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심야 책방
저자 : 윤성은
출판 : 이매진 2011년판
- 재미 있는 것들은 가끔 소름끼지는 사건도 동반한다
어떤 창조적인 행위나 작품들은 우연히 일치하기도 하고 당사자가 밝히지 않는 한 모방인지 타자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릭 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와 이 책 윤성근의 '심야 책방'은 같은 날 빌려서 읽은 책들인데 두 권을 다 읽고 나니 유사한 점이 많아 다소 어리둥절한데 그것은 작가 둘 중 누군가 한 쪽의 책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꼭 희귀본만 모으는 것은 아닌 이 책 '심야 책방'의 저자는 오래된 책, 즉 고서를 사모아 찾는 애호가들에게 되파는 일을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나 작가 및 작품 내용에 관한 비평도 곁들였고, 국내 라디오 방송사에 초빙되어 매편 전파를 탔다는 점까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따라하고 있는 듯한 정황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물론 영미권 작품들만 아니라 국내 주요 작품들도 포함시켰고, 외국 작품일 경우는 대부분 번역본에 한정한다는 것이 다르다면 조금 다르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가 책을 등한시 하고 독서를 게을리하며 사색적이고 창의적인 면보다는 자극적이고 즉흥적인 단순쾌락적 일상만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록 유사해서 오해를 사고 있긴 하지만 보다 넓은 차원에서 격조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또 하나의 세계로 일반인들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칭찬을 해줘도 좋지 않을까 싶다.
책 서두의 사진으로 보여지는 그의 책방은 모든 것을 상업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시선을 잠시 유보시킨다 해도 여느 가정집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독서에 열중할 수 있고, 자신이 구하는 책을 만족스럽게 찾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 또한 어느 의미에서는 소명의식이 느껴질 정도로 진지하다. 그러한 점은 중간의 꼭지에 실린 저자의 책방을 찾은 애호가들을 대하는 글에서 잘 엿볼 수가 있다.
책 안에는 많은 이름난 작가와 작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고서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각국의 책방과 문화에 대해서도 나름 전문가적인 견지로 안내해 주고 있다. 앞서 밝힌 릭 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와 전개방법이 거의 비슷해 따로이 부가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읽다보니 흥이로운 점 두 가지가 발견되어 여기 몇 가지 첨부해볼까 한다.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유명한 작가들처럼 글을 써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즉, 창작에의 열정을 남김없이 쏟아내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 같은데 본인도 모르게 그런 아쉬움을 이 책에서 드러내보이고 만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고수해오던 작품의 해설 방식을 180도 벗어난 방식을 채택, 적용시킨 것이다.
적용이 된 작품은 미국의 소설가 존 케네디 툴의 '저능아들의 동맹'인데 앞의 다른 작품들이 마치 나래이션을 펼치듯 적어내려 갔다면 여기서는 유사한 소설 창작 방식을 도입, 마치 자신이 작품 속에 몰입된 채 다른 작품을 끌어들이는 액자소설의 형태를 취함으로서 읽은 독자로 하여금 짧은 단편 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다소 어리둥절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저자의 심경이 동류의식처럼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유명한 작품군에 묻히다 보면 자기도 그런 작품을 써보고싶은 욕망에 자극받기 마련이고 거기서 한 발 넘어가다보면 이 꼭지와 같은 유사창작이랄까 하는 행위가 자연스레 펼쳐지는 것이다. 아마 저자도 전후 이런 충분히 의도된 계산하에 집필했을 테고, 출판사에서도 의아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런 의도도 독자들에게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점에서 별 무리없이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고서을 사고 되팔다보면 '우연과 필연'이라는 삶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는가 싶다 할 저자의 경험이 발견된다. 하루는 어떤 의뢰자가 찾아온다. 돌아보면 아픈 우리의 과거로 의뢰인이 학생시절 독재정권에 맞서며 운동권을 누빌 때 헤어진 어떤 친구를 그리워해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내일을 알 수 없는 나이에 이르자, 그 시절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자기가 젊을 때 빌려주고 되돌려받지 못한 책의 제목을 알려주며 구하게 되면 많은 사례금으로 구입하겠다며 마치 추리소설처럼 선불까지 지급한다. 그러나 일상에 젖어 매순간 바쁘게 생활하는 저자는 의뢰자로부터 받은 선불과 책을 의식하지만 쉬이 손에 들어오지 않는 탓에 어느 순간부터 망각하고 만다.
그리고 6개월이 흘렀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책방으로 걸려온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곧 재개발될 예정이어서 이사를 해야하는데 책을 정리하고 싶으니 와서 가져가도 좋다는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고서가 손에 들어온다는 흥분으로 얼른 책들을 입수, 정리하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틈에서 전일 선불까지 주면서 맡겼던 의뢰자의 책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책의 서장에 의뢰자의, 유명 작가들이 흔히 하는 것 같은 헌정사가 의뢰자의 이름으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보니 저자가 고서를 받으러 간 날 문 현관까지 배웅나오던 또 다른 의뢰자가 한쪽 발을 절름거리던 사실을 기억해내며, 젊은 날 운동권 시절 투옥되어 고문으로 말미암아 이미 사망했을 것이라던 의뢰자의 전일 말이 뇌리에 불같이 일며 아파트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그러나 흔쾌히 책을 내놓은 의뢰자 이미 이사를 가고 난 후로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은 근처에 살았던 것이다.
(201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