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김동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곳에 내마음도 피어
건너마을 젊은처자 꽃따러 오거던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다주
봄이 오면 하늘 위에 종달새 우네
종달새 우는곳에 내마음도 울어
나물캐는 아가씨야 저소리 듣거던
새만 말고 이 소리도 함께 들어주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종달새 되어서 말붙인 다오
나는야 봄이 오면 그대 그리워
진달래 꽃이 되어 웃어 본다오
<해설> 1928년 조선일보에 발표된 김동환(金東煥)의 시이다.
가사에는 봄을 기다리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져 있으며, 곡의 느낌도 가사와 같이 소박하고 담백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게 한다. 곡의 통일성을 유발시키는 일관된 리듬의 쓰임과 기초적인 화성진행, 기승전결로 잘 짜여진 악곡구성 등 가요 2부형식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예술적인 면보다는 대중적인 면이 더 강한 통속가곡이지만, 한국가곡의 개척기에 만들어진 곡으로 한국서정가곡의 틀을 형성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한국가곡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 중의 하나이며, 가곡으로서뿐만 아니라 합창곡 · 중창곡 · 경음악 등으로도 편곡되어 연주되고 있다.(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잔인한 달의 꽃구경
우리가 흔히 가곡으로 알고있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로 시작되는 <봄이 오면>은 파인 김동환의 시다. 파인이 경영하던 삼천리사에서 1929년에 이광수, 주요한과 함께 펴낸 <3인시가집>에 들어있다. 그후 1942년에 나온 그의 단독 서정시집 해당화(1942)에도 실려있다. 1931년 무렵에 김동진(1913-2009)에 의해 곡이 붙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봄을 노래한 대표적인 가곡 가운데 하나이다.
‘작곡가 김동진’ 하면 보통 <가고파>를 떠올린다. 그가 작곡한 가곡 <가고파>가 워낙 유명하기 때문이다. 1913년 평안남도 안주 태생인 김동진은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로 이어지는 목사 가정에서 자라나 어려서부터 교회의 풍금과 가깝게 지냈다. 11살 때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사준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문학에도 많은 흥미를 갖고 있었다. 숭실중학교 시절 앞서 말한 <3인시가집>에 있는 세사람의 시 가운데, 김동환의 ‘봄이 오면’, 주요한의 ‘부끄러움’, 이광수의 ‘외붓 한자루’를 늘 외우고 다니면서 언젠가 이 세 편의 시를 작곡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다.
김동진은 당시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중학 5학년 때-당시 중학은 5년제였다-어느날 밤, 학교 음악실에서 혼자 바이올린 연습을 끝내고 풍금을 치며 발성연습을 하던중 갑자기 평소 외우고 있던 ‘봄이오면’의 “건너마을 젊은 처자---”의 악상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손은 어떤 선율을 짚고 있었다.
김동진은 후일 그의 작곡집 ‘내마음’(1973)의 뒤편에 실은 회고의 글에서 당시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즉시 오선지에 (머리에) 떠오른 그 선율을 옮기게 되었고 그것이 끝나자 그 선율은 내가 지은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나의 마음은 온통 황홀감에 차 있었다. 곡이 완성된 뒤 나는 한방에서 지내던 장대욱에게 처음 그 노래를 배워 주어 같이 불렀고 그후 이 노래는 삽시간에 온 기숙사에 퍼졌으며 숭실전문학교에까지 파급되어 모르는 학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애창되었다. 그때의 그 감격은 지금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바이올린에서와는 판이한 희열을 내게 안겨 주었으며 이때부터 작곡에 대한 나의 집념은 더 강렬하게 나의 온 마음을 사로 잡았다.”
이때가 김동진이 열여덟살 때이다. 그후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하여 담임이었던 양주동 선생에게 배운 이은상의 시조 <가고파>에 곡을 붙인다. <가고파>작곡은 1933년의 일이니 그의 나이 스무살 때이다.
한편, <봄이오면>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봄을 알리는 꽃은 단연 진달래꽃이 아니었던가 한다. <봄이오면> 뿐만 아니라 봄을 읊은 많은 시와 노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진달래다. 지금 사람들은 봄꽃하면 매화-산수유-벚꽃-목련부터 연상한다. 그러나 이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더 친근했던 봄꽃은 진달래였다. (khan, 인터넷)
* 진달래
시인 김동환(1901∼?)의 ‘봄이 오면’ 첫 구절에서처럼 진달래는 봄의 도착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꽃이다. 따뜻한 바람을 타고 잎보다 먼저 연분홍 꽃이 산등성이에 무리 지어 핀다. 진달래의 먼 선조들은 생존경쟁에 밀려 비옥하고 아늑한 땅은 다른 나무에게 빼앗기고 척박한 산꼭대기로 쫓겨나게 됐다. 바위가 부스러져 갓 만들어진 흙으로 말이다. 수분이 부족해 대부분의 식물이 싫어하는 산성(酸性) 땅으로….
경쟁자가 많지 않아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평생 고난의 행군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진달래는 생명력이 강인하다. 사이좋게 오순도순 모여 그들만의 왕국을 이룬다. 특히 우리나라 진달래는 중국이나 일본 진달래보다 꽃이 곱고, 양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품종개량이란 성형수술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자연미인이다. 다만 숲이 우거지면서 그 영토가 차츰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 옛 문헌에 나오는 진달래는 모두 두견화(杜鵑花)로 기록돼 있다. 중국 이름을 받아들인 것인데, 이런 전설이 있다. 중국의 고대국가인 촉나라 임금 두우는 벌령이란 신하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추방당한다. 억울하고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죽어서 두견새가 돼 촉나라 땅을 돌아다니며 목구멍에 피가 나도록 울어댔다. 그 피가 나뭇가지 위에 떨어져 핀 꽃이 두견화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계모의 구박에 못 이겨 죽은 어린 여자아이의 혼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는 슬픈 전설도 있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는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라 하여 꽃전(花煎)을 부쳐 먹는 풍습이 있었다. 꽃전이란 찹쌀가루에 꽃잎을 얹어서 지진 부침개를 말한다. 이 풍속은 고려 때도 있었으며, 조선시대는 창덕궁 비원에서 중전이 궁녀들과 함께 ‘화전놀이’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진달래 꽃잎에다 녹말가루를 씌워 오미자 즙에 띄운 진달래 화채 역시 삼월 삼짇날의 계절음식이다. 조선말기 문신 김윤식이 쓴 『운양집(雲養集)』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은 큰 병에 걸려 고향인 당진 면천에서 휴양하고 있었다. 그의 열일곱 된 딸 영랑이 날마다 아미산에 올라가 기도를 했더니 어느 날 꿈속에 신선이 나타났다. ‘아비의 병을 낫게 하려면, 아미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과 찹쌀로 술을 빚어 마시게 하라’고 했다. 신선의 말대로 하자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것이다.
이후 진달래꽃으로 빚은 두견주는 약술로 애용됐으며 기침을 멈추게 하고 신경통·류머티즘 등 성인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부지방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이란 이름에 더 친숙하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진달래가 필 즈음에 굶주린 아이들은 진달래꽃을 따먹고 허기를 달랬기에 진짜 꽃이란 의미로 참꽃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너무나 친숙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비롯해 옛 선비들의 시문집에도 진달래 시가 수없이 실려 있다. 아래는 백성에서 임금님까지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사랑한 꽃이었다. 진달래 축제가 벌어지는 여수 영취산, 강화 고려산, 대구 비슬산의 진달래 등 지금부터 우리의 산은 진달래 천국이 된다. (박상진/경북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박상진의 우리 땅 우리 나무')
<김동환(金東煥): 1901 - ?)
* 1901년 함북 경성(鏡城) 출생. 아호는 파인(巴人).
* 1921년 중동(中東)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도요[東洋]대학 문과 수학,
* 1924년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로 [금성(金星)]지에 양주동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하였다.
* 1925년 한국 최초의 서사시(敍事詩)로 일컬어지는 첫시집인 [국경의 밤], 제2시집 [승천하는 청춘]을 간행하였다.
* 1925년 조선일보와 1927년 동아일보의 기자로 일을 하다가,
* 1929년 월간지 [삼천리(三千里)]를 창간 주재하였고, 1938년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을 발간하여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 1939년 총독 미나미[南次郞]의 "새로운 동양의 건설" 등을 [삼천리]에 실어 잡지의 내선일체 체제를 마련한 그는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상임이사 등을 지내면서 적극적으로 친일매족의 선봉에 나서기도 하였다.
*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불명이다.
* 시집으로 주요한, 이광수와 함께 제3시집 [삼인시가집(三人詩歌集)](1929), 제4시집 [해당화(海棠花)](1942)를 발간하였다. 생전의 시집 외에 유고를 모아 펴낸 제5시집 [돌아온 날개](1962)가 있으며, 산문집 [평화(平和)와 자유(自由)](1932), 시·소설·평론을 함께 묶은 [조선명작선집(朝鮮名作選集)](1936), 기행문을 모은 [반도산하(半島山河)](1941), 수필집으로 [꽃피는 한반도(韓半島)](1952) 등이 있다.
♣ 봄이 오면/(노래)신현식
http://youtu.be/dKXd-5Pcqf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