그가 이룬 모든 업적을 다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길고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므로 부득이 여기서는 그의 일대기에 대해 간략한 기록과 함께 그의 무용담을 몇 가지 곁들이도록 하겠다.) 아더왕이 왕위에 오르자 곧바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더왕은 이에 밴 왕과 보호트 왕의 원조와 멀린의 도움을 얻어 이들을 제압하고 왕위를 인정 받는다. 왕위를 인정 받은 아더왕은 원수인 색슨족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호엘 왕의 조력을 얻어낸 아더왕은 스스로 대군을 몰아 색슨족을 격퇴하고 배던 산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둔다. 아더왕은 멀린의 조언에 따라 카말리드의 왕 라오데간의 딸인 기네비어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서른 아홉 명의 기사만을 거느리고 카말리드로 향한다. 그때 라오데간은 아일랜드의 왕 라이엔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멀린은 아더왕과 일행들의 정체를 비밀에 붙이고 라오데간을 도와 라이엔스와 전투를 벌이게 한다. 아더왕은 매우 용감하게 싸워 거인인 콜랑을 죽이고 라이엔스의 군대를 물리친다. 라오데간이 그런 아더왕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자, 아더왕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기네비어를 왕비로 얻고싶다는 본심을 밝힌다. 라오데간은 이 말에 크게 기뻐하며, 아더왕과 기네비어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아더왕은 스코트 족과 픽트 족을 정벌하고 다음해에 아일랜드와 아이슬랜드까지 정복했다. 그러자 주변의 여러 나라의 왕들이 아더왕에게 조공을 바쳐왔다. 이후, 노르웨이와 갈리아 지방까지 손에 넣은 아더왕은 고국으로 돌아와 카멜롯(시를레온)에 성을 짓고 그곳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올렸다. 로마의 루시우스 티베리우스의 침입마저 막아낸 아더왕은 자신의 왕국을 보다 건실하게 건설했다. 수많은 왕들이 아더왕에게 복속했으며, 수많은 기사들이 아더왕을 위해 카멜롯으로 모여들었다.
-배던 산(山)의 승리. : 반역자들을 격퇴한 아더왕은 색슨족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아모리카의 호엘 왕의 조력을 얻은 아더왕은 드디어 색슨족과의 전투에 들어간다. 이때 아더왕은 병사들의 선두에 서서 성 처녀 마리아의 이름을 외치며 병사들을 독려하며 적진으로 뛰어든다. 아더왕은 300명이 넘는 색슨 인을 쓰러트리고 그들의 대부분을 패주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의 왕위를 더욱 확고히 하게 된다.
-거인 콜랑과의 대결. : 아더왕이 라오데간의 딸 기네비어와 결혼하기 위해 카말리드에 도착했을 때 라오데간은 아일랜드의 왕 라이엔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아더왕은 자신의 신분을 비밀에 붙이고 이 전투에 참여했다. 그때 아더왕이 이끄는 기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은 모두 승리하고 있었지만 라오데간은 적에게 포위가 되어 끌려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멀린의 도움으로 라오데간의 근처로 날아간 아더왕은 적들의 통로를 차단하고 라오데간을 구해내지만 곧 15피트(약 4m 가량)나 되는 거인 콜랑과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아더왕은 전혀 두려움을 가지않고 콜랑과 맞서 싸운다. 한참의 결투 끝에 아더왕은 콜랑의 어깨에 맹타를 가한 뒤 그의 목을 친다. 콜랑의 머리는 완전히 잘려나가지 않아 거인의 어깨에 아직 붙어있었는데 아더왕은 이 거인을 자신의 말에 매달아 전장을 끌고 돌아다녔다. 이를 본 아일랜드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다가 황급히 후퇴했다.
-미카엘 산(山)의 거인퇴치. : 아더왕이 브르타뉴에 군대를 소집하고 동맹군을 기다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한 시골사람이 아더왕에게 찾아와 성 미카엘 산 위에 거인이 살고 있는데 오랫동안 아이들을 납치해 잡아먹었으며, 최근에 브르타뉴 공작부인과 그녀의 시녀들을 납치했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아더왕은 베드버 경과 케이 경만을 데리고 이 거인을 처치하기위해 미카엘 산을 오른다. 산 아래에 두 사람을 대기하게 해놓은 뒤 아더왕은 홀로 산을 오르다가 브르타뉴 공작부인이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분개한 아더왕은 산 위로 올라가 사람의 다리를 뜯어먹고 있는 거인에게 싸움을 걸었고 곧 둘 사이에 처절한 사투가 벌어졌다. 거인이 곤봉으로 아더왕의 보관을 부서 버리자 아더왕은 칼로 거인의 배를 찔러 응수했고, 거인이 아더왕을 껴안고 으스러뜨리려 했지만 아더왕은 단도를 꺼내어 거인을 계속 찔렀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며 아더왕과 거인은 산 아래까지 굴러 내려갔는데 마침 근처에 있던 베드버 경과 케이 경이 달려와 아더왕에게서 거인을 떼어놓았다. 두 기사가 아더왕을 잡고 있는 거인의 팔을 풀었을 때, 이미 거인은 숨이 끊어진 뒤였다. 아더왕은 거인의 머리를 베어내어 창 끝에 걸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망루에 걸게 했고 모든 백성들이 아더에게 감사했다. 아더는 거인이 강탈해놓은 약탈품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산 언덕 위에 성 미카엘을 기념하는 교회를 세웠다.
: 아더왕은 매우 자상한 왕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매우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있다. 아더왕에게는 매우 훌륭한 기사들이 많았는데 그 중 란슬롯은 매우 뛰어난 기사였다. 용모는 물론 기품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용맹하여 단 한번도 결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아더왕은 란슬롯을 매우 신임하고 있었다. 란슬롯도 그런 아더왕을 존경했지만 한가지 아더왕에게 불경을 저지르고 있었다. 바로 왕비 기네비어와의 밀애였다. 란슬롯은 기네비어만을 자신의 여인으로 정해 그녀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기네비어 또한 그런 란슬롯을 총애하여 급기야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기네비어는 아더왕의 왕비였으며, 란슬롯은 아더왕의 신임을 받는 기사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반역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종종 밀애를 가져왔다. 이 사실을 안 아그라베인 경은 다른 기사들을 선동해 란슬롯과 기네비어를 몰아내려 했다. 사실 그 동안 기사들치고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사이를 눈치 못 채고 있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이 일에 대해 그 어떤 관여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거웨인 경과 그의 형제들은 아그라베인 경의 말을 무시했지만 오직 모드레드 경만이 그에게 동조했다. 아그라베인 경은 아더왕에게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관계를 폭로했지만 아더왕은 믿지 않았다. 아그라베인 경은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모드레드 경과 함께 함정을 준비하지만 란슬롯에게 발각된다. 란슬롯은 아그라베인 경을 죽이고 모드레드에게는 부상을 입히고 도망친다. 그러나 이로써 란슬롯과 기네비어와의 관계는 백일하에 드러나고 아더왕은 눈물을 삼키고 기네비어를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한다. 란슬롯은 화형장으로 끌려가는 왕비를 구하기 위해 습격을 감행하는데 이 와중에 거웨인의 형제들을 그만 살해하고 만다. 형제들의 죽음에 분노한 거웨인은 아더왕에게 란슬롯을 칠 것을 건의하고 아더왕은 란슬롯과의 전투를 준비한다. 차마 자신의 주군을 공격하지 못하는 란슬롯은 프랑스로 도망간다. 아더왕은 모드레드에게 잠시 나라를 맡기고 거웨인과 함께 란슬롯을 뒤쫓는다. 그러나 란슬롯과의 전투에서 거웨인이 쓰러지고 전투는 잠시 휴전에 들어간다. 그때 본국에서는 모드레드의 반역이 진행되고 있었다.
- 아더왕이 나라를 비우고 많은 기사들이 아더를 따라 전쟁터로 나서자 모드레드는 그 동안 꿈꿔오던 야망을 실행시키기로 한다. 모드레드는 아더왕이 죽었다는 가짜편지를 쓰게 한 후, 스스로 왕위에 올라 기네비어를 왕비로 맞이 하겠다고 선언한다. 기네비어는 런던 탑으로 피신하고 모드레드가 반역을 일으킨 사실이 아더왕에게도 전해진다. 놀란 아더왕은 황급히 귀국을 준비하여 도버로 향한다. 도버에서는 이미 모드레드가 이끄는 대군이 준비 중 이었지만 모드레드는 아더왕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했다. 아더왕은 모드레드를 후퇴시키고 상륙에 성공했지만 거웨인 경은 상처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거웨인은 유언에서 란슬롯을 불러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고 반역자를 처단하라고 한다. 아더왕은 거웨인의 말에 따라 란슬롯과 화해한 후, 그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 모드레드와 휴전협상에 들어간다. 아더왕과 모드레드는 아더 왕 사후에 모드레드가 전 영국을 물려받는 것으로 협상에 합의 하지만 협상중인 천막에 들어온 독사에 물린 한 기사가 검을 빼어 드는 바람에 협상은 파기되고 양측은 다시 치열한 전투에 들어간다. 많은 기사들이 세상을 떠났고, 모드레드는 아더왕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아더왕도 심한 부상으로 생명이 위험해 지고 만다. 그때 아더왕의 곁에는 단 두 사람의 기사만이 남아 있었는데, 집사인 루칸 경과 베디비어 경이었다. 그러나 루칸 경도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안 아더왕은 베디비어 경에게 자신의 검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던지도록 명령한다. 베디비어 경은 두 번이나 검을 던지는 것을 머뭇거리다가 아더왕의 호통을 듣고 난 후 검을 호수에 던진다. 그러자 호수에서 손이 나와 엑스칼리버를 쥐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아더왕은 호숫가로 다가가 귀부인들(모르간 르 페이, 호수의 요정 비비안, 북 갤리스의 왕비- 여기에 기네비어를 넣기도 한다.)이 탄 배에 실려 '신들의 영원한 젊음의 나라(켈트 신화의 티르 나 노이)'에 있다는 애발로니아(아발론)로 향한다. 그러나 아더왕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도 있다. 아더왕이 그 길로 글리스턴베리로 운반되어 그곳에서 숨을 거둔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되었다는 것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1150년 헨리 2세의 명령으로 아더왕의 분묘가 발굴되었고, 이곳에서 유골과 검, 납으로 된 십자가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3. 아더왕의 기사들. : 아더왕의 기사들은 이른바 ‘원탁의 기사’로 불리며 모든 기사들의 본보기로 알려져 있다. 바늘과 실처럼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수많은 작품들의 주제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왕 아더왕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그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기사들을 모두 설명한다면 사흘 밤낮을 세워도 모자라므로 부득이 멀린과 원탁의 유명한 기사들 몇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대신 하려 한다.(이 곳에 소개가 되지 않은 기사들이 결코 용기와 무훈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 멀린은 아더왕의 전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주로 긴 회색수염에 뒤로 잘 빚어 넘긴 회색머리칼을 지녔으며, 마법사처럼 보이는 로브를 입거나 두건과 망토를 두른 노인의 모습으로 여겨지곤 한다. 마치 반지전쟁의 갠달프처럼 말이다. 실제로도 반지전쟁의 갠달프의 모습은 멀린이 원조로 보여진다.
- 멀린은 요마 인큐버스와 인간 여성사이에서 태어났다. 인큐버스는 하늘에 사는 사악하지도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은 존재였다. 멀린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자마자 곧 한 은자(승려)에게 그를 맡겼고, 그의 운명을 알아챈 승려는 그를 그의 아버지와 같은 저주 받은 운명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를 세례 받는 샘으로 데려가 운명으로 부터 그를 구해내었다. 멀린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요마가 되는 것은 면했지만 그로 인해 인간을 뛰어넘는 수많은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멀린은 수많은 마법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변신할 수 있었다. 멀린은 이 능력을 왕을 위해 사용했고, 가끔씩은 궁정의 연회를 위해서도 사용하곤 했다. 예언력 또한 이런 왕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은 해박한 지식과 명철한 판단력으로 왕을 보좌하는 능력이었다. 멀린은 보티전의 눈에 띄어 그의 곁에 머물게 된 이후, 펜드리건, 유더, 아더의 3대(?)를 섬기며 언제나 든든한 조언자이자, 조력자로 등장한다. 특히 아더왕에게 있어서 그는 아더왕의 대부와 같은 존재로 아더왕을 태어나게 한 장본인(? 어찌 되었건 아더가 태어난 것은 그의 노력이었으므로..)이며, 언제나 그를 돌보고 있다. 그를 위해 원탁을 준비했으며, 비비안에게서 엑스칼리버를 얻어내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언제나 아더왕의 곁에서 바른 길을 가도록 힘썼다. 아더왕에게 있어서 그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는 아더왕의 말년에 더욱 잘 드러난다. 멀린은 아더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보필하던 그는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리고 만다. 성배의 탐사를 지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멀린은 아더왕과 헤어지게 되고, 이때부터 아더왕은 자신의 파멸을 향한 내리막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과연 멀린이 그의 곁에 있었다면 아그라베인이나 모드레드가 반역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며, 란슬롯과 다툼을 벌이게 되었을까?
- 멀린이 사라지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멀린에게는 비비안이라는 애인이 있었다. 그녀는 호수의 여왕으로 란슬롯을 훌륭한 기사로 키워낸 장본인이며, 엑스칼리버의 원래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멀린은 그녀를 사랑해서 자신의 마법의 여러 가지와 그 비밀까지 그녀에게 전수해주었는데, 이는 그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비비안은 멀린이 잠든 사이에 마법을 부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탑을 만들어서 그를 가두어둔다. 비비안은 오직 자신만이 그를 소유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탑은 누구도 볼 수도 알지도 못하는 곳에 세워졌으며, 오직 비비안만이 이곳을 드나들거나 이 탑의 마법을 없앨 수 있었다. 이렇게 멀린은 아더왕의 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는 거웨인에게 음성으로 나타나 성배가 나타났으며, 그것을 찾을 기사 또한 나타났으니 성배를 찾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더왕의 이야기에서 종적을 감추게 된다.
: 거웨인은 아더왕의 조카로 오크니의 왕 로트의 아들이었다. 거웨인은 원탁의 기사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로 현명하고 예의 바르며, 용감하고 뛰어난 기사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의견은 언제나 정당했으며, 결코 어긋난 일을 하지도 않았다.(롤랑과 함께 모든 기사들의 이상적인 존재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 거웨인에게는 아주 특별한 힘이 있는데 하루에 두 번 그 힘이 두 배로 강해지는 능력이었다. 오전 아홉시 부터 열 두시까지, 그리고 오후 세 시부터 저녁기도 시간까지 그 힘이 늘어났으며, 이 능력에 대해서는 오직 거웨인과 아더왕만이 알고 있었다.
- 아그라베인이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관계를 폭로한 뒤 기네비어는 법에 따라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 그녀를 호송하는 호송기사로 거웨인의 두 동생, 거해리트와 거래드가 맡게 된다. 란슬롯은 왕비를 구하기 위해 호송대를 습격하고 우연히 거웨인의 동생들을 죽이고 만다. 평소에 란슬롯과 우애가 두터웠던 거웨인이었지만 형제들의 죽음으로 그는 분노에 휩싸인다.아더왕과 함께 병사를 일으킨 거웨인은 란슬롯을 따라 프랑스로 원정을 가지만 그곳에서 란슬롯과 치열한 접전 끝에 그만 커다란 부상을 입고 쓰러진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모드레드의 반역소식에 고국으로 귀환하던 중 부상이 악화되어 위대한 원탁의 기사 거웨인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 란슬롯은 브르타뉴의 왕 밴의 아들이다. '호수의 기사'라고도 불린 란슬롯은 아더왕의 가장 신임을 받는 기사로 용모가 빼어나고 예절에도 밝았다. 란슬롯은 어린시절 호수의 요정 비비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비비안은 란슬롯에게 무술과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원래가 빼어난 용모와 인품의 소유자였던 란슬롯은 비비안의 교육을 받으며 더욱 뛰어난 기사로 성장했다. 그는 아더의 전투기사로 불릴 정도로 용감하고 빼어난 무술의 소유자였는데 마상시합은 물론 실제의 전투에서도 거의 패해본 적이 없는 뛰어난 기사였다. 원탁의 수많은 기사들이 그와 대적했지만 그를 이긴 자는 없었다. 란슬롯은 수많은 무사수행을 통해 정의를 실천하고 많은 귀부인들과 기사들을 구해내었다. 그의 이런 점은 수많은 귀부인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오직 단 한 사람, 아더왕의 왕비 기네비어만을 사랑했다.
- 란슬롯은 기네비어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수많은 나라를 정벌하고 수많은 위험에서 그녀를 구해내었다. 독살의 누명을 뒤집어 쓴 그녀를 구해내었고, 악한 기사에게 납치된 그녀를 구하기 위해 짐마차를 타고 가는 수모도 견뎌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사랑은 애초에 잘못된 사랑이었다. 그녀와의 관계로 인해 그는 성배를 발견하고도 그것을 얻을 수 없었다. 기네비어와의 관계가 아더왕에게 알려지고 그는 궁전에서 도망가게 된다. 자신과의 관계로 기네비어가 화형에 당하게 되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우연히 거웨인의 두 동생을 죽이게 되고 아더왕과 처절한 전투를 벌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모드레드의 반역으로 간신히 아더왕과 화해를 하게 되지만 아더왕을 돕기 위해 그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더왕은 숨을 거둔 뒤였다. 란슬롯은 행방불명 된 기네비어를 한 수도원에서 찾아내지만 그녀는 이미 신에게 의탁한 몸이었다. 란슬롯 역시 한 은자를 찾아가 그 역시 승복을 입고 속죄하며 기도와 단식생활에 들어간다. 그렇게 6년 후 기네비어가 세상을 떠나자 란슬롯은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아더왕에게 하사 받은 성인 '라 즈와이외즈 가르드(즐거운 수비)'로 돌아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 퍼시발은 페리노어 왕의 아들로 전해진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형제들 모두가 전쟁터에서 죽자 그의 어머니를 그를 기사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그에게는 기사에 대한 그 어떤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우연히 숲을 지나가던 기사들을 보고는 자신도 기사가 될 것을 결정한다. 퍼시발의 어머니는 그에게 기사로서 지켜야 할 계율 몇 가지를 알려준 뒤 아더왕을 찾아가 기사가 되라고 말한다. 퍼시발은 그 길로 아더왕의 궁전으로 향한다. 아더왕의 궁전에서 그는 집사인 케이 경을 만나 아더왕을 만나게 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 당한다. 그때 아더왕의 성에는 웃지 않는 시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기사도의 꽃이 될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결코 웃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퍼시발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퍼시발이야 말로 기사도의 꽃이 될 사람이라 말한다. 그러나 케이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수모를 안겨준다. 그리고 퍼시발에게 아더왕의 명예를 모욕하는 한 기사를 쓰러트린 다면 아더왕에게 알려 그를 기사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퍼시발은 케이가 말한 기사를 만나 대결에 들어가고 나무막대기 하나로 기사를 쓰러뜨린다.
- 퍼시발은 아리마테아 요셉의 혈통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로 인해 갤러해드와 함께 성배를 발견하는 기사가 된다. 성배를 찾아 모험을 하던 그는 두 번이나 악마의 함정에 빠지게 되지만 그때마다 성호를 그어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후, 힘든 여행을 계속한 퍼시발은 마침내 갤러해드, 보호트,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과 함께 성배를 발견한다. 그리고 갤러해드가 죽은 후 퍼시발은 승복을 입고 생활을 하다가 그 역시 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 갤러해드는 란슬롯과 펠리스 왕의 딸 엘레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리마테아 요셉의 직계 후손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원탁의 모든 기사들 중 가장 고결한 기사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인 란슬롯을 닮아 매우 수려하고 뛰어난 무예를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성품이 매우 훌륭해 아더왕은 그를 보고 곧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에게 더없이 선량한 인물이 되게 하소서. 아름다움은 이미 가지고 있사오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나이다.]
- 갤러해드는 이미 성배를 발견할 운명을 지닌 기사였다. 그가 원탁으로 다가섰을 때, 저주 받은 자리에서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리며 갤러해드의 이름이 나타났다. 이 저주 받은 자리는 성배를 찾을 고결한 기사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갤러해드는 여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암자에서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방패를 발견하게 된다. 이 방패는 아리마테아 요셉의 것으로 다른 기사들이 그 방패를 손에 넣고자 했지만 곧 하얀 옷을 입은 기사가 나타나 그들을 공격해 그들은 결코 방패를 얻을 수 없었고 오직 갤러해드 만이 그 방패를 얻게 되었다. 갤러해드는 성배를 찾기 위한 여행을 계속하던 중 퍼시발을 구해내고 숲속의 한 암자에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퍼시발의 누이를 만나 성배가 있는 곳으로 인도 받게 된다. 갤러해드는 퍼시발, 보호트와 함께 성배를 찾게 되고 배를 타고 새라스라는 도시로 향했고 신에 뜻에 따라 그곳의 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성배의 곁에서 아리마테아 요셉을 만난 갤러해드는 신에게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기도한 후, 퍼시발과 보호트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
#4. 원탁(圓卓). : '원탁'은 아더왕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원탁은 말 그대로 둥근 탁자로 이 탁자의 어디에 앉던지 모두가 동등했으며, 지위나 계급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원탁은 <브루토 이야기>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수많은 전설을 낳으며 위대한 군주의 밑에서 확립된 고결한 전우애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 원탁의 크기와 좌석의 숫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중세이후,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과 성배전설과 맞물려 13개의 좌석으로 묘사되어지곤 했다.
- 원탁은 멀린에 의해 만들어졌다. 멀린은 칼라일에서 이 원탁을 만들고 전국의 영주들과 기사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왕에게 충성하고 서로간에 도움과 협력을 주고받겠다는 맹세를 하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원탁은 카말리드의 왕 라오데간의 손에 들어갔다가 아더왕과 기네비어의 결혼 때 아더왕에게 돌려주었다고도 전해진다. 멀린은 원탁을 만들면서 그리스도의 열세 사도를 기념해 열세개의 좌석을 만들었는데, 이중 열 두개의 좌석만이 명망이 높은 기사들의 소유가 되었다. 마지막 13번째 자리는 배신자 유다를 상징하는 자리로 그 자리만큼은 언제나 비워두었다. 한 대담한 사라센기사가 경고를 무시하고 그 자리에 앉았더니 대지가 입을 벌려 그를 삼켜버렸다. 원탁에는 마법의 힘이 있어 그 자리의 주인이 다가오면 그윽한 향기가 나며 그 자리의 주인이 될 기사 이름이 새겨지게 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용기나 명예 등 여러 가지의 면에서 그 자리의 이전 주인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앉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영국 윈체스터에는 이를 본 딴 원탁이 하나 있는데 이는 정복자 윌리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5. 엑스칼리버. : 엑스칼리버는 아더왕의 검이다. 아더왕의 이야기에서 아더왕보다도 더 유명한 것이 바로 이 엑스칼리버가 아닐까 싶다. 아더왕의 이 검으로 침략자들로 부터 나라를 구하고 수많은 무훈을 남길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검은 권력과 힘, 그리고 왕권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특히 엑스칼리버로 인해 아더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으며, 검 중의 검인 엑스칼리버는 아더왕이 왕들의 왕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엑스칼리버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엑스칼리버가 아더왕을 왕위에 오르게 해준 바위에 박힌 검이라는 전설이다. 유더가 죽고 나라에 왕위를 이을 사람이 없어지자 브라이스 주교는 하늘에 왕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한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교회 앞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한가운데 검이 박혀 있었으며, 이 검을 뽑는 자가 왕이 될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우연히 아더가 이 검을 뽑게 되었고 이 일로 인해 아더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아더왕이 모험을 하던 중 멀린을 구해내고 한 다리에 도착했을 때 한 기사가 아더왕의 앞을 가로막고는 결투를 요구했다. 아더왕은 결투에 응해 그 기사와 겨루었으나 그 기사의 검에 아더왕의 검이 두 동강이 나면서 아더왕은 그 기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황급히 멀린이 그 기사를 잠재우고 아더왕을 구해내었고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아더왕은 검을 잃은 것에 대해 매우 상심해 있었다. 그러자 멀린이 '근처에 좋은 검이 있으니 그 검을 얻으시지요'라고 하며 그를 호숫가로 안내했다. 아더왕은 그 호수의 한 가운데에 검을 쥐고 있는 하얀 손이 물위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멀린에게 누구의 검인지 물었다. 멀린은 그 검은 호수의 요정의 것으로 그녀에게 부탁하여 그 검을 얻으라고 조언했다. 아더왕이 호수의 요정에게 검을 달라고 부탁하자 호수의 요정은 훗날 자신의 소원 한가지를 들어준다면 검을 내어주겠다고 말했다. 아더왕은 그녀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검을 손에 넣었는데 이것이 엑스칼리버였다.
엑스칼리버는 그 자체로도 매우 훌륭한 무기였는데 엑스칼리버를 감싸고 있는 검집 또한 예사물건이 아니었다. 엑스칼리버의 검집에는 마법이 걸려 있어 이 검집과 엑스칼리버를 소유한 주인은 어떤 상처가 나도 피를 흘리지 않았다. 어느날 아더왕과 멀린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문뜩 멀린이 아더에게 물었다.
[전하, 전하는 엑스칼리버와 엑스칼리버의 검집 중 어느 것이 더욱 마음에 드십니까?] [당연히 엑스칼리버라오.]
아더왕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멀린이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그렇지 않답니다. 이 엑스칼리버의 검집은 엑스칼리버보다도 몇 배나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멀린은 이 대화를 통해 아더왕에게 왕은 많은 땅을 정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보다도 왕국의 평화와 백성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6. 성배(聖杯) : 성배는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술을 따라 마신 잔을 말한다. 이후, 그리스도는 그것을 아리마테아의 요셉에게 주었는데 그는 그것과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리마테아 요셉은 그리스도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매우 부유했으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자 빌라도에게 빌어 그의 시체를 매장한 사람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아리마테아의 요셉과 그의 후손들은 이 유물들을 매우 충실히 보존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때 까지도 성배는 모든 순례자들이 볼 수 있었으며, 아울러 성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던 아리마테아 요셉의 후손이 자신의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한 여 순례자의 옷깃이 풀어진 틈을 보고는 그만 부정한 시선을 보내고 말았다. 그러자 성스러운 창(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이 그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혔고, 성배는 사람들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 멀린이 사라지고 얼마 후, 거웨인을 통해 성배의 탐색을 부탁하는 전언을 들은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오순절 전야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순간 갑자기 뇌성이 들리더니 밝소 환한 빛이 비쳐 들었다. 온 홀 안이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하더니 하얀 비단에 싸인 성배가 나타났다. 모두가 놀라 이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성배는 잠시 그 모습을 보이고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아더왕은 성배를 보여준 신의 은총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고, 곧 거웨인이 일어나서 자신은 성배를 찾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성배를 찾아 떠나겠다고 서약했고, 거의 모든 기사들이 성배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아더왕은 매우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서약을 이행하지 못할 것이었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실제로 수많은 기사들이 성배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이 성배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거웨인은 갤러해드와의 대결에서 부상을 입고 탐색을 중단했으며, 란슬롯은 성배를 보았지만 부정한 행실과 신과의 약속을 깨뜨린 이유로 성배를 얻을 수는 없었다. 백디메거스 왕을 비롯한 수많은 기사들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으며, 콜그리반스를 비롯한 수많은 기사들이 탐색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성배를 찾은 것은 오직 갤러해드와 퍼시발, 보호트 뿐이었고 갤러해드와 퍼시발은 새라스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보호트 한 사람만이 아더왕에게 돌아가 성배 탐색을 완료했음을 전할 수 있었다.(물론 거웨인과 란슬롯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돌아오긴 했지만 성배탐색을 이루지는 못했었다.) 아더왕은 위대한 학자들을 불러 성배탐색에 대한 모든 모험담을 기록하게 했고 이것을 방대한 책으로 만들어 솔즈베리의 교회에 헌납했다고 한다.
#7.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 중세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 까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전설이다. 아더왕의 전설은 더 이상 영국과 그 주변지역의 전설은 아니다. 이미 우리들에게도 아더왕은 매우 친밀한 존재인 것이다. 실제 아더왕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는 몰라도 아더왕이 매우 훌륭한 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원탁의 기사들이 누구누구인지는 몰라도 그들이 매우 충성스런 기사들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더왕과 관련된 전설을 보고 들으며 우리는 새로운 꿈과 희망을 발견해 내기도 했다.
종종 사람들이 물어오곤 한다. 아더가 정말 실존했느냐고. 정말 원탁의 기사가 존재했었느냐고. 실제 영국의 역사에 있어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이야기는 건국신화의 일부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존재했었을 시기와 전설의 내용과 시기적,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도 너무도 많다.
그러나 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에 대해 존재했었냐고 묻는 물음에 감히 '그렇다'고 말한다. 분명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그들의 존재여부는 불투명하다 못해 희박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은 존재한다. 그들의 전설을 믿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것은 결코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니다. 아더왕이 세운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그를 위해 충성을 바치며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지키는 용맹한 기사들.. 그들은 중세 모든 왕과 기사들의 이상형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더왕과 기사들의 모습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바라는 세상이기도 한 것이다. 정의가 바로 서고 약한 사람들이 보호 받으며,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저 아더왕의 궁전 카멜롯에서 그러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앞날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가 그런 세상을 꿈꾸고 바라는 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아름다운 전설은 언제까지나 우리 가슴속에 존재하고 있다.
[ Hic jacer Arthurus, 아더왕 이곳에 잠들다. Rex quondam 왕이었고, Rexque futurus. 또 왕일 사람이.. ]
('아더왕의 묘비'에 새겨진 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