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배(糞腹) 셋
김광한
내가 잘 아는 분 가운데에는 종로 3가 단성사 극장 옆 후미 진 골목에서 여관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신다. 이 분은 젊은 시절에 모 신문사의 기자로서 사회 곳곳의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의욕적으로 일하셨다. 그런데 어쩌다 숙박업계에 뛰어들어 그 동안 볼 것, 못 볼 것을 다 봐서인지 여관업을 결코 바람직한 직업으 로 내세우길 꺼려한다. 생계유지의 방편은 되었지만 여관업이 자신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부분을 극히 혐오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업(業)에 보람을 찾으려 애쓰지만 이 분은 먹고살기 위한 업은 될지 모르나 누구에게도 이야기하고 싶은 업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하긴 홍등가에서 윤락녀를 고용해서 화대(花代)를 챙기는 포 주(抱主)나 고리대금업자, 바가지 술장사 등에 비하면 훨씬 상 위(上位)에 속하나 그렇다고 옛날 객주(客主)집 주인이 갖는 어떤 긍지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우선 하는 일이 접객업소이니 만 큼, 부도덕한(대부분) 손님들에게 대하는 인격이 결여된 대화를 엿본다면 더욱 짐작이 간다.
「방있습니까?」예.」얼맙니까?」대실입니까? 「만 오천 원입니다.」「침대방 있습니까?」 「이층이요.」 「좋은 테이프(음란) 있습니까?」없습니다. 단속이 심해서 걸리면 천만 원입니다.」 「그럼 안 되겠는데‥‥‥‥.」 「틀어드리죠.」 「깎을 수 없을까요?」 「안 됩니다.」 그리고 손님의 얼굴도 보지 않고 돈을 받아 열쇠와 요구르트 한 병을 건네주는 것으로 거래는 끝난다. 여기에 서비스 정신이 어떻고, 환경개선이 어쩌고 해 봐야 정신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손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라도 하면 손님은 마치 범죄(?)의식이 다분히 있는 자가 상대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짓게 되므로 이는 결코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거래는 이렇게 짧막한 몇 마디 대화로 끝난다. 이런 단조롭고 보 람없는 일을 하다 보니 그 분은 여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인 격 자체를 무시한다. 상대가 대학교수이건 목사이건 손님은 모두 파렴치한 연놈들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이 분은 아침 시간에 운동을 하기 위해 근처의 수영장에 다니는데 아침 시간에 수영 장이나 헬스클럽을 출입하는 분들 가운데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일하고, 사회 공익을 도모하는 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분들과도 결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어느 날 이 분은 우연하게 이런 분들과 수영장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모두가 팬티차림인지라 상대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 도 모르고, 또 알아봤자 수영장 바깥에서 어울릴 정도로 가까 워질 것 같지도 않아 그저 흘러가는 말만 몇 마디 건넸다.
대부분 운동 부족으로 아랫배가 맹꽁이처럼 톡 불거져 나와 마치 금복주 영감처럼 그 아래쪽이 보이지 않는 똥배들인데 큰 똥배, 중간 똥배, 작은 통 배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대화 내용 중에 가까스로 그들의 직업 같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큰 똥배는부동산 업자, 중간 똥배는 고리대금업자, 작은 똥배는 건물 임대업자였다. 모두가 부정직하게 돈을 번 이른바 도척(盜拓)들이었는데 오래간만에 인간적인 대화를 나눴다. 먼저 큰 도척이 자못 심각한 투로 이야기했다. 「내 나이 칠십이요. 돈은 벌어왔지만 갈 날이 머지 않아 정리를 좀 하고 싶소.」 그러자 둘째 도척이 말을 받았다.
「맞는 말이요. 도대체 한 일이 없으니, 돈벌어 잘 쓰고, 자식 새끼 호강시키고, 거들먹거리고 살아왔는디 그거야 짐승도 제 새끼 잘 기르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겄소. 사람하고 짐승하고 조금 다른 점이 있어야 하는데‥‥‥‥.」 하며 마치 철학가나 된 듯이 말하자 마지막작은 똥배가 이야기했다.어미(語尾)가 땅께로 끝나는 걸로보면 전라도 사람같았다. 작은 똥배는 건물 임대업자였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팔아 건물을 지어 세를 들리고, 그 세를 받아먹으면서 돈 도불리고, 중산충으로살아온 자였다. 제 아비 닮아서 대학은 못 들어가고, 대를 이어서 임대업이나 부동산업을 하고 있어서 공익생활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부류이다. 이런 이에 게 석가가 어쩌고, 예수의 산상수훈이 어쩌고해 봐야 '소 귀에 경읽기' 라 침묵을 지키는 편이 편하다.
「글쎄올시다. 우리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가 없네요. 짐 승은 배신이나 하지 않는데 그 동안 숱하게 배신을 해서인지, 그 방면엔 이골이 났어요.」
큰 똥배가 말했다. 「맞아요. 우린 사람이 아니죠. 결국 짐승만도 못 하게 살아왔는데 나머지 세월을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어요.」 중간 똥배가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그걸 보면 돈은 벌지 못하지만 작가나 학자, 예술가들이 더 부자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야 뭔가 남기는 것이라도 있지 않소. 글을 쓰면 그 글이라도 남아서 얼마동안 사람들한테 읽혀지고 교수는 학식을 학생들에게 전해서 그 이름이 남는데, 우리는 뭐 하나 남기는 것이 없지 않소.」
세 똥배는 모처럼 만에 제법 인간적(?)인 대화를나누면서 이제 껏 생각지 못했던 어떤 가치를 발견하려는 듯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가치는 돈이었다. 돈이 있기 때문에 대낮에 수영을 즐기고, 남들은 뼈빠지게 일하는 시간에 청평이나 남이섬 같은 데 가서 보트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돈 이란 것이 살아가는데 귀중하긴 하지만 돈이 떠나가고도 남아 있을 더 귀중한 것이 그들에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인생의 회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갖는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일생동안 추구하는 가치,
그것을 가치를 보는 관점이라 하여 '가치관 이라고 부른다. 학자가 갖는 가치관이 다르고, 예술가가 갖는 가치관이 다르다. 학자는 연구하는 논문의 단서를 얻기 위해 고서점(古書店) 을 뒤져, 거기서 어떤 묵은 책을 발견했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 그것은 재벌의 회장이 남의 회사 주식을 싸게 매입해서 사들이는 기쁨과 맞먹을 정도의 기쁨이다. 소설가는 인구(人 口)에 회자(膾炙)가 될 정도의 작품을 구상하고 이를 이뤘을 때 세상 모두를 소유한 것처럼 보람을 느끼고, 작곡가는 자신이 작곡한 곡(曲)이 완성되어 발표회 날 많은 사람들이 기립박수로 대할 때 생애에 최고의 기쁨을 느낀다.졸부(猝富)가 아무리 돈 자랑을 해대도 가치관이 다른 작가나 얘술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부러워하지 않고 존경은 커녕 혐오스럽게 느낀다.가치관이 틀리기 때문이다.
사람과 짐승이 다른 건 각각 이성(理性)과 본능에 의해 그들 의 행동이 이행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사람에게는 있는 가치관 이 동물에게는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렇다. 동물에게는 가치관이 없다. 하지만 동물은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주인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이것이 동물이 사람보다 나은 점이다.
사람은 본능을 충족시켜 주는 사람을 배신하고, 시대가 타락해서인지 제 부모를 찔러 죽이는 패륜아들도 가끔씩 나타난다. 동물계에서는 일찍이 없던 일이다. 이를보고사람들은 「어찌 인 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냐!」 하면서 개탄을 하고 있다. 개 같은 놈이 아니라 개만도 못한 놈들이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 개만도 못한 놈들이 권력을 이용하거나, 돈을 이용해 남 위에 군림하는 지도층으로 존재할 때,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개만도 못한 사회가 되어 버린다고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유승민 김무송같은 자들이 지도자라고 나댔다가 다수의 생각있는 유권자들에게 철퇴를 맞는 원인은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고급스러운 생각을 갖고 한평생 을 산다는 것, 그것을 진정한 인간의 가치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각기의 삶을 사랑할 때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희망찬 인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