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제자
애락혜(愛樂惠) 박춘희
부처님이 계신 기원정사 문밖에는 각 지방에서 모여든 서른 명의 비구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을 만날 차례를 기다리는데, 키가 작고 얼굴도 못생긴 사미승(어린 남자 승려)이 그 문을 나왔습니다.
“얘, 넌 좀 이상하게 생겼구나.”
한 비구가 사미승에게 말을 걸자, 다른 비구들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비구들은 경쟁하듯 사미승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툭 불거진 이마를 만지거나, 옷자락을 움켜잡았습니다. 비뚤어진 코와 쳐진 귀를 잡아보는 비구들도 있었습니다. 사미승의 팔을 끌어당기며 팽이처럼 몸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사미승은 비구들의 짓궂은 장난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손이 몸에 닿아도 싫은 표정 없이 잘 참았습니다.
얼마동안 사미승을 놀리던 비구들이 가사를 단정히 두르고 모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처님께 절을 올린 다음, 어떤 비구가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라바나발제는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설법을 잘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존자는 어디에 계십니까?”
“비구들아, 그를 만나고 싶은가?”
“예, 만나고 싶습니다.”
“이미 그를 만나지 않았느냐?”
“예?”
“문밖에서 괴롭혔던 그가 바로 라바나발제야.”
“아이처럼 키가 작고 얼굴도 못생긴 그가 라바나발제 존자란 말씀입니까?”
비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다른 비구가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설법이 뛰어난 존자 아니십니까? 그런 분이 어찌 그리 못생기고 볼품없이 태어났단 말입니까?”
“전생에 지은 업보로다!”
“무슨 업보입니까?”
부처님은 길게 숨을 내쉬며 전생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득한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릴 때였지.”
범여왕은 아주 고약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낡고 오래된 것’이면 무조건 싫다고 했습니다. 코끼리, 말, 소, 개 같은 짐승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늙고 쭈그러지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죄다 끌고 가서 들판에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또 허리가 굽은 백발의 노인이나 병든 늙은이들을 보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발길질 하는 시늉을 하며 당장 꺼지라고 명령했습니다. 늙은 부모를 모신 자식들은 어쩔 수 없이 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늙은이들은 범여왕의 행패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범여왕은 짐승이나 사람은 물론 물건조차도 오래된 것이라면 싫어했습니다. 짐을 나르는 수레가 낡아서 삐거덕거려도 화를 냈습니다.
“저 낡은 수레를 어서 치우지 않고 뭣들 하느냐?”
범여왕의 그릇된 말과 행동을 바로 잡으려는 신하는 없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목숨이 있든 없든 모두가 변한다는 사실을 차마 아뢰지 못했습니다. 벼슬에서 쫓겨날까봐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었습니다.
범여왕의 행패를 본 받기라도 한 듯, 신하들도 백성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평화롭던 바라나시에는 웃음과 칭찬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전에는 이웃이나 친척들이 서로 배려하고 도왔지만, 이제는 만나면 잘잘못을 따지며 싸우는 일이 잦았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뒤에 그 업보대로 극락이나 지옥으로 갑니다. 그런데 극락왕생은 줄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숫자만 점점 늘었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보살, 즉 제석천은 진작부터 그 까닭을 알고 있었습니다. 범여왕의 행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유로 만든 타락죽 항아리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두 마리 늙은 암소가 끄는 낡은 수레에 항아리를 실었습니다. 보살은 누더기 옷을 두르고 손수 수레를 몰았습니다.
한편 범여왕은 나라의 축제일을 맞아 빛나는 유리구슬과 온갖 색실로 장식한 코끼리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범여왕이 앉은 호화롭고 찬란한 코끼리와 그 행렬이 성문을 나섰습니다. 범여왕이 내려다보니 바로 앞에 낡은 수레 한 대가 멈춰 있었습니다. 누더기를 걸친 늙은이가 수레의 고삐를 잡고 있었습니다.
범여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봐라, 저 낡은 수레를 내 눈 앞에서 빨리 치워라.”
신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서둘지 않고 뭣들 하느냐?”
“대왕마마, 수레가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니, 이것들 봐라? 수레가 어디 있냐고? 두 마리 늙은 암소가 끄는 낡은 수레가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예? 저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하들은 물론, 축제를 구경 나온 백성들 눈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살은 낡은 수레가 범여왕의 눈에만 보이도록 위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보살은 수레를 단숨에 공중으로 몰아 범여왕의 머리 위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타락죽 항아리를 하나씩 깨뜨렸습니다. 타락죽이 범여왕의 왕관 위로 쏟아지면서 얼굴, 어깨, 가슴으로 줄줄이 흘러내렸습니다. 범여왕이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릴 때, 보살은 허공에서 팔을 뻗었습니다. 보살의 손에는 법구인 금강저가 번쩍거렸습니다.
“어리석은 왕이여! 고운 꽃도 피었다가는 지고 시냇물도 흘러가면 그 뿐, 태어나면 누구나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기 마련 아닌가!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무엇도 그대로 머물 수 없는‘제행무상’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늙은이를 괴롭히는 것은 미래의 자신을 해치는 일! 낳아서 길러준 부모를 백성들이 섬기도록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왕이 나서서 행패까지 부리다니 그 죄 값을 어찌 할고?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하고 지옥 불의 고통에 허덕이게 한 그 죄 값을 또 어찌 할고? 이후로도 나쁜 짓을 계속한다면 이 금강저로 그대의 머리를 쪼개고 말 것이야!”
범여왕은 보살의 준엄한 호통에 번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코끼리 등에서 내려와 땅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제석천이시여, 제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그 무엇도 그대로 머물 수 없는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노인을 공경하고, 낡은 것도 소중히 여기며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나이다.”
보살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과응보를 일러주고 떠났습니다.
그 후로 범여왕은 늙은 백성은 물론, 병든 짐승이나 낡은 물건도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을 향해 전생과 현생을 이어서 설명했습니다.
“전생의 범여왕이 오늘날의 라바나발제일세.
비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합장했습니다.
“라바나발제의 지금 모습은 전생에 저지른 행동의 과보(인과응보)일세. 수많은 사람과 짐승과 물건에 고통을 안겼으니 마땅히 받아야 할 수모야. 작고 못생기고 볼품이 없는 모습으로 조롱과 놀림을 참고 살아야 하네.”
“범여왕을 깨우쳐 주신 보살님, 하늘을 다스린 제석천은 누구입니까?”
한 비구가 다시 여쭙자,
“그 보살, 제석천은 전생의 나였느니라.”
부처님의 말씀이 끝나자, 합장한 비구들은 입을 모아 염송했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본생경202화 탐희의 전생이야기>
<생각하기>
‘자신의 전생이 궁금하면 지금 사는 모습을 보라. 또 죽은 뒤의 세상이 궁금하다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 물어 보라’라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경쟁에서 이기고, 값진 물건을 많이 가지면 잘 사는 것일까요?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잘 사는 기준이 좀 다르겠지요? 자신의 말과 행동과 뜻을, 내 안의 부처님이 늘 지켜보신다고 생각해 보세요. 잘 사는 기준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으니까요.
<약 력>
<소년> <새교실> 동화 추천 완료, <소년중앙>창간기념 동화최우수 당선.
한국아동문학상, 불교아동문학상 수상.
동화집『달맞이꽃』,『가슴에 뜨는 별』,『점비와 우산할아버지』,『들꽃을 닮은 아이』등, 수필집『모난 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