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향기로운 삶, 시아버님을 천국으로 보내드리며...
시댁식구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3:16)” 말씀을 붙들고 30년을 기도했다. 화급한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남편과 나는 안양 한림대 병원으로 향했다. 시아버님은 간병인의 보호를 받으며 불편한 몸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계셨다. 일주일전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 넘어져서 엉덩이 고관절이 나갔고, 지금은 수술을 하고, 2주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식구들과 의논을 마친 후 주변의 요양병원을 알아봤고, 그로부터 2주일 후 어머니가 교통이 편한 곳으로 요양병원을 옮겼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전화가 또 걸려왔다. 아버지가 계속 소변 줄을 빼서 두 손이 다 묶여있고, 그래서 매일매일 병원에 불려간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안양에 가서 모두모여 의논한 결과 시아버님을 울산으로 옮기는 계획을 세웠다. 시어머니도 심장병 수술 후라 건강의 여의찮고, 시숙도 전립선암 시술을 예약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울산에 도착하게 된 시아버님. 계속적인 기도가 요구될 때 많은 분들께 시아버님 영혼구원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다행히 아버님 계신 요양병원에 매주 한번 정기예배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요일 1시 다른데서 일을 하다가도 그 시간에 맞춰 요양병원에 도착해 아버님을 휠체어에 태워서 예배의 자리로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확실하게 영접기도를 하셨다고 했다. 내 입에서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의 목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시아버님의 주님을 가까이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고, 나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일주일에 3번씩 달려가 아버님의 아침진지를 챙겨드렸다. 특별히 부탁하여 운동도 꾸준히 했지만 그렇게 3개월 후 위기의 순간이 한번 찾아왔다. 우리는 급하게 임종예배를 드리며 기도했다. 그러나 다시금 아버님은 깨어나셨고, 두 곳이나 다른 병원을 거쳐 원목 목사님이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2020년 1월6일 입소하여서 한달 후 세례를 받게 되었다. 코로나로 가족이 모두 출입 통제되었지만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입회하에 시아버님은 은혜로운 세례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그 뒤 시아버님은 시어머니께 영상통화를 하시며 “당신도 꼭 교회에 나가라”고 간절하게 당부했다.
자식이 찾아가서 해야 할 일을 요양병원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하셨다. 코로나의 계절을 살아가며 모두들 안타까워하는 2020년, 특히나 병원에 부모님을 모신 가족들과 자식들은 더욱더 애태우는 한해였지 않은가. 한해가 저물어가면서 모두가 12월 성탄절을 의논할 즈음 11월 16일 요양병원서 임종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기도하는 분들에게 긴급한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시댁 친정 모두 통틀어 처음으로 하는 기독교장례식을 어찌할까? 갈급한 기도의 물결이 차올라왔다. 제천으로 향하는 영구차 안에서 계속적인 기도와 찬양이 이어졌다. 제천에 도착하니 시아주버님의 주선으로 기독교 장례절차로 꾸며져 있었다.
요양병원 목사님은 제천까지 직접 갈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대신해 제천 친구에게 연락하여 입관예배를 인도하게 해주었다. 발인 및 하관예배는 홍계환 총장님이 부산에서 달려와 인도해 주셨다. 가족들 모두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되었고, 아버님의 천국환송예배는 경건하며 은혜로운 가운데 진행됐다. 온화한 날씨와 분주하지 않은 날짜 등 모든 것이 유가족에게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장례의 모든 절차를 잘 마무리했지만 내게서 떠나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시어머니는 슬픔에 겨워 살아생전 남편이 소주를 좋아했다며 청하를 종이컵에 부어 올리며 흐느끼던 모습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라는 말씀을 장례식 3일 동안 펼쳐놓았었다. 이 성경 말씀을 시어머니의 흐느꼈던 어깨를 생각하며 잠잠히 묵상한다. 30년을 시댁을 위해 기도했다. 비록 임종을 앞둔 시아버님이었지만 여러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으로 돌아가셨다. 가족구원은 당사자들의 헌신과 기도의 몫이지만 내가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때 거절한 분들이 없어서 더욱더 감동과 위로가 된다.
또 하나 최고의 위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연달아 장모와 친모를 천국 보낸 이들의 말이었다. “이제 우리 부모님들 모두 천국동기생들이 되었네요!”누구나 한 번 왔다가는 나그네와 다름없는 인생길에서 영원한 천국이 있음을 믿고 나아가는 신앙의 이 길은 얼마나 고마운가.